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9화. 버드나무 가지와 옥정병
“버드나무 가지를…… 내놔…….”
염마신은 다시 한번 낮게 으르렁거리더니, 불쑥 나타난 뇌부천장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심협을 죽일 듯 노려보며 양손으로 허공을 홱 움켜쥐었다.
심협의 머리 위 허공에서 둔탁한 폭발음이 울리며, 불쑥 궁전만 한 짐승의 발 두 개가 나타나 떨어져 내렸다.
쿵! 쿵!
두 번의 굉음과 함께 이전보다 강력해진 두 줄기 마기의 파동이 폭발하면서 주위의 천지영기들을 산산이 흩어버렸고, 공간까지 강철처럼 단단해져 뇌둔술(雷遁術)을 시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심협은 이미 같은 수법에 걸려든 적이 있으니 어찌 두 번 당하겠는가? 그는 거대한 짐승의 발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을목선둔을 시전하여 사라져버린 후였다.
반면 뇌부천장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콰르릉!
커다란 우렛소리에 이어 뇌부천장의 몸이 수십 장 길이의 금빛 뇌룡으로 변해 용솟음쳤고, 자그마한 금빛 번개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 금빛 번개들 속에는 더없이 난폭한 번개의 힘이 담겨 있어서 단숨에 주위 허공의 속박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금빛 뇌룡은 한 줄기 금빛 번개로 변해 염마신에게로 돌진했다.
그 무렵, 심협도 뇌부천장의 반대편에 나타나 자금령의 힘을 불러일으켰다.
쿠르릉!
둔탁한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무수한 붉은 화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 천지를 뒤덮을 것처럼 염마신의 몸을 덮쳤다.
경천동지할 굉음이 터져 나오고 번개와 화염, 검은 빛이 한데 뒤얽혀 번쩍였다.
* * *
천지가 뒤집어질 듯한 외부와 달리 천책 공간 속은 고요했다.
“여기는 어디지? 어느 공간 법보 안인가?”
견문이 가장 넓은 흑곰 요괴가 추측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아마도 여기는…… 아니, 네놈은!”
백소천은 한마디 맞장구를 치더니 말을 잇다가 갑자기 놀라서 외쳤다. 그림자 하나가 앞에서 날아오는 것이 보였는데, 바로 원구였던 것이다.
앞서 심협은 이미 원구를 죽였다고 말했던 터라 그를 다시 보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소천은 어느새 화룡점정선을 꺼냈고, 이 부채에서는 한 줄기 금빛이 뿜어져 나와 자신과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감싸고 보호했다.
워낙 호전적인 작은 곰 요괴는 바깥의 대전에서 아예 나설 기회조차 없어서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에 원구가 나타나자 즉시 한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붉은 전창 한 자루가 번쩍 나타나 공격하려 했다.
“도우들, 진정하시오. 저는 예전의 원구가 아닙니다. 원구는 이미 심 도우에게 죽었고, 저는 그자의 시신을 접수한 분신입니다. 게다가 저는 이미 심 도우에게 항복하였으니 여러분의 적이 아닙니다.”
원구는 황급히 손을 들어 올리며 짧게 설명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맞습니다. 그는 이제 적이 아닙니다.”
공간 속에 금빛이 모여들더니 눈 깜짝할 사이 심협의 모습이 응집되었다.
이에 작은 곰 요괴는 입을 삐죽이며 장창을 거두었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섭채주가 즉시 날아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안심해라. 자금령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으니 염마신은 나를 해치지 못한다.”
심협은 섭채주에게 싱긋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그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지금 심협의 공간 법보 안에 안전하게 머물고 있으니 심협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들 역시 큰일이 날 터였다.
“오라버니, 부디 조심하세요. 염마신의 목적은 이 버드나무 가지인 듯합니다. 그가 위청이었을 때에도 수차례 이 물건을 노렸지요. 오라버니께서 이 버드나무 가지를 가지고 계시다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그냥 넘기세요. 어쨌거나 이 물건은 이미 제가 제련하여 다른 누구도 그 힘을 발휘할 수 없으니 다시 기회를 틈타 되찾아 오면 됩니다.”
섭채주가 버드나무 가지를 건네며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두르지 말아라. 염마신이 강하기는 하나 내 아직 상대할 수 있다. 버드나무 가지는 보타산의 귀중한 보물이니 절대 남의 손에 떨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위청은 이미 마족에 의탁하였고, 마족의 수단은 헤아릴 수 없이 기묘하지. 관음대사께서 남기신 금제를 제련할 방법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심 도우의 말이 옳다.”
흑곰 요괴와 작은 곰 요괴도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섭채주는 두 사람에게 눈을 부라렸지만, 더는 따지지 않았다.
“게다가 이 공간이 나의 몸과 연결되어 있으니 누이가 여기서 버드나무 가지의 회복 효과를 발동시킨다면 그 회복 법술이 내 몸으로 곧장 녹아들 수 있다.”
심협이 곧이어 말했다.
“정말입니까? 그럼 정말 잘됐어요!”
섭채주는 크게 기뻐하며 활짝 웃었다.
“이 버드나무 가지에 관해서 호법 선배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물건에 법력 회복과 부상 치료, 사람을 가둬놓는 것 외에 다른 신통력이 더 있습니까? 그 세 가지 능력이 전부라면 위청이 저토록 앞뒤 재지 않고 차지하려 들 이유가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음, 내가 알기로는 그 세 가지 효능뿐이다.”
흑곰 요괴는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렇습니까?”
심협은 조금 실망했다.
“심 소우,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저 버드나무 가지에 다른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옥정병이 하나가 된다면 버드나무 가지의 치유 능력은 전혀 새로운 경지가 될 수 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만물을 살아나게 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게야.”
흑곰 요괴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죽은 이를 되살리고 만물을 살아나게 한다고요? 그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심협의 눈이 조금 휘둥그레졌다.
“그렇고말고. 당시 진원자(鎭元子)의 인삼과(人蔘果) 나무가 밀려서 쓰러졌을 때에도 관음 조사께서 버드나무 가지와 옥정병의 감로수(甘露水)를 배합해 살려내셨지.”
흑곰 요괴가 조금 우쭐해하며 답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만물을 살아나게 한다. 죽은 사람을…….”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심협의 눈빛이 돌연 번득였다.
“호법 선배님, 전에 위청이 보타산 광장에서 요마들과 결탁하여 청련 장교님을 습격했을 때 쇄금린(灑金鱗)이라는 이름을 거론한 적이 있었습니다. 누구인지 아십니까? 귀종(貴宗)의 다른 장로님들 반응으로 보아 예사롭지 않은 자일 듯한데요.”
백소천과 섭채주도 그 일을 궁금해 하던 터라 심협의 질문에 흑곰 요괴를 바라보았다.
“쇄금린!”
흑곰 요괴는 몸을 움찔 떨었고, 안색도 금세 어둡게 가라앉았다.
이 반응을 본 심협은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 쇄금린이라는 사람은 역시나 중대한 일들에 연루되어 있는 것이리라.
“호법 선배님, 저는 쇄금린이 어떤 일에 연루되어 있는지 모르오나, 지금은 보타산이 몹시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위청이 종문을 배반한 이유를 찾는다면 그 속에서 승리할 기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심협이 공수하며 말했다.
“음, 심 소우가 그리 말하니 나도 더는 감추지 않겠다. 쇄금린은 여러 해 전 보타산에 살던 금붕어 요괴다. 관음조사님의 설법을 귀 기울여 듣고 영지가 트여 경지가 깊었고, 성품도 온화해서 보타산 제자들에게 깊이 사랑받았지.”
흑곰 요괴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심협은 눈썹꼬리를 움찔했지만,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관음대사께서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수많은 생령들을 교화하시니 참으로 공덕이 무량하십니다.”
백소천이 양손을 합장하고 존경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백여 년 전 이야기부터 꺼내야겠구나. 당시 보타산 장문은 청련선자의 사저인 청월선고(靑月仙姑)였다. 그해 단오절, 보타산에서는 관례에 따라 해마다 치르는 제자들의 경합을 열었다. 문중의 제자들을 1년간의 수련 경지가 얼마나 발전했나 살펴보았지. 아직 정식 제자가 되지 못한 범속의 잡역 제자들에게는 더욱 중요했어.
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낸 이는 보타산 문하로 뽑혀 깊은 도법을 익힐 수 있었으니까. 한데 경합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 갑자기 소동이 났다. 잡역 제자 하나가 경합 중에 보타산의 내문 도법으로 상대에게 중상을 입힌 게야. 보타산 장로들께서는 대노하시어 그를 수옥(*水獄: 물을 가득 채운 감옥)에 보낸 뒤, 그의 경맥을 없애버리고 산문 밖으로 쫓아내기로 했지.”
흑곰 요괴의 설명이 이어졌다.
“경합 중에 동문을 다치게 한 것이 잘못이긴 하나 처벌이 과하지 않습니까?”
십협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가 그런 중벌을 받게 된 것은 동문에게 중상을 입혔기 때문이 아니라 보타산의 도법을 몰래 익혔기 때문이다. 보타산은 기예를 훔쳐 익히는 것을 절대 금지하니, 일단 발각되면 즉시 경맥을 제거하고 산문 밖으로 내쫓지.”
흑곰 요괴의 설명에도 심협은 고개를 저었다.
“어떤 종문이든 기예를 훔쳐 익히는 것을 금하지만, 이건 너무 가혹합니다.”
“오라버니께서 모르시는 게 있어요. 우리 보타산에 그런 규칙이 있는 까닭은 수백 년 동안 극악무도한 풍풍(馮風) 사건으로 종문이 큰 해를 입었기 때문이에요.”
곁에 있던 섭채주가 불쑥 끼어들었다.
“풍풍 사건?”
“지금으로부터 대략 5백여 년 전, 보타산에 풍풍이라는 잡역 제자가 있었어요. 영수전(靈獸殿)에서 잡일을 하였는데, 영수전의 집사 제자는 성정이 포악하여 풍풍을 비롯한 잡역 제자를 늘 마구 때리며 괴롭혔죠. 풍풍은 수차례 중상을 입고 목숨을 잃을 뻔했고요. 그는 성정이 음험하여 반항하기보다는 방도를 세워 보타산의 공법과 구결을 몰래 훔쳐 익혔지요. 한데 타고난 자질이 비범하여 스승 없이도 몇 년 만에 놀라운 도행을 이루었습니다.”
산수로서 대부분 홀로 수련해온 심협은 그 말에 내심 감탄했다.
“그 뒤, 풍풍은 영수전의 집사 제자를 대번에 때려죽이고는 다시 보타산의 요지로 잠입하여 간수 장로를 죽이고, 종문의 여러 귀중한 보물들을 빼앗아갔어요. 보타산은 경악하여 고수들을 보냈지만, 풍풍의 실력을 낮잡아본 탓에 두 명의 장로와 여러 핵심 제자들이 죽임을 당했지요. 풍풍도 중상을 입었지만, 어느 순간 소식이 끊겼답니다.”
섭채주의 조곤조곤한 설명을 들은 심협은 섬뜩했던 과거에 조금 놀라 헉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로 인해 보타산은 세가 크게 손실되어 근 100년 후에야 겨우 회복되었지. 그때부터 문중에서는 제자가 기예를 훔쳐 배울 경우 혹독하게 처벌하게 됐다.”
흑곰 요괴가 말을 이었다.
“그런 것이었군요. 그렇다면 이해할 만합니다. 수옥에 갇힌 그 잡역 제자는 뒤에 어찌 되었습니까? 참, 그의 이름은 무엇인지요?”
심협은 문득 깨닫고는 곧이어 물었다.
“그자의 이름은 목이(牧易), 보타산에서 속세의 일을 처리해주던 외문 집사의 아들이었다. 목이가 처형되기 전날 밤, 쇄금린이 수옥으로 잠입해 들어가 감옥을 지키던 제자를 혼절시키고 목이를 구출해 보타산을 탈출했다. 그제야 보타산의 여러 장로들은 목이에게 보타산의 도법을 몰래 전수한 것이 바로 쇄금린이며, 둘이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사사로운 정이 생겨났음을 알게 되었지.”
흑곰 요괴가 노여워하며 말했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천하의 예법은 몹시도 엄격하여 동성 간에도 통혼을 할 수 없으니, 인간과 요족, 다른 두 종족의 연모지정(戀慕之情)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욱이 쇄금린이 목이에게 도법을 전수해준 이상 어쨌든 스승이라 할 수 있으니, 두 사람의 사랑은 더욱 인륜에 어긋났다.
“청월장문이 직접 사람들을 거느리고 그들을 쫓았고, 결국 대당 변경에서 두 사람을 따라잡았어. 한바탕 싸움 끝에 목이와 쇄금린 모두 중상을 입었지만, 청월장문을 비롯한 사람들은 목이가 도법을 훔쳐 배운 이유 또한 알게 되었지.”
흑곰 요괴는 거기까지 이야기하고는 갑자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