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33화 (533/1,214)
  • 533화. 비술을 이어받다

    그사이, 심협은 재빨리 세 개의 옥합을 챙겼다. 그는 이 세 가지 비술에 퍽 흥미를 느껴 입을 벌리고 푸른 빛을 내뿜어 옥간들을 휘감더니 몸속으로 집어 삼키고는 곧장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현명한결은 무명공법과 일맥상통하여, 심협은 금방 그 공법의 요령을 터득했다. 잠깐 그 공법을 운공한 것만으로도 매서운 한기가 그의 몸에서 흘러나와 주위 허공에 점점이 얼음꽃이 떠올랐다.

    허나 약간 아쉬움이 있었다. 이 현명한결의 위력은 상당했지만, 심협은 보타산의 전창해 신통력을 더 좋아했다. 용녀 아기가 그 법술을 시전했을 때의 위력이 생생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런 신통력들은 모두 종문의 비밀이니 절대 외부인에게 전수할 리 없었다.

    심협은 곧이어 이형환영과 장심뢰를 깨달았다. 그 두 신통력 역시 매우 현묘했는데, 특히 이형환영은 보법이 현묘할 뿐만 아니라 사월보와 보완되는 점이 많았다. 심오한 경지까지 수련하면 분별하기 힘든 환영 분신들을 만들어내 적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

    그가 이 신통력들을 더 자세히 연구하려 할 때, 흑곰 요괴 쪽에서는 이미 선천연보결을 완전히 깨닫고 자금령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심협은 잠시 흑곰 요괴의 거동을 살폈다.

    흑곰 요괴가 선천연보결을 운공하며 양손을 수레바퀴처럼 결인하자 심오한 법결들이 폭우처럼 뿜어져 나와 자금령 속으로 끊임없이 들어갔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법술을 펼쳐도 자금령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이 아이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것 같군. 이 방울은 이제 다른 사람이 작동 시킬 수 없어.”

    흑곰 요괴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멈추고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그럼 어찌 합니까?”

    백소천이 황급히 물었다.

    심협도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아 다시 꿈속 경지를 불러와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의 수명은 이제 막 백여 세를 회복했을 뿐이고, 저 푸른 보호 덮개는 더없이 견고하니, 꿈속 경지를 동원한다 해도 반드시 깰 수 있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한데 그때, 푸른 빛 덮개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황급히 바라보니 어떤 격변이 발생한 듯, 자흑색 고치 안에서 검은 빛줄기들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고치 속 풍식과 귀도의 기운은 이미 서로를 구분할 수가 없어, 이미 진정으로 하나가 된 것으로 보였다.

    한편, 고치 바깥에 있던 열여덟 개의 마귀 조각상에서는 검은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무수히 많은 검은 마문들이 맹렬히 쏟아져 나와 마기들과 함께 자흑색 고치 안으로 쉬지 않고 모여들었다.

    주변의 영기 소용돌이는 더욱 거세졌고,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천지영기가 모여들었다.

    이에 심협과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시간이 없군. 내게 자신의 정수를 다른 이에게 넘겨줄 수 있는 비법이 하나 있다. 심 소우, 자금령은 자네가 아니면 작동시킬 수 없으니 자네가 이 비술을 이어받아야 해.”

    흑곰 요괴는 이를 악물더니 자금령을 심협에게 던져주고는 단호히 말했다.

    심협은 자금령을 받아 들었지만, 흑곰 요괴의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다소 멍한 표정이었다.

    “호법 선배님, 설마 영동구천(靈動九天)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섭채주가 불쑥 끼어들어 물었다.

    “그렇다. 네가 그 비술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흑곰 요괴의 얼굴에 약간의 의아함이 감돌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해주신 적 있습니다. 그 비술은 관음대사께서 만드신 것으로 상상하기 힘든 신통력을 지니고 있다고요. 허나 그 비술을 시전하면…… 양쪽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섭채주의 말에 심협의 눈빛이 굳어졌다.

    “그 법술은 짧은 시간에 한 사람의 수련 경지를 폭증시켜준다. 물론 해를 입기도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위급하니 어쩌겠느냐.”

    흑곰 요괴가 다급하게 말했다.

    “호법 선배님, 저는 사리에 어두운 사람이지만, 제가 힘을 써야 한다면 마다치 않을 것입니다. 허나 선배님의 비술을 이어받으려면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분명히 알려주십시오.”

    심협이 공수하며 말했다.

    “자네와 나의 경지는 너무 차이가 많이 나서 내 경지를 이어받으면 자네 몸에 큰 손상을 줄 수도 있어. 경맥이 손상되고 오장육부 또한 상할 게다. 허나 이것들 별것 아니야. 좋은 단약이 있으면 회복할 수 있으니까.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이 비술이 내 본명원기를 함께 자네 몸속에 넘겨주어 자네의 본명원기를 번잡하게 만든다는 게야. 게다가 자네의 경지를 훨씬 뛰어넘는 법력을 조종하는 것 또한 자네의 신혼에 큰 부담을 줄 수 있고.”

    흑곰 요괴는 숨김없이 자세히 설명했다.

    심협은 그 말을 듣고 생각이 움직였다.

    이 두 가지 큰 문제는 그에게 별 것 아닌 듯했다. 원천강이 그에게 전수해준 신목은택(神木恩澤)은 본명원기를 정화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은 이미 여러 차례 꿈속의 경지를 소환해봤으니 흑곰 요괴의 진선 중기 경지를 조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 비술이 저의 수명에도 영향을 끼칩니까?”

    심협은 잠깐 망설이더니 물었다.

    “그렇지는 않아. 본명원기가 축날 테니 오히려 나의 수명이 조금 줄어들겠지.”

    흑곰 요괴는 잠깐 의아해 하더니 말했다.

    “뭐라고요? 그 비술이 아버지의 수명을 깎는단 말입니까!”

    작은 곰 요괴가 크게 놀라 말했다.

    “손실은 크지 않아. 아마 백여 년 정도일 게다. 우리 요족의 수명은 아득하니 별것 아니다. 그리 놀랄 것 없어.”

    흑곰 요괴가 손사래를 치며 말하자 작은 곰 요괴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그렇다면 저는 이의가 없으니 어서 법술을 시전하시지요.”

    심협이 말했다.

    “오라버니, 정말 견뎌낼 수 있어요?”

    섭채주가 다급한 표정으로 걱정스레 말했다.

    “누이, 나도 분별이 있으니 걱정 마. 호법 선배님, 법술을 시전하시지요.”

    심협은 섭채주에게 싱긋 웃어준 뒤 흑곰 요괴에게 말했다.

    “심 소우는 앉아서 최대한 긴장을 풀게. 다른 이들은 모두 옆으로 물러서도록 해라.”

    흑곰 요괴는 고개를 끄덕이며 심협 앞 멀지 않은 곳에 가부좌를 틀었다.

    심협은 자리에 앉아 두 눈을 감았다.

    다른 사람들 모두 멀찍이 물러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섭채주는 심협을 잠시 바라보다가 법술을 시전하려는 두 사람과 류청 사이에 서더니 손에 든 버드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순간 허공에 녹색 빛이 번쩍이더니 버드나무들이 난데없이 나타나 서로 한데 뒤엉켰다.

    몇 호흡 만에 높이가 무려 수백 장에 너비는 백 장에 가까운 녹색 나무 장벽이 나타나 심협 일행과 푸른 빛 장막 사이를 막아섰다.

    흑곰 요괴는 이런 상황에도 아랑곳 않고 두 눈을 감은 채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의 몸에서 밝은 금빛이 피어올라 물결처럼 몇 차례 일렁이더니, 금빛 문양들이 온몸에서 쏘아져 나와 빠른 속도로 허공으로 뻗어나갔다.

    몇 호흡 뒤 반경 30여 장의 금빛 법진이 하늘에 나타났다.

    무수한 금빛 불광이 법진 안에서 약동하고 불경 읊는 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쳐 듣는 이들은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주위의 천지영기는 이 금빛 불광들과 공명하듯 진동하면서 수많은 금빛 꽃 모양 불영(佛影)을 이루었다.

    심협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주위의 상황을 느끼고 속으로 약간 놀랐다. 그러나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흑곰 요괴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양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손가락 사이에 금빛이 반짝이면서 못처럼 생긴 금빛 물건 여덟 개가 떠올랐다. 뒤이어 흑곰 요괴가 손을 들더니 푹푹 소리가 나도록 이 금색 못들을 머리 위, 가슴, 단전 등의 급소에 박아 넣었다. 어느 하나라도 손상되면 중상을 입게 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곳들이었으나, 흑곰 요괴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계속 주문을 읊으며 결인했다.

    주위의 금빛 법진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거대한 금색 노을빛이 피어났고, 법진 안에서 금빛 진문(陣紋)이 쏘아져 나와 심협의 몸 곳곳으로 파고들었다.

    심협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살짝 어렸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법진이 운행되면서 주위의 짙은 천지영기가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하더니, 금빛 법진을 향해 무너지듯이 몰려와 거대한 영기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그리고는 맞은편의 자흑색 고치에 맞서 천지영기를 두고 쟁탈전을 벌였다.

    한편, 푸른 빛 장막 안의 류청은 두 눈을 번쩍 뜨고 이쪽의 동정을 살피려 했으나, 섭채주가 법술로 불러낸 거대한 나무 벽에 시야가 가려졌다. 게다가 이곳의 강력한 금제 때문에 신식도 뻗어나갈 수 없었다.

    류청은 고운 눈썹을 찡그렸다. 저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는 볼 수 없었지만, 분명 자신을 막을 방도를 세우고 있을 터였다.

    그녀는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더니 열 손가락을 연달아 튕겼다. 그러자 핏빛 부적 열여덟 장이 끊임없이 쉭쉭 날아가 마귀 조각상들에 하나씩 녹아들었다.

    마귀 조각상의 미간에 핏빛 자국이 번쩍이자 쏟아져 나온 마기가 즉시 배로 폭증하면서 자흑색 고치 속으로 쉼 없이 녹아들었다.

    뒤이어 류청은 뭔가를 하나 더 꺼냈는데, 그것은 손바닥만 한 붉은 뼛조각이었다. 그 위에는 검은 마수(魔首)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실오라기 같은 검은 기운들이 뿜어져 나왔으며, 피비린내가 코를 찔러 욕지기가 날 정도였다.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리가 뼛조각 안에서 흘러나왔는데, 뼈끼리 부딪치는 소리 같기도 했고, 이빨을 맞부딪치며 뭔가를 씹는 소리 같기도 했다.

    류청의 손은 가볍게 떨렸다. 핏빛 뼛조각을 바라보는 눈에도 두려움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마음을 가다듬고 양손으로 뼈를 가운데에 끼운 채 힘껏 눌렀다.

    파삭!

    무언가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핏빛 뼈가 예닐곱 조각으로 부서졌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옥정병에 붙어 있던 하얀 부적을 가리키자, 부적이 반짝이더니 가닥가닥 하얀 문양들이 뻗어 나와 파란 보호 덮개 전체로 퍼져 나갔다.

    원래 투명했던 푸른 보호 덮개는 갑자기 하얀 빛에 파묻혔고, 바깥의 소리와 기운의 파동도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다.

    류청은 그제야 안심하고 부서진 핏빛 뼛조각 중 하나를 가리켰다. 그러자 뼛조각이 곧바로 퍽 하고 터지면서 끈끈한 핏빛으로 변해 자흑색 고치 안으로 휙 하고 날아들었다.

    자흑색 고치 안의 검은 빛이 순간 거세게 번쩍이면서 그 안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위청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비명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아 몇 호흡 뒤 사라졌다. 고치 안의 검은 빛도 안정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훨씬 더 크게 불어났다.

    “훌륭해. 마제 대인의 골혈(骨血)에 이렇게 빨리 적응하다니.”

    류청은 기쁜 표정으로 다시 핏빛 뼛조각 하나를 가리켰다. 그 뼛조각은 다시 시뻘건 빛 덩어리로 변해 자흑색 고치 안으로 녹아들었다.

    위청은 다시 비명을 질러댔지만, 금세 잠잠해졌다. 고치 안의 검은 빛은 또다시 한층 밝아졌다. 이에 류청은 다시 손가락을 구부려 세 번째 뼛조각을 가리켰다.

    이렇게 해서 이윽고 모든 핏빛 뼛조각들이 자흑색 고치 안으로 들어갔을 때, 고치 안의 검은 빛은 열 배가 넘게 밝아졌고, 마치 절세의 괴물을 잉태한 것처럼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를 느낀 류청은 기이한 광기가 어린 얼굴로 양손을 수레바퀴처럼 결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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