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37화 (537/1,214)

537화. 을목선둔진(乙木仙遁陣)

하얀 화염들이 불의 고리에서 뿜어져 나와 단번에 마물의 주위를 감싼 검은 마광을 뚫고 검은 갑옷을 매섭게 때리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불의 고리는 절반이 넘는 불기둥의 화력을 응집시켜 만든 것으로, 하얀 화염의 위력은 이전의 붉은 화염보다 훨씬 더 강했다. 위청의 갑옷에서는 검은 빛이 번득이며 하얀 화염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무시무시한 고온이 갑옷을 통해 스며드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이 염마신(炎魔神)은 조금 고통스러운 듯 낮게 으르렁거리더니, 더없이 굵은 두 팔을 뻗어 다리에 감긴 불의 뱀 두 마리를 덥석 잡아챘다. 팔뚝을 휘감은 거대한 불의 뱀이 그를 조금도 속박하지 못한 것이다.

염마신은 굵은 다섯 손가락에 검은 빛을 번쩍이며 불의 뱀을 확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의 다리를 휘감고 있던 두 마리 불의 뱀은 곧장 붕괴되어 무수한 화염으로 변해 흩어졌다.

동시에 검은 마갑(魔甲)의 어깨 부분에 튀어나온 흉악한 가시에서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시커먼 두 개의 빛줄기가 뿜어져 나와 팔뚝을 휘감은 불의 뱀들을 번개처럼 베고 지나갔다.

화르륵!

두 마리 불의 뱀은 마치 솜처럼 손쉽게 동강이 나 사라져버렸다.

이제 염마신은 두 팔을 움직여 허리춤의 하얀 불고리를 덥석 움켜쥐었다.

팔뚝 위의 자흑색 마문에서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면서 안 그래도 굵직했던 양팔이 다시 조금 더 굵어졌고, 그대로 불의 고리를 세차게 잡아당겼다.

거대한 힘이 폭발하면서 근처 허공까지 웅웅 진동했다.

불의 고리는 몇 차례 미친 듯이 번쩍이며 버텨냈으나, 이내 터져나가 무수한 하얀 빛으로 폭발했다.

심협은 경악해 흠칫 몸을 떨고는 재빨리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때, 앞쪽의 허공이 요동치면서 염마신이 불쑥 나타났다. 이어서 허공을 찢어발기듯 거대한 자흑색 손이 난데없이 나타나 다섯 손가락을 쫙 폈다가 매섭게 그러쥐었다. 그러자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힘이 사방을 짓눌렀다.

“버드나무 가지를 내놓아라!”

염마신은 두 눈에 흉악한 혈광을 가득 띤 채, 영지(靈智)를 절반쯤 잡아먹힌 듯한 모습으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심협은 낯빛이 크게 변해 반격할 겨를조차 없이 두 발에 달빛을 거세게 내뿜으면서 옆으로 재빨리 날아갔다.

그러나 자흑색 손에서 새어나오는 거대한 힘의 영향으로 제 속도를 낼 수 없었고, 온 힘을 다한 사월보로도 완전히 몸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한데 그때, 두 발의 법력이 갑자기 스스로 운행하면서 가닥가닥 별빛 같은 빛이 피어올랐다. 뒤이어 그의 온몸은 한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오직 한 줄기 잔상만이 남아 있다가 자흑색 손에 짓눌려 부서졌다.

한편, 수십 장 밖 허공에는 별빛이 스쳐 지나더니 심협의 모습이 불쑥 나타났다.

‘정말 감사합니다. 호법 선배님. 방금 그것이 바로 이형환영입니까? 과연 신묘한 보법이군요.’

그는 숨을 한 모금 가볍게 내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의 차릴 것 없다. 지금 위청의 모습은 실로 무시무시하구나. 마족의 신통력은 과연 대단해. 심 소우, 네가 이길 가망이 있겠느냐?’

흑곰 요괴가 물었다.

그러나 심협이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눈앞이 돌연 어두위지더니, 염마신의 남은 손이 번개처럼 다가들었다. 그 속도는 좀 전보다도 더욱 빨랐고, 마장(魔掌)에서는 검기 같은 자주색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내놔!”

염마신은 계속해서 큰소리로 고함을 질러댔다.

심협은 다시 두 발에 달빛을 내뿜었고, 다리에도 별빛을 피워내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완전히 피하지 못한 탓에 사라지기 직전에 자색 빛줄기가 그를 스쳐 지나갔다.

백여 장 바깥 허공이 어른거리더니 심협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의 어깨에는 상처가 생겨나 있었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는 나타나기가 무섭게 다시 전력으로 사월보와 이형환영을 시전하여 눈 깜짝할 사이 더 먼 곳에 나타났다.

그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중얼 읊조렸다. 그러자 그의 몸에 더없이 환한 녹색 빛이 감돌면서 마치 자그마한 태양처럼 거의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비추었다.

“가랏!”

심협이 결인하고 옷소매를 휘두르자,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수십 줄기의 녹색 빛이 사방으로 날아가 반경 백여 리로 흩어졌다.

녹색 빛은 떨어지자마자 맷돌만 한 빛 덩어리가 되었다. 그 안에 수많은 녹색 부적 문양이 반짝이며 자그마한 법진을 이루었다.

제법 소모가 컸는지 심협의 낯빛은 조금 창백해진 상태였다.

그때, 수정처럼 반짝이는 기다란 검은 빛줄기들이 갑자기 날아와 번쩍하고 심협의 몸 양쪽 1장정도 거리에 나타나더니 마장이 움켜쥐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그를 엇갈려 베었다.

그러나 심협은 몸에 녹색 빛을 번쩍이며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가 다음 순간 10여 리 밖의 녹색 빛 덩어리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이 녹색 빛 덩어리는 곧 반짝하고 부서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것은 을목선둔을 심오한 경지까지 수련해야 시전할 수 있는 을목선둔진(乙木仙遁陣)으로, 전송에 쓰이는 광단(*光團: 빛 덩어리)을 흩어놓고 필요할 때 곧바로 이동하는 수단이었다. 다만 이 신통력은 법력의 소모가 컸다.

‘마족의 신통력이 이토록 기이하다니. 심 소우, 부디 조심하거라!’

마음을 졸이던 흑곰 요괴는 그래도 조금 안심이 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그는 심협의 재빠른 반응에 크게 감탄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저럴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멀리 있던 마염신은 이 장면을 보고 잠시 멍해졌으나, 이내 미친 듯이 화를 냈다. 그는 크게 포효하고는 거대한 몸을 홱 비틀어 흐릿한 검은 그림자로 변해 다시 달려들었다.

심협은 멀리서 이를 보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결인하고 자금령을 가리켰다.

자금령이 곧 열 배로 커지면서 안에서 오색 연무가 뭉게뭉게 쏟아져 나와 반경 5리를 뒤덮으며 빠르게 퍼져 나갔다.

염마신은 마치 귀신과 같은 모습으로 단번에 오색영연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그러나 부릅뜬 두 눈이 영연에 물들면서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자, 허공에 멈춰 서서 두 손으로 눈을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심협은 이를 보고 기뻐하며 곧장 결인해 풍령을 가리켰다. 그러자 누런 폭풍이 뿜어져 나오면서 오색영연이 갑자기 더 빠르게 주변을 향해 퍼져 나갔다.

누런 폭풍 속에는 혼을 흩어버리는 모래알이 수없이 나타나 영연에 뒤섞인 채로 염마신을 향해 휘몰아쳤다.

심협도 오색영연 안에 숨은 채 염마신을 향해 조용히 다가갔다.

염마신의 귓가에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들려오더니, 무수히 많은 초승달 형태의 풍인이 폭우처럼 날아들었다. 풍인 하나하나가 모두 놀라운 한광을 반짝이는 것이 더없이 날카로워 보였다.

심협은 이미 자금령을 상당히 심오한 경지까지 제련한 상태였고, 여기에 진선 중기의 막강한 법력이 더해지니 풍인들의 위력은 이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염마신은 피할 생각이 없는 듯했고, 두 눈을 부여잡은 양손에 자주색 빛이 번쩍였다. 눈을 치료하려는 것이리라.

거대한 풍인들이 마치 빗줄기가 울타리를 때리듯 염마신의 몸 이곳저곳을 베었다.

허나 놀랍게도 쨍강 하는 쇳소리가 크게 울렸고, 누르스름한 풍인들은 연이어 튕겨나갔다. 염마신은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검은 갑옷 사이사이 드러난 피부마저 더없이 단단한 듯, 풍인의 공격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나의 반왕대력마공(盤王大力魔功)은 이미 대성의 경지에 이르러 창검도 뚫을 수 없고 물과 불도 침범할 수 없거늘, 한낱 풍인 따위로 벨 수 있을 성싶으냐?”

염마신은 눈을 가렸던 두 손을 풀며 흉악한 목소리로 비웃었다. 그의 두 눈은 이미 회복된 상태였고, 눈에서 두 덩이의 자주색 빛이 주위의 오색영연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허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콧구멍이 서늘해지면서 두 줄기 누런 빛이 번쩍하고 날아들었다. 빛줄기 속에는 커다란 황색 모래알들이 섞여 있었다.

염마신은 갑자가 눈이 휘둥그레져 뭔가를 하려는 듯했지만, 다음 순간 눈빛이 흐리멍덩해지면서 그 자리에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그 순간, 염마신 왼쪽 바로 옆의 오색영연에 파동이 일더니 심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차가운 미소를 띤 채 양손으로 빠르게 결인하며 체내의 용솟음치는 법력을 자금령으로 미친 듯이 주입했다.

자금색 화령의 영문이 하나하나 빛을 발하면서 방울 전체가 반투명한 모습으로 변했다.

퍽!

가벼운 소리와 함께 화령 속에서 눈부시게 환한 붉은 화염이 뿜어져 나와 크게 한 바퀴 돌더니 1장 크기의 붉은 연꽃으로 변했다.

이 붉은 화련(火蓮)은 맑고 투명해 마치 순수한 옥과 같아서, 눈부신 광염도 거의 분출되지 않았고 이글이글 뜨거운 기운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 상태로 화련은 나풀거리며 염마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만약 화염 신통력에 정통한 이가 봤더라면 분명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을 것이다. 이는 화염 속 모든 불순물을 정제하여 화력이 더없이 순수하고 무한히 함축되어야만 만들어지는 지순지염(至純之焰)으로, 불을 통제하는 신통력에서는 최상이라 할 수 있는 경지였던 것이다. 심지어 화염 신통력만을 전문적으로 수련하는 수많은 수사들이 평생토록 추구하는 경지이기도 했다.

‘지순지염! 내가 백 년간 현천공화결을 고되게 수련해도 이 지순지염을 응집해낼 수 있을까말까 한데 자금령 금제의 힘만으로 해낼 수 있다니. 역시 관음대사의 귀중한 호신 법보야!’

심협의 눈빛에는 희색이 어렸지만, 손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전력으로 붉은 화련을 재촉해 염마신의 머리를 공격했다.

화련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면서 번쩍하고 그의 얼굴 앞 1장쯤 거리에 이르더니 매섭게 일격을 가했다.

한데 그때, 마염신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혼미한 상태에서 깨어났다.

지척의 붉은 화련을 보고는 염마신도 두려움을 느꼈는지 안색이 크게 변해 뒤로 물러나면서 옆으로 늘어뜨렸던 오른팔을 움직였다. 그러자 다음 순간 집채만 한 오른손이 얼굴 앞에 불쑥 나타나 허공을 거세게 후려쳤다.

성난 파도 같은 거대한 힘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와 붉은 화련에 세차게 부딪쳤다. 동시에 마장(魔掌)의 자줏빛 마문이 빛을 번득이며 검기 같은 무수한 자주색 빛줄기가 뿜어져 나와 화련 위를 엇갈려 베었다.

하지만 화련은 핑그르르 한 바퀴 돌기만 할 뿐, 벌떼 같이 밀려오는 거대한 힘도, 비처럼 쏟아지는 자주색 빛도 한순간 무(無)로 변하여 화련을 조금도 다치게 하지 못했다. 심지어 주춤하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붉은 화련은 계속해서 날아가 거대한 마장 위에 부딪히더니, 뜻밖에도 그 안으로 단숨에 녹아들었다.

콰르릉!

굉음이 울리면서 마장 전체에 크고 투명한 붉은 화염이 치솟았고, 믿을 수 없이 뜨거운 힘이 그 안에서 폭발하여 근처 허공이 쉬지 않고 격렬하게 떨렸다.

다음 순간, 화염 속에서 파괴할 수 없을 것처럼 단단해 보이던 마장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푸른 연기로 변해 사라져버렸다.

붉은 화련은 투명한 화염 속에서 번개처럼 날아 나와 염마신의 머리를 향해 계속 돌진했다. 다만 화련은 조금 작아졌고, 빛깔도 조금 더 투명해진 상태였다.

마장은 비록 순식간에 불타 없어졌지만, 덕분에 벌게 된 찰나의 시간을 염마신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경악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재빨리 뒤로 물러나면서 입을 쩍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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