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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20화 (520/1,214)

520화. 선행을 먹다.

조비극과 흡혈귀의 법력이 법진을 통해 모여들자 심협의 법력이 순간 몇 배로 강해져 경맥까지 가득 부풀어 오른 느낌이 들었다.

그는 손을 뒤집어 현황일기곤을 꺼낸 뒤 온 힘을 다해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64줄기 곤봉 그림자가 나타나자 허공이 진동하며 주위의 천지영기가 끓어오르듯 용솟음쳤다.

“공격!”

심협이 크게 외치자 64줄기 곤영이 푸른 빛 장막을 거세게 내리쳤다.

푸른 빛 장막은 격렬하게 떨리면서 안으로 깊게 파였다. 빛 장막 근처의 땅도 터져 갈라졌고, 연못 안의 물은 그대로 폭발하면서 그 안에서 자라는 영련(靈蓮)들이 모조리 망가졌다.

심협의 발천난봉이 떨어져 내리면서 빛 장막 위의 푸른 빛이 빠르게 흩어져 눈 깜짝할 새 9할 정도가 사라졌다. 그러나 발천난봉의 힘도 바닥나버렸다. 빛 장막 위의 영문(靈紋)들이 번쩍이더니 흩어졌던 푸른 빛이 빠르게 복원되어 금세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움푹 꺼졌던 구역도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이에 심협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당장 자신이 사용 가능한 가장 강력한 공격 중 하나였건만, 여전히 이 금제를 뚫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홍련업화는 생령에게 사용할 때는 더없이 강하지만, 금제를 뚫는 데에는 별다른 쓸모가 없다.

무엇보다도 섭채주가 어찌 되었을지 걱정됐다. 만약 위청과 류청이 그녀와 같은 곳으로 보내졌다면 큰일이 아닌가!

그는 마음이 초조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주인님, 이곳에 들어선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상황일 것입니다. 십중팔구 모두 금제에 갇혔을 터이니 섭 소저를 너무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조비극은 건곤대 속에서도 바깥 상황을 엿볼 수 있었기에 심협의 심정을 헤아리고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말이 일리가 있구나.”

심협은 한층 안도가 되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조음동은 관세음보살의 도장(道場)이니 무단으로 침입한 자를 가두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섭채주는 가장 먼저 빨려 들어갔고, 위청과 류청은 두 번째, 그는 세 번째인 셈이다. 자신이 홀로 갇힌 것을 보면 그들도 함께 갇히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저희에게 이 금제를 풀 가망이 없지는 않습니다.”

조비극이 말을 덧붙였다.

“오, 무슨 방도가 있느냐? 말해보아라.”

심협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저희 힘으로 이 금제를 풀 수는 없지만, 거의 풀기 직전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주인님께서는 출규 중기를 눈앞에 두셨고 선행을 손에 넣으셨으니, 그 힘으로 경지의 난관을 단숨에 돌파하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더욱이 이곳은 영기가 짙고 위험도 없는 곳이니 더없이 훌륭한 수련장소인 듯합니다.”

조비극의 말에 심협의 눈이 희미하게 빛났다.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간 터라 그동안 선행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선행은 선계의 물건이니 분명 효과가 팔각연엽보다 월등할 터였다. 팔각연엽으로도 수련 경지가 급성장했으니 선행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만약 수련 경지가 올라가지 못하더라도 수명이 늘어나기만 한다면 꿈속의 경지를 소환하여 단숨에 이 금제를 풀 수 있을 터였다.

심협은 유심한 눈으로 조비극을 바라보았다. 임달의 잔혼이 지닌 힘을 흡수한 뒤로 조비극은 경지가 크게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머리도 훨씬 비상해졌다.

심협은 연못 위에 가부좌를 틀고는 소리 없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흡혈귀, 너는 연못의 저쪽을 지켜라. 이 금제 안에는 위험이 없지만 방심할 수는 없으니.”

조비극의 명에 흡혈귀는 사나운 눈빛을 번뜩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귀장의 지시에 불만이 많은 것이 분명했다.

“왜, 한판 붙고 싶은 게냐? 나는 망령이니 너희 흡혈귀 신통력은 내게 소용이 없을 텐데?”

조비극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흡혈귀는 그를 한참이나 뚫어지게 노려보더니 이내 몸을 날려 연못 반대편으로 날아가 섰다.

* * *

연못 밑바닥. 심협은 조용히 공법을 운공했다. 그러자 몸에 푸른 빛이 번득이면서 주위의 연못물이 1장 밖으로 차단되었다.

조비극의 말처럼 조음동 안의 천지영기는 유달리 왕성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법력은 최상의 상태로 회복되었다. 이어서 그는 선행을 꺼내 고개를 들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선행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아서 맑고 서늘한 기류로 변해 그의 온몸 구석구석으로 녹아들었다.

심협은 한순간 온몸이 편안해지면서 3만6천 개의 모공이 모두 활짝 열리는 듯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낮게 신음했다.

그러나 그는 이 쾌감에 빠져들지 않고 곧 냉정을 되찾고는 운기조식하며 선행의 힘을 정제했다.

체내 법력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작은 물결에 불과했지만, 곧 막을 수 없는 기세의 성난 파도를 이루며 출규기 난관을 향해 돌진했다.

* * *

어느덧 한나절이 지났다.

그 동안 조비극과 흡혈귀는 조금도 태만하지 않고 연못가를 지켰다.

그때, 문득 연못 밑바닥에서 맑고 긴 소리가 들려오더니, 거대한 물결이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수차례 하늘까지 솟구쳤다.

연못물이 끓어오르듯 용솟음치고 굵직한 물기둥들이 불쑥 솟아올라 용이 헤엄치듯 사방으로 돌진해 둔탁한 굉음을 울리면서 푸른 빛 장막 위에 부딪혔다.

이 물기둥들에는 제법 큰 힘이 담겨 있어서 주위의 푸른 빛 장막도 부들부들 떨렸다.

조비극과 흡혈귀는 재빨리 이 물기둥들을 피했는데, 기쁜 표정이었다. 그들은 심협과 심신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심협이 이미 난관을 돌파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잠시 후, 들끓던 연못이 잠잠해졌고, 물속에서 푸른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바로 심협이었다.

그는 예전과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몸을 감도는 기운은 사뭇 달라서 이전보다 두 배는 강해진 상태였다.

“주인님, 출규 중기에 오르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조비극이 날아와 몸을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심협은 아직도 꿈틀거리는 법력을 가다듬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배로 늘어난 체내 법력을 느끼며 그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고작 한나절 만에 출규 중기까지 밀어올릴 정도로 선행의 효과가 대단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더욱이 섭채주와 백소천이 걱정되어 경지를 돌파하자마자 수련을 멈추었기에, 지금 그의 체내에는 선행의 힘이 적잖이 저장되어 있는 상태였다.

한편, 그의 원천강의 말처럼 선행으로 인해 본명원기가 상당부분 보충되면서 수명도 150년 정도 늘어났다. 앞으로 저장된 선행의 힘을 정제하면 더욱 늘어날 터였다.

어느새 다가온 흡혈귀와 조비극을 바라보며 심협은 근엄하게 말했다.

“우선 금제를 풀어야 한다.”

하얀 빛 네 줄기가 심협의 소매 사이로 뿜어져 나와 각각 흡혈귀와 조비극의 손에 떨어졌다. 바로 운수진의 진기였다.

두 사람은 두말없이 법진을 작동시켰고, 하얀 빛 고리가 금세 만들어져 세 사람을 뒤덮었다.

심협이 온 힘을 다해 공법을 운공하자 몸에서 작은 태양처럼 눈부신 빛이 폭발했다.

그는 지금 경지가 크게 오른 데다 운수진의 힘까지 빌리자 법력이 순식간에 출규기 정점에 올랐다.

보통의 수사라면 법력이 이렇게 단숨에 오르면 다루기 어렵겠지만, 심협은 꿈속 경험 덕분에 심지어 진선기의 법력이라 해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손을 뒤집어 현황일기곤을 꺼내 가볍게 휘둘렀다.

금빛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잿빛 구름이 그의 손에서 날아갔다. 그 안에는 깨알만 한 회색 벌레들이 무수히 많아, 눈앞의 푸른 빛 장막을 뒤덮더니 빠르게 파고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잿빛 안개로 변해 원래 투명하고 밝았던 빛 장막을 금세 혼탁하고 어둡게 만들었다. 장막 안의 푸른 빛은 빠르게 약해졌다.

심협의 얼굴에 순간 희색이 드러났다. 이 작은 잿빛 벌레들은 서원고로, 앞서 원구가 말했던 것처럼 금제를 푸는 데 효력이 뛰어났던 것이다.

‘보아하니 처음부터 이 고충을 동원했더라면 진즉 나갈 수 있었을 터인데, 내가 채주를 걱정하느라 백치가 된 모양이구나.’

그런 자책이 들었으나, 얼른 마음을 다잡고 전력으로 64줄기 곤영을 발산했다. 곤영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또렷했고, 그 위를 휘감은 거대한 힘도 적잖이 강해진 상태였다.

더욱 강렬해진 현황일기곤의 노란 빛도 이 곤영들과 함께 심협의 몸을 감싸고 회전하면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무시무시한 힘이 주위로 퍼져 나가면서 연못의 물줄기가 갑자기 폭발했다. 연꽃들과 연못 기슭의 흙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노란 소용돌이에 잡아먹혔고, 허공도 크게 진동했다.

소용돌이의 중심은 심협이 손에 든 현황일기곤이었다. 현황일기곤은 눈부신 노란 빛을 피워내며 앞으로 날아가 푸른 빛 장막을 때렸다.

노란 소용돌이에 담긴 거대한 힘이 푸른 빛 장막 위로 퍼부어졌다.

꽈르릉! 쾅!

빛 장막은 심하게 흔들리면서도 잠시 버티더니, 끝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

소용돌이는 이후로도 걷잡을 수 없는 기세로 휘몰아쳤고, 지나간 곳의 모든 것을 갈가리 찢어발기며 수십 장 길이의 깊은 구덩이를 남기고서야 멈췄다.

“드디어 나왔다.”

심협은 가볍게 숨을 내뱉고 현황일기곤을 거둔 뒤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는 곧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위의 풍경은 크게 변한 상태였다. 앞서 금제 안에서 보았던 탁 트인 황야가 아니라, 높고 커다란 수양버들이 무성하게 자라 푸른 잎을 나무 그늘처럼 드리우고 있었다.

버드나무 숲 바깥 멀지 않은 곳에는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지붕 처마가 우뚝 솟아 마치 궁전 같았다.

‘그 금제에 환술 효과까지 있었던 모양이군.’

심협은 길게 숨을 내쉬고는 결인하여 운수진을 해제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진기들이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모두 고생했다. 일단 돌아가거라.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내 너희에게 보상을 해주마.”

심협이 통령 문을 열자 흡혈귀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물구멍으로 사라졌고, 조비극은 건곤대로 날아 들어갔다.

심협은 몸을 추스른 뒤 금세 버드나무 숲을 빠져나가 건물로 향했다.

이내 탁 트인 광장이 나타났는데, 그 왼쪽에는 거대한 연못이 펼쳐져 있었고, 못 안에는 여러 빛깔의 영련(靈蓮)이 자라고 있었다.

연못 속에는 알록달록한 반구형 금제 일곱 개가 떠 있었는데, 방금 전까지 갇혀 있던 것과 흡사했다. 반구형 금제 위에는 빛이 감돌았지만, 이 금제들 모두 쉬지 않고 떨리는 것이 안에 사람이 갇혀 있는 게 분명했다.

광장의 오른쪽에는 유달리 높고 거대한 하얀 궁전이 우뚝 서 있었다. 높이는 무려 백 장이나 되었고, 전체가 백옥으로 지어져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아까 그가 보았던 그 건물이었다.

“이 7도 금제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인가?”

심협은 멀리 있는 하얀 궁전을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 앞에 있는 일곱 개의 구형 금제를 바라보았다.

이 금제에는 강한 것도 있고 약한 것도 있었다. 그중 세 개는 거의 진선기 등급에 도달해 있었고, 그 아래 두 개는 파동이 조금 약한 것이 대승기 등급이었으며, 마지막 두 개의 금제는 출규기 수준이었다.

‘나를 가둔 금제 또한 출규기 등급이었지. 설마…… 조음동이 우리를 빨아들인 뒤 각자의 수련 경지에 따라 서로 다른 강도의 금제를 설치해놓은 것인가? 그렇다면…… 이것은 일종의 시험인 걸까?’

심협은 퍼뜩 떠오른 생각에 눈을 번득이며 금제들을 바라보았다.

진선기 3도 금제는 너무 강력해 그의 유명귀안으로는 아예 꿰뚫어볼 수가 없었다. 대승기 2도 금제는 약간의 그림자만 어렴풋이 보였지만, 마지막 출규기 2도 금제는 내부를 엿볼 수 있었다.

두 줄기 흐릿한 그림자가 심협의 눈에 나타났는데, 아주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백소천과 섭채주일 터였다.

두 사람 모두 힘껏 금제를 공격했지만, 이 금제는 그들의 실력을 훨씬 뛰어넘어 반구형 빛 장막이 쉬지 않고 떨리긴 했지만 깨질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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