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94화 (494/1,214)

494화. 마혼의 환생

심협의 낯빛이 이상한 것을 본 백소천이 급히 물었다.

“어찌 그러는가?”

심협이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하자 백소천도 허탈한 듯 넋이 나갔다.

“어찌 그럴 수가……. 이 약은 약효가 그리 뛰어나 수명을 늘려주는 효과를 지녔다는 것을 나까지도 느낄 수 있었는데…… 어찌 아무 효과가 없단 말인가?”

낙담한 심협은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심형, 그리 낙심할 것 없네. 우리 식견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으니 먼저 장안으로 돌아가서 원 국사님과 정 국공께 가르침을 청하게. 그분들이라면 원인을 알지도 몰라.”

백소천이 제안에 심협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낙심한 터라 그런 간단한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구려! 어서 장안성으로 돌아갑시다!”

두 사람이 장보실을 나서자 기련미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심협이 안에서 수련하느라 영압이 용솟음친 탓에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서 기다린 것이다.

“두 분께서는 원하시는 물건을 다 찾으셨습니까?”

기련미가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예, 길 안내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 왕자님, 우리는 급한 일이 있어 장안성으로 돌아가야 하니 이만 인사드리지요.”

심협은 기련미를 향해 공수하고는 몸을 날려 한 줄기 푸른 빛으로 변해 앞으로 날아갔다.

백소천도 기련미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는 금빛으로 변하여 뒤를 바짝 좇았다.

* * *

하얀 빛 한 줄기가 적곡성에서 쏘아져 나와 별똥별처럼 곧장 동쪽을 향해 내달리더니 잠깐 사이에 멀리 하늘가로 사라졌다.

하얀 비주 위에는 가부좌를 틀 심협이 눈을 감은 채 몸속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수명을 늘리지 못한 원인은 찾을 수가 없었다.

선미에 가부좌를 틀 선아가 손을 들고 휘두르자 금빛이 번쩍 스치더니 첨과의 시신이 떠올랐다. 이어서 그가 손가락을 구부려 첨과의 미간을 짚자 손끝에 금빛이 반짝였다. 선아는 한참 뒤에야 손가락을 거둬들였다.

“금선대사님, 뭔가 발견하셨습니까?”

백소천이 다가와 물었다.

심협도 법력 파동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별다른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만, 이 시신과 그때의 전투로 미루어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첨과는 절대 평범한 마화(魔化)된 수사가 아닙니다.”

“대사께서는 어찌 그리 생각하십니까? 이 시신에 어디 이상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아니면 화염을 불태울 수 없기 때문입니까?”

심협이 다가오며 물었다.

“그것도 그렇게 생각한 이유 중 하나이긴 합니다. 한데 첨과의 시신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는 저와 아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선아의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백소천은 어리둥절해 되물었다.

“대사님과 비슷하다고요?”

“그 말씀은……?”

심협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첨과는 마기에 물든 평범한 인간족이 아니라 어떤 이의 환생인 듯합니다.”

선아가 어린아이답지 않은 묵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가 마족의 환생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백소천도 안색이 굳었다.

한편, 심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이미 첨과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었던 그로서는 이제 정말로 첨과가 다섯 마혼의 환생 중 하나임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이 현세에서 우연한 일들이 겹쳐 환생한 치우의 다섯 마혼 중 하나를 죽였으니, 현세나 내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요. 허나 소승은 보고 들은 것이 많지 않으니 이 시신을 원 국사님과 정 국공께 가져가 보여드리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선아가 작게 불호를 읊조리며 말했고, 백소천과 심협도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도 곧 첨과의 시신을 살펴보고는 이내 제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이번 서역행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마혼의 환생 하나를 제거한 것만 해도 꽤나 큰 수확이라 할 만했다. 만약 다른 네 마혼을 더 찾아내 제거할 수 있다면 마겁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앞선 꿈속에서 그는 또 다른 마혼에 대한 단서도 알게 되었다.

심협은 고개를 숙이고 손목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눈을 감았다.

* * *

비주는 구름을 가르고 달을 지나 곧장 대당 국경으로 돌아온 뒤, 장안성으로 되돌아왔다.

선아의 이번 서역행은 원천강과 정교금도 매우 중시했기에, 세 사람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국공부 대전에서 그들을 만났다.

자석 장로 또한 줄곧 장안성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소식을 듣고는 달려왔다.

“……대략 이리 된 일입니다.”

백소천은 그간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렇다면 마족들은 이미 봉인을 뚫기 시작한 게로구먼. 그 임달 대사라는 이름은 나도 들어봤네만, 마도에 속한 자일 줄이야.”

정교금이 깊게 탄식했다.

“이것은 첨과의 시신이온데, 저희가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국사님과 국공께서는 경지가 심오하시니 분명 뭔가를 알아내실 수 있으실 테지요.”

선아가 손을 휘두르자 첨과의 시신이 앞쪽 바닥 위에 나타났다.

원천강은 첨과의 시신을 두어 번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리고는 불진을 휘둘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불진이 바람을 타고 길어지면서 마치 하얀 비단처럼 첨과의 시신을 휘감았다.

“드릴 말씀도 모두 드렸고 시신도 전해드렸으니, 소승은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선아는 두 사람을 향해 예를 갖추고는 인사를 건넸다.

“예, 금선대사께서는 편한 대로 하시지요.”

정교금은 선아가 먼저 일어나는 것이 조금 뜻밖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선아와 자석 장로는 밖으로 나가 금세 모습을 감추었다.

심협은 선아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가 금선의 기억을 일부 회복한 뒤 오는 내내 그들과 이야기도 잘 하지 않았고, 심지어 사람 자체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무엇을 하러 가려고 갑자기 떠난 것일까?’

한편, 원천강과 정교금은 첨과의 시신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표정이 이내 어두워졌다.

“저…… 국사. 설마……?”

정교금이 원천강을 돌아보며 말끝을 흐렸다.

“맞습니다. 이 사람은 바로 마족의 환생 중 하나예요. 그가 스스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우리도 그의 진짜 정체를 꿰뚫어볼 수 없었을 겁니다.”

원천강이 내심 긴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원 국사께서도 알아보시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 주변의 누구라도 마족의 환생일 수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백소천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럴 리는 없다네. 이런 환생법은 지부를 속여야 하는데, 대가가 상당하지. 그러니 환생할 수 있는 숫자가 분명 많지는 않을 게야. 내 예상대로라면 아마 열 명을 넘지 못할 것이네.”

원천강의 대답에 백소천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그렇지만 마족이 그런 환생법을 손에 넣었으니 분명 조만간 사용할 것입니다. 즉시 대책을 세워 그 환생한 이들을 찾아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큰 후환이 될 겁니다.”

정교금이 말했다.

“정 국공의 말씀이 옳습니다.”

원천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 국사님, 정 국공 대인. 두 분께 한 가지 아뢸 것이 있습니다. 장안에 귀환이 일어나기 전, 제가 일찍이 장안성에서 점쟁이 노인을 한 분 만나 이야기를 좀 들은 적이 있사온데, 마족의 환생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진위는 알 수 없지만요.”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오, 그 사람이 뭐라더냐? 어서 말해보아라!”

정교금이 퍼뜩 심협을 돌아보며 재촉했다.

심협은 점쟁이 노인에게 들은 것으로 둘러대고는 환생한 치우의 다섯 분혼(分魂)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 이야기는 너무도 허황된 이야기 같았지만, 원천강과 정교금의 표정은 수시로 변했다.

평범한 마족의 환생만으로도 놀랐건만, 하물며 치우의 나누어진 혼백이라니!

“그 점쟁이 노인이 어찌 생겼더냐?”

정교금이 캐물었다.

“그 사람은 키가 크지 않고, 낡은 도포를 입었으며, 긴 수염 세 가닥을 길렀습니다. 이목구비는 제법 비범했고요.”

심협은 그의 용모를 대강 묘사했다.

“생김새를 바꾸는 것은 아주 쉬우니 그걸 물어봐야 그리 큰 의미가 없소. 한데 그자가 또 무슨 얘기를 하던가?”

원천강이 전에 없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는 이미 두 환생한 마혼의 종적을 알아냈다고 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장안에 있사온데, 여인이고, 손목에는 매화 표식을 가지고 있다 하였지요.”

심협은 감히 원천강과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워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네가 전에 내게 손목에 매화 표식을 지닌 여인을 찾아달라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구나!”

정교금이 퍼뜩 깨닫고는 말했다.

“그러합니다. 저도 원래는 반신반의 하였사오나, 그 일이 천하 창생과 관련 있음을 생각해보니, 거짓이라 믿고 방심하기보다는 사실이라 믿는 편이 나을 듯하여 정 국공께 청한 것입니다.”

“이는 중대한 일이니 심 소우는 잘 생각했네. 이따가 내 사람들을 시켜 찾는 것을 돕도록 하지. 그럼 또 다른 마혼의 환생은……?”

원천강이 말했다.

“그 사람 말에 따르면, 또 다른 이는 서역에 있다고 하였는데, 미친 승려라고 하였습니다.”

심협이 계속해서 말했다.

“미친 승려라……. 첨과가 바로 그 미치광이 승려인가?”

낯빛이 변한 백소천이 긴장된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노인의 말을 원래 믿지 않았는데, 이번 서역행에서 이 첨과라는 이를 만나고 일련의 일들을 겪다보니, 그 점쟁이 노인의 말이 헛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협은 원천강과 정교금을 바라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중대한 사안이니 우연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네. 정 국공, 잠시 후에 이 일을 폐하께 알리십시다.”

원천강은 잠시 생각하더니 정교금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정교금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정 국공 대인, 손목에 매화 표식을 지닌 여인을 찾는 데 진전이 있습니까?”

심협이 정교금에게 물었다.

“장안성 인구는 백만에 달하니 손목에 매화 표식을 지녔다는 특징만으로는 찾기가 쉽지 않지. 아직 별다른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정교금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것과 관련해 서역에 있을 때 문득 떠오른 일이 있습니다. 지부에서 경하용왕과 대전을 치를 당시 제가 경하용왕의 여식인 마수수를 만난 적이 있사온데, 그 여인의 손목 위에 흉터가 있었습니다. 그게 지금 생각해보니 매화 모양과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심협의 말에 정교금의 눈빛이 굳어졌다.

“그게 정말이냐?”

“분명 맞을 겁니다. 그 매화 표식이 저는 줄곧 문신 같은 것이리라 여겼사온데, 이번에 적곡성에서 손에 흉터를 지닌 사람을 보고 그제야 흉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정교금은 원천강을 바라보았고, 원천강은 살짝 실눈을 뜨더니 곧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수수란 여인이 의심스러우니, 내 즉시 사람을 보내 그녀의 행방을 조사하도록 하마.”

정교금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들은 오는 내내 고생하였으니 일단 물러가서 쉬게. 이 첨과의 시신도 여기 남겨두면 되네. 뒷일은 우리에게 맡기게나.”

원천강이 불진을 휘두르며 말하자 백소천이 불쑥 앞으로 나섰다.

“원 국사님,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수고로우시겠지만 두 분께 한 가지 청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오, 무슨 일인가?”

정교금이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 제 일이 아니오라 심 도우의 일입니다. 그가 이전에 첨과를 막아내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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