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화. 잔꾀
작은 곰 요괴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또다시 따지려 했다.
“그만 됐다. 추한 꼴 보이지 말아라. 마족의 신통력을 어찌 당연한 이치로 짐작할 수 있겠느냐? 나는 심 소우의 말이 제법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흑곰 요괴가 아들에게 눈을 힐끗 흘기고는 말했다.
이에 작은 곰 요괴는 입을 다물었으나 여전히 씩씩거렸다.
“어쨌든 우리는 류청이 뜻을 이루지 못하도록 저 푸른 보호 덮개를 뚫을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다만 저 보호막은 몹시도 견고해 보이니 호법 선배님께서 수고해주셔야 할 듯합니다.”
심협의 말에 흑곰 요괴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저 보호막은 옥정병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깨부수려면 관음대사님의 다른 보물을 빌려야 할 듯합니다. 버드나무 가지에는 공격력이 없지만, 자금령은 예리한 무기이지 않습니까. 안타깝게도 심 도우의 경지가 너무 약할 뿐. 만약 아버지께서 자금령의 힘을 불러일으키셨다면 이 보호막은 깨졌을 것입니다.”
작은 곰 요괴는 심협을 흘끗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흑곰 요괴는 그 말을 듣고 눈빛을 반짝였다.
그는 진작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금령은 관음대사가 지녔던 귀중한 보물이니 비록 자신이 차지할 수는 없겠지만, 잠깐이라도 사용함으로써 그 속의 신묘한 금제를 깨닫는다면 수련에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다만 자금령이 심협의 손에 있으니, 그의 신분으로 어찌 뻔뻔스레 입을 열겠는가?
한편, 심협은 흑곰 요괴의 반응을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금령은 위력이 대단하여 몹시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 보물은 보타산의 물건이라 그는 이제껏 자기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당장 위청 등을 상대하기 위해 그 보물의 힘을 발휘하여 맞서 싸웠을 뿐이다. 그러니 만약 흑곰 요괴가 자금령으로 저 푸른 보호 덮개를 부술 수만 있다면 그는 선뜻 자금령을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울을 작동시키려면 관음 대사만의 제련법이 필요하니 흑곰 요괴는 십중팔구 제련하지 못할 터였다. 그러니 작은 곰 요괴의 말대로 하려면 심협은 자금령뿐만 아니라 선천연보결까지 함께 넘겨야만 했다.
‘저 욕심 많은 곰탱이 같으니라고! 이 심모를 떡 주무르듯 주무를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겼더냐!’
심협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선천연보결은 현묘하기 이를 데 없는 제련법으로, 섭채주는 자신의 사촌 누이이자 약혼녀였기에 전수해준 것뿐이다. 그러나 이 흑곰 요괴에게는 보결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물론 한 배를 탄 입장에서 전수해준다고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곰 요괴의 태도가 괘씸하니 기분이 언짢아졌다. 더욱이 류청과 위청의 목적은 보타산이지 자신과는 큰 관계가 없지 않은가!
“아차! 제가 잠시 부주의했군요. 자금령은 원래 주인께 돌려드리지요. 호법 선배님의 깊고 두터운 수련 경지라면 저 덮개를 분명 깨부술 수 있을 것입니다.”
심협은 이마를 탁 치면서 손에 든 자금령을 흑곰 요괴에게 건넸다.
백소천은 심협과 작은 곰 요괴의 일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심협이 자금령을 넘겨주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심협의 경지로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력은 놀라웠으니, 흑곰 요괴가 자금령을 사용한다면 분명 푸른 보호 덮개를 깨뜨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반면 섭채주는 입꼬리를 달싹이며 뭔가를 말하려는 듯했지만, 심협이 눈짓으로 만류했다.
“노웅(老熊)은 이 보물을 빼앗으려는 게 아니라, 그저 이 보호 덮개를 부수려는 것뿐이다. 반드시 자금령의 위력을 남김없이 발휘할 터이니 심 소우는 괜한 걱정 말아라.”
흑곰 요괴는 심협이 이렇게 흔쾌히 자금령을 넘기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사양 않고 손을 뻗어 건네받으며 해명했다.
“물론이지요.”
심협이 웃으며 답하자 흑곰 요괴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결인하여 자금령을 제련했다.
“아버지, 이 자금령의 힘을 발휘하려면 관음조사님만의 제련술이나 소문으로 전해지는 선천연보결이 꼭 필요합니다. 평범한 제련법은 소용이 없습니다.”
작은 곰 요괴는 의미심장하게 말하며 심협을 쳐다보았다.
“그러하냐? 섭가 계집아, 너는 조사님만의 연보술을 아느냐?”
흑곰 요괴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멍해져서는 섭채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또한 관음조사만의 연보 비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데, 이야기에 따르면 서천 영산의 비전(秘傳)으로 지극히 심오하고 현묘하다 하였다. 보타산에서는 오직 관월진인만이 이를 알고 있는데, 오직 섭채주만이 장문이 친히 가르친 수제자이니 그녀라면 이 법술에 정통할 가능성이 있다 여긴 것이다. 심협이 자유자재로 자금령을 다룰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섭채주가 전수해준 것이리라.
“아버지, 그게 아닙니다. 섭 도우는 조사님의 비술을 전혀 모릅니다. 섭 도우와 심 도우가 버드나무 가지와 자금령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심 도우가 선천연보결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곰 요괴는 흑곰 요괴가 자신의 뜻을 오해하자 황급히 말했다.
“뭐라! 심 소우가 선천연보결을 알고 있다고?”
흑곰 요괴는 깜짝 놀라 심협을 홱 돌아보았다.
“조금은 알고 있지만, 그 술법은 우리 심가의 비전이라 외부인에게 전수해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호법 선배님께서 양해해주시지요.”
심협은 작은 곰 요괴를 힐끗 보더니 담담히 말하고는 한쪽 옆으로 걸어가 똑바로 섰다.
흑곰 요괴는 심협의 표정과 그를 대하는 아들의 태도를 떠올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너 심협과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그의 목소리가 작은 곰 요괴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이곳에는 금제가 있어 신식이 몸을 떠날 수 없게 만들었지만, 흑곰 요괴는 자죽림을 지킨 지 여러 해라서 다른 수단으로 신식을 통해 목소리를 전할 수 있었다.
‘아버지, 말씀을 드리자면…….’
작은 곰 요괴는 속으로 우쭐해하며 심협이 선천연보결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자신과 그의 원한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아버지, 저 대신 화풀이 좀 해주셔야지요. 그의 선천연보결을 빼앗아 와주십시오!’
작은 곰 요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한데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의 머릿속에 있는 작은 사람 모양 신혼의 얼굴을 어떤 힘이 거세게 후려쳤다. 그는 뺨에 전해지는 극심한 고통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어리석기 그지없구나!’
작은 곰 요괴의 머릿속에 빛이 번쩍하면서 흑곰 요괴를 닮은 흐릿한 그림자가 나타나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아버지…….’
작은 곰 요괴의 신혼은 놀라고 두려운 표정으로 뺨을 어루만졌다.
‘너는 심협과 묵은 원한이 있다면서 어찌 이리 드러내놓고 선천연보결을 내달라 하였느냐? 하는 짓이며 수완이 이리 천박해서야! 책략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무턱대고 나설 줄만 아는구나! 네가 앞서 저지른 모든 일들은 심협이 선천연보결을 내놓는 것을 거부하게 만들 뿐이다!’
흑곰 요괴는 한심하다는 듯 작은 곰 요괴의 신혼을 바라보며 호통을 쳤다.
‘아버지, 심협이 이미 자금령을 넘겼으니 아예 아버지의 적수가 못 됩니다. 아버지께서 그에게 선천연보결을 내놓으라 하시면 그가 어찌 감히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은 상황이 위급하니 목숨을 생각해서라도 연보결 따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작은 곰 요괴가 억울한 듯 말했다.
‘헛소리! 너의 그깟 잔꾀로 누구를 속여 넘길 수 있겠느냐! 지금은 모두들 한 배를 타고 있다. 그가 제 목숨을 생각해야 한다면 우리라고 생각할 필요 있겠느냐? 네가 지금 궁지로 내몰고 있는 것은 그가 아니라 나란 말이다!’
흑곰 요괴가 벌컥 성을 내자 작은 곰 요괴는 그제야 멍하니 넋을 놓고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여기서 여러 해 수련하면 발전이 좀 있을 거라 여겼더니만, 여전히 이렇게 어리석을 줄이야! 이번 일이 끝나도 너는 계속 여기에 남거라!’
흑곰 요괴는 한바탕 화를 퍼붓고는 싸늘하게 작은 곰 요괴를 한 번 쳐다본 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작은 곰 요괴의 낯빛은 별안간 더없이 창백해졌다.
“심 소우, 가문의 비전이라면 밖으로 전할 수 없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위태롭지 않은가. 저들이 법술을 시전한다면 우리 모두 예서 죽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 귀부(貴府)의 규칙을 잠시 바꾸는 것이 좋을 듯하네. 물론 내 소우의 연보결을 거저 달라는 것은 아니야. 이 노웅이 아는 비기(秘技)가 적지 않으니 이 세 가지 비법과 맞바꾸면 어떻겠는가?”
흑곰 요괴는 심협에게 다가와 비위를 맞추려는 듯 웃는 얼굴로 말하며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에 하얀 빛이 연달아 번쩍이더니 하얀 옥합 세 개가 나타났다. 옥합에는 비술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각각 현명한결(玄冥寒訣), 이형환영(移形換影) 그리고 장심뢰(掌心雷)였다.
“현명한결은 얼음 비술로, 내가 당시에 보살의 말씀을 경청하며 깨달은 신통력이야. 심오한 경지까지 수련하면 모든 것을 얼려버릴 수 있으니 도우의 물 속성 공법과 잘 맞아떨어지지. 이 이형환영은 심오한 신법인데, 내 생각에 도우의 신법이 놀라우니 이 법술까지 익히면 분명 더욱 조예가 깊어질 게야.
마지막으로 장심뢰는 특별한 뇌법(雷法)이지. 그 위력이 놀라울 뿐만 아니라 약간의 봉인 효과도 있어. 특히 다른 이의 법보를 봉인하는 데 능하지. 이 두 가지 비술은 내 여러 해 전에 우연히 얻은 것인데, 그 정교함과 기이함은 현명한결에 뒤처지지 않을 걸세.”
흑곰 요괴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호법 선배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이 심모가 응하지 않는다면 너무 대국(大局)을 읽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심협은 세 개의 옥합을 흘끗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흑곰 요괴의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
한데 그때, 옆에서 섭채주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호법 선배님, 그건 아니 될 듯합니다.”
사람들 모두 그 말에 표정이 돌변했다.
“섭 도우, 심협이 네 정혼자이기는 하나 자신이 보타산 제자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야!”
작은 곰 요괴는 섭채주가 심협을 싸고돌려는 줄 알고 다급히 외쳤다.
“입 다물지 못할까! 이 아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느냐!”
흑곰 요괴가 노여워하며 큰 소리로 호통을 치자 작은 곰 요괴는 입을 삐죽였을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그러는 게냐?”
미소를 머금고 섭채주를 바라보는 흑곰 요괴의 눈에는 한 가닥 의심도 깃들어 있었다.
“호법 선배님, 작은 곰 요괴 선배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흑 호법 선배님께서 선천연보결을 얻는 것을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조금 전 오라버니의 선천연보결로 이 버드나무 가지를 제련하다가 우연히 버드나무 가지 금제의 깊은 곳에 닿게 되었는데, 관음대사께서 그곳에 약간의 정보들을 남겨두셨습니다.”
이 뜻밖의 말에 모든 이의 표정이 한층 진중해졌다.
“조음동의 세 가지 보물은 인연이 닿는 이에게 남겨진 것이라 한 사람만 제련할 수 있고, 그 뒤에는 보물 안의 금제가 스스로 닫혀 다른 이의 법력에는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섭채주가 해명했다.
“그게 사실이냐!”
흑곰 요괴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다지 믿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심협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그는 자금령을 제련하면서 바깥쪽 금제에서만 맴돌았을 뿐, 그 깊숙한 곳까지 닿지 않았기에 이런 정보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
“심모는 자금령을 아직 그리 심오한 경지까지 제련하지 못하여 알지 못했습니다. 호법 선배님, 이것은 선천연보결이니 한번 시험해보시지요.”
그는 곧 옥간 하나를 꺼내 선천연보결을 기록하여 흑곰 요괴에게 건넸다.
흑곰 요괴는 옥간을 받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