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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13화 (513/1,214)
  • 513화. 내란

    잇단 격변에 깜짝 놀란 심협의 표정이 급변했다. 혼란 속에서 두 사람이 탁자 위에 있는 선행을 향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은 푸른 옷의 사내로 대회의 참가자 중 하나였지만 심협이 모르는 얼굴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뜻밖에도 류청이었다.

    심협은 곧장 두 발에 달빛을 내뿜으며 사월보를 시전에 그 자리에서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푸른 옷을 입은 남자의 신법은 기이하기 이를 데 없어 몸에서 푸른 빛을 번쩍이고, 뒤로 기다란 뱀 모양 환영을 드리우면서 제사상 곁으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번쩍거리는 비수를 꺼내 선행 주위의 금색 빛 덮개를 매섭게 찔렀다.

    쿵!

    커다란 소리가 울리면서 금색 빛 덮개가 세차게 진동했지만, 쪼개지지는 않았다.

    한편, 류청도 탁자 옆으로 날아와 검은색 용두전도(龍頭戰刀)로 세차게 빛 덮개를 베었다. 그러자 용 같은 도광(刀光)이 한 줄기 떠올라 검은 비수와 동시에 금색 빛 덮개 위를 내리쳤다.

    금색 빛 덮개는 미친 듯이 떨리더니 더는 버티지 못하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나가 무수한 광점이 되어 흩어졌다.

    선행은 빛 덮개가 부서지면서 생긴 기류에 휩쓸려 류청 쪽으로 날아갔다.

    류청은 눈을 반짝이며 남은 손을 뻗어 선행을 붙잡으려 했다.

    한데 그때, 검노랑 장곤(長棍)이 불쑥 나타나 위에서 아래로 류청의 왼손을 내리쳤다.

    장곤이 채 닿기도 전에 묵직하고 거대한 힘이 류청의 팔뚝을 내리눌렀다.

    “죽고 싶은 게냐!”

    류청이 버럭 화를 내자 검은 용도(龍刀)가 순식간에 튀어나가 검은 번개처럼 검노랑 장곤을 내리쳤다.

    그때, 장곤 옆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바로 심협이었다.

    그는 손목을 돌리면서 발천난봉을 시전하여 급히 여섯 줄기 곤영(棍影)을 만들어냈다. 곤영들은 공기를 찢고 묵직한 기폭음(氣爆音)을 내면서 검은 용도와 맞부딪쳤다.

    꽈과광!

    우렛소리 같은 굉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여섯 줄기 곤영이 흩어지고 현황일기곤이 손을 벗어나 거꾸로 날아가면서 심협의 몸도 두어 걸음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그러나 검은 용도는 더욱 빠른 속도로 튕겨나갔고, 칼을 쥐고 있던 류청까지도 진동에 날아갔다. 그녀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쪽에 있던 푸른 옷의 남자도 류청이 심협과의 힘겨루기에서 밀릴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듯 표정이 크게 달라졌으나, 손을 멈추지는 않았다.

    휙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더니 새카만 짐승의 발 모양 법기가 남자의 손에서 튀어나가 끄트머리에서 다섯 줄기의 검은 빛을 내뿜었다. 다음 순간, 이 빛은 심협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틈을 타 그의 멱살을 덥석 움켜쥐었다.

    뒤이어 사내가 다른 손으로 가리키자 영광(靈光)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푸른색 기다란 밧줄이 그의 소매에서 쏘아져 나와 선행을 휘감았다.

    허나 심협이 어찌 두 눈을 버젓이 뜨고 선행을 빼앗길 수 있겠는가? 그는 몸을 가눌 겨를도 없이 곧바로 손을 휘둘렀다.

    커다란 자줏빛 구슬이 날아가 순식간에 열 배나 커지더니 발의 일격을 가뿐하게 막아냈다.

    땅!

    커다란 소리가 울렸고, 금빛 송곳 그림자가 심협의 소매에서 튀어나가 푸른 밧줄과 부딪쳤다.

    심협은 법력을 아낌없이 동원했다.

    금빛 송곳 그림자가 별안간 열 배나 불어나 거대한 금빛 송곳으로 변하더니 더없이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며 푸른 밧줄을 세게 내리찍었고, 밧줄은 단숨에 싹둑 잘려나갔다.

    송곳은 여세를 몰아 번개처럼 푸른 옷의 사내에게 내리꽂혔고, 커다란 자줏빛 구슬도 묵직한 광풍과 함께 사내를 내리쳤다.

    상대는 심협이 목숨 걸고 달려들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고, 이토록 빠르게 법술을 시전할 것도 예상치 못한 터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두 번의 공격을 고스란히 허용했다.

    쾅! 쾅!

    두 차례 굉음이 울리면서 푸른 옷의 남자는 온몸에서 붉은 피를 튀기며 튕겨나갔다. 거대한 금빛 송곳에 베인 팔뚝에도 기다란 상처가 생겨났다.

    심협은 그를 추격하는 대신 곧장 선행을 향해 달려가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몸에 금빛 그림자가 번쩍 하더니 선행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 일련의 싸움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린 것이다.

    류청과 푸른 옷의 사내 모두 선행이 심협의 손에 떨어진 것을 보고는 분통해하면서도 감히 빼앗을 생각은 하지 못하고 광장의 요족들을 향해 황급히 물러났다.

    “류청! 이 요족들과 한 패였구나!”

    심협은 이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멀리 있던 이숙은 이 광경에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인파 속에서도 10여 줄기의 그림자가 쉭쉭 날아들어 요족 근처에 내려섰는데, 그 가운데에는 위청이 있었다.

    “위청! 자, 자네 뭐하는 짓인가?”

    청련선자는 피를 왈칵 토해내며 섭채주의 부축을 받고 겨우 서 있다가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위청을 가리키며 외쳤다.

    황동도 경악한 표정으로 자기편 사람들을 바라보고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방금의 기습은 대부분 보타산 장로들을 노린 것이라 그곳에 있던 여덟 명의 장로 중 다섯 명이나 부상을 입었던 것이다. 심지어 다른 문파의 고수들 중에서도 몇 명이나 음모에 걸려들었다.

    “뭘 하느냐고? 너를 해칠 궁리를 하고 있지 않으냐? 으하하핫!”

    위청은 마치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광기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서 그가 손짓하자 하얀 빛 두 줄기가 날아왔다. 모두 새하얀 단도로, 몹시 날카로워 보였으며, 칼날은 검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맹독을 바른 게 분명했다.

    “위 사숙, 제정신입니까?”

    섭채주가 놀라움과 노여움이 뒤섞인 목소리로 위청을 향해 외쳤다.

    다른 보타산 제자들도 멍하니 넋을 놓고 위청을 바라보았다.

    위청은 그저 고개를 쳐들고 크게 웃을 뿐, 섭채주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위청, 자네 요족에게 의탁한 것인가? 자네가 종문의 금제를 그들에게 알렸군. 그러니 흑룡담의 요마 놈들이 이토록 쉽게 종문 깊은 곳까지 침입할 수 있었던 게지. 그렇지 않은가?”

    황동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황동 장로는 역시 전임 장률장로답소. 추측에 조금도 틀림이 없소이다.”

    위청은 그제야 웃음을 멈추고는 비웃듯 말했다.

    “왜 흑룡담 요족에게 의탁하려 하는가? 종문에서 자네를 대접함에 소홀함이라도 있었던가?”

    황동이 침울한 목소리로 외쳐 물었다.

    “왜냐고? 허허. 당시의 금린(金鱗)을 기억하시오? 내 그녀가 당신네 보타산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 눈 빤히 뜨고 지켜보았지! 황동 당신도 그날 그 자리에 있었어!”

    포효하는 듯한 위청의 목소리에는 광기와 슬픔이 가득했다.

    한편, 황동과 청련선자는 그 말에 표정이 급변했다.

    그 자리에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보타산의 장로들과 연륜이 깊은 몇몇 제자들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심협은 그들의 반응을 눈여겨보았다.

    어느덧 백소천이 다가와 심협의 곁에 섰다. 두 사람은 이미 몇 번이나 함께 목숨 건 혈투를 치르면서 서로를 든든한 조력자로 여겨왔기에, 위험에 처하자 서로의 등을 지켜주기로 한 것이다.

    ‘금린이 누구요? 백형은 혹시 아시오?’

    심협이 전음으로 백소천에게 물었다.

    ‘나도 모르겠네. 일단 상황을 좀 지켜보세나.’

    백소천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심협도 말없이 황동 도인과 위청을 살폈다.

    “자네는 금린과 무슨 관계인가?”

    황동 도인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위청이 차갑게 웃으며 대답하려는데, 흑교왕이 차갑게 외치며 말을 끊었다.

    “황동의 계략에 넘어가지 말게. 저자가 자네에게 말을 붙인 것은 시간을 끌어 관월노도를 불러오기 위함이야!”

    위청은 그 말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제법 눈치가 빠르다만, 이미 늦었다! 내 이미 관월 사숙께 소식을 전했지. 그 어르신께서는 수운간(水雲間)에서 오고 계시니 잠시 후면 도착하실 터! 너희 요마들이 감히 우리 보타산을 침범하였으니 오늘 한 놈도 달아날 생각 마라!”

    황동이 싸늘하게 웃으며 내뱉었다.

    ‘관월진인은 보타산의 대들보라네. 이미 태을경에 이르렀으니, 이 요마들이 제아무리 강하고 간사한 계략으로 보타산의 장로들에게 중상을 입혔다 해도 관월진인께서 도착하시기만 하면 꽁무니가 빠지도록 도망치기 바쁠 걸세.’

    심협의 귓가에 백소운의 전음이 울려 퍼졌다.

    “허! 다른 곳도 아닌 보타산에 오면서 그 정도 준비도 하지 않았을까! 설마 관월노도를 빠뜨렸겠소?”

    흑교왕이 차갑게 웃으며 대꾸하자 황동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 멀리 산문 밖에서 커다란 굉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이곳에는 여파만이 전해졌지만 그것만으로도 허공을 진동시키고 보타산 전체를 뒤흔들 정도였다.

    멀리 하늘가에 금색과 검은색의 웅대한 두 줄기 빛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것이 보였는데, 그때마다 하늘이 흔들리고 구름이 용솟음쳤다.

    “관월 사숙!”

    청련선자를 비롯한 사람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거리가 아득히 멀었지만 그들은 그 금빛이 바로 관월진인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관월노도의 보호 없이 너희가 뭘 더 할 수 있나 보자꾸나. 모두 죽어라!”

    흑교왕이 광기어린 웃음을 지으며 결인하고 앞에 있는 검은 번(幡)을 가리켰다.

    펑!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무궁무진한 검은 요기가 폭발하여 순식간에 광장 전체를 가득 메웠고, 모든 사람이 용솟음치는 요기에 파묻혔다.

    검은 요기는 쉬지 않고 더 멀리까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심협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주위는 짙은 요기에 휩싸였고, 이 요기가 뿜어내는 더없이 묵직한 기운에 그대로 짓눌려 죽을 것만 같았다. 뿐만 아니라, 이 요기 속에는 수많은 흉악한 영혼이 담겨 있어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물어뜯으려고 달려들었다.

    심협은 깜짝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고 숨을 한 모금 깊이 들이마신 뒤, 소매 안에 꽂아두었던 두 손을 휙 하고 휘둘렀다.

    그르르릉!

    검이 울부짖는 소리가 울리면서 붉은 비검이 머리 위에 나타나 크게 회전했다. 붉은 검영들이 맹렬한 검기 파동을 내뿜자 주변의 묵직하고 거대한 요기가 가뿐히 잘려나갔다.

    요기 속의 흉악한 영혼들은 붉은 검영에 닿자마자 마치 뜨거운 철판에 물을 부은 듯한 소리와 함께 푸른 연기가 되어 사라져 심협의 옷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순양검배는 지난번 꿈속 경지를 소환했을 때 온양하고 제련하여 마침내 완벽해져서 이제 용각추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검노란 빛이 스쳐 지나더니 현황일기곤도 날아 돌아와 주위의 검은 구름들을 공격했다.

    백소천도 금빛 항마저와 화룡점정선을 꺼내 두 겹의 금빛으로 몸을 감싸고는 검은 요기의 충격을 막아냈다. 다만 그의 항마저와 부채의 위력은 순양검배에 미치지 못하여 그가 뿜어낸 금빛은 끊임없이 흔들렸다.

    “안 되겠어. 이곳의 요기는 너무 짙으니 서둘러 나가야겠네!”

    백소천은 이내 힘겨운 듯 외쳤다.

    심협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전방에서 굉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진선기와 대승기 고수들이 싸우기 시작했는지 고함과 비명이 뒤섞여 있었다.

    거대한 진동이 전해져 오면서 발아래 단상이 종잇장처럼 가볍게 무너져 내렸고, 주위의 검은 요기들이 성난 파도처럼 용솟음치며 하늘을 뒤덮을 듯한 거대한 물결이 일어났다.

    심협과 백소천은 풍랑 속의 작은 배처럼 가볍게 나가떨어졌다.

    다행히도 두 사람 모두 반응이 재빨라, 밀려나는 기세를 이용해 뒤로 날아가 눈 깜짝 할 사이 광장 변두리까지 물러났다.

    그곳은 검은 기운이 그다지 짙지 않아서 가까스로 주위 상황을 살필 수가 있었다.

    “저 요족들은 너무 강해서 우리의 실력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 되니, 아무래도 일단 물러나야겠네.”

    백소천이 말했으나 심협은 초조한 눈길로 앞을 바라보았다.

    섭채주는 분명 청련선자 곁에 있었는데, 그곳은 전장의 한가운데라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더욱이 방금 거대한 진동에 나가떨어지는 바람에 동서남북조차 구분할 수 없었고, 이 검은 기운이 신식을 차단한 탓에 섭채주의 행방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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