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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505화 (505/1,214)
  • 505화. 시련의 시작

    심협은 뒤숭숭한 마음을 가다듬은 뒤, 다시 앞쪽으로 신식을 뻗어보았다. 이번에는 조금도 방해가 없는 것처럼, 신념은 닿을 수 있는 경계까지 뻗어나갔다.

    “보아하니 저쪽인 것 같은데…… 이 늪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소란스러운 모양이군.”

    방향을 정한 심협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앞에 있던 커다란 웅덩이에서 갑자기 물이 끓는 것처럼 물결이 부글부글 용솟음쳤다.

    뒤이어 키가 10여 장에 이르는 검은 요수(妖獸)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와 심협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지는 못했으나, 온몸이 검푸르고 피부가 몹시도 미끈거렸으며, 표면에는 끈적거리는 점성 물질이 묻어나 마치 커다란 거머리 같았다.

    이 거머리의 쩍 벌어진 커다란 입에는 수백 개의 날카롭고 세밀한 하얀색 치아들이 빽빽하게 돋아 있었으며, 그 위로 연녹색 점액이 조금 배어나와 역겨운 썩은 내를 풍겼다.

    심협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옆의 늪지 속에서 물줄기가 순식간에 응집되어 커다란 주먹으로 변해 돌진해 오더니, 그대로 거머리의 입에 내리꽂혔다.

    쾅!

    묵직한 소리가 울렸고, 동시에 거머리의 머리 부분이 터져 나가면서 그대로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으로 많은 양의 녹색 점액이 튀어나왔다.

    심협은 이미 물 장막을 쳐놓고 앞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녹색 점액이 물 장막에 닿자 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연기가 모락모락 솟았다.

    물 장막이 부식되어 구멍들이 생겨나면서 유황냄새 비슷한 타는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들자 심협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황급히 호흡을 멈췄지만, 곧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 * *

    한편, 비경 밖 광장 높은 곳에 걸린 7개의 현천경 위로는 비경에 들어선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든 구경꾼이 이 참신한 광경에 매료되어 광장 전체가 한결 조용해졌다.

    그때, 그림자 하나가 군중들 사이를 천천히 가로질러 이숙 곁에 와서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숙은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는 놀랍고도 기쁜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류청! 어젯밤에 수련하다가 사고가 좀 생겨 오늘은 오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찌……?”

    “그래도 선행대회의 시련을 놓치기에는 아쉬워서요. 어쨌거나 이번에 도우를 찾아온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일을 위해서니까요.”

    류청이 조금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몸은 괜찮은 거예요?”

    이숙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체내 기운의 움직임이 조금 혼란스럽지만, 억눌러둔 상태라 큰 문제는 아닙니다.”

    류청이 웃으면서 답했다.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진짜 다행이에요.”

    이숙도 한숨 돌리며 다시 웃었다.

    류청은 광장 위의 현천경을 슥 훑어보고는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어째 심협 도우가 보이질 않네요?”

    “어찌 된 것인지 참가자는 여덟 명인데 문중에서는 하필이면 칠면현천경(七面懸天鏡)을 준비했지 뭐예요. 지금 다른 사람의 모습은 다 보이는데 유독 심 오라버니의 모습만 빠져 있어요.”

    이숙도 미간을 찌푸리고 조금 불만스러운 듯 맞장구를 쳤다.

    반면 옆에 선 노영은 그런 사실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시선을 줄곧 섭채주를 비추는 현천경에 두었다.

    “사매, 조급해하지 말아라. 저들이 중앙에 모이면 심 도우를 볼 수 있을 테니까.”

    무명이 옆에서 입꼬리를 씩 올리며 위로했다.

    이숙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으니 자연히 그의 웃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요.”

    류청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보타산 정상. 어느 우뚝 솟은 대전 안에는 뜻밖에도 여덟 번째 현천경이 떠 있었다. 그 위에 나타난 화면은 다름 아닌 바로 심협이었다.

    대전 가운데에는 금색 의자 3개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중 가장 왼쪽에 앉은 사람은 머리카락과 수염이 담황색인 우람한 노인이었다. 그는 날카롭게 치켜 올라간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 속 심협을 빤히 바라보며 소매에 가려진 손바닥을 살짝 문질렀다.

    가운데 자리에는 몸이 구부정한 고령의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머리카락은 이미 다 빠졌지만 기다란 두 눈썹은 매우 짙어서 거의 두 눈을 다 덮을 지경이었다. 이 눈썹 때문에 노인의 표정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또한 이 노인은 의자에 앉아 있음에도 두 손은 마치 굴러 떨어질 것처럼 흔들리는 자기 몸뚱이를 지탱하려는 듯 굵고 튼튼한 금빛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노인의 오른편에는 푸른색 긴 치마를 입은 맨발의 여인이 앉아 있었는데, 보타산의 장문 청련선자였다.

    “장문, 꼭 이렇게 출규 중기 후배 하나를 겨냥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담황색 머리칼의 건장한 노인이 물었다.

    “황 장률(*掌律: 문파에서 규율을 담당하는 사람)의 말씀은 틀렸습니다. 장률께서도 보셨다시피, 이변이 없는 한 훗날 채주 그 아이의 성취가 우리보다 뒤떨어질 리 없습니다. 그러니 심협이 바로 나타날 가능성이 가장 높고, 이는 가장 큰 이변이지요.”

    청련선자는 싸늘한 목소리로 답했다.

    노란 수염의 노인은 바로 보타산의 장률조사인 황동(黃童)으로, 주옥의 스승이었다.

    “청련 사질의 우려도 일리가 있네. 바람은 작고 푸른 부평초 끝에서 일어나 끝내는 돌을 날리고 나무를 꺾으며 우거진 수풀을 망가뜨리지. 그러니 방비하지 않을 수 없네. 그자는 채주의 수행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으니 일찌감치 짓눌러버리는 게 좋아. 우리가 그런 손해를 입은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야.”

    “관월(觀月) 사숙, 제 뜻을 오해하셨습니다. 그저 한낱 출규 중기 후배 따위가 이 제자들 속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 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 굳이 이리 공을 들여 화련비경을 다시 열고, 주옥더러 일부러 그를 요수들이 가장 많은 곳으로 보내게 할 필요가 있었느냐 이 말이지요.”

    황동은 옆에 앉은 곱사등이 노인을 바라보며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이 곱사등이 노인은 다름 아닌 황동과 청련선자의 사숙으로, 수련 경지가 깊고 심오할 뿐만 아니라 보타산에서의 항렬이 매우 높았다. 바로 그가 위청을 마지막 제자로 받아들여 불과 수십 년 만에 대승기 수사로 키워낸 사람이었다.

    “짓누른다고는 하지만 다 그런 것도 아니지요. 심협 그자의 나이를 어찌 보십니까?”

    청련선자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물었다.

    “그의 근골과 자질을 보았을 때 특출한 점은 없지만 출규 중기까지 수련하였으니, 적어도 2백 살은 되었을 듯하던데요.”

    황동이 잠깐 망설이더니 답했다. 그래놓고는 아무래도 너무 적게 불렀다는 생각에 혀를 찼다.

    그때, 청련선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비웃듯 말했다.

    “황 장률, 눈이 삐셨구려. 저 아이는 채주와 어렸을 때 혼약을 맺은 사이로, 두 사람의 나이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 말에 황동의 눈에는 놀란 기색이 스쳤고, 관월진인의 눈썹도 올라갔다.

    “황동 사질만이 아니라 이 늙은이조차 잘못 보았네. 설마 저자가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자란 말인가?”

    관월진인이 의아한 듯 물었다.

    “종문으로 채주를 데리고 오던 날 그를 처음 보았지요. 그때 그의 경지는 갓 벽곡 초기에 지나지 않았고, 근골과 자질은 중하(中下)에 불과하여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한데 그사이에 저런 경지에 이르렀으니, 어떤 기연을 만났거나 분명 남들보다 뛰어난 구석이 있을 것입니다.”

    청련선자가 말했다.

    “그래서 장문께서도 이 기회에 그의 밑바탕을 제대로 짚어보시려는 겁니까?”

    황동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것도 있지요. 스승으로서 그에 대한 채주의 깊은 정을 어찌 알아채지 못했겠습니까? 때로는 막는 것보다 터놓는 것이 더 낫지요. 만약 심협이 정말 키울 만한 가치가 있다면, 저는 그를 우리 보타산에 불러들이는 것도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전에 약간의 가능성을 없애야만 해요.”

    청련선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가 마족과 관련이 있을까 걱정하시는 겁니까?”

    황동이 조금 어두워진 표정으로 물었고, 관월진인이 몸을 꼿꼿하게 고쳐 앉았다.

    “자질이 변변찮아 보이는 자가 단시간에 크게 발전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지요. 더구나 그의 수명도 지금의 경지에 맞지 않아요. 제가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니라면, 마족에게는 수명을 불태워 경지를 발전시키는 비법이 있지요.”

    청련선사가 표정변화조차 없이 말했을 때, 두 노인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면 청련 사질의 안배는 적절하다 볼 수 있겠군.”

    관월진인이 결론을 내리듯 말했고, 그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다시 현천경으로 시선을 옮겼다.

    * * *

    한편, 어느 늪지대에서는 엄청난 양의 검은 물이 용솟음치고 거대한 몸집의 검은 거머리 수십 마리가 사방을 맴돌며 심협에게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시뻘겋고 커다란 입을 쩍 벌리더니 녹색 독액을 응집하여 힘껏 뿜어냈다.

    심협이 손을 크게 휘두르자 온몸 바깥에 겹겹이 물결들이 맹렬히 몰려와 녹색 독액들을 막아냈다.

    그와 동시에 용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용각추가 번쩍이는 한 줄기 금빛으로 변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용각추가 지나가는 곳마다 검은 거머리들의 머리가 하나씩 터져나갔다.

    심협은 한 손으로 다시 결인하고 물구렁이 한 마리를 응집하여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그렇게 단숨에 10여 리를 돌진했을 때, 심협을 태운 물구렁이가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동시에 심협도 나가떨어져 회백색 바위에 세게 부딪혔다.

    심협은 애써 일어나 앉아서 신념을 움직여 사방을 살펴보려 했지만, 시야가 흐릿하고 머리가 조금 띵해서 잠시도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심협은 손을 들어 허리춤의 건곤대를 쓰다듬었다. 검은 안개가 흘러 나오면서 귀장 조비극의 모습이 곧 그의 곁에 나타났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조비극은 진심으로 걱정스런 목소리였다.

    “큰 문제는 없으나 잠시 좌선하며 독소를 제거해야 할 듯하다. 그러니 잠시 호법을 부탁하마.”

    심협은 가부좌를 틀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곳은 제게 맡기시고 주인님께서는 안심하고 좌선하십시오.”

    조비극이 포권하며 답하자 심협은 곧바로 눈을 감고 법력을 움직여 거머리의 독소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가 들이마신 독소는 많지 않았지만, 코와 입으로 들이마신 탓에 금세 머리로 올라와 시야와 의식을 흐리게 했다. 어쨌든 그 양은 적었기에 독소를 제거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았다.

    한데 그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시선을 한쪽 방향으로 돌렸다. 옆에 있던 조비극도 이미 그쪽을 보고 있었다.

    “주인님, 응혼 중기 요수 두 마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가 가서 제거하겠습니다.”

    조비극의 말에 심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쪽도 거의 다 되었으니 가라.”

    “예!”

    명령이 떨어지자 조비극은 곧잔 한 줄기 어두운 그림자로 변해 땅에 바싹 붙은 채 빠르게 질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에서 사라졌다.

    심협은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는 계속해서 눈을 감고 독소를 제거해갔다.

    한데 잠시 후, 그가 가부좌를 튼 곳의 땅바닥이 갑자기 쩍쩍 갈라지면서 한차례 심하게 흔들리더니 폭삭 내려앉았다. 그리고 뒤이어 하얗고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 돋은 커다란 입이 불쑥 튀어나와 심협을 한입에 꿀꺽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심협은 놀란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이 입꼬리를 슬쩍 올린 채 손을 대충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손바닥 한가운데에 붙은 부적이 빛을 발했고, 하늘을 뒤흔드는 천둥번개가 터져 나왔다.

    꽈르릉!

    새하얀 번개 기둥이 하늘에서부터 거세게 내리쳤고, 격렬한 폭발음 속에 조각조각 부서진 바위를 가루로 만들면서 그 기이한 짐승의 주둥이에 내리꽂혔다.

    “캬오오!”

    짐승은 울부짖으며 다물었던 거대한 입을 어쩔 수 없이 다시 벌렸고, 심협은 그 틈에 몸을 훌쩍 날려 그 너머로 빠져나왔다.

    그는 순양검배를 딛고 하늘에 떠서 아래를 내려다본 뒤에야 그것이 놀랍게도 엄청나게 거대한 푸른 악어임을 알아차렸다. 온몸은 거의 땅속에 파묻혀 있어서 커다란 머리만 밖으로 나와 있었다. 영력 파동으로 보아 응혼 후기에 불과해 보였지만, 그 육신과 기백은 출규 초기에 비견할 만큼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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