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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27화 (527/1,214)
  • 527화. 세 개의 방울

    붉은 화염이 화령 안에서 뿜어져 나와 통로 안으로 날아들었다.

    꽈르릉! 퍼펑!

    연이은 굉음이 터지면서 화염들이 남은 통로까지 무너뜨렸다.

    이를 마친 심협은 머뭇거리지 않고 여전히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섭채주를 데리고 즉시 오른쪽 통로로 날아 들어갔다.

    작은 곰 요괴는 그 뒷모습을 보며 눈빛을 번득이더니, 콧방귀를 뀌고는 손을 흔들어 용녀 아기의 시신을 거둬들이고는 뒤를 따랐다.

    오른쪽 통로는 앞의 두 통로보다 더 깊어서 한참을 내달린 뒤에야 그 끝에 이르렀다.

    빛으로 된 푸른 문이 앞에 나타났는데, 굉음이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입구에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협은 섣불리 들어가지 않고 빛으로 된 문 앞에 멈춰 서서 손을 들고 앞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푸른 빛 물결이 휘몰아치며 성난 파도처럼 빛으로 된 푸른 문을 향해 돌진했지만, 함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심협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빛으로 된 문 안으로 들어섰고,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이내 어느 푸르른 섬에 나타났다.

    섬은 그리 넓지 않아서 폭이 3, 4리밖에 되지 않았고, 자그마한 돌산 외에는 전부 평지였다. 누군가가 일궈놓은 화단들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갖가지 화초들이 자라고 있어 이곳에 살았던 이가 제법 멋을 아는 이였을 듯했다.

    하지만 이 화단들은 지금 온통 난장판이었다. 바닥에는 깊은 자국들이 종횡으로 엇갈려 있었고, 깊은 구덩이들도 많았다. 어떤 구덩이에는 아직까지도 푸른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그마한 돌산 근처에는 돌탑이 하나 서 있었지만, 누가 중간을 베어 토막 낸 듯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돌탑이 무너진 돌무더기에 시체가 한 구 있었다. 온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여기저기 피범벅이라 원래 모습을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지만, 인간의 몸에 사슴 머리를 한 요물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섬 주위에는 끝없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는데, 바다 위 상공에는 세 그림자가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흑곰 요괴와 풍식, 귀도였다.

    세 요괴는 맹렬히 맞붙어 싸우면서 불시로 충돌했는데, 한 번 충돌할 때마다 거대한 진동을 일으켜 허공이 부르르 진동했고, 맹렬한 기세의 폭풍을 일으켰다. 가끔 한두 차례 공격이 떨어지면 바다에도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역시 그들이었어!”

    심협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작은 곰 요괴도 돌산 아래 푸른 문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이곳이 망가진 것을 보고 혀를 차다가 돌무더기 속 사슴 요괴의 시신을 보고는 절절한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녹(鹿)형!”

    그는 비통한 목소리로 외쳤고, 그 슬픔은 곧 뼈에 사무친 원한으로 바뀌었다.

    그때, 우르릉거리는 굉음이 하늘에서 들려왔다. 작은 곰 요괴가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하늘에 있던 흑곰 요괴가 감격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심협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섬이 크지 않아 한눈에 변두리까지 보였으나, 백소천과 귀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귀장과의 연결을 통해 아직 살아 있음은 분명히 알고 있건만…… 어딘가 숨어 있는 것일까?

    그때, 작고 약한 소리가 멀지 않은 해변에서 들려왔다.

    “심형…….”

    심협이 돌아보니 반투명한 그림자 두 개가 바닷속에서 천천히 솟아나왔는데, 바로 백소천과 귀장이었다. 그들의 헛것처럼 흐릿한 모습은 빠르게 단단해져 실체를 갖추었다.

    백소천의 안색은 너무도 창백했고, 옷은 태반이 피로 붉게 물들었으며, 오른손이 보이지 않았다. 부상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반면 귀장은 기운이 쇠약해지긴 했어도 크게 다치지는 않은 상태였다.

    “백형, 어찌 이 모양이오? 괜찮소?”

    심협이 황급히 다가가 물었다.

    “괜찮네. 위청 그놈에게 심한 부상을 입었어. 이미 손에 넣었던 옥정병도 류청 그 요녀에게 빼앗기고 말았네. 다행히 귀장 형에게 은신부가 있어서 나를 숨겨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오늘 정말 여기서 끝장났을 걸세.”

    백소천이 쓰게 웃었다.

    “그럼 녹형은 누가 죽였느냐?”

    작은 곰 요괴가 날아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분은……?”

    백소천은 작은 곰 요괴를 보고는 시선을 심협에게로 옮기며 물었다.

    “이분은 작은 곰 요괴이신데, 다른 보물을 지키는 분이시오. 우리 편이지.”

    심협이 말했다.

    작은 곰 요괴는 ‘우리 편’이라는 말을 듣고 눈에 다른 빛이 한 가닥 스쳐 지났다.

    “작은 곰 요괴 선배님이셨군요. 저는 화생사의 백소천입니다. 저분 사슴 요괴 선배님께서는 위청의 손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백소천이 말했다.

    “위청…….”

    작은 곰 요괴의 얼굴에 살기가 돌면서 무시무시한 푸른 빛이 어렴풋하게 배어 나왔다.

    “보물이야 어찌 됐건 두 사람이 무사하니 다행이오. 이것은 요상유영단이니, 어서 먹고 상처를 치료하시오.”

    심협은 유영단을 꺼내 백소천에게 건넸다.

    백소천은 요상유영단의 효능을 알고 있었기에, 사양치 않고 받아 삼켰다.

    “두 사람은 잘 숨어서 채주를 좀 보살펴주시오. 나는 호법 선배님을 도우러 가야겠소.”

    심협은 채주를 귀장에게 넘겨준 뒤, 고개를 들어 하늘의 세 요괴를 살피다가 하늘로 휙 솟구쳐 올랐다.

    흑곰 요괴와 풍식, 귀도는 싸우는 중이었지만 심협의 행동을 즉시 알아차렸다.

    “이 대당관부 놈은 뭐 하러 온 게야?”

    흑곰 요괴가 눈썹을 찡그렸다. 저 두 요괴를 홀로 상대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심협 이놈이 걸리적거리면 보호해야 하니 힘에 부칠 터였다.

    한편, 심협이 날아오는 것을 본 풍식의 눈에는 희색이 스쳐 지났다. 그의 등 뒤로 푸른 빛이 번쩍 스치더니 크기가 족히 30척은  듯한 짙푸른 날개가 나타나 심협을 향해 날갯짓을 했다.

    별안간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들려오더니 짙푸른 폭풍이 튀어나와 눈 깜짝할 새에 곧게 뻗은 푸른 돌풍이 되었다.

    돌풍은 높이가 무려 3백여 장쯤 되어서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바람기둥 같았고, 그 위로는 무수한 푸른 그림자가 반짝였다. 이 그림자들은 문짝만 한 푸른 풍인(風刃)으로, 요란한 소리를 연달아 울리며 천지를 뒤엎을 기세로 심협을 향해 휘몰아쳤다.

    흑곰 요괴의 안색이 급변했다. 풍식의 이 일격은 위력이 대단하여 자신도 막아내기가 어려울 정도이거늘, 일개 출규기 수사인 심협이 어찌 막아내겠는가?

    흑곰 요괴는 심협이 제멋대로 전투에 끼어든 것에 화가 났지만, 죽도록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검은 창에서 번갯불을 강하게 내뿜어 굵직한 다섯 마리 뇌룡(雷龍)을 만들어내며 쏘아 보내려 했다.

    그때, 심협이 손을 뒤집어 자금령을 꺼내더니 방울 마개 세 개를 모조리 뽑아버리고는 힘차게 흔들었다.

    딸랑! 딸랑!

    맑고 낭랑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세 개의 방울이 동시에 몇 배나 커졌고, 하늘을 찌를 듯한 불기둥과 오색영연 그리고 누르스름한 모래바람이 솟구쳤다.

    바람은 불기운을 재촉하고 불길은 바람의 위세를 등에 업었다. 오색영연과 노란 모래바람이 부추기자 새빨간 불길은 즉시 열 배나 폭증하여 하늘을 절반쯤 집어삼킨 붉은 불바다로 변했다. 불바다 속에는 연기와 불길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가뜩이나 뜨거웠던 온도가 더욱 치솟았고, 근처 허공까지 자금령의 위력을 견뎌내지 못하여 죄다 불타버릴 것처럼 진홍빛으로 물들었다.

    푸른 돌풍은 붉은 불바다와 부딪치자마자 잡아먹히듯 녹아 없어졌다.

    붉은 불바다는 그 기세를 몰아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노란 모래바람이 섞여 들어갔기 때문인지 그 속도 또한 놀라울 정도라, 순식간에 풍식을 휘감았다.

    무시무시한 열기가 하늘에서 흘러나오면서 아래쪽 섬의 식물들은 눈 깜짝할 새 말라죽었고, 반경 몇 리의 바닷물도 순식간에 증발하여 해수면이 무려 1장이나 내려갔다.

    섬에 있던 백소천과 작은 곰 요괴 등은 깜짝 놀랐다.

    한편, 하늘의 다른 한쪽에 있던 흑곰 요괴는 멍하니 이 광경을 보고 있다가 이내 크게 기뻐했다.

    “심 소우, 잘했다!”

    반면 귀도는 심협이 손에 든 물건을 보고 안색이 크게 변했다.

    “자금령!”

    그는 즉시 물러나 풍식을 구하러 가려는 듯 불바다를 향해 돌진했다.

    “너희 두 놈이 몰려다닌 통에 내 줄곧 제대로 손을 봐주지 못했는데, 이제 네놈 혼자 남았거늘, 놔줄 성싶으냐?”

    흑곰 요괴가 차게 웃으며 장창을 치켜세우자 거의 백 줄기에 달하는 검은 번개들이 뿜어져 나갔다.

    이 검은 번개들은 창을 떠나자 순식간에 몇 배로 굵어져서는 번쩍하고 귀도의 머리 위까지 날아갔다.

    뒤이어 흑곰 요괴가 입을 벌려 검은 기운을 내뿜자, 이 기운도 번쩍하고 귀도 위로 날아가 검은 번개와 합쳐지더니 집채만 한 곰발바닥이 되어 매서운 기세로 내리쳤다.

    이 발바닥이 채 닿기도 전에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힘이 덮쳐오면서 귀도의 몸은 마치 끝없는 진흙탕 속에 빠진 것처럼 아래로 훅 가라앉았고, 날아가던 속도 또한 1할로 줄어들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멈춰 서더니 양손으로 몸을 철썩 두드렸다.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에 예스럽지만 그 위용을 잃지 않은 금빛 갑옷이 나타났다. 등 쪽은 두꺼운 거북이 등껍질이었고, 갑옷의 가장자리 부분에는 날카로운 가시와 갈고리가 가득했다. 그 위로 어렴풋이 번갯불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그저 방어용으로만 쓰이는 갑옷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금빛 갑옷 위로 수많은 금색 빛줄기가 피어올라 거대한 금빛 거북이로 응집되더니 허공의 검은 곰발바닥을 향해 날아갔다.

    이어서 귀도는 오른손에 노란 빛을 번쩍이며 노란 고동(古銅) 방패를 꺼냈다. 눈 깜짝할 사이 겹겹의 산악 허상이 떠올라 금빛 거북이와 마찬가지로 위로 날아가 곰발바닥과 충돌했다.

    콰르릉! 쾅!

    굉음이 연이어 울리면서 거대한 금빛 거북이와 산악의 허상이 폭발했고, 번개로 된 곰발바닥도 산산이 부서지면서 검은 번개 줄기로 흩어져 날렸다.

    그러나 귀도는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운석처럼 해수면으로 추락했다.

    “심 소우, 자금령의 힘을 전력으로 발휘하여 풍식을 잠시 가둬놓아라!”

    흑곰 요괴는 심협에게 외치고는 굵직한 검은 번개로 변하여 귀도를 뒤쫓았다.

    이 무렵, 심협의 안색은 조금 창백한 상태였다. 방울 세 개를 모두 연 자금령의 위력은 크게 증가했지만, 법력의 소모 또한 급격하게 증가했다. 지금 그의 법력은 마치 밑 빠진 독처럼 미친 듯이 새어나가, 불과 몇 호흡 만에 2할 가까이 소모되었다.

    그러나 흑곰 요괴의 당부에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법력을 아낌없이 자금령에 쏟아부었다.

    자금령이 격렬히 진동하더니, 풍령에서 노란 폭풍이 뿜어져 나와 하늘을 휩쓸고는 불바다 속으로 돌진했다.

    시뻘건 불바다가 순간 미친 듯이 용솟음치더니 빠르게 수백 장 크기로 줄어들면서 4백여 장 높이의 거대한 불기둥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돌개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회전해 풍식을 단단히 가둬놓았다.

    우르릉! 콰쾅!

    굉음이 허공에 메아리치면서 불기둥 한가운데의 풍식은 견디기 힘든 열기와 불기둥의 회전이 만들어낸 엄청난 압력에 시달렸다.

    하지만 풍식은 허둥대지 않고 핏빛 대번(大幡) 법보로 온몸을 감쌌고, 대번에서는 핏빛 파동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와 화염의 힘을 막아냈다.

    이 대번 법보는 공방일체(攻防一體)의 보물인 듯했는데, 그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이전의 푸른 폭풍보다 더 큰 위력으로 바깥쪽을 향해 핏빛 폭풍을 쉬지 않고 뿜어내며 거대한 불기둥을 뚫고 나가려 했다.

    그러나 자금령은 관음대사의 호신 법보로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비록 심협의 경지가 낮아 위력의 극히 일부밖에 발휘하지 못했지만, 풍식으로서는 뚫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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