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96화 (496/1,214)
  • 496화. 약혼녀

    사흘 낮밤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심협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꿈속 경험 덕분인지 아니면 그가 신목은택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것인지, 사흘 동안 열심히 수련하자 혼잡했던 본명원기는 이미 일부분 융합된 상태였다. 이대로 반년 정도만 꾸준히 수련한다면 온전히 융합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목은택의 수련은 수명 문제와 연관된 만큼 그는 이후에 곧바로 폐관하고 고되게 수련하여 본명원기를 완전히 융합한 뒤에야 출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폐관하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심협은 손을 뒤집어 은빛 반지를 하나 꺼냈다. 바로 용단의 저물법기였다. 지금껏 줄곧 바빠 아직 이 물건을 검사할 겨를이 없었다.

    신식을 은빛 반지 속으로 집어넣으니 엄청난 양의 선옥이 무더기로 쌓여 있어 심협은 매우 기뻤다. 용단의 저물반지는 방 한 칸 정도의 크기였는데, 그중 절반 정도가 선옥들로 꽉 차 있었다. 대충 훑어보니 족히 1만5천여 개로, 지금 재산의 세 배에 이르렀다.

    하지만 상대가 성련법단사의 양대산맥 중 한 명임을 감안하면 이 정도 선옥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심협은 이어서 다른 물건들을 살폈다.

    저물 법기 안에는 선옥 외에 수많은 고급 영재들도 있었는데, 하나같이 진귀한 물건들이었다.

    “풍등(風藤)과 천수석(千水石)이 있었다니. 여기에 맞춰 성련법단 장보실에서 몇 가지 재료를 찾아냈으니 둔지부 재료를 다 모았군. 은신부 재료에는 빠진 게 있지만, 다행히 진귀한 것들은 아니니 방시에 가면 살 수 있을 거야.”

    심협은 기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재료들 외에 저물법기 안에는 금색과 회색 옥간이 각각 하나씩 있었고, 약병 두 개와 진홍색 부적 세 장이 더 있었다.

    심협은 그 물건들을 꺼내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금빛 옥간에는 육도윤회진경(六道輪回眞經)이라는 공법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사도(邪道)의 불법(佛法)이었다.

    회색 옥간에는 정묘한 비술 몇 가지가 기록되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가 육도윤회진경을 기초로 하고 있어 심협에게는 쓸모가 없었다.

    한데 회색 옥간의 맨 마지막에는 동술(瞳術)이 하나 기록되어 있었다. 이 동술의 이름은 유명귀안으로, 시력을 끌어올릴 수 있고, 특히 각종 환술들을 꿰뚫어보는 데에 능했다. 그러나 이는 유명귀안의 능력 중 하나일 뿐으로, 이 동술의 가장 대단한 능력은 미혼 신통력을 시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자신과 시선을 맞춘 사람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환술에 빠지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 동술은 수련하기가 매우 까다롭고 어려웠다. 우선은 천년사매 한 마리를 길러야 했는데, 그에게 많은 양의 진귀한 단약들을 먹여 체내에 환매(*幻魅: 환각을 일으켜 사람을 미혹하는 귀물)의 힘을 기른다. 그리고 적당한 때에 천년사매의 사담(蛇膽)을 먹고 비술을 운공하여 그 힘을 흡수해야 했다. 그런 뒤에는 정해진 시간에 일종의 환각 영액(靈液)을 배합해 눈에 넣고 운기조식하여 정제하면서 백여 년간 유지하면 이 동술을 완전히 익힐 수 있었다.

    “천년사매! 어쩐지, 예전에 그 사매를 죽였을 때 백군성 성련법단사에서 기를 쓰고 나를 뒤쫓더니, 알고 보니 유명귀안을 수련하려고 기른 뱀이었군!”

    심협은 혀를 찼다.

    ‘정말 공교롭군! 용단이 먼저 내게 천년사매의 사담을 보내주고, 또 그 뒤에는 유명귀안의 수련법까지 보내주어 대부분의 조건을 채우게 도와주었으니 말이야.’

    심협은 속으로 남몰래 기뻐하며 이 동술을 수련하기로 결정했다.

    그 환각 영액은 조제하기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게다가 용단의 저물반지에서 이미 대부분의 재료를 모았으니 몇 가지만 더 모으면 된다.

    그는 회색 옥간을 거두고 계속해서 남은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두 약병 중 하나에는 요상단약이 여덟 알 들어 있었다. 고급 단약인 듯했지만, 요상유영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다른 약병에는 금빛 단약 한 알이 들어 있었다. 그 위에는 연꽃 모양 단약 문양이 떠올라 금빛 불광을 내뿜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꿈속에서 얻었던 불광사리와 똑같았다.

    하지만 모양만 비슷할 뿐, 이 단약에는 불광사리와 같이 불광이 두루 비추는 신비로움 따위는 없었다. 십중팔구 모조 단약일 터였다.

    그러나 모조품에 불과하다 해도 이 단약은 매우 진귀했기에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으니 심협은 그것을 소중하게 챙겼다.

    마지막 부적들은 불속성으로, 비록 무슨 부적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부적에서 뿜어져 나오는 법력 파동으로 보아 분명 고급 부적일 터였다.

    심협은 물건들을 모두 챙기고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일어나서 문을 나섰고, 곧 장안성의 방시에 도착했다.

    그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했으니 필요한 물건들을 거리낌 없이 샀고, 은신부를 비롯한 환각 영액의 남은 영재들도 모두 구입했다.

    그는 곤토인뢰부의 재료들도 물어봤지만, 몇 가지 주재료는 너무나 귀해서 구할 수가 없었다.

    필요한 것들을 다 산 심협은 곧바로 국공부로 돌아와 폐관수련을 시작했다.

    * * *

    눈 깜짝할 새 1년이 넘게 흘렀다.

    남첨부주 최남단의 끝없이 이어진 해안가에는 해아성(海牙城)이라는 웅장한 성이 바다를 마주하고 우뚝 서 있었다.

    이 성은 바닷물이 침식하여 안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해안 절벽 가장자리에 세워졌고, 둘레가 수백 리에 달하는 성 밖은 해안에서 가장 좋은 항구였다. 평소에는 아침이건 저녁이건 항구에 늘 백 척에 가까운 어선들이 드나들어 시끌벅적했다.

    항구 밖 바다와 맞닿은 해안 절벽 위에는 길이 백 장의 돌 울타리가 절벽을 막고 서 있어, 절벽 가장자리는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바다를 마주하고 서면 가까운 곳에 배들이 분주히 드나드는 풍경을, 멀리 바라보면 먼 바다의 광활한 풍광을 볼 수 있었다. 이 절경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의 수많은 백성들과 명성을 듣고 찾아온 유람객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인근 어민들은 절벽 변두리에서 장사를 시작해 울타리 근처에는 작은 좌판들이 하나둘 늘어섰다. 좌판에는 빛깔이 산뜻하고 모양이 기이한 조개껍질이며 소라가 가득 놓여 있었다.

    일부는 정교한 나무 상자들 안에 바닷속에서 채집해온 진주와 붉은 산호를 담아 유람객들에게 팔기도 했다.

    해안 절벽에 하얀 옷을 입은 훤칠한 청년이 서 있었는데, 까무잡잡한 피부의 어민 하나가 그에게 달라붙어 완두콩알만 한 진주를 팔려고 애쓰고 있었다.

    청년은 슬슬 짜증이 난 듯했고, 장사치가 또 달라붙는 순간 갑자기 번쩍 하고 사라지더니 귀신처럼 저 멀리 이동해 있었다.

    어민이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 청년은 이미 멀어진 뒤였다.

    이 청년은 허리춤의 호리병을 끌러 술로 입을 축이고는 어느 좌판으로 걸어가더니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는 진지한 얼굴로 구슬 장식을 고르고 있는 청삼 차림의 다른 청년 어깨를 툭 두드리고는 놀리듯 말했다.

    “심협, 자네는 노총각이 어찌 여인네들 장신구를 매일 한참이나 고르고 그러는가?”

    놀리는 이는 백소천, 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사람은 심협이었다.

    그들이 이곳 해아성에 도착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심협이 먼저 나서서 며칠 머물면서 구경이나 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선행대회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백소천도 그의 요청에 따라 해아성에 머물렀다. 다만 그는 심협이 갑자기 머리장식 같은 여인네들의 장신구에 흥미를 보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심지어 심협은 요 며칠 동안 성안을 이미 수도 없이 돌아다니고도 여전히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지 못한 모양이었다.

    백소천은 장신구에 도무지 관심이 없었기에 줄곧 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술을 찾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닷가 도시는 대부분 어업을 위주로 하여 농사를 짓는 농가가 드물었고, 원료가 부족하니 술 빚는 데는 당연히 내륙만 못했다.

    그는 며칠을 머물고는 흥미를 잃고 심협을 재촉해 바닷가로 내려왔다. 한데 심협이 여기 와서도 좌판에서 마음에 드는 구슬 장식이나 찾고 있을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잊었소? 내게는 약혼녀가 있소.”

    심협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그야 말만 들었지, 내 이제껏 본 적이 없잖나.”

    백소천이 입을 삐죽대며 말했다.

    “조급해 마시오. 이번에 보타산에 가면 보게 될 테니.”

    심협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뭣? 그 말은…… 자네 약혼녀인 사촌 누이가 보타산에 있다는 겐가?”

    백소천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생긴 듯 캐물었다.

    “채주…… 그녀는 당시 보타산의 선사에게 제자로 거두어졌소. 나는 한참 후에야 이곳에 올 기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지금 오게 됐지 뭐요.”

    심협은 그때를 회상하면서 피식 웃었다.

    “이 사람 참…… 오랜만에 만나는데 머리 장식을 선물로 준단 말인가? 그녀도 수사라면 법기를 선물하지 않고?”

    백소천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중한 것은 마음 아니겠소? 더구나 법기를 선물하려면 그녀와도 잘 맞아야 하지 않소. 나는 지금 그녀가 수련하는 공법이 무엇인지도 모르오.”

    심협은 씩 웃으며 대꾸하고는 마침내 만듦새가 제법 섬세한 매화 비녀를 하나 골랐고, 계산을 하고는 정교한 나무 상자에 잘 담아 챙겼다.

    “전에 보타산에서 제자를 보내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영접할 것이라 하였는데,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구려.”

    심협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보타산은 남해에서도 바다 바깥에 있는 선산이라네. 꽤나 큰 섬인데, 부속된 열여덟 개의 작은 섬들에 둘러싸여 있지. 예전에는 늘 그중의 성자도(星子島)에서 안내를 받았는데, 올해도 그럴 것 같네.”

    백소천이 잠시 생각해보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곧장 성자도로 갑시다.”

    심협의 말에 백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곧 인적이 별로 없는 해변 모래사장으로 가서 각자 비검을 조종하여 두 줄기 무지갯빛으로 변해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쏜살같이 날았다.

    때는 한여름이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고, 바다 위로는 미풍이 불어 간간이 파도가 넘실거렸다.

    두 사람은 곧장 수백 리를 날아 수많은 크고 작은 섬들을 지나쳤지만, 그때까지도 보타산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

    “소천 사형, 이쪽이 맞소? 어찌 보타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것이오?”

    심협은 앞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의심스러운 듯 물었다.

    “보타산은 불가의 중요한 곳이고 관세음보살의 수행 도장이거늘, 어디 그리 쉽게 찾아낼 수 있겠는가? 아까 말한 열여덟 개의 섬을 기억하나? 이는 자체로 하나의 법진이라네. 주도(主島)를 호위하며 엄폐 법진을 이루지. 들어가는 통로를 찾지 못하는 자는 그저 섬을 빙빙 돌기만 할 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백소천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래서…… 종문이 있는 곳을 찾을 방법이 있긴 하오?”

    심협이 짐짓 불만스러운 척 물었다.

    “그야 당연하지! 오기 전에 절에서 이미 내게 증표를 주었네. 이 물건이 안내하는데 어찌 못 찾을 리 있겠는가?”

    백소천은 그렇게 말하며 팔을 높이 쳐들었다.

    그의 손목 부분에는 붉은 실이 한 가닥이 묶여 있었고, 그 위로 물고기 모양의 신부(信符: 출입증)가 달려 있었다. 마침 바람을 거슬러 휘날리면서 물고기의 꼬리가 남서쪽 방향을 향해 살짝 흔들렸다.

    백소천이 팔을 어떻게 움직이든 휘날리는 물고기 모양의 신부는 꼬리가 한결같이 그 방향만을 가리켰다.

    “사형은 이 신부를 가지고 있는데, 왜 국사께서 내게는 주지 않으신 거요?”

    심협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우리 화생사와 보타산은 같은 불문에 속해 있으니 아무래도 자네들 대당관부보다는 훨씬 가까운 사이 아니겠는가.”

    백소천은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하긴…… 자, 길을 안내하시지요. 하하!”

    심협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따라오기나 하게.”

    백소천은 대답하고는 계속해서 신부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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