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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42화 (542/1,214)

542화. 동굴을 떠나다

심협은 마수수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손에 든 하얀 옥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두 눈동자에서 푸른 빛이 연거푸 반짝이면서 현음미동과 옥부에 강렬한 공명이 생겨났다.

하얀 옥부 안에서 보이지 않는 환력(幻力)이 전달되자, 그의 현음미동 신통력의 근원이 두 눈에서 빠르게 회전하면서 놀랍게도 이 보이지 않는 환력을 흡수했다. 이에 따라 현음미동의 위력은 금세 솟구쳤다.

‘이 옥부가 양의미진환진 진법의 핵심 같아 보이는군. 분명 어떤 환술 선부(仙符)의 일종일 터. 나의 현음미동 역시 환지동술(幻之瞳術)이니 이 부적의 힘을 흡수하여 향상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지!’

심협은 금세 어찌 된 영문인지 깨닫고는 하얀 옥부를 체내에 거둬들인 뒤 부적의 환력을 계속 흡수하여 동술을 향상시켰다.

한데 심협이 뒤이어 오색 구슬도 챙기려는데, 머릿속에서 흑곰 요괴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하! 드디어 얻었다! 오색 서룡주(犀龍珠)! 이 물건을 얻었으니 내 지금 수련 경지의 난관을 돌파하여 백 년 안에 진선 후기에 이를 수 있겠군!’

‘오색 서룡주?’

심협은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 구슬의 겉모습과 기운으로 판단했을 때 용족의 내단인 듯했다.

‘심 소자. 우리 상의를 좀 하자. 이 오색 서룡주를 내게 주고 저 양의미진부(兩儀微塵符)를 가져가거라. 그리고 이후 입을 딱 다무는 거다. 어떠하냐?’

흑곰 요괴의 목소리가 심협의 머릿속에 다시 울려 퍼졌다.

‘이 두 물건은 양의미진환진을 안정시키는 물건인데 가져가도 괜찮단 말입니까?’

심협도 이 옥부를 원했기에 내심 동했다.

‘괜찮다마다. 이 조음동 비경은 이미 붕괴되기 시작했고, 양의미진환진 또한 저 용녀가 대부분 파괴하여 복구할 수 없다. 그러니 이 물건들은 이미 그리 큰 쓸모가 없지. 게다가 이 두 물건의 영력은 이미 7할쯤 손상되어 보타산에서는 그리 중요시하지 않을 게다.’

흑곰 요괴가 말했다.

‘호법 선배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좋습니다. 그리 하시지요.’

심협은 걱정을 떨쳐버리고는 오색 구슬까지 거둬들였다. 나중에 흑곰 요괴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지금은 섭채주와 작은 곰 요괴, 백소천 등이 천책 공간 안에 함께 있으니 지금 넘겼다가는 공연히 말썽만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편, 이 광경을 매섭게 노려보던 마수수는 뒤로 몸을 날렸다.

“달아날 생각 마시오!”

심협은 마음을 가다듬고는 즉시 흑곰 요괴에게 전달해 하얀 깃발을 작동시키게 했다. 그러자 둥그런 하얀 빛줄기가 퍼져 나갔다.

주위에 겹겹의 금제들이 한순간 방향을 바꾸어 마수수를 향해 휘몰아쳤고, 하얀 빛 물결들이 주위에 생겨나 그녀의 모든 퇴로를 막아버렸다.

어쨌거나 마수수는 치우의 잔혼이 환생한 몸이니, 심협은 그녀가 떠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우선 그녀를 사로잡은 뒤 나중에 처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마수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손에 든 핏빛 장검에서 검망을 거세게 내뿜으며 다시 번개처럼 휘둘렀다.

찬란하게 번쩍이는 금빛을 띤 붉은 검기가 검에서 뿜어져 나왔는데, 이번에는 한층 웅장하여 길이가 족히 3백 장은 됐고, 너비도 8장에 이르렀다.

쫘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주변 모든 금제의 빛 장막들이 종잇장처럼 검기에 잘려나갔다.

마수수는 번개처럼 금제 밖으로 날아가 다른 한 손을 결인하고 끌어당겼다. 그러자 하얀 빛줄기가 그녀의 몸에서 폭발하더니, 사람 자체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자그마한 하얀색 병이 나타났다. 바로 옥정병이었다.

“심형의 실력이 막강하여 이 소매(小妹) 부끄럽기 그지없군요. 이 조음동의 보물은 귀하에게 양보하도록 하지요. 허나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으니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마수수의 목소리가 옥정병 안에서 들려왔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옥정병에서 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오더니 기다란 하얀색 무지개가 되어 하늘의 공간 틈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행동은 번개처럼 재빨라서 심협으로서는 미처 막을 겨를이 없었다.

“저 붉은 장검은 어떤 보물이란 말인가? 위력이 이토록 대단하다니!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말은 무슨 뜻이지?”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쿠오오오!”

경천동지할 포효가 궁전 쪽에서 들려오더니 거대한 파도가 하늘로 솟구치듯 비경 전체가 흔들리고, 제단의 양의미진환진도 윙윙 쉬지 않고 떨렸다.

“염마신!”

심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 소리에 담긴 위세로 보아, 염마신은 뇌부천장이 죽기 직전에 가한 자폭 습격에도 큰 부상을 입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실력이 더 향상된 것 같았다. 게다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호법 선배님, 이 조음동을 나갈 방도가 있습니까?’

‘본래는 내게 방도가 없다만, 지금은 양의미진환진이 눈앞에 있는 데다 조종할 영기(靈旗)도 우리 손에 있으니 가능할 게다. 그리고 염마신은 아직까지 조음동 안에 있으니 우리에게도 기회야!’

흑곰 요괴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회요? 선배님 설마……?”

심협은 무시무시한 추측이 떠올라 무의식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흑곰 요괴는 대꾸하는 대신 심협의 체내 법력을 동원하여 작은 하얀 깃발의 힘을 불러일으켰다.

이전보다 훨씬 환한 하얀 빛이 작은 깃발에서 피어나고 주위의 하얀 금제들이 눈부신 영험한 빛을 뿜어냈다. 제단 주위 허공에는 둥그런 하얀 빛 무늬들이 나타나 금제와 한데 어우러져 하얀 법진을 이루었다.

쿠르릉!

커다란 굉음이 궁전 쪽에서 들려오더니 웅장한 궁전에 금빛 문양들이 떠올라 눈부신 금빛을 뿜어냈다.

온 궁전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위에 가로세로로 엇갈린 거대한 균열들이 나타나더니 전체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뒤이어 거대한 그림자가 지하에서 튀어나왔다. 바로 염마신이었다.

그는 겉모습이 또다시 변해 더욱 커진 듯했고, 몸에는 비늘이 빽빽하게 돋아 있었다. 더욱이 등줄기에도 팔이 두 개 달려 있어 더욱 흉악해 보였다.

염마신은 땅속에서 불쑥 솟아나오자마자 시뻘건 눈으로 심협을 빤히 노려보더니, 거대한 몸이 눈 깜짝할 새 한 줄기 잔상으로 변해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동시에 심협의 체내에서 흑곰 요괴의 나지막한 외침이 들려왔다.

‘전송!’

그 순간, 하얀 법진이 우르릉거리면서 눈부신 하얀 빛을 뿜어내더니, 광채가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염마신은 허공을 지나 제단 위에 거세게 부딪혔고, 높고 커다란 제단은 마치 흙으로 빚은 것처럼 절반쯤 와르르 무너져 내렸지만, 주위의 법진 금제는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더욱 강한 빛을 내뿜었다.

비경 속의 천지영기가 움직이고 곧이어 제단과 주변의 돌기둥 아홉 개가 동시에 무시무시한 법력 파동을 뿜어냈다.

염마신의 시뻘건 두 눈이 번득이더니 거대한 몸뚱이를 즉시 물려 제단에서 멀어지려 했다.

그러나 얼마 물러나기도 전에 제단과 돌기둥들이 파르르 떨리더니 각각 하늘을 떠받칠 것처럼 거대한 하얀 빛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꽈르릉!

순간 하늘에서 요란한 벼락소리가 울려 퍼졌다.

열 갈래의 빛기둥이 한곳에 모이자, 공중에 파동이 일면서 갑자기 지름이 백 장이 넘는 하얀 광진이 나타났다.

그 광진은 위이잉 하는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한가운데에 더없이 거대한 하얀색 소용돌이가 나타났고, 그 안에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대한 흡입력이 뿜어져 나와 염마신을 뒤덮었다.

염마신은 더 이상 물러나지 못했고, 거대한 광진 안에 하얀 빛이 번쩍이면서 주위의 공기가 한순간 진창처럼 변해 그를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 * *

조음동 밖 자죽림. 심협은 허공에 떠 있었다. 그의 온몸에서는 푸른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고, 얼굴 역시 그 빛에 뒤덮여 있었다. 한데 그에게서 어렴풋이 흑곰 요괴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가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고 손목을 홱 털자, 자그마한 하얀 깃발이 튀어나갔다.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하얀 부적 문양들이 날아가 조음동 대문으로 미친 듯이 밀려갔다.

조음동에 빛이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반짝이는 빛줄기들이 쏘아져 나와 번쩍하고 하늘의 구름층을 뚫고는 끝없는 허공으로 곧장 치솟았다.

“멸(滅)!”

심협이 손가락을 구부려 작은 깃발을 가리키자 작은 깃발이 화르륵 불타오르며 하얀 불꽃 덩이로 변해 수정 실들 속으로 녹아들었다.

수정 실들은 맹렬히 번득이면서 지름이 족히 백 장은 되는 빛기둥으로 변해 새하얗게 타오르며 조음동을 집어삼켰다.

콰르릉!

무시무시한 파멸의 기운이 하얗게 작열하는 빛기둥에서 흘러나오더니 거대한 굉음 속에 거센 하얀 빛이 사방으로 휘몰아치며 순식간에 조음동과 산봉우리들을 덮쳤다.

다음 순간, 주변 산봉우리도, 조음동부도 완전히 부서져 가루가 되어버렸다.

하얀 빛기둥은 금세 사라졌고, 조음동과 산봉우리는 마치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남지 않았다. 대신 땅바닥에는 반경이 수백 장에 이르는 시커먼 동굴이 나타났다. 칠흑같이 어두워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는 동굴이었다.

심협의 얼굴을 뒤덮었던 푸른 빛이 번쩍하고 사라지더니 원래 얼굴로 돌아왔다.

완전히 사라져버린 조음동과 끝없이 깊은 동굴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경악의 빛이 스쳐 지났다.

“양의미진환진의 자폭이 이토록 강력할 줄이야! 조금 전 그 하얀 빛기둥의 위력은 분명 태을경 강자의 일격을 뛰어 넘었을 거야!”

심협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머릿속에 놀란 흑곰 요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 도우, 태을경 존재의 신통력도 적잖이 본 적이 있느냐? 그런 대능들은 봉황의 깃털만큼이나 보기 드물 텐데…….’

‘우연히 몇 번 본 적이 있지요. 염마신은 완전히 사라진 겁니까?’

심협은 길게 말하기 곤란해 애매하게 답하고는 곧장 화제를 돌렸다.

‘알 수 없다. 허나 살아 있다 하더라도 분명 원기가 크게 상했을 게다. 그를 죽일 좋은 기회지. 심 소우, 부탁한다.’

흑곰 요괴는 진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심협은 두말 않고 손을 뒤집어 자금령을 꺼낸 뒤 가만히 기다렸다.

그때, 바람소리와 함께 핏덩어리 같은 것이 검은 동굴 깊숙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심협은 곧장 자금령의 힘을 발휘시켰다.

지극히 순수한 붉은 화염이 화령 속에서 뿜어져 나와 그 핏빛을 정면으로 뒤덮었다. 바로 지순지염이었다.

핏빛은 지순지염에 뒤덮이자마자 허무로 변해버렸고, 그 안쪽에 있던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사람 키만 한 핏빛 결정체였는데, 안쪽에는 온통 몽롱한 빛이 흐릿한 사람 그림자 하나를 감싸고 있는 것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한데 뜻밖에도 지순지염조차 이 핏빛 결정체를 녹일 수가 없었다.

심협이 내심 긴장하며 다른 수단을 쓰려 하는데, 핏빛 결정체 속에서 갑자기 물결이 일렁이며 주위를 향해 휘몰아쳤다. 지순지염은 그 물결에 닿자 놀랍게도 단숨에 꺼지고 말았다.

“이럴 수가!”

심협의 낯빛이 변하였다.

자금령 속 붉은 영화(靈火)의 위력은 그 자체로도 상당한 데다 지순지염으로 정제한 뒤에는 거의 불사르지 못할 물건이 없었다. 한데 이 핏빛 물결은 단숨에 지순지염을 없애버린 것이다.

핏빛 물결은 계속 밖으로 퍼져 나갔고, 안쪽에서는 매서운 빛이 번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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