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화.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다
전창해 제2중의 위력이 이토록 대단하다니, 위험을 무릅쓰고 시전한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심협은 놀라면서도 기뻤다.
조금 전, 그는 흑곰 요괴의 도움과 천책의 보호로 우여곡절 끝에 전창해 제2중의 법력 운행을 완수했지만, 실로 위험했다. 천책의 보호가 있었음에도 약간의 한기가 몸속으로 침입하는 바람에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은 것이다.
그는 손을 뒤집어 요상 단약을 꺼내 먹은 뒤 지체하지 않고 즉시 전력으로 자금령의 힘을 불러일으켰다.
풍령과 화령이 딸랑딸랑 소리를 내자, 수백 장 크기의 붉은 화염과 누르스름한 폭풍이 미친 듯이 솟구쳐 나왔다.
그는 양손의 결인을 재빠르게 몇 번 바꾸고는 짝 소리를 내며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붉은 화염과 황사 폭풍이 갑자기 부르르 진동하더니, 빠르게 하나로 합쳐져 불과 두세 호흡 만에 쉬지 않고 회전하는 붉은 폭풍이 나타났다.
앞서 자금령의 불과 바람의 힘을 합쳤을 때에는 늘 불을 중심으로 하고 바람의 힘을 보조로 하여 화염의 열기로 공격했는데, 이번에는 바람을 중심으로 삼았다.
폭풍 속에는 바람의 힘 하나하나에 붉은 화염이 휘감겨 있었고, 한가운데에서는 거대한 풍인(風刃)들이 회전했다. 이 풍인들에도 마찬가지로 붉은 화염이 감겨 있었다. 이에 폭풍 전체가 마치 불타오르는 것 같았고, 그 파괴력은 한순간 열 배는 불어났다.
폭풍이 회전하면서 그 위력을 감당해내지 못하는 듯 주위의 허공이 부서질 것처럼 거세게 진동했다.
심협은 오른손으로 법결을 맺은 뒤 허공을 움켜쥐었다.
붉은 폭풍은 빠르게 변화하여 순식간에 작은 산 같은 새빨간 짐승의 발이 되었고, 발톱은 길이가 3장에 이르렀고, 그 위에는 섬뜩한 빛이 번득여 더없이 날카롭게 보였다.
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울부짖음 속에 거대한 발이 벼락처럼 날아가 푸른 빛의 장막을 움켜쥐려 했다.
“갈라져라!”
심협은 두 눈에 서슬 퍼런 빛을 번득이며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자 거대한 붉은 발의 다섯 발가락이 확 모여들면서 푸른 빛의 장막이 바스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종잇장처럼 쉽게 찢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펑 하고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옥정병은 굉음을 내며 멀리 날아갔고, 얼음 조각상이 되어버린 마수수와 위청도 튕겨 날아갔다. 오직 자흑색 고치만이 여전히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막고 있던 푸른 빛 장막이 사라지자, 자흑색 고치의 기운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지극히 음산한 기운이 순식간에 바다 위를 가득 메워 심협조차도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심협이 왼손 소매를 휘두르자, 푸른 빛 세 줄기가 뿜어져 나와 옥정병과 마수수 그리고 위청을 휘감으려 날아갔다.
한편, 그가 허공을 향해 오른손을 뻗자 거대한 붉은 발이 갑자기 몇 배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위의 화염은 더욱 거세져서 자흑색 고치를 매섭게 움켜쥐었다.
찌익!
비단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고, 거대한 발에 자흑색 고치가 가뿐히 찢겨나가면서 주위의 검은 마귀 조각상들도 두부처럼 부서졌다. 하지만 거대한 발은 이내 벽에 가로막힌 듯 우뚝 멈춰 섰다.
정신을 집중해 상황을 자세히 살핀 심협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먹처럼 까맣고 거대한 빛의 방패가 앞에 나타났는데, 그리 견고해 보이지 않음에도 거대한 발의 일격을 막아냈다.
그때, 마수수의 몸에 맺힌 얼음이 펑 하고 산산조각 나더니 곧이어 그녀의 몸이 유영하는 용의 형상을 한 푸른 그림자로 변하여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음 순간, 수백 장 바깥에 있던 옥정병 옆의 허공이 일렁이더니 마수수가 소리 없이 나타나 단숨에 옥정병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심형의 실력이 이리 강할 줄은 생각지 못하였으니, 소녀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요. 호호호!”
옥정병 안에서 마수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옥정병은 번쩍하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녀의 행동은 번개처럼 빨라서 미처 막을 겨를이 없었다.
한편, 심협이 내뿜었던 푸른 빛줄기들은 이제야 날아가 두 줄기는 허공을 때렸고, 마지막 한 줄기만이 위청의 몸을 휘감았다.
‘방금 그것은 용유수둔술(龍遊水遁術)입니다! 심 도우, 조심하십시오. 마수수는 동해 용궁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천책 안에서 원구가 다소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 심협의 실력은 일시적인 것이라고는 하나, 그 위력에 원구는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이는 심협의 잠재력이기도 한 것이었다.
심협은 묵묵히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푸른 빛줄기가 위청의 몸을 휘감고 쏜살같이 날아 돌아왔다.
그때, 금속이 맞부딪치는 듯한 거슬리는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몸을 남겨두어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검은 빛의 방패 위에 시커먼 짐승의 머리가 불쑥 나타나더니 입을 쩍 벌렸다.
순간 음파가 뿜어져 나왔고, 처음에 아무 소리도 없었지만, 음파는 금세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음으로 변해 커다란 붉은 발을 감쌌다.
붉은 발은 격렬하게 떨리면서 미친 듯이 번쩍였고, 하나로 합쳐진 불과 바람의 힘도 순식간에 불안정해졌다.
심협은 낯빛이 변하여 법술을 시전해 이를 잠재우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쿠르릉!
굉음과 함께 붉은 발이 폭발하면서 무수한 불티로 변해 광풍에 흩날렸다.
반면 검은 음파는 계속 나아가 이번에는 푸른 빛을 뒤덮었다. 푸른 빛이 갑자기 몽롱하고 흐릿해지더니 단숨에 찢기고 무너지면서 위청의 몸이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공격이었다.
심협은 눈빛을 번득이며 두 발에 달빛을 환하게 내뿜더니, 한 줄기 잔상으로 변해 위청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순간, 위청의 곁에 푸른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한 인영(人影) 난데없이 나타나 위청을 붙잡자 위청은 별안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심협은 눈동자가 확 졸아든 채 우뚝 멈춰 섰다.
인영의 정체는 새카만 갑옷을 입고 등에 푸른 두 날개가 달린 우람한 체격의 사내였다. 위청과 매우 비슷해 보였지만, 코가 조금 뾰족하고 손발이 약간 뭉툭했다. 드러난 근육들은 마치 넝쿨이 늙은 나무를 휘감듯 불끈 솟아 있어서 무한한 힘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심협은 새로 태어난 위청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새로 태어난 위청은 귀도와 풍식 두 요족의 특징을 합친 것처럼 보였는데, 몸을 개조하는 마족의 비술은 예상보다 훨씬 정교했다.
이곳은 신식이 속박되어 상대의 경지를 제대로 감지할 수 없었지만, 심협은 지금 위청이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님을 직감했고, 몹시 두려웠다.
“흥! 너도 함부로 나의 몸에 손을 대려 하는구나!”
위청이 경멸 가득한 표정으로 심협을 흘끗 바라보았다.
“귀하의 몸은 귀하가 거두어가는 것이 당연하나, 이 심모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있습니다. 위 도우는 보타산의 탁월한 제자인데, 어찌하여 마족에게 몸을 의탁하려 하는 것입니까?”
심협은 담담하게 물었다.
“알 필요 없다. 섭채주는 어딜 갔느냐? 그 아이에게 버드나무 가지를 내놓으라 해라. 그리하면 내 너희들의 목숨은 살려줄 수 있다!”
위청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심협의 눈이 작게 번득였다. 위청은 아까부터 그 버드나무 가지에 집착했다. 그것이 그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인 듯했다.
“그렇습니까? 그거 참 안타깝군요. 방금 전에 호법 선배님께서 이미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셨으니 말입니다. 버드나무 가지를 얻으시려거든 보타산으로 가보셔야겠습니다.”
심협은 흑곰 요괴에게 얼른 섭채주 등을 데리고 숨으라 전하면서, 겉으로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뭐라!”
위청은 낯빛이 변하더니 즉시 돌아서서 푸른 그림자로 변하여 섬의 출구 쪽으로 향했다.
심협의 눈에 기쁨이 어렸다. 새로 태어난 위청은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지만, 머리는 둔해진 것 같았다. 만약 그를 속여 잠시 동안 이곳을 떠나 있게 한다면 그가 이 기회를 틈 타 일을 좀 할 수 있을 터였다.
심협은 이 기회에 얼른 달아나려 했다.
한데 그때, 위청이 갑자기 멈춰 서더니 심협을 홱 돌아보았다. 그 눈빛이 더없이 섬뜩했다.
“감히 나를 속였겠다!”
심협은 눈꼬리를 슬쩍 치켜올리며 웃었다.
“보아하니 마 소저가 아직 여기 있는 모양이군요. 한데 어찌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십니까?”
심협은 여유가 넘쳐 보였으나, 내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무명공법을 몰래 운공해 주위에 있는 물의 기운을 감지해 마수수의 종적을 찾으려 했다.
“목숨을 내놓아라!”
위청이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갑자기 한 줄기 푸른 그림자로 변해 날아들었다.
그가 가까이 오기도 전에 푸르스름한 광풍이 세차게 불어와 흩어지면서 하늘과 땅을 잇는 회오리로 변해 바닷물을 말아 올리고 심협을 향해 돌진해왔다.
심협은 이 하늘을 찌를 듯한 회오리을 마주하고도 표정조차 변하니 않은 채 가볍게 결인하여 자금령을 가리켰다.
화령에서 붉은 빛이 강렬하게 피어오르면서 불길이 하늘 높이 솟구쳐 푸르스름한 광풍과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하늘 높이 치솟을 회오리에는 요기가 가득하고 기세가 대단했지만, 어찌 자금령이 불러일으킨 화염에 비할 수 있겠는가? 화염은 순식간에 이 회오리를 꿀꺽 집어삼켜버렸다.
심협이 더 많은 법력을 자금령 안에 주입하자, 순간 하늘로 치솟던 불길이 조금 더 커져서 위청을 향해 힘차게 달려들었다. 관음의 법보를 갖지 못한 위청이 도대체 어떻게 저리 난폭한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위청은 하늘로 솟구치는 불길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곧장 그 안으로 날아들었다.
심협은 흠칫 놀랐지만, 상대가 자금령의 공격 범위로 뛰어든 틈을 놓치지 않았다.
온 하늘에 가득했던 화염이 곧바로 사방을 포위하며 한데 뭉쳤다. 그리고는 하늘로 치솟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장 높이의 거대한 불기둥으로 변해 위청을 안에 가두고 끊임없이 활활 불타올랐다.
날아들던 위청은 불기둥 가장자리에 부딪히며 펑 소리와 함께 튕겨 돌아왔다.
심협은 재빨리 결인하여 풍령을 가리켰다. 그러자 누르스름한 폭풍이 날카로운 바람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와 거대한 불기둥 안으로 녹아들었다.
우르릉! 쾅!
불기둥의 화염이 갑자기 커지면서 뱀의 혓바닥 같은 굵직한 불길들을 내뿜자, 본래 높이가 수십 장에 달했던 불기둥이 순식간에 열 배 이상 커졌다. 불기둥 속 열기 역시도 그만큼 늘어나 허공까지 일렁이기 시작했다.
“겨우 시시한 화염 따위로 나를 해치려 한단 말이냐?”
위청은 차갑게 비웃었다. 그러자 그가 입은 검은 갑옷이 번득이며 먹처럼 검은 마광(魔光)이 솟아올라 몸 주위에 검은 보호막을 이루었다.
심협은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위청의 갑옷은 전체가 칠흑 같이 검었고, 형상이 매우 흉악했다. 무릎과 어깨 등에 날카로운 가시가 튀어나와 있었고, 표면에는 비늘 모양 마문이 가득했다. 이 갑옷은 공방일체인 듯했는데, 그 안에 담긴 마기는 더욱 밑바닥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심협이 법술로 자금령을 재촉하여 화염의 위력을 키우려는 순간, 갑자기 위청이 크게 포효했다. 그의 몸에는 돌연 무수한 자흑색 마문이 감돌았고, 마광이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몸집이 불어나기 시작한 위청은 눈 깜짝할 사이 흡사 마신과 같은 사나운 마물이 되어 있었다. 키가 수십 장에 이르렀고, 머리에는 한 쌍의 자흑색 굽은 뿔이 돋았으며, 온몸에는 근육이 울룩불룩 솟은 데다 자흑색 마문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검은 갑옷도 따라서 커져 마물의 몸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첨과가 마물로 변했을 당시와 흡사했던 것이다.
당시 첨과의 가공할 위력을 떠올린 그는 표정이 어두워져서는 즉시 한 손을 결인한 뒤 양팔을 휘둘렀다.
불기둥의 화염이 크게 불어나면서, 아름드리나무보다도 몸통이 굵은 거대한 불의 뱀 네 마리가 불기둥에서 튀어나와 단숨에 마물의 손발을 휘감았다.
이 불의 뱀들로 인해 힘을 적잖이 소모했는지, 불기둥은 크기와 굵기 모두 절반쯤 줄어들었고, 그 사이에 더욱 빠르게 줄어들더니 새하얀 불의 고리가 되어 단숨에 마물의 허리를 꽉 옭아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