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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19화 (519/1,214)

519화. 동굴 속

“답하기 싫은 모양이군.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겠소. 귀하는 원구의 시신을 차지하고 싶어 하지. 그렇지 않소?”

심협은 시원스레 웃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다, 당신……?”

검은 벌레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더니 얼굴 가득 놀란 얼굴로 심협을 쳐다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본명고와 숙주 본체의 관계는 상당히 미묘한데, 본명고는 숙주의 분신인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고사가 죽은 뒤에도 시신이 너무 심하게 훼손되지만 않았다면 본명고는 시신을 차지하고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고사가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다만 이 일은 고사들 사이에서도 지극히 은밀하여 아는 자가 매우 적건만, 저자가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내 우연히 약선집이라는 것을 얻었는데, 거기서 본명고에 대한 기록을 본 적이 있지.”

심협은 이 본명고에게 물을 것들이 더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숨기지 않았다.

“약선집! 당신한테 약선집이 있다고?”

검은 벌레가 갑자기 흥분해 외쳤다.

“오, 그대도 약선집을 아시오?”

심협은 뜻밖이라는 듯 물었는데, 실로 뜻밖이긴 했다.

“당연히 알지요! 약선집은 우리 고사 일맥의 성전(聖典)입니다! 천여 년 전 약선종(藥仙宗)이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졌지요. 제가 신목림(神木林)에 들어가 그 요족들과 손을 잡은 것도 그 책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검은 벌레의 말투에는 한 가닥 설렘이 배어 있었다.

심협은 자신이 우연히 얻은 약선집에 이런 대단한 내력이 숨겨져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터라 내심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그 서책은 내 수중에 있소. 허나 한 권 뿐이고 온전치도 않소. 그 안에는 수많은 연고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가장 높은 등급은 8품고충(八品蠱蟲)이더군.”

“8품! 그것은 이미 상(上)3품 고충으로 진선, 심지어 태을 경지의 선인에게도 유용합니다!”

검은 벌레는 그 말을 듣고 더욱 흥분했다.

“내 그대가 원구의 시신을 차지하게 해줄 수 있소. 나중에 그 약선집을 그대에게 보여줄 수도 있지.”

심협은 별것 아니라는 듯 툭 내던졌으나, 검은 벌레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가까스로 냉정을 되찾고 물었다.

“요족들의 일 외에 또 무얼 원하십니까?”

“나는 그대 몸속에 계약 표식을 하나 심을 것이오. 그대가 원구의 시신을 차지한 뒤, 백 년간 나를 위해 일하면 그때 자유로이 풀어주겠소.”

심협이 말했다.

“백 년? 너무 깁니다. 원구의 시신을 차지하면 저의 경지는 더 이상 조금도 발전할 수가 없는데, 원구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큰 화를 당하여 백 년이나 살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검은 벌레가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50년도 괜찮소. 허나 그 아래라면 나도 필요 없소.”

심협이 인심 쓰듯 말했다. 사실 꿈속의 경험이 뒷받침된 터라 그의 경지는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니 20년 뒤에는 상대가 그다지 필요치 않을 듯했다.

“좋습니다. 딱 정한 겁니다!”

검은 벌레는 눈빛을 반짝이더니 곧 결연한 모습으로 내뱉었다.

심협은 내심 기뻐하며 검은 벌레 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가닥가닥 검은 빛줄기들이 작은 벌레의 몸속으로 쉬지 않고 녹아들었다.

검은 벌레의 눈에는 고통이 배어나왔고, 몸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잠시 후, 심협은 법술 시전을 마치고 손가락을 거둬들이는 동시에 천책 공간 속 속박의 힘을 해제했다.

그가 방금 작은 벌레에게 심은 계약 표식은 연신단의 비술이다. 통령 표기보다는 강력하지 않지만, 검은 벌레의 체내 신혼의 힘이 강하지 않으니 이 계약 표식으로 충분히 묶어둘 수 있었다.

검은 벌레도 평정을 되찾고는 심협을 힐끔 쳐다본 뒤, 몸을 틀어 원구의 시신으로 날아가 미간으로 파고들었다.

원구의 시신에는 검은빛이 한 층 떠올랐는데, 처음에는 희미하더니 곧 환하게 밝아졌다.

이를 본 심협이 다시 손짓하자 순순한 천지영기가 밖에서 흘러들어와 원구의 시신에 주입되었다.

원구의 몸 표면에 검은 빛이 한순간 세차게 뿜어져 나오면서 그의 텅 비어 있던 두 눈에 녹색 빛이 떠올랐고, 피와 살도 빠르게 자라났다. 몇 호흡 뒤에는 희미한 녹색이 감도는 두 개의 눈알이 다시 생겨나 있었다.

원구는 손발을 움직였고, 몸에서는 생명체의 기운이 차츰 다시 뿜어져 나왔다.

주위에 넘쳐나던 고충들은 온갖 강줄기가 바다로 되돌아가듯 다시 그의 몸속으로 돌아갔다.

이를 본 심협도 본명고의 현묘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순수한 천지영기를 다시금 끌어와 원구의 몸속에 주입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요족들에 관해서 제가 아는 것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저는 일개 산수로, 요족들에게 포섭을 당해 오늘 보타산 공격에 참여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 요족들의 목적은 잘 모르고요. 풍식 일행을 따라 이곳 자죽림에 온 이유는, 제가 기르는 서원고(噬元蠱)라는 고충이 금제를 푸는 데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원구는 한마디 감사를 표한 뒤 심협이 미처 물을 새도 없이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단숨에 쏟아냈다.

“그대는 여기서 몸을 잘 추스르시오. 그대가 나서야 할 때면 내 알아서 분부할 터이니.”

심협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한마디 남기고는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 물론 노란 반지 등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원구는 대승기 존재로, 지금은 본명고에 의해 되살아난 터라 실력이 조금 줄긴 했지만 여전히 우습게 볼 수는 없었다. 그러니 천책 공간에 남겨두는 편이 비교적 안전했다.

원구는 여러 가지 제약이 가해졌기에 감히 싫다고도 하지 못했다. 사실 원구의 몸을 얻은 것만으로도 무척 만족했기에, 우선은 눈을 감고 천지영기를 흡수해 몸속 상처를 치료하는 데 열중했다.

한편, 심협은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서서 원구가 얌전히 천책 공간에 머물러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두 눈을 뜨고는 가지고 나온 세 가지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우선 노란 반지를 손에 끼고 시험 삼아 법술을 살짝 시전해본 그는 저도 모르게 씩 웃었다.

이 노란 반지는 안에 20도 금제를 담은 법보로, 서려 있는 영력이 용각단추에 뒤처지지 않았다.

“훌륭해!”

그는 크게 기뻐하며 이 반지를 제련하면서 푸른 영패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법기는 아니었다. 한쪽에 커다란 나무 그림이 그려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신목림’이라는 세 글자가 크게 적혀 있는 평범한 영패였다.

‘신목림? 방금 원구가 그곳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보아하니 어느 문파의 이름인 모양이군.’

그 푸른 영패는 전체가 비취색으로, 특수한 목재를 이용해 만든 듯했다. 또한 매우 강렬한 생기를 품고 있었다.

그는 영패를 몇 번 앞뒤로 뒤집어 살피고는 일단 챙겨 넣은 뒤, 마지막으로 검은색 작은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이 주머니는 저물법기였는데, 신식으로 그 안을 살피자마자 심협은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다.

원구는 대승기 강자인 만큼 저물법기에는 온갖 보물이 있었다. 선옥만 해도 무려 10만 개에 달했고, 온갖 진귀한 재료와 단약, 법기가 수없이 많았다. 다만 더 이상 법보는 없었다.

심협은 하나하나 자세히 살필 겨를도 없이 신식으로 천책 속 원구와 소통하여 각 재료와 단약, 법기의 정보를 금방 알아냈다.

한데 그때, 저 앞에서 둔탁한 굉음이 연이어 들려오더니, 주위의 하얀 안개가 끓어오르듯 용솟음치고, 뿔뿔이 흩어지면서 시야가 단번에 확 넓어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심협은 안색이 굳어 재빨리 검은 주머니를 챙기고 둔지부의 효력을 다시 발휘하여 땅속으로 숨어들고는 굉음이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잠시 후, 굉음의 근원지에 도착한 심협은 그곳이 놀랍게도 조음동 입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위청과 류청은 그곳에 없었고, 오히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섭채주였다. 어째서인지 흑곰 요괴가 건넨 하얗고 작은 깃발은 빛을 피워내 조음동 대문에 드리운 금제 위로 주입하고 있었다.

조음동 문 위의 금제도 금빛을 피워내며 끊임없이 급하게 반짝이는 것이 서로 공명하는 듯했다.

섭채주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온힘을 다해 법술을 시전하여 하얀 깃발을 거둬들이려 했지만, 마치 돌문이 작은 깃발 위의 하얀 빛을 빨아들인 것처럼 전혀 거두어들일 수 없었다.

그때, 뒤편의 안개 속에서 두 차례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나며 류청과 위청이 달려들었다.

심협은 다급한 마음에 땅 위로 뛰쳐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조음동 위의 금빛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불어나더니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면서 금색 빛고리를 이루었고, 그 안에서 무수한 금빛이 용솟음치며 치지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엄청난 흡입력이 금색 빛고리에서 흘러나오자, 섭채주는 조금의 저항력도 없이 빨려 들어가 휙 하고 사라져버렸다.

막 다가온 류청과 위청은 놀란 표정으로 멈춰 서려 했지만, 금색 빛고리 안에서 새어나오는 흡입력은 너무나도 강력해 그들의 경지로도 잠깐 멈칫하고는 이내 빨려 들어갔다.

“누이!”

심협은 대경실색하여 길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땅속에서 튀어나와 금색 빛고리 안으로 뛰어들었다.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온몸이 거센 소용돌이에 떨어진 듯했고, 몸은 거대한 힘에 갈가리 찢겨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 잡아 찢는 힘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졌고, 몇 호흡 뒤 심협은 몸이 가벼워지더니 다음 순간 어느 수역에 세게 부딪혔다.

첨벙!

거대한 물보라가 일었다.

몸이 욱신거렸고 머릿속이 뒤엉켰지만, 심협은 이내 의식을 되찾고 법력을 운행하여 몸을 가누고는 다시 날아올랐다.

그곳은 어느 밝은 공간으로, 주위는 온통 환하게 밝았다.

사방은 연못 같았는데, 그 안에는 적, 녹, 백에 금색까지 연꽃이 가득 자라 있어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이 연꽃들은 모두 은은한 영기 파동을 뿜어내는 것이, 범상한 물건은 아니었다.

“여기가 어디지? 조음동 내부인가?”

심협이 주위를 둘러보며 피수결을 맺자 물기가 사라지며 순식간에 옷이 말랐다.

연못 주위는 시야 끝까지 뻗어 있는 탁 트인 황야로, 매우 황폐한 곳인 듯 건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는 비록 안개는 끼지 않았어도 여전히 양의미진환진의 효과가 남아 있어서, 허공에 보이지 않는 힘이 가득한 터라 신식은 조금도 몸을 떠날 수가 없었다.

심협은 섭채주가 걱정돼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한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연못 위를 벗어나자마자 그는 무언가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쿵!

“뭐야!”

심협은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눈앞의 허공에는 어새가 반구형 푸른 빛 장막이 한 겹 나타나 연못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금제!”

그는 실눈을 뜨고는 결인하여 앞을 가리켰다.

금빛 무지개 한 줄기가 그의 손을 떠나 눈 깜짝할 새에 수십 장 길이의 거대한 금빛 송곳 허상이 되어 푸른 빛 장막을 세게 찔렀다. 용각단추였다.

펑!

커다란 소리가 울리면서 거대한 송곳 허상이 순식간에 폭발하여 거대한 눈부신 빛으로 변해 반경 몇 장의 푸른 빛 장막을 모두 파묻었다. 이에 한순간 그 안의 상황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고, 주위의 빛 장막은 쉬지 않고 떨렸다.

이에 심협의 미간이 구겨졌다.

용솟음치던 금빛은 금세 사라졌고 용각단추는 푸른 빛 장막에 박혀 있었지만, 장막에는 균열 하나 없었다.

“참 튼튼한 금제로군!”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용각단추를 거두고 결인하여 통령술을 시전했다.

발아래 연못이 콸콸콸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물구멍이 하나 생겨났고, 그 안에서 흡혈귀가 튀어나왔다. 동시에 심협의 허리춤에서 검은 그림자가 번쩍 스치더니 귀장 조비극의 모습도 나타났다.

“나를 좀 도와다오.”

심협이 운수진의 진기를 꺼내자 순식간에 운수법진이 만들어지면서 하얀 빛이 세 사람을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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