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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15화 (515/1,214)
  • 515화. 상처를 치료하다.

    심협은 주위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품속의 섭채주만 바라보았다.

    그녀의 숨결은 생기를 잃은 데다 빠르게 약해지고 있어서 즉시 치료가 필요했다.

    심협의 발밑에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검홍이 방향을 틀어 비교적 전투가 치열하지 않은 곳을 향해 날아갔다.

    백소천은 잠시 주저했으나, 결국 그들을 따라갔다.

    두 사람의 둔광은 빠르게 움직여 이내 보타산 종문을 벗어났다.

    무성한 자줏빛 대나무 숲이 앞에 나타났는데, 간간이 하얀 안개가 감돌고 영기가 짙은 데다 인적이 드물어서 상처를 치료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이곳은…… 자죽림이잖아?”

    심협은 이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데, 보타산에 무척 중요한 곳인 듯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자죽림 안으로 들어섰다.

    “심형 잠깐 기다리게!”

    뒤쫓아 오던 백소천이 황급히 말렸지만, 이미 심협은 붉은 검홍에 휩싸여 대나무 숲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이상하게도 붉은 검홍은 대나무 숲에 들어가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역시 금제가 있었어!”

    백소천은 자죽림 바깥에 멈춰 서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숲 주위를 두어 걸음 왔다 갔다 배회하다가 이를 악물고 숲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모습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백소천은 숲속을 질주했다. 주위에 짙은 안개가 가득해서 시야는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감히 너무 빨리 날지는 못하고 조심스레 나아가다보니, 이윽고 빈 터가 나타났다. 심협과 섭채주는 그곳에 있었다.

    섭채주는 바닥에 누워 있었고, 심협은 섭채주의 두 손을 쥔 채 법력을 그녀의 몸에 불어넣었다.

    그는 이미 섭채주에게 요상유영단 한 알을 먹이고는 운기조식하여 단약을 정제하도록 돕고 있었다.

    섭채주의 아랫배에 생겨난 상처에는 가닥가닥 핏줄기들이 떠오르면서 빠르게 뒤엉켰지만, 천천히 아물었다.

    다행히 단약을 먹은 뒤로 섭채주의 호흡은 안정된 상태였다.

    백소천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급히 물었다.

    “섭 낭자의 부상은 어떠한가?”

    “내 이미 유영단을 먹였으나, 무엇에 다쳤는지 상처가 아무는 것이 매우 더디구려.”

    심협이 말했다.

    “상처가 좀 이상하긴 하군. 독에 중독된 듯한데…….”

    백소천은 섭채주의 상처를 빤히 들여다보더니 혀를 찼다.

    “중독되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심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독이 침입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이한 독극물일세. 심형 자네는 독극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자연히 발견하기가 어렵지. 내게 넘기게.”

    백소천은 웃으면서 그리 말하더니 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금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오며 몸 주위에 금빛 불타의 허상이 생겨났다.

    백소천은 그 상태로 손가락을 구부려 섭채주를 짚었다.

    섭채주의 몸에서도 금빛이 번쩍이더니 그녀의 몸 둘레에 반구형 금빛 덮개가 생겨나 빠르게 회전했다.

    빛 덮개 위에는 무수한 금빛 부적 문양이 나타나 밀물처럼 섭채주의 몸으로 몰려들었다. 주위의 천지영기도 금빛 부적 문양을 따라 섭채주의 몸속으로 주입되었다.

    섭채주의 상처는 몇 배나 빨리 아물기 시작했고, 뭔지 모를 실오라기 같은 핏빛 기체가 상처에서 흘러나와 살아 있는 것처럼 쉬지 않고 꿈틀거렸다.

    심협의 두 눈에 푸른 빛이 반짝이면서 동공이 확장되었다가 수축하며 곧 이 핏빛 기체들의 정체가 또렷하게 보였다. 놀랍게도 더없이 작고 가느다란 핏빛 벌레였다.

    “고충!”

    그가 놀라서 외쳤다.

    이전에 보았던 <약선집>이 떠올랐다. 그 안에는 수많은 신기한 고술들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 핏빛 벌레는 그 기록의 내용과 아주 비슷해 보였다.

    “심형도 고물(蠱物)을 아는가? 섭 도우가 중독된 것은 바로 혈독고(血毒蠱)라네. 이 고충은 독하기 그지없어서 숙주의 기혈과 정기를 집어삼킬 뿐만 아니라, 이 독고가 피와 살 속으로 들어가면 신식으로는 전혀 알아낼 수가 없다네.”

    백소천의 설명을 듣고서야 심협은 섭채주의 부상이 이토록 느리게 회복되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가 열화부를 한 장 꺼내자 화염 한 덩이가 이 자그마한 핏빛 벌레들을 집어 삼켰다.

    훼방을 놓던 고충이 사라지면서 상처는 금세 아물어 사라졌지만, 섭채주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심협은 신목은택을 익힌 터라 본명원기에 대한 감각이 발달했는데, 섭채주의 본명원기가 적잖이 소모되어 혼수상태에 빠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설마 방금 그 고충들이 사람의 본명원기를 집어삼킬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깜짝 놀랐다.

    그게 사실이라면 상당히 무시무시한 고충 아닌가!

    “백형, 실로 감사하오. 방금 시전했던 것은 어떤 신통력이기에 이토록 놀라운 치유력을 지닌 것이오?”

    심협은 백소천을 향해 공수하고 감사를 표했다.

    “우리 화생사의 비법인 묘수회춘(妙手回春)으로, 온갖 독을 해독할 수 있다네.”

    백소천은 비술을 시전하느라 지친 듯 조금 창백한 안색으로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심협은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고는 곧 섭채주의 손을 잡고 법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신목은택을 운공하여 섭채주의 본명원기를 조절했다.

    섭채주가 차츰 혈색을 되찾더니, 잠시 후 낮게 신음하며 깨어났다.

    “오라버니…….”

    심협을 본 섭채주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오장육부에 큰 상처를 입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 함부로 움직이지 말아라. 자, 유영단을 한 알 더 먹으려무나.”

    심협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재빨리 섭채주의 어깨를 누르더니 요상유영단 한알을 또 꺼냈다.

    “괜찮습니다. 우리 보타산은 상처를 치료하는 데에 능하니 곧 괜찮아질 거예요. 영단을 낭비할 필요 없어요.”

    섭채주는 일어나 앉아서 손을 뒤집어 녹색 부적을 꺼냈다. 그 위에는 버드나무 가지 문양이 있었는데, 놀라운 생기를 뿜어냈다.

    그녀가 녹색 부적을 바스러뜨리자, 녹색 빛이 한 줄기 떠오르더니 그 안에서 비취색 버드나무 가지가 흐릿하게 체내로 녹아들었다.

    섭채주의 몸 둘레에 녹색 빛 고리가 하나 떠오르더니 체내에서 강렬한 법력 파동이 전해지면서 오장육부의 내상이 빠르게 회복되었고, 얼굴도 발그레하게 혈색을 되찾았다. 뿐만 아니라 섭채주의 법력도 순식간에 정점까지 회복되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심협은 순식간에 멀쩡해진 섭채주를 보며 저도 모르게 입이 살짝 벌어졌다.

    섭채주의 오장육부는 심각한 부상을 입어 요상유영단을 복용했다 하더라도 회복하려면 한참이 걸릴 터였다. 남은 법력도 3할이 채 안 되었으니 적어도 반 시진은 더 걸릴 거라 여겼건만, 부적 한 장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온전히 회복된단 말인가?

    “보타산의 비술인 양류감로(楊柳甘露)예요. 상처를 빠르게 치료하고 법력을 회복시켜주지요. 다만 이 비술은 너무도 심오해 제가 아직 시전할 수 없기에, 사존께서 비술을 부적에 담아주셨습니다.”

    섭채주가 심협의 멍한 표정을 보고는 설명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서 가부좌를 튼 채 운기조식하고 있는 백소천을 보았다.

    ‘과연 화생사와 보타산은 오랜 세월 전승되어온 큰 문파답게 비범한 비술에 정통하구나. 방촌산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아!’

    그는 예전에 무명을 손쉽게 쫓아보낸 기억 때문에 내심 보타산을 조금 우습게보았다. 한데 오랜 세월 이어져온 이 커다란 문파들의 저력은 과연 깊고도 두터웠다.

    “이곳은…… 자죽림이군요! 어찌하여 예까지 오신 것입니까?”

    섭채주는 그제야 알아차리고는 초조한 표정으로 놀라서 외쳤다.

    “너의 부상이 심각하여 상처를 돌볼 조용한 곳이 필요했다. 보타산 안은 곳곳에 요족들이 많아 여기로 왔는데, 안 될 이유가 있는 것이냐?”

    심협도 내심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예전에 사문의 선배님께 들은 적이 있는데, 자죽림은 보타산의 금지구역이라더군. 이야기에 따르면 관세음보살과 관련이 있다는데, 외인인 나로서는 진짜인지는 알 길이 없지.”

    백소천은 수련을 멈추고는 끼어들었다. 좀 전에 회복 단약을 먹은 덕에 안색은 적잖이 회복되어 있었다.

    “맞습니다. 이 자죽림은 보살께서 폐관하시는 곳입니다!”

    백소천의 눈길을 받은 섭채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관세음보살께서 여기 계시다는 말입니까! 그럼 어서 그 어르신을 뵈러 가십시다! 이렇게 들어온 것이 조금 실례이긴 하지만, 지금은 요마들이 침입했으니 그리 많은 것을 살필 겨를이 없습니다. 그 어르신께서 나서주시기만 한다면 분명 바깥의 요마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겁니다!”

    백소천이 기뻐하며 말했다.

    “허나 관세음보살께서는 보타산을 떠나신 지 오래입니다. 이곳은 그저 그 어르신께서 예전에 폐관하셨던 곳에 불과하지요.”

    섭채주가 다소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아, 그렇군. 한데 그렇다면 보살께서는 여기 계시지 않고 지금은 요마들이 쳐들어온 상황인데, 여기 들어와서 안 될 것은 또 무엇이냐?”

    심협이 의아한 듯 물었다.

    “두 분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습니다. 자죽림에는 사문에서 쳐둔 금제가 있어 들어오기는 쉬워도 나가기는 어렵다는 겁니다.”

    섭채주의 깊은 탄식에 심협은 즉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곳곳에 하얀 안개가 자욱하여 멀리까지는 볼 수 없었다.

    그는 신식을 움직여 주위를 살펴보고는 곧 미간을 찌푸렸다.

    허공에는 보이지 않는 금제의 힘이 가득해 신식은 10여 장 뻗어나간 뒤로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게다가 이 보이지 않는 힘은 신식을 속박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의 감각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 순간, 눈앞의 풍경이 갑자기 빙빙 돌기 시작하더니, 머릿속 신식의 힘도 흐트러지면서 강렬한 현기증이 엄습해왔다.

    심협은 낯빛이 변하여 황급히 신식을 거두고 부주진신법을 운공했다. 그제야 어지러운 느낌이 가라앉았다.

    “실로 대단한 금제다!”

    심협은 감탄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사부님께 들어보니 이곳의 금제는 양의미진환진(兩儀微塵幻陣)이라는데, 이야기에 따르면 상고시대의 법진으로 비록 완벽히 설치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라더군요.”

    섭채주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양의미진환진! 태고의 유명한 10대 법진 중 하나 아닙니까.”

    백소천이 깜짝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심협의 눈도 덩달아 휘둥그레졌다. 이 금제에 이토록 대단한 내력이 있다니, 나가려면 확실히 어렵지 않겠는가.

    “위청 때문에 밖에는 요족들이 넘쳐나니, 지금은 나가는 게 도리어 위험할 게다. 여기 남는 것도 꼭 나쁜 일만은 아니지.”

    심협이 잠시 생각을 정리한 끝에 말했다.

    “사문이 어려움에 처했는데 제가 어찌 여기 숨어서 제 한 몸만 지키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섭채주가 급하게 말했다.

    “알았다. 그냥 해본 말이니, 이제 나갈 길을 찾아보자꾸나.”

    심협은 섭채주가 조금 화를 내자 재빨리 손을 들어 보이며 말을 돌리고는 왔던 방향으로 걸어갔다.

    세 사람은 왔을 때의 기억을 더듬었지만, 한참을 전진해도 여전히 대나무 숲을 벗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좀 기다리게. 계속 휘젓고 다니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니까.”

    백소천이 문득 입을 열었다.

    “어찌 그러오? 뭔가를 발견하셨소?”

    심협이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와서 이 대나무를 좀 보게.”

    백소천이 앞에 있는 자줏빛 대나무를 가리켰다.

    심협이 살펴보니 대나무는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몸통에 하얀 자국이 한 줄 그어져 있었다.

    “아까 내가 남겨둔 표시일세.”

    백소천이 말했다.

    “우리가 계속 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다는 뜻이구려. 과연 대단한 환진이오.”

    심협이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세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기만 했을 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더욱이 백소천과 섭채주는 법진에 정통하지 않아 그저 속만 태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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