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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31화 (531/1,214)

531화. 버리는 돌

“방금 그 단약이로구나!”

귀도는 문득 어찌된 영문인지 깨달았다.

“귀도 선배님이 날카롭긴 하십니다. 이미 늦었지만요.”

류청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큰 적을 앞에 두고 우리를 음해하려 한단 말인가!”

풍식은 놀라움과 노여움이 교차해 호통을 쳤다.

“소녀 본디 두 분 선배님께서 맞은편의 저자들을 해결해주시길 기대하였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생각보다 변변치 않으시니 어쩔 수 없이 두 분을 희생시킬 수밖에요.”

류청은 활짝 웃으며 양손을 결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풍식과 귀도의 아랫배에 각각 검은 빛 덩어리가 빛나더니 몸의 자줏빛 문양에서 동시에 가닥가닥 실오라기 같은 검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는 바로 마기였다.

풍식과 귀도의 몸에서는 원기가 대량으로 흘러나갔고, 체내 경맥은 마치 수천수만 마리의 벌레가 갉아먹는 것처럼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사타령 청사대왕(靑獅大王)의 심복이다! 네가 감히 우리에게 손을 댄단 말이냐! 우리 대왕의 진노가 두렵지 않은 게냐!”

귀도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류청은 눈빛이 굳어졌지만, 계속해서 결인했다. 그러자 검은 빛줄기 두 개가 그녀의 손을 떠나 풍식과 귀도의 체내로 하나씩 들어갔다.

두 사람의 몸에 나타난 자흑색 마문이 강한 빛을 내뿜더니, 이 무늬들은 뜻밖에도 몸을 벗어나 빠르게 자라났다.

마문이 순간 한데 뒤엉키면서 가까이 서 있었던 풍식과 귀도를 한꺼번에 휘감고는 몇 호흡 사이에 자흑색 고치를 이루었다.

고치의 중심부에서는 풍식과 귀도의 몸이 천천히 가까워지더니 뜻밖에도 하나로 합쳐질 조짐을 보였다.

“호법 선배님, 상황을 보아하니 위청과 류청이 풍식과 귀도를 제물 삼아 마족의 신통력을 쓰려는 듯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모르겠으나, 저대로 둬서는 아니 될 듯합니다.”

심협이 맞은편 상황에 낯빛이 변해 말했다.

“옳다! 함께 나서서 저들을 막자!”

흑곰 요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리 높여 외치며 손을 뒤집어 흑영창을 꺼냈고, 창의 몸체에서 팔뚝만 한 검은 번개들이 떠올라 파지직 소리를 냈다.

그가 입을 벌리자 검은 빛덩이가 창으로 녹아들었다. 그러자 창의 몸체에는 또다시 검은 주문들이 하나하나 떠올랐고, 새카맣게 빛나던 번개들은 더욱 난폭해져 마치 뇌룡이 용솟음치듯 허공을 떨리게 만들었다.

흑곰 요괴의 한쪽 팔에서 문득 우두둑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갑자기 배로 굵어졌다. 이 요괴는 그 상태로 있는 힘껏 흑영창을 내던졌다.

쐐액!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면서 흑영창이 한 줄기 검은 번개로 변해 맞은편의 자흑색 고치를 향해 날아갔다.

심협은 이를 보고 즉시 손에 있던 자금령의 힘을 불러일으켰다.

방울소리가 울리면서 자금령의 방울들이 바람을 안고 몇 배로 불어나더니, 이글이글거리는 붉은 불꽃과 푸른 영연 그리고 누르스름한 모래바람이 쏘아져 나와 곧바로 뒤엉켜 거대한 삼색용으로 변했다.

몸길이가 백여 장에 이르는 이 용은 맹렬한 불길과 영연, 황사를 몸에 휘감은 채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휘두르며 류청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불길과 영연, 모래바람 모두 거센 영압을 뿜어냈는데, 이 세 가지가 하나로 합쳐지고 영압도 하나가 되니 그 위세가 흑영창에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다.

백소천과 작은 곰 요괴도 잇달아 나섰다. 백소천이 화룡점정선을 꺼내 부채질하자 집채만 한 금색 빛 덩어리가 별똥별처럼 날아갔다.

작은 곰 요괴도 일광화 신통을 발휘해 장창을 던졌다. 장창은 거대한 검기를 휘감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반대편을 향해 날아갔다.

한편, 섭채주는 심협의 말에 따라 나서서 공격하지 않고 단약을 하나 꺼내 먹고는 지금껏 소모한 원기를 회복했고, 버드나무 가지를 꽉 쥐고 언제든 심협을 비롯한 사람들의 법력을 보충해줄 준비를 했다.

이 무렵, 류청은 심협 등이 공격해오는 것을 보고도 전혀 걱정하지 않고 결인하여 옥정병을 가리켰다. 그러자 옥정병은 번쩍하고 사라졌다가 다음 순간 머리 위 하늘에 떠다녔다.

그녀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하얀 빛줄기가 번개처럼 날아가 옥정병 위에 철썩 달라붙었다. 이 빛은 하얀 부적이었다.

부적에는 용 문양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그 위로는 영광이 환하게 피어올랐고, 거대한 기운이 부적에서 폭발했다.

콰르릉!

옥정병 속에서 순간 굉음이 울리더니, 병 주둥이에서 거대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와 그녀와 위청, 자흑색 고치를 감쌌다. 그 뒤 푸른 빛은 갑자기 응결되더니 옥정병과 똑같은 모양의 푸른 보호덮개로 변했다.

류청의 행동이 어찌나 신속했는지, 흑곰 요괴와 심협의 공격이 도달하기도 전에 모든 법술을 시전했다.

흑영창은 천둥과 번개가 되어 가장 먼저 푸른 빛 덮개에 꽂혔다. 칠흑 같은 벼락이 작열하는 뙤약볕처럼 나타났고, 무수히 많은 굵직한 벼락이 뙤약볕 속에서 용솟음치며 푸른 보호 덮개를 거세게 내리쳤다.

거대한 삼색용도 날아와 보호막을 맹렬히 들이받았다.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광채가 거대한 용의 몸에서 터져 나왔고, 더없이 뜨거운 열기가 폭발하면서 대기마저 마치 익어버린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세 가지 색체의 광채는 빙그르르 회전하더니 곧 불바다로 변했다. 그리고 번쩍이는 불빛 아래 거대한 불길들이 나타나 푸른 빛 장막에 세차게 부딪히면서 옆의 검은 벼락까지도 적잖이 집어삼켰다.

백소천과 작은 곰 요괴의 공격도 날아들었다.

푸른 빛 장막은 한순간 여러 사람의 공격에 파묻혔고, 갖가지 빛들이 미친 듯이 번쩍였다. 이에 주위 허공이 부서질 것처럼 뒤틀리며 파르르 떨렸고, 하늘로 치솟은 회오리가 우르릉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맹렬하게 휘몰아쳤다. 천지의 풍경이 변했고, 아래 해수면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다.

한참 후에야 갖가지 빛들이 흩어졌다. 그리고 심협을 비롯한 사람들은 드러난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흩어진 빛의 한가운데, 푸른 빛 덮개는 이전과 다름없이 조용히 떠 있었고, 여러 사람의 합동 공격은 맑은 바람이 스치고 지난 것처럼 푸른 빛 덮개에 조금도 손상을 주지 못한 것이다.

“어찌 이럴 수가!”

흑곰 요괴가 경악한 듯 외쳤다.

조금 전의 합공은 자신조차 감당할 자신이 없을 정도였는데, 저리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보호막 하나를 어찌 하지 못한 것이다.

“그대들은 헛수고할 필요 없소. 이것은 옥정병 근원의 힘으로 만들어진 보호막이니 그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관월노도가 이 자리에 있다 해도 깨부술 수 없을 거요.”

류청의 냉담한 목소리에 모두 낯빛이 굳었다.

“위 도우, 거의 다 됐습니다.”

류청이 옆에 있던 위청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위청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부좌를 튼 채 양손으로 몸 앞에서 결인을 맺었다. 그의 미간에서는 맑은 빛이 번쩍이면서 갑자기 강하고 음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사람들은 온몸에 오한이 날 지경이었다.

새카만 사람 형상을 한 신혼이 위청의 몸에서 날아 나와 휙 하고 자흑색 고치 속으로 날아들었다.

‘연신단 귀수들의 법술!’

심협은 위청의 신통력을 즉시 알아보고는 동공이 확 움츠러들었다. 게다가 상대의 신혼이 몸을 떠날 때의 위세로 보아, 그의 혼수(魂修) 신통력은 이미 대성의 경지에 이르러 신혼의 힘만 따져도 이미 진선기 수사 못지않았다.

한편, 풍식은 머릿속이 서늘해지면서 음산한 기운이 침입해 들어와 자신의 신혼을 빠르게 집어 삼키는 것을 느꼈다.

“그럴 리 없어! 위청은 버리는 돌이었어야 한다고! 설마…… 진정 버리는 돌이 우리였던 것인가? 이럴 수는 없어!”

풍식은 속으로 분노에 차서 포효했지만, 의식은 빠르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귀도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위청에게 신혼이 빠르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위청이 서혼신통(噬魂神通)까지 익혔다니, 역시…….”

류청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가부좌를 튼 채 소매를 한 차례 휘둘렀다.

그러자 그녀의 소매 안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쏘아져 나와 자흑색 고치 주위에 떨어져 내렸다. 이들은 무려 열여덟 개나 되는 새카만 조각상들이었다.

나무인 듯도 돌인 듯도 하여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이 조각상들 위로는 검은 기운이 휘감겨 있었는데, 바로 지극히 순수한 마기였다.

류청이 마치 난초가 피어나듯 열 손가락을 빠르게 결인하자,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검은 실들이 그녀의 손에서 날아가 검은 조각상 안으로 하나씩 들어갔다.

뒤이어 검은 실들이 그녀의 양손에서 날아 나와 자흑색 고치 속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검은 조각상의 마기가 갑자기 크게 불어나더니 검은 실로 만들어진 열여덟 개의 굵은 검은 기둥을 타고 자흑색 고치를 향해 세차게 몰려갔다.

고치 안 깊숙한 곳에서 강력한 파동이 새어나오면서 근처의 짙은 천지영기도 거세게 진동했고, 각양각색의 무수한 빛들이 허공에 점점이 떠올라 몹시도 화려해 보였다.

자흑색 고치 속에서 광채가 번득이고, 순간 주위의 천지영기가 이 영력의 빛들과 함께 힘차게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커다란 영기의 물결로 변해 수많은 강들이 바다로 돌아가듯 자흑색 고치를 향해 모여들었다.

이 연이은 격변은 복잡해 보였으나 단 몇 호흡 만에 완성되었다.

심협 등은 모두 이 광경을 보고 표정이 크게 변했다.

이쯤 되면 저들이 대단한 음모를 꾸몄음은 바보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대체 그 계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사람들에게 좋은 일은 아닐 터였다.

“호법 선배님, 이제 어찌 해야 합니까?”

섭채주가 흑곰 요괴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다른 사람의 눈길도 흑곰 요괴에게 집중되었으나, 오직 한 사람, 심협만은 여전히 푸른 빛 덮개 아래의 자흑색 고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심 소우, 이놈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알아차렸느냐?”

흑곰 요괴는 심협의 표정을 눈여겨보고는 목소리 높여 물었다.

그 말에 다른 사람들도 심협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알아차렸는지 감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저는 예전에 마족들과 여러 번 맞붙어본 경험이 있어 그들의 신통력을 조금 알고는 있습니다. 제가 짐작한 바에 따르면 류청은 사악한 마족의 신통력을 써서 풍식과 귀도의 몸을 하나로 합쳤고, 위청의 신혼이 그 새로운 몸을 차지하게 한 듯합니다.”

심협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두 요족의 몸을 서로 합쳐 새로운 몸을 만들었다?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진흙 인형을 빚는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의 몸을 하나로 합친다니. 만약 그게 가능하다 해도 위청의 신혼이 그 요체(妖體)를 차지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혼과 몸이 반드시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만 정신과 육체가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법. 설령 탈사(*奪舍: 혼령이 사람의 몸을 빼앗아 차지하는 것) 비술이라 해도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신혼과 육체가 온전히 호흡을 맞출 수 있단 말이다.”

작은 곰 요괴는 심협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대놓고 비웃었다.

“귀하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습니다. 마족은 그런 괴이한 비술에 정통합니다. 저는 마족이 조금 망가진 몸뚱이를 마기로 고쳐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도 직접 본 적이 있으니, 두 요괴의 몸을 하나로 합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을 테지요. 또한 위청은 연신단 귀수들의 술법을 수련한 적 있는 듯합니다. 그리되면 육신을 융합시키는 것이 평범한 혼백 탈사보다 훨씬 더 쉽지요.”

심협은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도리어 엷게 미소 지으며 설명했다.

“맞습니다. 마족은 몸을 개조하는 데에 아주 능합니다. 이는 저와 심 도우가 직접 겪은 바 있습니다.”

백소천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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