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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23화 (523/1,214)
  • 523화. 또 하나의 금제

    아홉 개의 침이 몸속에 박히자 용녀 아기의 법력 파동이 모두 사라지면서 그녀는 털썩 나동그라져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심 도우, 대단한 신통력이십니다. 용녀 아기는 물 속성 신통에 있어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는데, 손바닥 뒤집듯 그녀를 항복시키셨으니 말입니다. 전에 원구가 졌던 것이 억울하지 않은 듯하군요.’

    천책 안에서 원구는 동공이 확 움츠러들어 탄식했으나, 심협은 대꾸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강력한 보물이 많았고 전투 경험도 풍부해 출규기 수사 중에는 가히 적수가 없다고 할 만했다.

    용녀 아기는 제압당했지만 여전히 분노에 찬 눈으로 심협을 노려보았다.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용녀께서는 도대체 왜 저를 공격하신 겁니까? 저와의 사이에 큰 원한도 없지 않습니까?”

    심협이 입을 열고 물었다.

    “죽이려면 죽일 것이지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

    용녀 아기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뀔 뿐, 여전히 해명하지 않았다.

    이 여인은 정말이지 종잡을 수 없었다. 원구가 말한 대로 천지분간을 못하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그 여인과 더 말을 섞기 싫어서 소매를 떨쳐 푸른빛으로 그녀를 감싸 멀리 보내버렸다.

    이어서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즉시 분홍빛 연꽃 앞으로 날아 내려와 소매를 털었다.

    한 줄기 푸른빛이 날아와 분홍빛 연꽃을 감싸고 안으로 스며들었지만, 연꽃 안에는 강력한 금제가 담겨 있어서 푸른빛을 가볍게 막아냈다.

    심협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구부려 연꽃을 가리켰다. 그러자 용각단추가 부채꼴 모양의 금빛으로 변해 분홍빛 연꽃에 거세게 내리꽂혔다.

    쿵!

    둔탁한 소리가 울리면서 연꽃 위에 금빛이 한 층 떠올라 용각단추를 가뿐하게 튕겨냈고, 심지어 연꽃은 가벼운 떨림조차 없었다

    “그 금제는 본문의 장문께서 직접 설치하신 것이다. 그녀는 이미 진선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주제넘게 뚫으려 굴지 마라. 하하하!”

    멀리 있던 용녀 아기가 조롱했으나, 심협은 이에 신경 쓰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손을 뒤집어 현황일기곤을 꺼내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64줄기 곤영이 나타나 분홍 연꽃을 감싸고 세게 비틀어 짰다. 숨이 막힐 듯한 거대한 힘에 허공도 연이어 떨렸다.

    분홍 연꽃 위의 금빛이 순간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발천난봉의 영향으로 주위 수십 장에 이르는 땅바닥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갈라지며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이 구덩이에서부터 균열이 순식간에 골짜기 전체로 쭉 뻗어나갔고, 골짜기 양옆의 산봉우리들이 크게 흔들리면서 바위가 굴러 떨어졌다. 심지어 봉우리가 그대로 절반이나 무너졌다.

    이 모습을 본 용녀 아기의 눈에 마침내 두려운 빛이 스쳤다.

    심협은 분홍빛 연꽃만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위의 금빛은 한 차례 번쩍이더니 차츰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아주 질긴 금제로군요. 제게 맡기시지요.’

    천책 공간 속에서 원구가 흥분한 표정으로 소매를 휘두르자 잿빛 구름 두 줄기가 벌떼처럼 몰려나왔다. 바로 서원고였다.

    심협이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손바닥에 금빛이 스치더니 서원고 떼가 나타나 분홍빛 연꽃을 감쌌다. 이어 고충들은 분홍빛 연꽃 위에 내려앉자마자 잿빛 연기로 변하더니 연꽃의 금제 속으로 우르르 녹아들어갔다. 금제에는 순간 점점이 회색빛이 떠올랐고, 금빛도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전의 반구형 금제와 달리 이 강력한 금빛 금제는 몇 호흡 사이에 무사했다.

    ‘서원고는 금제를 푸는 데 탁월하긴 하지만, 효과가 너무 느리지 않소?’

    심협은 신식으로 원구에게 물었다.

    ‘마음 놓으십시오. 서원고의 본질은 원기를 집어삼키는 부패한 기운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태곳적 물건에서 추출해낸 것으로, 모든 영력을 부식시킬 수 있지요. 영력으로 만들어진 금제이기만 하면 뭐든 뚫을 수 있습니다. 저 금제도 예외는 아니나, 좀 더 많은 고충이 필요할 뿐입니다.’

    원구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 그대가 지닌 서원고의 수량은 충분하오?’

    ‘그걸 노리고 그 요물들이 저를 끌어들였으니 당연히 충분한 고충을 준비해두었지요!’

    원구는 그렇게 답하고는 다시 서원고 한 무리를 풀었다.

    심협은 그제야 안심하고는 이 서원고 무리를 천책 공간에서 풀어놓았다.

    꼬리에 꼬리를 문 서원고들이 연꽃의 금제를 뚫고 들어가자, 과연 원구의 말대로 분홍 연꽃 위의 금빛 금제가 빠른 속도로 희미해졌다.

    반각쯤 지나자 금빛 금제도 반절쯤 얇아졌다.

    심협은 현황일기곤을 꺼내 곧장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64줄기 곤영이 다시 분홍빛 연꽃을 뒤덮고 비틀어 짜자 연꽃 위에 남은 금빛 금제가 미친 듯이 떨리며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균열에서 눈부신 금색 빛줄기들이 뿜어져 나와 빠르게 퍼져 나가더니 곧 분홍빛 연꽃 전체로 퍼졌다.

    펑!

    폭발음과 함께 금빛 금제가 완전히 부서졌다.

    “어찌 이럴 수가!”

    용녀 아기는 멀리서 이 장면을 보고는 믿기지 않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반면 심협은 기쁜 얼굴로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그러자 푸른빛이 뿜어져 나가 분홍 연꽃을 감쌌다.

    반쯤 피어 있던 연꽃은 순간 빠르게 피어났고, 연꽃 한가운데 무언가가 드러났는데, 자세히 보니 자금색 고리였다. 고리 위에는 금색 방울 세 개가 달려 있었고, 방울 안쪽은 마개로 막혀 있었으며, 몸통 전체에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어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건 무슨 법보지?”

    심협은 고개를 갸웃하며 손을 흔들어 자줏빛 고리를 손에 넣고는 이리저리 뒤집어가며 살펴보았다. 고리 안쪽에 고대 전서체로 세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자금령(紫金鈴)?”

    심협은 고전문(古篆文)에 정통하여 글자를 쉽게 읽어냈지만,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원구, 이 보물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소?’

    심협이 전음으로 원구에게 물었다.

    ‘들어본 적 없습니다.’

    심협은 실망하지 않았다. 어쨌든 분명 귀중한 보물일 터였다.

    허나 구구통보결을 운공해 제련해 봐도 자금령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고, 법력을 주입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정교금이 전수해준 제련법을 써봤지만, 자금령은 여전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보물의 힘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꿈속에 있을 때 원 도우가 전수해준 선천연보결은 하늘이 내린 영보(靈寶)를 제련할 수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자금령에도 효과가 있을까?’

    그는 선천연보결을 떠올리며 결인하며 법술을 시전했다.

    이내 자금령에 자금색 빛이 떠오르더니 곧 그와 정신적 연결고리가 생겨났다.

    “효과가 있어!”

    심협은 기뻐서 펄쩍 뛰고 싶은 기분이었다.

    약간 제련한 것만으로도 자금령의 신통력을 알 수 있었다. 이 세 개의 방울 중 하나는 화령(火鈴)으로, 화염을 뿜어내 적을 다치게 할 수 있다. 다른 하나인 연령(烟鈴)은 신령한 연기를 내뿜을 수 있으며, 마지막 풍령(風鈴)은 누런색 모래바람을 내뿜는다.

    이 불, 연기, 모래바람의 위력이 대체 어떤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약하지는 않을 듯했다.

    그는 더 생각할 겨를이 없어 자금령을 품에 쑤셔 넣고는 계속 제련하며 즉시 밖으로 날아갔다.

    용녀 아기 곁을 지날 때, 심협은 손짓으로 쇄원침들을 불러들였다. 그러자 용녀 아기가 지녔던 법력 파동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그녀는 낯빛이 풀렸지만 심협을 바라보는 눈에 담긴 분노는 더욱 격렬해졌고, 마치 그를 한 입에 집어삼키지 못하는 것이 한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귀하의 신통력이면 정신부는 금방 풀 수 있을 겁니다.”

    심협은 용녀 아기를 신경도 쓰지 않고 통로를 따라 돌아갔다.

    몇 호흡 만에 이전의 대전으로 돌아온 그는 섭채주가 들어간 중간 통로로 향하려다가 밖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멈칫했다. 대청 바닥도 흔들렸다. 누군가가 금제를 뚫고 나온 듯했는데,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심협이 긴장한 얼굴로 손을 휘두르자 귀장이 나타났다.

    “가서 백소천을 도와주거라. 이 은신부를 가져가서 혹여 적이 너무 강하거든 목숨을 보전토록 해라.”

    심협은 낮은 목소리로 분부한 뒤 은신부 한 장을 건넸다.

    “예!”

    귀장은 짧게 대답한 뒤 검은 그림자가 되어 가장 뒤쪽 통로로 날아갔다.

    심협도 붉은 그림자가 되어 중간 통로를 향해 날아갔고, 몇 호흡 만에 끝에 다다랐다. 앞에는 빛으로 된 하얀 문이 나타났다.

    그가 멈추지 않고 곧장 날아 들어가자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무성한 숲이 앞에 펼쳐졌다. 숲속의 나무들은 이상하리만치 크고 거대해서 어떤 나무든 높이가 수십 장에 달했고, 심지어 작은 동산보다 더 높은 것도 있었다.

    심협이 하늘을 날며 주위를 둘러보니 이 공간은 좀 전에 그가 갔던 골짜기보다 훨씬 넓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시야 끝까지 쭉 늘어서 있어서 끄트머리가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심협은 숲속 깊숙한 곳을 향해 날았다.

    한데 숲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고 흙먼지가 뒤섞인 거대한 폭풍이 성난 파도처럼 돌진하여 커다란 나무들을 우르르 무너뜨렸다.

    그가 즉시 속도를 높여 먼지 폭풍을 가로지르니 탁 트인 공터가 나타났다.

    공터에는 높이가 족히 30여 장쯤 되는 거대한 제단이 있었는데, 섭채주가 그곳에서 제단 상공을 날아다니며 검은 그림자와 한창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검은 그림자는 곰 요괴로, 몸에는 검은 갑옷을 입었고 손에는 검붉은 장창을 들고 있었다. 호법 흑곰 요괴와 닮았지만, 몸집은 훨씬 작았고 경지는 대승 초기였다.

    섭채주는 경지가 출규기 정점에 도달한 상태로, 대승기와는 한 끗 차이였다. 게다가 더없이 예리한 법보까지 더해지자 약간 열세에 처하긴 했어도 큰 위기라고 볼 수는 없었다.

    한편, 아래쪽 제단 꼭대기에는 금색 빛 덮개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안의 돌단 위에는 새파란 버드나무 가지 하나가 비스듬히 꽂힌 채 빛을 반짝였다.

    ‘이 버드나무 가지가 이곳의 보물인가?’

    그러나 심협은 보물이 아니라 하늘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는 두 사람 쪽으로 향했다.

    그가 두 소매를 떨치자 순양검배와 용각단추가 긴 무지개를 그리며 작은 곰 요괴의 등으로 곧장 날아갔다.

    곰 요괴는 전력으로 섭채주와 맞붙어 싸우던 참이라 뒤늦게 이를 알아채고는 화들짝 놀랐다.

    “일광화(日光華)!”

    그가 낮게 고함을 지르자 손에 든 장창이 태양처럼 눈부신 금빛을 거세게 발하면서 격렬하게 떨렸고, 윙윙거리며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다음 순간, 금빛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장창이 순양검배와 용각단추 앞에 나타났다. 창의 몸체를 감싼 금빛은 길이는 10여 장에 너비가 문짝만 한 검기로 변해 끝없는 예기(銳氣)를 뿜어내며 모든 것을 꿰뚫을 듯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순양검배와 용각단추도 빨랐지만, 이 장창의 검기에 비하면 달팽이 같았다.

    꽈르릉!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렸고, 순양검배와 용각단추가 튕겨 돌아왔다. 두 법기는 영성에 손상을 입은 것처럼 표면의 영광(靈光)이 떨렸고, 조금 어두워졌다.

    그러나 장창 또한 금빛 검기가 산산조각 난 채로 튕겨나갔다.

    심협은 손을 흔들어 두 보물을 불러들이고는 우뚝 멈춰 섰다. 장창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깊은 두려움이 스쳤다.

    조금 전 작은 곰 요괴가 시전한 신통력은 실로 놀라워 가히 순간이동과도 같은 속도에 기세 역시 사나웠다. 그야말로 앞을 막아서는 자는 누구든 죽일 기세였다. 만약 작은 곰 요괴가 가까이 다가와 자신을 노리고 공격했더라면 십중팔구 막아내지 못하고 머리가 날아갔을 터였다.

    ‘저것은 보타산의 일광화 신통력입니다. 쇠 속성 법보와 법기를 가공할 만한 속도로 움직이지요. 허나 저 법술은 공격 범위가 넓지 않으니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괜찮을 것입니다.’

    원구의 말에 심협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 곧장 무언가를 꺼냈다. 자금령이었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겠지.”

    차갑게 웃으며 중얼거린 그는 화령의 방울 마개를 뽑아버리고는 힘껏 흔들었다.

    딸랑! 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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