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35화 (535/1,214)
  • 535화. 전창해(靛滄海)

    푸른 빛의 장막은 금세 견고하고 두꺼워지면서 거의 몇 호흡만에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이런!”

    심협은 낯빛이 어둡게 가라앉아 양손을 결인했다.

    그때, 무수한 천둥 같은 물소리가 옥정병 안에서 흘러나오고, 마치 수천수만의 푸른 용들이 돌진하듯 또는 구천(九天)의 은하가 단숨에 거꾸로 쏟아지듯, 병 주둥이에서 폭포 같은 푸른 급류가 쏟아져 나왔다.

    반경 5리에 걸쳐 물의 영기가 한순간 백 배 이상 짙어져 숨 쉬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수천수만의 급류가 용솟음치며 주위의 불바다에 충격을 가했다.

    치지직!

    기이한 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치고, 끝이 없는 하얀 안개가 피어올라 뜻밖에도 새빨간 불바다를 단번에 반쯤 흩어버렸다.

    심협도 수천수만의 급류가 다가오자 막 법술을 쓰려던 것을 멈추더니 심지어 몸을 보호하던 영광(靈光)까지 거둬들이고는 그대로 급류의 충격을 감당했다. 옥정병 물줄기의 공격으로 무명공법에 갑자기 기이한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 떠올라 다시 한번 시도해보려는 것이었다.

    거대한 힘이 짙은 수령의 기운과 뒤섞여 심협의 몸속으로 밀려들었다.

    그는 급히 무명공법을 운공해 예전과 마찬가지로 짙은 수령의 기운을 순식간에 말끔히 빨아들였다.

    심협은 체내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수령의 힘은 체내에 흡수된 뒤 모두 단전으로 모여들었고, 무명공법은 그 도움을 받아 운공 속도가 몇 배나 더 빨라졌다.

    단전 안에 빛이 피어오르면서 엷은 오색 빛 덩어리가 반짝하고 나타났다.

    소용돌이 같은 이 빛 덩어리는 쇠, 나무, 물, 불, 흙이라는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기운을 뿜어냈지만, 서로 배척하지 않고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오색 빛 덩어리 속에서 강력한 흡입력이 흘러나와 수령의 힘과 함께 밀려온 거대한 힘을 순식간에 말끔히 흡수해버렸다.

    이어서 오색 빛 덩어리는 마치 나타난 적조차 없는 것처럼 번쩍하고 사라져버렸다.

    ‘과연 또다시 나타났어! 한데 이 오색 빛 덩어리는 뭐지? 무명공법에 자극을 받아 나타난 것 같은데, 거센 물줄기 속의 거대한 힘을 단번에 말끔히 흡수하다니……. 이건 무슨 절세의 신통력인가?’

    심협의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는 몸을 훌쩍 날려 급류와 성난 파도 속에서 튀어나와 결인하고는 자금령의 힘을 불러일으켰다.

    굵고 커다란 화염 두 줄기가 화령 안에서 뿜어져 나와 한 바퀴 빙그르르 돌더니 길이가 8장에 이르는 붉은 화봉(火鳳)으로 변했다.

    두 마리 붉은 화봉은 오화선이 만들어낸 화봉과 비슷해 보였지만, 그 위력은 천지차이로, 두 날개를 떨치자 붉은 화염이 거세게 일어나 위쪽에서부터 푸른 보호막을 향해 달려들었다.

    보호막 안에 있던 마수수는 이를 보고 즉시 결인하여 손을 홱 끌어당겼다.

    그러자 두 갈래의 물줄기가 옥정병 안에서 쏟아져 나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마리의 푸른 수교(水蛟)로 변하여 붉은 화봉들을 향해 매섭게 돌진했다.

    두 교룡과 두 봉황이 뒤엉켜 근접전을 벌이자 붉은색과 푸른색 두 빛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전투는 금세 막을 내렸는데, 두 마리의 화봉 중 한 마리는 수교에게 몸이 휘감긴 채 머리를 한 입에 물어 뜯겼다. 다른 한 마리는 몸이 두 동강으로 찢겨 무수히 많은 불티로 변해 날아 흩어졌다.

    ‘물은 불을 이길 수 있다. 심 소우, 자금령의 화염으로 무리하게 맞서지 마라. 내 너에게 보타산의 전창해 신통력을 전수해주마. 네가 원래 수련하던 공법을 기초로 하고 내가 도우면 곧바로 쓸 수 있을 게다.’

    흑곰 요괴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더니 심협의 뇌리에 정보가 전달되었다. 바로 전창해 신통력이었다.

    심협은 크게 기뻐했다. 조금 전 화봉은 그저 옥정병이 법술을 시전하는 속도를 시험해보기 위해 가볍게 시도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신통력을, 그것도 그토록 원하던 전창해를 얻게 될 줄이야!

    그는 법결을 재빠르게 훑어보고는 즉시 이 신통력을 운공하였다.

    전창해는 보타산의 비술로 매우 심오하고 신묘했는데, 지극히 순수한 물 계통 공법인 무명공법과 잘 맞아떨어졌다. 덕분에 처음인데도 그럴 듯하게 시전할 수 있었다. 다만 몇몇 난해한 부분에서만 법력의 운행이 약간 주춤거리며 자연스럽지 않을 뿐이었다.

    그때, 그의 체내에서 돌연 보이지 않는 손 같은 것이 나타나 법력의 운행을 도우며 그 난해한 부분들을 하나하나 순조롭게 뚫고 지나갔다. 동시에 심협의 몸에는 푸른 빛이 번득이면서 체내 법력이 격렬하게 변화하기 시작하여, 피까지 꽁꽁 얼어붙게 만들 법한 무서운 한기가 되어 경맥을 타고 흘렀다.

    심협은 눈이 살짝 휘둥그레져 황급히 법력을 움직여 이 한기를 감쌌다.

    이미 마음에 준비를 했건만, 전창해의 한기는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게다가 체내 깊숙한 곳에 있었기에, 만약 단번에 폭발한다면 비록 죽지는 않더라도 중상을 입을 터였다.

    그러나 심협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한기를 감싼 법력이 오히려 한기에 곧바로 잡아먹힌 것이다. 이에 따라 한기는 빠른 속도로 강해졌다.

    심협은 두려운 마음에 즉시 천책 허상의 흡수력을 몸속으로 집어넣고 이 한기를 뒤덮었다. 앞서 용녀 아기와 대전을 치르면서 그는 천책 허상이 몸속의 한기를 흡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통의 사물을 흡수하는 것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확인했다.

    비록 전창해의 한기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법술을 처음 시전하는 터라 천책의 힘이 보호해주어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실제로 기이한 한기는 순순히 경맥을 따라 움직이며, 그의 몸을 오싹하게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불편함도 없었다.

    한기는 경맥을 타고 금방 온몸을 한 바퀴 돌았고, 마지막으로 손바닥 한가운데에 모여 투명하게 반짝이는 푸른 빛을 피워냈다. 무시무시한 한기가 그 빛 속에서 용솟음쳤다.

    “이것이 바로 전창해…….”

    심협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기세를 몰아 손을 앞으로 뻗었다.

    순간 물결 모양의 푸른 빛이 그의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사방으로 쏜살같이 퍼져나가 눈 깜짝할 새에 반경 수십 리를 뒤덮었다.

    푸른 빛이 번쩍하자 아래쪽 반경 수십리의 해수면이 한순간 얼어붙었고, 섬 위에도 두껍고 단단한 푸른 빛깔 얼음이 생겨났다. 허공에도 무수한 눈꽃이 떠올라 조금 전 자금령의 불바다가 만들어냈던 열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온통 차가운 얼음 세계로 변해버렸다.

    섭채주와 백소천 등은 심협이 전창해를 시전하기 전에 흑곰 요괴의 주의를 받아 이미 먼 곳으로 물러났기에, 한기의 영향은 전혀 받지 않았다.

    그러나 옥정병이 뿜어낸 수천수만의 급류는 이 무시무시한 한기 앞에서도 절반밖에 얼지 않았다.

    “아니!”

    심협은 가벼운 탄성을 내질렀다.

    ‘옥정병의 거센 물살은 평범한 물이 아니다. 너의 전창해는 이제 갓 제1중의 경지일 뿐이니, 이 정도만 해도 이미 나의 예상을 크게 넘어선 것이니라.’

    흑곰 요괴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호법 선배님의 칭찬은 영광입니다만, 보아하니 제1중의 전창해로는 마수수와 옥정병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일 듯합니다. 선배님께서 저를 도와 제2중을 시전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심협은 짧게 인사치레를 하고는 진중하게 물었다.

    전창해 공법은 모두 5중으로 나뉘었는데, 한 층씩 정진할 때마다 위력이 비교도 안 되게 강해졌다. 법결의 설명에 따르면 5중까지 완벽히 익히면 순식간에 세상 모든 것을 얼어붙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건 안 될 것 같다. 나도 전창해는 그리 깊게 익히지 않아서 제2중까지밖에 이르지 못했다. 아직 몇 개의 관문에 완전히 통달하지 못하여 스스로 시전하는 것도 무리이니, 심 소우를 돕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지.

    더욱이 이 전창해는 먼저 몸속에서 한기를 배양한 다음 방출시켜 적을 공격하는 신통이라 제대로 통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억지로 시전하려다가 도리어 자신이 한기에 당할 수 있어. 나는 요족이라 육신과 혼백이 강하니 통제를 잃은 한기를 겨우 견뎌낼 수 있지만 심 소우는…….’

    흑곰 요괴가 재빨리 설명했다.

    ‘괜찮습니다. 통제를 벗어난 한기를 막아낼 방도라면 제게도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들을 멸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것입니다.’

    심협은 눈썹꼬리를 치켜 올리며 임랑환을 힐끗 본 뒤 단호하게 말했다.

    천책이 있으니 한기가 통제불능이라고 해도, 그는 곧바로 그것을 거둬들일 자신이 있었다.

    ‘……심 소우가 그리 고집하니 내 온 힘을 다해 돕겠다.’

    흑곰 요괴는 잠시 생각하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념(神念)을 통한 교류라 직접 대화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끝나, 둘의 소통은 실제로는 한 호흡 정도 만에 마무리가 됐다.

    심협은 다시 감사를 표하고 즉시 전창해를 운공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밝아진 차가운 얼음 같은 푸른 빛이 솟아올랐다.

    한편, 푸른 빛의 장막 안에서는 마수수가 전창해의 위력에 내심 놀라 황급히 옥정병을 재촉하여 얼어붙은 급류를 녹이기 시작했다.

    푸른 빛 한줄기가 병 안에서 뿜어져 나와 곧 무수한 빛줄기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얼어붙은 급류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 빛줄기들은 어떤 신통력인지, 곧 급류를 얼어붙게 만든 한기가 저절로 그쪽을 향해 모여들면서 급류가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마수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계속 힘껏 옥정병을 재촉하여 얼어붙은 부분을 금세 절반쯤 녹였다.

    그때, 빛의 장막 바깥에 녹색 빛이 스쳐 지나더니 심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그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고, 오른 팔뚝은 차가운 얼음조각으로 뒤덮여 있어서 몹시 위태로워 보였지만, 두 눈은 반짝거렸다. 대단히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는 오른손에 이전보다 족히 네다섯 배는 더 밝은 푸른 한광(寒光)을 피워내며 크게 휘둘러 푸른 빛의 장막을 내리쳤다.

    쾅!

    이전보다 몇 배는 더 강렬한 극한의 한기가 폭발하면서 절반 가까이 남은 급류를 순식간에 꽁꽁 얼려버렸다.

    푸른 빛의 장막 내부 역시 이를 피하지 못하고 옥정병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고, 자흑색 고치와 주변에 있던 열여덟 개의 마귀 조각상까지도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였다.

    마수수는 안색이 크게 변해 뭔가를 하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렸지만, 한 발 늦었다. 엄청난 한기가 달려들면서 그녀의 몸에 푸른 빛이 번쩍이더니 온몸이 얼음 조각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곁에 있던 위청 역시 이를 피하지 못하고 쩌적 소리와 함께 얼음 조각상이 되어버렸다.

    한편, 백소천과 섭채주 역시 뼛속까지 한기가 밀려드는 것을 느끼고는 경악한 표정으로 흑곰 요괴를 안고 다시 멀리 물러났다.

    “아버지, 상황은 어떠합니까?”

    작은 곰 요괴가 물었다.

    백소천과 섭채주도 흑곰 요괴를 바라보았다.

    멀찍이 떨어진 바람에 그들은 푸른 빛의 장막 쪽 상황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흑곰 요괴는 심협과 법력으로 연결되어 있어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그가 정말로 전창해의 제2중을 시전해냈어! 게다가 이 위력이라니…… 나를 훨씬 넘어섰어. 어떻게 이럴 수가!”

    흑곰 요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전창해 뿐만 아니라 심협은 진선기 법력을 통제하는 데에도 더없이 능숙해 조금도 애먹는 기색이 없었다. 마치 그것이 본디 자신의 법력인 것처럼…….

    ‘이 녀석은 범상치가 않아. 출규기부터 이런 신통력을 지니다니, 앞으로 경지가 더 올라가면 얼마나 무시무시해질지 모르니 관계를 잘 맺어놓아야겠군.’

    흑곰 요괴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놀란 기색을 감추며 결심했다.

    “아버지?”

    작은 곰 요괴가 다시 한번 캐물었다.

    “안심해라. 심 소우가 훌륭하게 옥정병의 거센 급류를 제압했어.”

    흑곰 요괴가 다른 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라버니의 법력은 어떻습니까? 제가 가서 회복시켜주어야 할까요?”

    섭채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한동안은 필요 없겠지만 준비는 하고 있거라. 필요할 때 말해주마.”

    흑곰 요괴의 말에 섭채주는 곧바로 대답한 뒤 눈을 감고 법력을 운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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