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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26화 (526/1,214)

526화. 용을 죽인 자

심협이 두 손을 수레바퀴처럼 결인하자 이번에 뿜어져 나온 모든 불길이 한 곳으로 모여들더니 천지를 뒤흔드는 용 울음소리를 울리며 길이가 3백여 장에 달하는 거대한 화염룡이 나타났다. 그 몸을 이루고 있는 연기와 불의 결합이 실로 정교했는데, 특히 붉은 화염들은 가느다란 불길들로 변해 특별한 규칙에 따라 오색영연을 휘감은 채였다.

푸른 물 그물 위의 물기는 짙었지만, 심협과 불을 통제하는 정묘한 신통력은 화염의 힘과 오색영연을 단단히 결합하여, 연기의 힘으로 물 그물을 막아냄으로써 화염의 힘이 꺼지지 않게 했다.

“가라!”

심협이 법술을 시전하자 거대한 화염룡이 즉시 날아갔다. 기다란 용의 발은 거대한 잔상으로 변해 통로 입구의 푸른 물 그물을 세게 움켜쥐었다.

뒤이어 비단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푸른 물 그물이 찢어지면서 폭 1장의 틈이 생겨났다.

심협은 곧장 다시 자금령을 흔들었다. 그러자 자금색 빛줄기들이 뿜어져 나와 섭채주와 작은 곰 요괴의 몸을 휘감았다. 이 자금색 빛줄기들은 자금령이 뿜어낸 영광(靈光)일 뿐이었지만, 위력은 놀라울 정도로 대단해서 섭채주와 작은 곰 요괴를 꼼짝도 못하게 속박했다.

세 사람은 그물의 갈라진 틈을 통해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류청과 위청은 안색이 크게 변해 즉시 따라왔지만, 화염룡의 거대한 몸뚱이가 불쑥 나타나 작은 산처럼 똬리를 틀고는 통로 입구를 굳게 막았다.

심협은 통로를 내달리며 다시 자금령의 힘을 불러일으켰다.

거대한 오색영연과 붉은 화염이 등 뒤쪽 통로를 향해 날아들면서 폭발했다.

쿠르릉!

한순간 뒤쪽 통로가 무너져 내리며 거대한 바위들이 떨어져 내려 통로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좀 전의 짧은 대화로 미루어 류청과 위청에게는 둔지부와 같은 부적이나 법보가 없을 테니 그들을 한동안 붙잡아둘 수 있을 터였다.

심협은 통로의 절반을 무너뜨린 뒤에야 멈춰 섰다. 실은 통로를 조금 더 무너뜨리고 싶었지만, 체내 법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자금령은 위력이 대단한 만큼 법력 소모 또한 많았던 것이다.

“이제 풀어줘도 된다.”

작은 곰 요괴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에게 들린 채 끌려가는 듯한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상황이 급박하여 후배가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책망치 말아주십시오.”

심협은 황급히 결인하고 자금령을 가리켜 두 줄기 자금색 빛을 흩어버렸다.

작은 곰 요괴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려 바깥을 보았다.

“누이, 혹시 법력을 회복시켜주는 부적 남은 게 있을까?”

심협은 작은 곰 요괴를 아랑곳하지 않고 섭채주에게 말했다.

“부적은 없지만, 제가 보도중생(普渡衆生)을 시전할 수는 있어요.”

섭채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일월광화봉에 밝은 녹색 빛이 떠올랐고, 이어서 그녀는 그 봉으로 심협을 가리켰다.

녹색 빛줄기가 심협의 몸속에 녹아들어 아홉 번 연달아 번쩍이자, 고갈되었던 그의 법력이 순식간에 절반 가까이 회복되었다.

반면 섭채주는 얼굴이 살짝 창백해진 것이 법술을 시전하느라 제법 소모가 큰 것이 분명했다.

심협은 보타산 회복류 법술의 신묘함에 감탄하며 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회복 단약을 하나 꺼내 삼키고 정제하며 천천히 법력을 회복했다.

섭채주는 아직 심협이 덜 회복된 듯하자 다시 일월광화봉을 들어올렸다.

“누이, 무리하지 말아라.”

심협이 황급히 말렸으나, 섭채주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오라버니가 어서 회복하셔야 저들을 막지요. 저는 이런 것 외에 도울 수 있는 게 없는 걸요.”

“그럴 리 있겠느냐! 그 버드나무 가지는 관음대사님의 법보이기도 하니 분명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겠지.”

“허나 그 버드나무 가지는 관음 조사님만의 제련술이 있어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저는 그 제련법을 모르니 쓸 수가 없어요.”

섭채주는 고개를 저으며 힘없이 웃고는 심협이 말릴 틈도 없이 일월광화봉을 집어 들고는 다시 한번 보도중생을 시전했다.

심협의 몸에서 녹색 빛이 연달아 번쩍이며 법력이 거의 완벽히 회복되었다.

섭채주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웃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심 소자는 어떻게 자금령을 작동시킬 수 있었던 게지? 이 방울도 관음 조사님만의 제련술이 있어야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설마 네가 조사님과 어떤 관련이 있어 그 어르신의 제련법문을 알고 있는 게냐?”

작은 곰 요괴가 돌아서며 물었고, 섭채주도 궁금한 듯 심협을 쳐다보았다.

“제가 관음대사님의 제련법문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저 이전에 선천연보결을 우연히 얻었는데, 그것으로 이 자금령을 제련했을 뿐입니다.”

심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선천연보결! 네가 선천연보결을 안단 말이냐!”

작은 곰 요괴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흥분한 듯 소리를 질러댔다.

“네, 그렇습니다. 한데…… 그 보결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심협은 그런 작은 곰 요괴를 보며 당황한 듯 되물었다.

“문제? 선천연보결은 고금을 통틀어 제일의 연보(煉寶) 신통력으로,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여와 성인(聖人)께서 오색돌을 제련하여 하늘을 메우기 위해 만든 것으로, 세상 모든 보물을 제련할 수 있다고 하지! 너는 어디서 그 보결을 얻었느냐?”

작은 곰 요괴는 놀라움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설명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탐욕이 스쳐 지나갔다.

한편,, 심협은 그 말에 잠시 멍하니 넋이 나갔다. 그는 선천연보결을 얻은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는데, 이 보결이 현묘한 줄은 알았지만 그 내력이 이토록 대단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여러 해 전 어느 비경에서 우연히 얻은 것으로, 이 보결의 명성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습니다. 누이, 내 이 보결을 전해줄 테니 어서 그 버드나무 가지를 제련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자.”

심협은 말을 돌리며 손가락을 구부려 섭채주의 미간을 짚었다. 그러자 선천연보결의 구결과 그동안 그가 얻은 이 보결에 대한 깨달음이 그의 손끝을 타고 섭채주의 머릿속으로 녹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오라버니.”

섭채주는 기쁜 표정으로 눈을 감고 깨달음을 되새겼고, 이내 무아지경에 이르러서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게 됐다.

심협은 자금령을 흔들어 자금색 빛줄기로 섭채주의 몸을 휘감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작은 곰 요괴는 그 뒤를 바짝 따랐고, 이들은 이내 통로를 벗어나 이전의 대전으로 돌아왔다.

그 순간, 심협은 안색이 돌변했다. 대전 바닥에 누군가 쓰러져 있었는데, 바로 용녀 아기였던 것이다. 여인의 미간에는 손가락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바닥에는 온통 붉은 피가 낭자했다.

“용녀 아기!”

작은 곰 요괴는 그녀와 가까운 사이였는지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날아와 상태를 살폈다.

용녀 아기의 뒤통수에도 구멍이 하나 있었는데, 어떤 공격이 머리를 꿰뚫은 것이 분명했다. 신혼도 갈가리 부서졌으며, 이미 숨은 완전히 끊어진 상태였다.

“네가 용녀 아기를 죽였느냐?”

작은 곰 요괴는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길로 심협을 노려보았다.

조음동 안에는 작은 곰 요괴와 용녀 아기, 그리고 오른쪽 통로 끝의 보물을 지키는 자까지 세 사람이 전부였다. 그들은 오랜 세월 함께 지내면서 정이 깊었고, 특히 작은 곰 요괴는 용녀 아기에게 한 가닥 연정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용녀 아기가 지금 시체가 되었으니, 작은 곰 요괴의 분노는 하늘을 뒤엎을 정도였다.

“아닙니다. 저는 자금령만 가져왔을 뿐, 결코 그녀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은 십중팔구 위청과 류청의 손에 죽었을 것입니다.”

심협은 당연히 부인했다. 용녀 아기는 정신부에 속박당했지만, 그녀의 실력이라면 금세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보아하니 그녀는 심협을 찾아 결판을 내려고 쫓아 나왔다가 이곳에서 위청과 류청을 만나 죽임을 당한 듯했다.

그는 이 용녀에게 호감은 없었지만, 이렇게 죽어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한편, 작은 곰 요괴는 심협의 말에 분노를 조금 억누르더니 흥 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용녀 아기의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 뭔가 중얼중얼 읊조리기 시작했다.

한 줄기 하얀 빛이 작은 곰 요괴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와 용녀 아기의 몸속으로 들어가 빠르게 한 바퀴를 돌고는 다시 그의 손가락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리고 빙그르르 한 바퀴 회전하더니 환하고 하얀 빛 덩어리가 되었다.

‘아니! 이 작은 곰 요괴가 어떻게 무저동(無底洞)의 명혼주(明魂呪)를……?’

천책 공간에서 원구가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명혼주? 그건 어떤 비술이오? 무저동은 또 어떤 곳이고?’

심협이 물었다.

‘무저동은 서우하주의 신비한 문파이온데, 제자들이 세간에 나오는 일이 드물어 아는 사람도 적지요. 저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무저동의 도법(道法)은 정묘해 결코 보타산에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신혼에 관한 법술에 정통한데, 명혼주가 그중 하나이지요. 시체에 남은 잔혼을 살필 수 있고, 그가 죽기 전 뇌리에 가장 깊게 박힌 기억을 보여줍니다. 살해당한 사람은 주로 살인범의 모습을 기억하게 마련이지요.’

‘그런 비술도 있단 말이오?’

심협은 깜짝 놀라는 동시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곰 요괴가 이 비술로 용녀 아기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면 자신의 혐의도 풀릴 터였다.

그 하얀 빛 덩어리가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흐릿한 그림자들이 그 속에 끊임없이 스쳐 지났다. 그리고 몇 호흡 뒤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는데, 놀랍게도 심협의 모습이었다.

이에 심협은 멍하니 넋이 나갔다.

“역시 너였구나!”

작은 곰 요괴는 벌떡 일어나 섬뜩한 살기를 번득였다. 순식간에 주위의 온도가 뚝 떨어졌다.

“귀하가 시전한 것은 명혼주이지요? 그 법술에 대해 들어본 적 있습니다. 죽은 이의 잔혼을 살펴볼 수 있고, 죽기 전 뇌리에 가장 깊이 박힌 기억을 찾아낼 수 있다지요? 허나 심모는 이 여인을 결코 죽인 것이 아님을 심마(心魔)로써 맹세할 수 있습니다!”

심협은 작은 곰 요괴의 시선을 담담히 받아내며 정색하고 말했다.

‘원구,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어찌 살인범이 아닌 나의 모습이 나타난단 말이오!’

동시에 그는 심신으로 원구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게…… 보통은 살인범이 나오는데…… 이 용녀 아기가 심 도우를 몹시도 미워했나봅니다. 만약 그녀가 마지막에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고 죽어서 살인범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명혼주가 도우의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도 있지요.’

원구는 잠깐 주저하더니 재빨리 말했다.

“인간족은 늘 교활하고 간사하지. 내가 그런 맹세 따위를 믿을 줄 아느냐!”

작은 곰 요괴는 눈에서 광체를 내뿜었고, 몸에서는 검은 빛을 번쩍이는 것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다.

“제가 알기로 명혼주는 망자의 생전에 뇌리에 가장 깊이 박힌 기억을 찾아낼 것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범인이리란 법은 없지요. 제가 자금령을 가지러 갔을 때 어째서인지 용녀 아기는 저를 이상하리만치 미워했습니다. 저는 어쩔 도리 없이 수완을 부려 그녀를 속박한 후, 억지로 금제를 깨고 자금령을 가져갔지요. 만약 범인이 기습을 해 그녀가 상대를 보지 못했다면 당연히 그 모습을 기억할 수 없을 테지요.”

심협은 자금령까지 가진 터라 작은 곰 요괴가 두렵지는 않았지만, 그와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해명하려 했다.

작은 곰 요괴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눈빛에서는 살기가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심협을 빤히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쿠르릉!

오른편 깊숙한 곳에서 굉음이 울렸고, 대전도 따라서 진동했다. 그쪽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저 안에서 분명 흑곰 요괴 선배님과 두 진선기 요물이 싸우고 있을 겁니다. 어서 가서 그분을 도와야겠습니다! 용녀 아기의 일은 그 후에 다시 조사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시신의 상처에서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을 테니 자세히 살펴본다면 분명 범인을 찾아낼 수 있겠지요!”

심협은 담담하게 말하고는 결인하여 자금령을 작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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