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98화 (498/1,214)
  • 498화. 기계장치

    “심 사제, 내 생각에는 이 낡아빠진 배를 움직이기보다는 물결을 조종해 나아가는 편이 더 안전할 것 같네.”

    백소천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는데, 정작 심협은 그 말을 듣고 잠깐 헤아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백형 말이 옳소. 그것 참 좋은 방법이오.”

    말을 마친 그는 가부좌를 틀고는 묵묵히 무명공법을 운공했고, 한 손을 바닷물 속에 넣은 채 주위의 바닷물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의 법력이 끊이지 않고 주입되면서 도해주 바깥에 촤르륵 하는 물소리가 울리더니 선체가 물결을 밀며 앞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심협은 온 정신을 집중하여 신식을 물속으로 뻗어 넣는 한편, 주위 암초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뜻밖에도 가는 길은 내내 평온했다. 다만 확실한 방향을 잡을 수 없어서 그저 어림짐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그들과 멀지 않은 해무 속에서는 무명이 미간에 푸른 빛을 번득이는 부적을 한 장 붙인 채, 두 눈에 엷은 금색 빛을 희미하게 반짝이며 짙은 안개 너머의 풍경을 또렷이 보고 있었다.

    심협과 백소천 두 사람이 전혀 어려움에 빠지지 않고 짙은 안개로 뒤덮인 바다를 나아가는 것을 보자, 그는 콧방귀를 뀌고는 발끝으로 물 위를 걸어 두 사람을 뒤따라갔다.

    대략 반 각 정도가 지났을 때, 눈앞에 거대한 산봉우리들의 웅장한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가는 내내 더듬더듬 가다 서다를 반복했지만, 결국 정확한 방향을 찾아 안개 해역 가장자리에 이른 것이다.

    “헤헤, 운이 좋구먼. 걸어 나온 것만 같아.”

    백소천은 뱃머리에 선 채 쥘부채를 힘껏 펴서 바닷바람을 맞는 것처럼 가볍게 흔들었고, 그 모습이 꽤나 멋들어졌다.

    심협은 내내 물을 조종해 배를 움직이느라 마치 그에게 노를 저어주는 뱃사공 같았다.

    “아니, 사람이 좀 말이라도 도와준다고는 해야 할 것 아니…….”

    심협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안색이 급변했다. 도해주가 갑자기 빛을 내더니 선체가 통제를 벗어나 빠른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백소천은 순간 휘청거렸지만 얼른 몸을 가누고는 심협이 골탕 먹인 것인 줄 알고 몸을 돌려 농담조로 욕을 몇 마디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돌아서자마자 심협이 그의 손목을 홱 끌어당기며 곧장 검을 조종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두 사람의 몸이 날아오르기가 무섭게, 발아래에서는 통제를 잃은 도해주가 수면 위로 불쑥 튀어나온 검은 암초에 맹렬한 기세로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어찌 된 일인가?”

    백소천은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물론 심협에게 화를 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으름장을 놓은 것이라기에는 조금 지나쳤소.”

    심협도 싸늘한 목소리로 약간의 노기를 담아 답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래쪽 바닷물이 촤라락 하는 소리를 내더니, 십여 장 크기의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그 속에서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솟아오르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갑시다.”

    심협은 즉시 백소천을 끌고 안개 해역 바깥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렸다.

    두 사람이 막 바깥에 도착하자마자 순간 뒤에서 커다란 바람소리가 들려왔고, 뒤이어 10여 개의 굵직한 검은 쇠사슬이 소용돌이 속에서 빠른 속도로 날아와 촉수마냥 그들을 곧장 찔러왔다.

    심협이 시선을 집중하여 보니, 굵기가 사발만 한 쇠사슬에는 부적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끄트머리에는 뾰족한 송곳들이 달려 있었다. 사슬은 그 위로 새까만 한광을 번뜩이면서 계속해서 찔러왔다.

    “법진 장치…….”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즉시 백소천과 흩어졌다.

    검은 사슬은 두 사람이 흩어지자 스스로 갈라져 각각 심협과 백소천을 향해 돌진했다.

    심협은 곧장 발아래 달빛을 흩뿌리면서 몸을 몇 번 휙휙 옮겨 세 가닥 쇠사슬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그러나 잠시 긴장을 풀기도 전에 뒤에서 갑자기 바람소리가 크게 울렸고, 방금 피했던 쇠사슬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그의 등 한복판을 향해 뻗어왔다.

    심협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을 휙 휘둘렀다. 금빛이 그의 뒤에서 번득이더니 용각금추가 빠르게 튀어나와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검은 사슬과 맞부딪쳤다.

    거대한 힘이 요동치며 밀려와 심협은 내심 놀랐다. 이 법진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던 것이다.

    “백형, 이 장치는 법진에서 힘을 받는 것이니 우리가 대적할 수 없소. 보타산으로 가면 그들의 문중 장로들이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오.”

    심협은 재빨리 뒤로 피하면서 소리 높여 외쳤다.

    이에 백소천은 짧게 대답하고 심협과 함께 보타산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러나 두 사람이 급히 물러날수록 뒤의 검은 사슬은 더욱 빨리 쫓아왔고, 그들이 안개 범위를 막 벗어나자마자 여덟 줄기 사슬이 다시금 따라붙었다.

    심협은 체내에서 무명공법을 전력으로 운행하며 양손을 아래로 홱 내리눌렀다. 그러자 아래쪽 바닷물이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요동치더니 그의 양손을 따라 위로 솟아올라 하늘을 뒤덮고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물통만 한 굵기의 거대한 10여 마리의 수룡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면서 검은 쇠사슬과 충돌하자 무수한 물결이 튀었고, 굉음이 울렸다.

    이 엄청난 광경에 일순 수많은 보타산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이는 주도에서 보타산으로 날아와 하늘에 뜬 채 구경했고, 어떤 이는 도해주에 탄 채로 가까이 다가가 살폈으며, 어떤 이는 멀리 주도 가장자리에 서서 바라보았다.

    누구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고, 두 사람이 어떻게 바닷속 법진 장치를 작동시켰는지도 알지 못했다.

    심협은 일격에 쇠사슬의 공격을 쳐낸 뒤, 백소천과 계속해서 주도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때, 아래쪽 바닷물 속에 커다란 검은 그림자 하나가 그들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주도를 향해 뻗어가고 있음을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쿠르릉!

    잠시 후, 묵직하고 둔탁한 소리가 바다 밑바닥에서 들려오더니, 두 사람 앞의 해수면 위로 높이가 10여 장에 이르는 파도가 불쑥 치솟으면서 수백 갈래의 검은 쇠사슬이 물속에서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마치 공작이 꼬리를 펼친 듯한 상태에서 심협과 백소천 두 사람을 향해 한꺼번에 거꾸로 날아 왔다.

    심협과 백소천은 모두 표정이 굳어졌고, 동시에 손을 휘둘렀다. 한 사람은 용각추를, 한 사람은 항마저를 불러내고는 각자 결인을 했고, 그러자 두 보물이 환한 빛을 발했다.

    “가라!”

    백소천이 가볍게 외치자 그의 몸이 금빛을 발했다. 마치 금을 부어 만든 사람처럼 순식간에 온몸이 금빛에 휩싸였다.

    심협은 있는 힘껏 용각추를 작동시켜 금빛을 밖으로 내뿜었다. 그리고 빛이 커다란 용머리 허상을 이루자 그 속에 몸을 숨긴 채, 곧장 날아오는 검은 쇠사슬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용울음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하더니, 검은 쇠사슬이 심협의 몸 밖에 맺힌 금빛 용의 허상에 부딪혀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그중 사슬의 한가운데와 용각추의 끝부분이 서로 맞부딪친 곳에서 금빛이 폭발하면서 쇠사슬이 순식간에 백여 장 밖으로 밀려나 도해주 한 척을 향해 돌진했다. 그 도해주 위에는 벽곡 초기에 불과한 어린 소녀 하나가 서 있었다.

    도해주 위에 있던 소녀는 그저 구경하러 왔을 뿐이라 갑작스레 시커먼 쇠사슬이 돌진해오자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람과 배 모두 일격에 박살나려는 순간, 보타산 쪽에서 한 줄기 푸른 빛이 순식간에 소녀 앞으로 날아와 그 앞을 가로막았다.

    푸른 빛 속에서는 평범한 생김새에 호리호리한 체격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옥 같이 희고 고운 손을 들어 밀어내었다. 그러자 손바닥 한가운데가 하얗게 빛났다.

    그때, 쇠사슬 끄트머리의 송곳이 그의 손바닥을 내리쳤다.

    펑!

    둔중한 소리와 함께 청년의 몸 바깥에 한바탕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온몸이 잔잔한 파동이 일렁였고, 옷자락이 펄럭거렸으며, 검푸른 머리칼이 뒤로 흩날렸다. 그러나 그의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딛고 선 해수면조차도 옅은 물결을 일으킬 뿐이었다.

    “위(魏)…… 사숙, 정말 감사합니다. 위청(魏靑) 사숙.”

    어린 소녀는 뒤늦게 깨닫고는 재빨리 감사를 표했다.

    “어서 돌아가거라.”

    위청이라는 청년 남자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말했다.

    소녀는 재빨리 배를 몰아 보타산 주도로 도망치듯 떠났다.

    한편, 위청은 여전히 법진 사슬과 뒤엉켜 싸우는 두 사람을 지켜보며 눈썹을 살짝 찡그리더니, 앞으로 날아가려 했다. 그런데 이때, 바다 밑에서 갑자기 푸른빛이 번득이더니 뒤이어 기계장치의 도르래 돌아가는 둔중한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꺼져라!”

    그가 조용히 중얼거리자 움직임은 다시 멈췄다.

    한편, 심협은 방금 이 청년 쪽에서 일어난 일을 알아차렸고, 백소천에게 전음으로 전했다. 이어서 두 사람이 함께 그쪽으로 날아왔다.

    “도우의 도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심협이 그를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그리 예의 차리실 것 없습니다. 보아하니 두 분께서는 선행 대회에 참가하러 오신 다른 문파의 도우이시지요?”

    위청이 손사래를 치며 물었다.

    “맞습니다. 저는 심협이라 합니다. 대당관부의 위임을 받았습니다.”

    “저는 백소천입니다. 화생사 제자이지요.”

    심협과 백소천이 짧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위청입니다. 두 분께서는 다른 문파의 도우이시니 안내하는 제자가 인솔하였을 터인데 어찌 장치를 건드리신 겁니까?”

    위청이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

    “그것은…….”

    심협과 백소천은 눈빛을 교환하며 순간 어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 멀리서 다급한 부르짖음이 들려왔다.

    “위 사숙! 위 사숙!”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보니,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그림자 하나가 푸른 비검을 타고 쏜살같이 날아오고 있었다. 바로 무명이었다.

    “심 도우, 백 도우. 정말 미안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제가 순간 부주의하여 암초를 들이받는 바람에 두 분께서 법진 장치를 잘못 건드리신 겁니다. 두 분께서는 부디 용서해주시지요.”

    무명은 황급히 설명하면서 두 사람을 향해 깊이 허리 숙여 절했다.

    그러나 심협과 백소천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상대의 연기를 싸늘한 눈길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인상을 찌푸린 채 옆에서 지켜보던 위청도 심협과 백소천 두 사람의 반응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 회색 장포를 입은 긴 수염의 노인이 먼 바다에서 날아와 그들 곁에 내려섰다.

    “소위(小魏) 사형도 여기 계셨구려. 방금 무슨 일이 났던 것이오? 왜 수수대진(水須大陣)이 작동되었소?”

    그 사람은 위청을 보자마자 예를 갖추고는 물었다.

    “우(于) 장로, 아무래도 무명에게 듣는 것이 좋을 듯싶소.”

    위청도 예를 갖춰 답례하고는 말했다.

    우 장로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바라보았기에 무명은 앞서 했던 말을 다시 한번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을 다 들은 우 장로는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자네도 고의로 저지른 일은 아니니 이번에는 넘어가겠네. 뭐 하는가? 어서 두 도우께 사죄드리지 않고.”

    “심 도우, 백 도우, 제가 소홀했던 탓입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무명은 즉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하지만 심협과 백소천 모두 서로를 잠시 쳐다봤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 도우가 이미 거듭 사과를 했고, 우리도 큰일은 당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이렇게 넘어가도록 하지요. 무 도우께서는 앞으로 조금 더 조심하셔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분위기가 차츰 어색해질 때쯤, 심협이 비로소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럼요.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명은 말하면서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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