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516화 (516/1,214)
  • 516화. 조음동(潮音洞)

    심협은 잠시 묵묵히 눈을 감고 있다가 유명귀안을 운공하여 눈동자에서 푸른 빛을 내쏘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안개가 자욱한 주위 대나무 숲에 희미한 하얀 자국들이 나타났는데, 가로세로로 엇갈려 있어서 몹시 난잡해 보이면서도 현묘함이 담겨 있었다.

    “심형, 언제 동술까지 익혔는가?”

    백소천이 놀라며 물었다.

    “그리 능통한 것은 아니오. 나의 동술은 환술을 꿰뚫어볼 수 있으니 나갈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소.”

    “그게 정말인가?”

    백소천은 크게 기뻐했다.

    그는 화생사를 대표하여 이번 선행대회에 참가했다. 그러니 보타산이 변고를 당했을 때 자기 홀로 몸을 피한다면 화생사의 명성에도 영향을 끼칠 터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라버니!”

    섭채주도 얼굴에 희색을 띠며 말했다.

    심협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에 푸른 빛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양의미진환진은 너무도 강력했고, 그의 유명귀안도 심오한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한 터라 가까스로 일부 흔적을 엿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 흔적만으로도 그는 적잖은 안내를 받을 수 있었고, 적어도 예전처럼 그리 마구잡이로 돌아다니지는 않게 됐다.

    심협은 주위를 잠시 살펴보다가 한쪽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섭채주와 백소천이 황급히 뒤따랐다.

    세 사람은 대나무 숲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더 이상 똑바로 전진하지 않고 좌우로 이리저리 움직였으며, 때로는 그 자리에서 빙빙 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한참을 걸은 뒤, 백소천과 섭채주는 주위의 대나무 숲에 꽤 많은 변화가 생긴 것을 알고는 기뻐했다. 대나무들이 듬성듬성해지면서 안개도 많이 옅어진 것이다.

    “정말 나왔네. 심형, 과연 대단하군.”

    백소천이 기쁜 듯 심협의 어깨를 툭 쳤다.

    “아닙니다. 우리는 자죽림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자죽림의 가장 깊은 곳에 온 것입니다!”

    그 순간, 섭채주의 낯빛이 차갑게 변했다.

    “뭐라고요!”

    백소천 역시 깜짝 놀라 섭채주의 시선을 따라갔다.

    앞의 대나무 숲은 더욱 듬성듬성해져서 하얀 안개 사이로 그리 높지 않은 산봉우리를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산봉우리 밑바닥에서 금빛이 비쳐 나오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의 동술은 양의미진환진의 흔적을 약간 엿볼 수만 있을 뿐이라 흔적을 따라서 전진하다보니 벗어나고 있는지 아니면 깊이 들어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심협이 어두워진 안색으로 말했다.

    섭채주는 말없이 산봉우리를 향해 걸었다. 심협과 백소천은 황급히 그 뒤를 따랐고, 두 사람은 곧 산봉우리의 전경을 또렷이 보게 되었다.

    이것은 높이가 백여 장에 달하는 야트막한 산으로, 마치 옥돌을 쌓아 만든 것처럼 전체가 비취색이었다. 이곳의 영기는 매우 왕성했고, 산에 자란 수많은 화초는 하나같이 고급 영재 같았다.

    “자뢰화(紫雷花)!”

    심협은 자줏빛 꽃을 보고 놀라서 외쳤다.

    그 풀의 잎은 뒤틀려서 번개 모양이었다. 꽃송이의 꽃잎도 마찬가지였고, 그 위로는 자줏빛 번갯불이 어렴풋이 감돌아 비범해보였다.

    이 자뢰화는 곤토인뢰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주재료였는데, 그는 1년 동안 장안의 방시를 여러 차례 찾아갔지만 줄곧 찾지 못했다. 하데 뜻밖에도 이곳에서 발견하게 될 줄이야.

    “오라버니, 그 영초가 필요하시다면 따오세요. 제가 나중에 사문에 보고하겠습니다.”

    섭채주가 잠깐 주저하더니 말했다.

    “이 일은 내가 한 것인데 어찌 너를 난처하게 할 수 있겠느냐? 사후에 내가 직접 보타산 사람들에게 분명히 설명하도록 하마.”

    심협은 고개를 젓고는 손을 움직여 자뢰화를 꺾어 임랑환에 챙겨넣었다.

    백소천은 산에 핀 영초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걷더니, 이내 경악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왜 그러시오?”

    심협은 다소 긴장해 다가갔는데, 그도 이내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앞쪽 산 위에 커다란 돌문 하나가 나타났는데, 그 위에는 온갖 부적 문양이 가득하여 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조금 전 보였던 금빛은 바로 그 위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돌문 위에는 조음동(潮音洞)이라는 세 글자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낙가산에는 자비주(慈悲主), 조음동에는 관세음. 이 두 마디가 보타산의 존호(尊號) 아니던가. 설마…… 이 산굴이 관세음보살의 동부인가?”

    심협이 놀란 표정으로 되뇌었다.

    섭채주는 존경심 가득한 표정으로 조음동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이를 본 백소천이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데, 심협의 표정이 돌변했다.

    “조용히 하시오!”

    그는 전음으로 외치고는 섭채주와 백소천을 끌어당겨 근처의 하얀 안개로 날아들어 숨었다.

    잠시 후, 한 차례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다섯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두머리는 이전에 광장에 나타났던 두 진선기 요물로, 등이 굽은 노인과 매부리코 사내였다.

    매부리코 사내의 손에는 사람이 하나 들려 있었는데, 놀랍게도 위청이었다.

    위청은 온몸이 검은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고, 옷은 너덜너덜했으며,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코와 입에는 피가 맺힌 상태로 정신을 잃고 있었다.

    뒤에서 걷고 있는 두 사람은 얼굴이 바싹 마른 검은 옷의 초췌한 노인으로, 이전에 만났던 대승기 수사였다. 그는 요수(妖修)가 아닌 인간족이었고, 손에는 새카만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류청이었다.

    ‘그들이다! 한데 저 요족들이 어찌 이곳에 올 수 있단 말인가?’

    심협은 먼 곳에 숨어서 유명귀안으로 이 요족들을 조심스레 관찰했다.

    이 거리에서 백소천과 섭채주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심협은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보고 들은 것을 두 사람에게 전음으로 설명해주었다.

    ‘제가 전에 바로 저 파리한 노인에게 당해 부상을 입었어요.’

    섭채주는 심협이 묘사한 사람들의 용모를 듣자마자 전음으로 주의를 주었다.

    심협은 그 말에 크게 놀라서 몰래 그 노인을 훑어보았다.

    ‘위청은 저들 요족에게 의탁하지 않았었나? 어째서 이 모양이 된 게지?’

    백소천이 의아한 듯 물었으나, 심협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요족들이 예까지 오다니, 조음동의 보물을 노리는 걸까요?’

    섭채주의 안색이 급변했다.

    ‘조음동 안에 보물이 있느냐?’

    심협이 황급히 물었다.

    ‘보살께서 보타산을 떠나실 때 몇 가지 보물을 조음동에 봉인해두셨습니다!’

    ‘저 요족들의 실력은 고강한 데다 진선기 요물도 두 마리나 있어 우리는 적수가 되지 않을 테니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백소천이 주의를 주자 섭채주도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후 답했다.

    ‘백 오라버니, 마음 놓으셔요. 경솔하게 나서지는 않을 겁니다.’

    심협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다시 요족들의 동정을 관찰했다.

    “여기가 바로 조음동인가? 관세음보살이 보물을 숨겨둔 곳?”

    돌문을 쳐다보는 매부리코 사내의 눈에 한 가닥 탐심이 스쳤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미 다 살펴보았습니다만, 돌문에 낙가신금(落伽神禁)이 설치되어 있어 열기가 쉽지 않습니다.”

    류청이 말했다.

    “귀하가 있는데 어떤 금제인들 풀지 못하겠소! 흑교왕께서 보타산 제자들을 붙잡아두고 계시긴 하나 시간이 많지 않소. 당장 시작합시다!”

    매부리코 사내가 씩 웃자 섬뜩하게 빛나는 새하얗고 날카로운 이빨들이 드러났다.

    “최선을 다하지요.”

    류청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뒤집어 커다란 검은색 번을 꺼냈다.

    번 위에는 검은색 괴수 얼굴이 수놓아져 있었다.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달렸고, 붉은 눈에 넓적한 코가 사납고 흉악해 보였다.

    류청이 양손을 결인하자 검은 번이 즉시 날아올랐고, 그 위에서 끈끈한 검은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음산한 기운이 자욱하게 퍼지면서 근처의 하얀 안개가 부식된 것처럼 빠르게 흩어졌다.

    ‘이것은…… 마기!’

    심협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저 검은 기운은 의심할 여지없이 마기일 뿐만 아니라 무섭도록 순수했기 때문이었다.

    ‘저 여인은 어떻게 마기를 조종할 수 있단 말인가? 설마…… 마족인가?’

    의문이 들었으나 답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류청이 결인하자 몸에 검은 기운이 한 층 떠오르더니, 검은 빛줄기들이 그녀의 손에서 쏘아져 나왔다. 번 위의 마기가 돌문을 향해 벌떼처럼 몰려가 시커먼 마운(魔雲)을 이루며 문을 뒤덮었다.

    마운은 세차게 용솟음치며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렸다.

    안에서 쩌적 하는 소리가 잇따라 들려오더니 돌문 금제 위의 금빛이 환해지면서 검은 마운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마기들이 돌문 위의 금제를 부식시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오라버니, 지금 상황이 어때요?’

    심협의 표정이 변하자 섭채주가 긴장한 목소리로 황급히 캐물었다.

    이곳의 금제는 신식을 차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청력에도 크게 영향을 끼쳐서, 섭채주와 백소천은 요족들을 볼 수도,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도 없었다.

    심협은 잠시 주저하더니 지금의 상황을 전해주었다.

    ‘마족이 또 나타났단 말인가!’

    ‘안 돼요! 저들이 보살께서 남기신 보물을 앗아가게 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반드시 그들을 막아야만 해요!’

    백소천은 다른 면에서 놀랐지만, 전음으로도 그 분노와 당황이 느껴졌다.

    ‘그들의 말로는 동굴 입구에 낙가신금인가 뭔가가 걸려 있다는구나. 마기가 아주 강력한 부식 효과를 지녔지만 금제를 쉽게 뚫지는 못할 테니 조급해하지 말아라.’

    심협은 섭채주를 끌어당기며 안정시켰다.

    그도 바깥사람들의 대화를 듣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입모양으로 대화 내용을 간신히 추측해낼 수 있었다.

    바로 그때, 걸걸한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어딜 감히 요괴놈들이 조음동에 뛰어들었단 말이냐! 간덩이가 부었구나!”

    대나무 숲의 금제는 그 목소리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 듯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산봉우리와 근처 땅을 우르릉 우르릉 뒤흔들었다.

    먼 곳에 있던 심협 일행은 두 귀가 먹먹하게 울리며 안색도 창백해졌다.

    한편, 류청과 초췌한 노인은 휘청대며 하마터면 땅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곱사등이 노인과 매부리코 사내는 무사했지만, 그들도 표정만큼은 딱딱하게 굳었다.

    “진선기 고수!”

    류청의 아리따운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 순간,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류청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내리꽂혔다.

    곱사등이 노인과 매부리코 사내는 크게 소리치면서 각기 푸르고 검은 빛으로 변해 쏜살같이 날아가 아슬아슬하게 검은 번개를 막아냈다.

    꽈르릉! 꽝!

    하늘도 놀랄 만한 굉음이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산봉우리 인근의 공간 자체가 세차게 요동치고 주위의 하얀 기운이 흩어졌다.

    심협이 재빨리 백소천과 섭채주를 끌고 물러섰기에, 다행히 종적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한편, 류청은 돌문의 금제고 뭐고 신경 쓸 겨를 없이 한쪽에 쓰러져 있던 위청을 들고 피했다. 노인도 아무 말 없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공중에서 흑, 녹, 청의 세 가지 빛이 거세게 충돌하며 연이어 커다란 소리를 울리다가 몇 호흡 뒤에야 하나하나 튕겨나갔다.

    검은 빛이 흩어지자 얼굴에 시커먼 털이 수북한 용맹스런 사내가 나타났다. 흑금 갑옷에 검은 가죽신을 신었고, 손에는 흑영창(黑纓槍)을 들었으며, 머리에는 승관(僧冠)을 쓰고 있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해 어딘가 어설퍼 보였다.

    상대를 본 순간, 심협은 바로 정체를 알아보았다. 일전에 만난 적이 있는 흑곰 요괴였다.

    흑곰 요괴가 입고 있는 갑옷 위에는 두 줄기의 깊게 파인 자국이 더 생겨났고, 어렴풋이 피가 비쳤다.

    그러나 곱사등이 노인과 매부리코 사내도 상태가 그리 좋지는 못했다. 두 사람의 몸에는 각각 시커멓게 탄 상흔이 생겨났고 붉은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흑곰 요괴! 과연 너였구나! 너는 우리 요족 일원이면서 보타산 수사에게 복종한단 말이냐! 정말이지 가엾구나!”

    매부리코의 사내가 차갑게 웃었다.

    “흥! 난 또 누구라고. 흑룡담의 풍식(風息)과 귀도(龜圖)였구나! 흑룡담에나 얌전히 처박혀 있을 것이지 보타산에는 무엇 하러 왔느냐? 게다가 감히 자죽림 금지구역에까지 발을 들이다니!”

    흑곰 요괴는 매부리코 사내의 충동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싸늘한 목소리로 외쳤다. 보아하니 바깥 상황을 아직 모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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