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41화 (541/1,214)
  • 541화. 정체를 확인하다

    준비해둔 몇 가지 수단이 핏빛 뼛조각 앞에서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자, 심협은 물러나고픈 충동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쿠르릉!

    멀리서 천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공간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머리 위 허공에서는 쉬지 않고 진동이 계속되더니 뜻밖에도 거대한 균열이 일었고, 푸르렀던 하늘은 금세 잿빛으로 변했다. 발아래 해수면에도 거센 파도가 일면서 바다 밑바닥에도 똑같이 거대한 균열들이 생겨났다.

    비경 전체가 곧 붕괴될 것처럼 곳곳에 파멸의 기운이 가득했다.

    ‘어찌 된 일이지? 설마 이곳이 버티지 못하고 붕괴하려는 것인가?’

    심협은 가슴이 철렁해서 염마신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한 줄기 붉은 그림자로 변해 아래쪽 섬의 빛으로 된 문으로 날아갔다.

    염마신의 눈에 사나운 빛이 번득이더니 거대한 몸뚱이가 번쩍하고 사라졌다.

    그 순간, 갑자기 굵직한 금빛 번개가 하늘에서 내려와 염마신 전방 30여 장 앞에 내리꽂혔다. 그러자 그곳에서 검은 마기가 터져 나와 금빛 번개와 격렬하게 충돌했다.

    콰르릉!

    뒤이어 염마신이 곧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살짝 비틀거렸지만, 손에는 금빛 번개를 사방으로 내뿜는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었다. 바로 뇌부천장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망가졌던 천장은 이제 더욱 처참해 보였다. 오른팔과 다리는 기이한 각도로 뒤틀려 몸 전체가 곧 부러질 지경이었다.

    심협은 그 틈에 빛의 문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염마신은 살기등등하게 울부짖으며 손에 검은 빛을 번득이더니 단번에 뇌부천장을 바스러뜨리려 했다.

    그때, 뇌부천장의 몸에서 뇌광이 눈부신 금빛을 피워냈다.

    꽈르릉!

    뜻밖에도 뇌부천장의 몸이 터져나가면서 뜨거운 금빛 햇살이 되어 염마신의 몸을 뒤덮었다.

    수많은 거대한 벼락 부적문양이 햇살 속에서 용솟음쳤고, 놀라운 천둥번개의 위력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공간의 균열들은 또다시 적잖이 넓어져서 온 공간이 언제라도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빛으로 된 문의 통로 안. 심협은 문 너머 상황을 파악하고는 희색을 띠었다.

    뇌부천장이 시전한 것은 뇌전 신통력의 마지막 묘수인 ‘오뢰굉정(五雷轟頂)’으로, 체내의 모든 천둥번개의 힘을 응집하여 자폭하는 공격이었다. 뇌부천장의 경지와 몸이 반쯤 망가졌던 상태임을 감안하면 염마신을 죽일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어쨌든 한동안 염마신을 괴롭게 할 수 있을 터였다.

    심협은 조금 마음을 놓고는 전력으로 날아가다가 을목선둔을 시전했다.

    녹색 빛이 스쳐 지나면서 그는 지하통로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에는 이미 궁전 바깥이었다.

    바깥 공간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 허공에는 이미 거대한 균열들이 가 있었고, 안쪽 바다와 똑같이 그 사이로 공간의 폭풍이 거세게 밀려들었다.

    차이라면 이곳은 허공에 층층이 하얀 빛이 감돌았고, 그 속에 무수한 하얀 법진 문양이 가득하여 몇 겹인지도 모를 층층의 금제를 이루며 더없이 복잡한 대진을 구성했다는 것이다.

    이 금제들의 한가운데에는 어느새 거대한 제단이 두 개 나타났는데, 세모꼴의 두 제단 중 하나는 전체가 황금빛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체가 옥처럼 하얗고 맑았다.

    금빛 제단은 완전히 파괴당해 무너진 상태였는데, 잘린 부위로 보아 파괴된 지 얼마 안 된 것이 분명했다.

    반면 하얀 제단은 그럭저럭 온전한 편이었는데, 상반부는 아홉 겹의 하얀 빛의 장막으로 덮여 있었고, 꼭대기 부분에는 어렴풋하게 뭔가가 쉬지 않고 반짝였다.

    제단 주위에는 하얀 돌기둥 아홉 개가 우뚝 서 있었고, 그 위로는 여러 가지 법진 문양이 새겨져 있어 주위의 하얀 대진과 미미하게 호응했다.

    다만 이 아홉 돌기둥 중 다섯 개는 이미 허리가 잘려나간 상태였고, 그림자 하나가 제단 위에 서 있었다. 바로 마수수였다.

    그녀의 몸에 돋았던 용비늘은 이미 사라지고 소녀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상태였으며, 손에는 새빨간 장검을 한 자루 들고 있었다.

    그 장검은 퍽 예스러워 보였고, 전체에 핏빛 빛줄기들이 감겨 있었으며, 기이한 빛들을 뿜어내고 있어서 한 번 보기만 해도 혼백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몹시도 기이하고 요사스러웠다.

    심협은 이곳을 보고서야 공간을 뒤흔든 굉음의 진원지를 깨달았다. 이곳 비경이 곧 무너질 조짐을 보인 것은 마수수의 소행이었던 것이다.

    그는 인간 모습을 되찾은 마수수의 손목으로 시선을 옮겼고, 다음 순간 동공이 확 움츠러들었다.

    그녀의 오른쪽 손목 위에는 새빨간 표식이 다섯 개 있었는데, 한데 합치니 한 송이 매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녀는 역시 마혼의 환생 중 하나였어!’

    심협은 이미 짐작했지만, 막상 실제로 마수수의 정체를 확인하자 경계심과 살의외에 한편으로는 약간의 안타까움과 연민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녀가 마혼의 환생인 이상 천하 창생들을 위해 절대로 살려둘 수는 없으나, 그와 마수수는 건업성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였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과거와 부득이한 일들도 많았다. 치우를 멸하기 위함이라고는 하나 그녀에게 모진 결단을 내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심협이 마수수를 발견한 것과 동시에 마수수 역시 심협의 존재를 알아차리고는 고운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손을 뒤집어 흑곰 요괴가 섭채주에게 주었던 작고 하얀 양의미진환진의 조종 깃발을 꺼내 휘둘렀다. 그러자 심협 주변의 하얀 빛 장막들이 마치 살아난 것처럼 짓눌러왔다.

    마수수는 번개처럼 돌아서서 제단을 바라보며 손에 든 핏빛 장검을 휘둘렀다.

    캉!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하늘을 찌를 것 같은 핏빛이 번득이며 장검에서 길이 10여 장의 핏빛 검망이 뿜어져 나왔다.

    촤악!

    무언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제단 가장 바깥쪽의 하얀 빛 장막이 단칼에 무너졌다.

    주위의 하얀 금제들이 몰려오자 심협의 눈앞이 곧 하얀 안개로 뒤덮이면서 제단과 마수수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심협은 마수수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그녀를 처단할 결심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양의미진환진 진법의 핵심이 있는 곳이 뜻밖에도 이곳이었다니! 심 소자, 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이 금제들을 부수고 제단 꼭대기의 물건을 손에 넣어라. 저 용녀도 그것을 원하는 듯하니 절대 목적을 이루게 해서는 안 된다!’

    흑곰 요괴의 잔뜩 격앙된 목소리가 심협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심협은 그제야 흠칫 정신을 차리고는 손을 뒤집어 자금령을 꺼냈다.

    화령에서 붉은 빛이 미친 듯이 불어나더니 커다랗고 순수한 붉은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비록 지순지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리 큰 차이 없을 만큼 순수한 화염이 앞쪽의 하얀 안개에 거세게 부딪혔다.

    치이익!

    무언가를 불로 지지는 듯한 소리에 이어 안개가 눈 녹듯 사라지면서 이전의 겹겹의 하얀 빛 장막이 다시 나타났다.

    붉은 불길은 앞으로 치솟아 응결되더니 수십 장 길이의 붉은 화봉이 되어 날개를 치며 날아들었다.

    퍽! 퍽!

    가벼운 충돌음이 연이어 울리면서 빛 장막들 역시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자금령의 화염을 조금도 막지 못한 것이다.

    ‘제단 위에 뭐가 있는 겁니까?’

    심협은 붉은 화염 뒤를 바짝 따라서 금제 깊숙한 곳으로 향하며 전음으로 물었다.

    ‘더 물을 것 없다. 손에 넣으면 알게 될 것이니, 어서 이 금제들을 뚫어라.’

    흑곰 요괴가 다급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제단 위의 마수수가 새빨간 장검을 연달아 내리치자, 핏빛 검기들이 뿜어져 나와 또다시 여러 겹의 빛 장막들을 연달아 가르고 빠른 속도로 높은 단상 꼭대기로 다가갔다.

    이때, 잇단 파열음이 들려왔고, 이에 고개를 돌린 그녀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붉은 화봉 한 마리가 바깥의 법진 빛 장막 안에서 활개 치며 가볍게 금제를 녹이고는 금방이라도 뚫고 나오려는 모습이 보였다.

    마수수는 이를 악물더니 작고 하얀 깃발을 내던졌다.

    작은 깃발에서 새하얀 빛이 피어오르더니 한 줄기 하얀 빛으로 변해 바깥의 금제로 녹아들었다.

    붉은 화봉 주위 금제의 빛 장막에서 하얀 빛줄기가 바깥을 향해 뿜어져 나오더니, 장막이 몇 배나 두꺼워지고 위력 또한 갑자기 증가했다.

    쏜살같이 날아가던 붉은 화봉은 마치 거대한 산에 눌린 것처럼 금세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이어서 주변 장막 금제의 하얀 빛이 연달아 번쩍이더니, 화봉을 중심으로 빠르게 회전하면서 거대한 회오리를 이루고 화봉을 그 안에 가두었다.

    마수수는 안도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제단 꼭대기에 남은 4도 금제를 바라보았다. 이 금제들은 더욱 두꺼웠고, 무수히 많은 신비스러운 부적 문양이 그 위에서 회전하여 더없이 비범해 보였다.

    마수수는 눈빛이 매섭게 변하더니 갑자기 혀끝을 깨물어 피를 한 방울 핏빛 장겁에 뿌리고는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장검의 핏빛이 순간 몇 배로 밝아지면서 길이가 3장에 이를 정도로 거대해졌다. 검신의 대부분은 새빨갛고 요사스러웠으며, 어지러울 정도의 피비린내를 풍겼다. 그러나 남은 검신의 반은 웅대하고 순수한 금빛을 뿜어내 요사스러운 핏빛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러나 둘은 충돌하지 않고 도리어 은은히 서로 어우러졌다.

    마수수는 시뻘건 장검을 휘둘러 천 근 같은 무게로 제단의 허공을 베었다.

    격렬한 공간의 파동이 갑자기 제단 꼭대기에 나타나더니, 길이가 30여 장쯤 되는 거대한 검기가 나타나 제단 꼭대기의 4도 금제를 거침없이 단칼에 베었다.

    거대한 검기에 금빛과 붉은빛이 서로 뒤섞이면서 절반쯤 떨어지자, 수많은 강줄기들이 바다로 들어가듯 근처의 천지영기가 검기를 말끔히 빨아들였다. 이에 길이가 30여 장에 이르던 검기는 순식간에 100장까지 커져 4도 금제를 베었다.

    촤악! 촤악! 촤악! 촤악!

    4번의 파열음이 연거푸 울리면서 4도 금제가 단번에 갈라지고 제단 꼭대기에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예스러운 하얀 옥부와 오색 빛을 뿜어내는 주먹만 한 구슬이었다.

    옥부는 전체가 새하얀 빛깔이었지만 주변에는 회백색이 뒤섞인 부적문양도 언뜻언뜻 보여 무척 신비로웠다. 다만 그 위에는 금이 몇 줄 가 있어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오색 구슬도 마찬가지로 위에 두 줄기 균열이 생겨나 있어 곧 허물어질 것 같았다.

    마수수는 두 눈을 반짝이더니 손에 검은 빛을 발하며 옥부와 오색 구슬을 향해 뻗었다.

    한데 그때, 어디선가 푸른 빛줄기가 날아와 한 발 앞서 옥부와 구슬을 휘감고는 멀어져갔다.

    마수수는 순간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즉시 결인하고 주위의 금제를 가리키며 제단 주위의 금제를 작동시켰다.

    허나 조금전까지 조종할 수 있었던 금제가 어째서인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푸른 빛이 백옥부를 휘감은 채 휙 하고 몇 겹의 금제를 뚫고 한 사람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바로 심협이었다.

    마수수는 황급히 돌아서서 바깥의 금제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금제 회오리는 어느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반면, 심협은 한 손에 옥부를 받아들고 허리춤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 빛으로 된 손바닥을 만들어내더니 양의미진환진을 조종하는 하얀 깃발을 움켜쥐었다.

    “당…… 당신이 어떻게 나온 거지?”

    마수수는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나면서 낮은 목소리로 외쳐 물었다.

    만약 심협이 홀로 양의미진환진으로 뛰어들었다면 그의 경지가 진선 중기까지 향상되었다 해도 법진 안에 갇혀 단시간 내에 헤어 나오지 못할 터였다.

    그러나 마수수는 심협의 몸속에 있는 대부분의 법력이 흑곰 요괴가 넘겨준 것임을 알지 못했다. 더욱이 흑곰 요괴는 오랜 세월 자죽림을 지켜왔기 때문에 양의미진환진에 대해서라면 보타산에는 그에 비할 사람이 드물었다. 그러니 마수수가 이제 갓 익혀 불러일으킨 금제의 소용돌이를 푸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