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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06화 (506/1,214)
  • 506화. 꼭두각시

    심협의 일격에 두들겨 맞은 푸른 악어는 더욱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두 눈에 붉게 핏발이 서면서 파동이 갑자기 훨씬 강해지더니, 몸을 미친 듯이 뒤척이며 땅 위로 뛰쳐나왔다.

    녀석은 뛰쳐나오는 순간 몸을 홱 틀더니 굵고 기다란 꼬리를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울리면서 꼬리가 채 닿기도 전에 광풍과 천둥소리가 먼저 들렸다.

    허나 심협은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꼬리가 가까이 다가온 순간, 그는 갑자기 발아래에 달빛을 흩뿌리며 순양검배 위에서 뛰어올라 사월보로 날렵하게 악어의 꼬리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저 아래, 거대한 악어의 머리를 향해 단숨에 돌진했다.

    동시에 그는 법력을 미친 듯이 운행하면서 한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용각추가 다시 떠올라 강철로 된 꼿꼿한 정처럼 거대한 악어의 머리를 찔러갔다.

    펑!

    소름 끼치는 굉음에 이어 악어의 커다란 머리는 땅에 처박히면서 다시 큰 지진을 일으켰고, 길이가 무려 백여 장에 달하는 균열이 또다시 갈래갈래 뻗어나갔다.

    “오호! 저리 단단할 줄이야…….”

    심협은 조금 놀란 듯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용각추의 거센 일격에도 악어의 머리뼈는 절반쯤만 뚫렸던 것이다.

    이 악어에게 아직 반격할 힘이 남아 있는 것을 본 심협은 얼마 익히지 못한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엷은 금빛이 불쑥 솟아나와 그의 온몸을 감쌌다. 그 상태로, 그는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고 그 힘으로 급강하하며 주먹으로 용각추 위를 묵직하게 내리쳤다.

    콰릉!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금빛 주먹이 용각추를 땅속으로 박아 넣었다. 이에 거대한 악어의 머리도 부서지며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 * *

    청련선자를 포함한 세 사람은 현천경을 통해 심협이 악어를 죽이는 장면을 보고는 다들 놀란 기색이었다.

    “알아차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방금 그의 일격은 천강기(天罡氣)의 그림자를 지닌 듯하였습니다.”

    황동이 먼저 나서서 입을 열었다.

    “천강기의 그림자뿐만이 아닐세. 이 권법은 천궁의 삼십육천강병 중 한 분과 5할 정도 비슷했어. 허나 가장 이상한 것은 그가 법력을 운공하는 방식이 방촌산의 황정경 공법과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는 게야.”

    견문이 넓고 박학다식한 관월진인이 말했다.

    그의 말은 모두 사실에 가까웠다. 심협이 방금 가한 일격은 확실히 꿈속 삼십육천강병에게 배운 것이었다. 다만 꿈속에서는 거의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과 달리 현실에서는 기껏해야 5할 정도 모방하는 것이 한계였다.

    “그는 대당관부에서 온 것이 아니었습니까? 어찌 천궁의 술법을 할 줄 안단 말입니까?”

    황동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심협을 아는 제자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데, 심협 역시 중간에 대당관부에 들어갔다더군요. 예전에는 소모산 일맥을 계승했고, 후에는 건업성 백가에서 잠시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 뒤의 내력은 알 수 없고요. 어쩌면 대당관부에 들어가기 전에 천궁과 방촌산을 계승했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청련선자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경지가 그토록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설명이 되는구먼. 어쨌든 마족의 비술을 익혔을 가능성은 일단 배제할 수 있겠네. 신선과 마족의 공법을 동시에 수행하면 자기 자신과 싸우게 되지 않겠는가?”

    관월진인의 분석에 황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숙의 말씀이 일리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는 이렇게 지켜볼 필요가 없겠군요. 비경 수련의 결과가 나오고 그가 정말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면, 제가 그를 우리 보타산으로 끌어들일 방법을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청련선자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자 현천경 위의 화면이 운무에 덮인 것처럼 흐릿해졌다가 다시 맑아지더니 섭채주의 모습을 비췄다.

    “왜요? 아직도 제자가 불안하십니까?”

    황동이 은근히 웃으며 물었다.

    “채주는 결코 경지가 약하지는 않으나, 지금껏 최대한 빨리 대승기를 돌파하겠다는 일념으로 줄곧 폐관만 했지 실전 경험이 없습니다.”

    청련선자가 말했다.

    “그렇다 해도 별로 걱정할 것 없을 겝니다. 출규 후기 이상의 요수는 모두 가둬두었으니까요.”

    황동의 말에 청련선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대강 휘둘러 현천경을 거둬들였다.

    * * *

    심협이 거대한 악어를 죽인 뒤 요단을 거둬들였을 때, 맞은편에서 조비극이 양손에 각각 광표(狂豹)와 묘령(猫靈)의 시신을 들고 돌아왔다.

    “가자. 방금 제법 큰 기척을 냈으니 어떤 귀찮은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

    심협은 법보를 거두며 말했다.

    조비극은 두 마리의 요수가 지닌 생혼을 빼앗자마자 심협의 허리춤에 달린 건곤대로 돌아가 묵묵히 수련하기 시작했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 늪지 근처를 떠난 뒤로 심협은 가는 길 내내 더는 요수의 습격을 받지 않았고, 이내 어느 무성한 원시림에 이르렀다.

    한데 산림 바깥을 지나던 심협은 문득 앞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조심스레 기운을 거둬들이고 조용히 다가가 보니, 저 앞의 밀림에서 한 여자가 두 검은 그림자와 싸우고 있었다.

    두 검은 그림자는 체격도 모습도 비슷했고, 옷차림도 똑같았으며, 머리에 쓴 삿갓까지도 거의 똑같았다. 다만 한 사람은 손에 검은 장창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곡도 한 자루를 들고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어떻게 그녀가……?”

    심협은 여인이 바로 태응관에서 온 그 여관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녀가 손에 든 하얀 불진을 휘두를 때마다 수천수만 가닥의 투명한 실들이 춤추듯 날아들며 두 검은 그림자를 찔렀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피하며 반격을 해왔다.

    이 두 검은 그림자는 상당히 노련했고, 한 사람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대항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근접전을 벌이는 것이 협공에 익숙한 듯했다. 이에 여관을 차츰 밀리기 시작했다.

    심협은 그 두 사람에게서 영력 파동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그들이 지닌 기운을 느낄 수는 없었기에 절로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여관이 기합을 내지르며 하얀 불진을 가로로 크게 휘둘러 손에 장창을 든 그림자를 밀어낸 뒤, 다른 한 손으로 자기 뒤쪽을 휙 후려쳤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별안간 부적이 한 장 불타오르며 새빨간 화염이 솟아나와 바짝 추격해오던 칼을 든 그림자를 집어삼켰다.

    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화염이 갑자기 폭발하자, 검은 그림자가 그 속에서 황급히 물러나왔다. 몸 곳곳에 불탄 흔적이 역력했고, 그중에서도 삿갓은 이미 반절이나 불에 타 뚫려 있었다.

    심협은 뚫린 삿갓을 통해서 그제야 그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의 얼굴 위는 텅 비어서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았고, 타원형의 윤곽뿐이었다. 그 위로는 약간의 나뭇결이 어렴풋이 보였다. 놀랍게도 나무를 깎아서 만든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어쩐지 기운을 느낄 수가 없더라니…….”

    잠시 지켜보던 심협은 그곳을 에둘러 소태나무가 있는 쪽으로 길을 재촉하려 했다.

    한데 그가 막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비명이 들려왔다. 그는 재빨리 몸을 멈추고 비명이 들려온 쪽을 훑어보았다. 보아하니 꼭두각시와 여관이 싸우던 곳에 어느새 빽빽한 덩굴들이 솟아나와 있었고, 여관의 두 다리는 이미 아이 팔뚝만 한 굵기의 검은 덩굴에 휘감긴 상태였다.

    그녀는 살짝 당황한 기색으로 몸 아래쪽 덩굴들을 향해 불진을 휘둘렀다. 그러나 불진이 채 닿기도 전에 바닥에서 또 다른 덩굴이 불쑥 튀어나와 빠른 속도로 그녀의 팔뚝과 불진을 한꺼번에 휘감았다.

    곧이어 검은 덩굴이 사방으로 끌어당기자, 여관은 몸이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에 또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여관은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른 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곧 뭔가를 읊조렸다. 그러자 그녀의 온몸에서 곧 금빛이 번득이기 시작했고, 입고 있던 회백색 도포가 저절로 부풀어 올라 그녀의 몸을 휘감은 덩굴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덩굴 표면에 전류라도 흐르는 것처럼 한 줄기 빛이 번쩍이더니, 주위에서 더 많은 검은 덩굴이 달려들어 그녀를 완전히 감싸버렸다. 동시에 두 꼭두각시도 쏜살같이 덩굴 위로 급습해왔다.

    덩굴들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의 기운을 감지해 공격하는 것처럼 이 두 꼭두각시를 조금도 막지 않았다.

    꼭두각시들은 여관 곁으로 다가서서는 좌우로 각자 무기를 들고 덩굴 틈새를 따라 벌리고는 갑자기 양손에 힘을 주어 안에 있는 여관을 찔렀다.

    여관의 몸 바깥에 퍼져 있던 금빛은 미처 덩굴의 속박을 돌파하지 못했고, 심지어 꼭두각시의 공격을 받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흩어져버렸다.

    두 꼭두각시의 무기가 파죽지세로 파고들어 여관의 몸을 찌르려는 찰나, 금색과 붉은색 두 줄기 빛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펑! 펑!

    뒤이어 두 번의 둔탁한 소리가 울리더니 두 꼭두각시가 무기를 뽑아낼 틈도 없이 그들 각각의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그 구멍을 만든 두 개의 법기, 용각추와 순양검배가 멈추지 않고 곧바로 땅 위의 덩굴을 내리쳤다.

    빛줄기들이 땅 위에서 연이어 피어나 커다란 덩굴들을 잘라버리자, 덩굴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파들파들 떨면서 한쪽으로 움츠러들었다. 여관의 몸을 감싼 덩굴도 마찬가지였다.

    덩굴이 모두 한쪽으로 물러나자 여관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의 도포에는 검은 부적 문양이 빽빽하게 떠올랐고, 그 위로 기이한 파동이 퍼져 나왔다.

    이를 본 심협은 자신이 쓸데없이 나섰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분명 스스로 벗어날 수 있었을 터였다.

    한편, 여관은 뜻밖이라는 눈으로 심협을 잠시 쳐다보았다. 둘은 다소 어색하게 눈을 맞췄고, 이번에도 역시나 심협이 먼저 포권한 뒤 돌아서서 떠나려 했다.

    한데 문득 뒤에서 여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 도우, 잠시만요.”

    심협은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태응관의 황정(黃葶)이라 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심 도우.”

    여관이 계수(*稽首:구배의 하나. 머리가 땅에 닿도록 몸을 굽혀 하는 절)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으셨을 텐데 제가 괜한 참견을 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심협은 말을 마친 뒤 가볍게 공수하고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황정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뒤따라왔다.

    두 사람은 암묵적인 길동무가 되어 숲속 깊숙한 곳을 따라 걸었다.

    * * *

    눈 깜짝할 새 사흘이 지났다.

    깊은 밤, 숲속의 넓고 탁 트인 터.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심협과 황정이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며칠을 동행했지만, 길을 재촉했을 뿐 이야기는 거의 나누지 않았다. 오직 요수들이 나타날 때만 가끔 서로를 도왔는데, 서로 호흡이 잘 맞는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큰 도움이 됐다.

    심협은 가부좌를 튼 채 몸속에서 순양검배를 묵묵히 온양하는 중이었다.

    그동안의 배양 덕에 순양검배는 처음보다 크게 성장했다. 뜻밖에도 검신(劍身)에 숨겨진 홍련업화 역시 그사이 알게 모르게 많이 증가한 상태였다.

    황정은 모닥불을 너머로 심협을 바라보았다. 요 며칠 함께 지내면서 그녀는 심협에게 어느 정도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 그녀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심협이 두 눈을 번쩍 떴다. 황정은 황급히 시선을 옮겼으나, 당황한 탓에 가려진 뺨에는 홍조가 살짝 드러났다.

    “뭔가 오고 있습니다.”

    심협은 그녀의 눈빛과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불쑥 말하고는 벌떡 일어나 정신을 집중하고 사방을 살폈다.

    주위는 온통 칠흑 같았고, 미약한 바람소리와 풀벌레 소리만이 들리는 것이 더없이 고요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점이 문제였다. 요수들이 마구 날뛰는 숲이 아니던가! 한데 이렇게 조용하다면 분명 정상은 아니었다.

    황정도 재빨리 눈치를 채고 일어나 신식을 풀어 사방을 살폈다.

    그러나 한참을 살펴보아도 그녀의 신식에는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심 도우,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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