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93화 (493/1,214)
  • 493화. 오계국의 답례

    성령법단사 정전(正殿). 족히 5장은 되는 거대한 금빛 연화대가 있었는데, 그 위에는 맹렬한 불길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중이었다.

    불길 속에는 첨과의 두 토막 난 시체가 놓여 있었는데, 겨우겨우 한데 이어놓은 상태였다.

    주위는 거센 불길에 휩싸였지만, 놀랍게도 첨과의 시신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듯했다.

    “정말 이상하기도 하지. 이미 죽었는데 어찌 시신은 이리 튼튼한 게야?”

    백소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곳에는 백소천 외에도 심협과 금선, 서역 36국의 여러 고승과 오계국 국왕, 그리고 기련미도 있었다.

    첨과의 시신을 훑어보던 심협의 눈에 날카로운 빛이 한 가닥 스쳤다.

    지난번 꿈속 세상에서의 단련을 통해 그의 영각(*靈覺: 사물의 변화에 대한 영적인 감각)과 신식의 감지력 또한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첨과의 시신에 보이지 않는 힘이 뒤덮여 주위의 불길을 차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힘은 보이지 않고 실체도 없어 매우 모호했지만 그는 그것이 마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불로 파괴할 수 없다면 다른 힘을 쓰지요. 이렇게 놔두면 후환이 될 겁니다.”

    서역의 고승 한 사람이 말했다.

    이전의 대전투에서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마족들의 갖가지 기괴한 수법을 본 사람들은 두려움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이 막 반대를 하려는데, 옆에 있던 선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승이 보기에는 합당치 않은 듯합니다. 이 시신은 엄청난 마혼에 빙의된 적이 있으니 자세히 탐구한다면 그 속에서 마족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여러분께서 이 시신을 오계국에 두는 것이 께름칙하시다면 소승이 대당으로 가지고 돌아가 처리하는 것은 어떠하신지요?”

    서역의 승려들은 그 말에 어안이 벙벙해지더니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첨과가 적곡성에서 이토록 난리를 일으켰는데 외부인이 시신을 가져가겠다니, 온당치 않았다.

    그러나 본래도 오계국에서 명성이 높았던 선아는 앞선 전투를 거치면서 이제는 거의 살아 있는 부처로 여겨졌다. 적곡성 안의 불제자들을 비롯하여 적곡성의 평범한 백성들까지 선아를 지극히 존경하고 우러러보았다. 그러니 선아의 말이라면 신중히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첨과의 시신을 가져간다면 자신들은 걱정을 더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야, 선아 성승께서 수고해주시오.”

    오계국 왕도 찬성했다. 왕은 첨과의 시신이 어떻게 처리되든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오계국에 더 이상 영향을 주지만 않으면 그뿐.

    “감사합니다.”

    선아는 사람들을 향해 예를 갖춘 뒤, 앞으로 다가가 손을 휘둘렀다.

    금빛이 손에서 날아가 불길 속 첨과의 시신을 휘감고 거둬들였다.

    심협은 선아가 법력을 일부 회복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능숙하게 다루는 것을 보아하니 금선자의 많은 기억을 되찾은 듯했다.

    “천도법회는 이미 끝났으니, 우리 세 사람은 작별인사 올리겠습니다.”

    선아는 오계국 왕과 주위의 승려들에게 예를 갖추고는 작별을 고했다.

    “세 분은 조급해 마시오. 그대들이 우리 오계국을 도와 마족의 음모를 괴멸하였는데, 아직 세 분께 제대로 답례도 못 하지 않았소? 내 이미 궁에 축하연을 준비해두었으니 세 분께서 꼭 왕림해주시길 바라오.”

    왕이 얼른 권했다.

    “폐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만, 저희 모두 이방인인지라 연회는 필요치 않습니다.”

    선아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옳습니다. 폐하의 호의를 저희는 마음으로만 받겠습니다.”

    심협은 수명이 심하게 부족해졌기 때문에 서둘러 장안성으로 돌아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니 잠시도 여기서 지체할 수는 없었다.

    왕은 세 사람의 안색을 보고는 그들이 정말로 시끌벅적한 연회에 참석할 마음이 없음을 깨달았기에 더는 권하지 않았다.

    “세 분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연회는 그만 둡시다. 허나 세 분의 큰 은혜에 보답하지 않으면 과인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오. 이리 합시다. 성련법단사는 이미 뿌리가 뽑혔고, 그들이 긁어모은 수련 물품들은 모두 후전(後殿)의 장보실(藏寶室)에 두었소. 세 분께서는 가서 마음대로 고르시오. 오계국 온 백성의 작은 성의요.”

    오계국 왕이 말했다.

    심협은 주머니 사정이 궁하던 차에 몹시 마음이 동했고, 백소천 역시 구미가 당기는 표정이었다.

    “소승은 괜찮습니다. 심 도우와 백 도우께서는 다녀오시지요.”

    선아가 심협과 백소천의 표정을 알아채고는 말했다.

    “그럼 염치불구하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심협은 재빨리 공수했다.

    “그럼 부왕께서는 여기서 말씀 나누시지요. 제가 심 선사님과 백 선사님을 모시겠습니다.”

    옆에 있던 기련미가 거들자 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겠지.”

    기련미는 곧 심협과 백소천을 성련법단사 깊은 곳으로 안내했고, 이들은 어느 대전 앞에 도착했다.

    “물건들은 모두 안에 있습니다. 두 분께서는 잠시 기다리시지요.”

    기련미는 곧 영패를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하얀 빛 한 줄기가 대전의 돌문 위에 닿자 돌문에 한 차례 빛이 일렁이더니 천천히 열렸다.

    대전 안에는 수십 개의 거대한 나무 진열대들이 있었다. 진열대는 네다섯 층이었고, 각 층마다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광석이나 영초도 있고,  부기(符器), 법기 등도 아주 많았다. 다만 이 물건들은 정리가 되지 않고 제멋대로 놓여 있었다.

    “조금 전 각지의 성련법단사에서 몰수해온 것으로, 아직 세세하게 분류하지 못했습니다. 두 분께서는 마음껏 보시고, 가져가고 싶은 만큼 가져가십시오.”

    기련미는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정말 마음껏 가져가도 됩니까? 우리 저물법기가 엄청나게 커서 여기 있는 물건들을 몽땅 쓸어갈지도 모르는데요?”

    백소천이 키득거리며 농담을 던졌다.

    “성련법단사의 횡포는 우리 오계국의 커다란 폐단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 황실에서는 진작 그들을 제거고 싶었지만, 성련법단사의 실력이 너무나 강력하여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요. 세 분께서 이 독종(毒腫)의 뿌리를 뽑아주셨으니 우리 오계국에게는 더없이 큰 공로입니다. 그러니 어찌 이런 재물 따위에 비하겠습니까?”

    기련미 역시 웃으며 답했다.

    심협은 그제야 오계국 왕이 왜 자신들에게 이토록 친절했는지 깨달았다.

    이렇게 된 이상, 그도 더는 예의를 차리기보다는 필요한 것을 챙기기로 하고 대전 안을 돌아다니며 쓸 만한 보물을 찾기 시작했다. 다만 그의 경지는 이미 상당히 높아졌고, 당장은 법기도 부족하지 않아서 한참을 살펴보고도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은 찾지 못했다.

    도리어 백소천은 스스럼없이 물건을 몇 가지나 골라 거두었다.

    모퉁이 하나를 돈 심협은 잠시 멈춰 서서 진열대 하나를 살폈다. 그 위에는 하얀 조개껍데기가 10여 개 놓여 있었는데, 금빛 광점(光點)들로 장식되어 있어 영기가 넘쳐보였다.

    “백성패(白星貝)!”

    그는 크게 기뻐했다. 백성패는 은신부를 만드는 주재료로,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런데 여기에 이렇게 많다니!

    심협은 즉시 백성패들을 모조리 거둬들였다.

    그 옆에는 핏빛 옥돌도 두 덩이 놓여 있었는데, 모두 태양석이었다. 이 태양석들은 영기 파동은 얼마 없었지만, 기운이 넘쳐흘러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매우 순수한 태양석이군. 내게는 별 쓸모가 없지만, 보통 사람들이 몸에 지니고 다니면 정신을 맑게 하고 수명을 연장시켜주지. 나중에 평안부를 두 개 새겨서 백형의 인편을 통해 아버지와 둘째어머니께 보내달라고 해야겠어.’

    심협은 그렇게 마음먹고 태양석들을 챙겼다.

    그는 잠시 후 둔지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 두 가지를 찾았다.

    그러나 이후 대전의 남은 곳을 둘러보고도 더는 쓸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은신부와 둔지부의 영재들을 찾아낸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한데 막 나가려던 그는 문득 한 나무 상자에 눈길이 갔다. 이 나무 상자는 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는 황토색 뿌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주름이 가득해서 퍽 볼품없는 뿌리였다.

    하지만 심협은 황토색 과실을 보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은……?”

    “오, 심형 자네는 어떤 물건을 찾았는가? 아니, 이게 뭐야! 쪼글쪼글한 것이 영력도 아주 낮구먼.”

    가까이 다가온 백소천은 궁금한 듯 황토색 과실을 훑어보고는 혀를 찼다.

    “이것은 팔각연엽(八角蓮葉)이오. 보기 드문 선과(仙果)인데, 봉래선도(*蓬萊仙島: 전설 속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산)에만 있소. 복용하면 공력을 크게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명을 적잖이 늘릴 수 있다 하오. 다만 이 영삼(靈蔘)은 생김새가 볼품없고 약효가 숨겨져 있어 알아보기가 어렵지.”

    심협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팔각연엽?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심형은 이번에 수명이 그리 많이 손실되었으니 얼른 이것을 먹게!”

    심협은 꿈속의 취보당 유적에서 얻은 옥간에서 본 덕에 이 팔각연엽을 알아볼 수 있었다. 더욱이 그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었기에, 체면 차리지 않고 두세 입에 꿀꺽 삼켰다.

    팔각연엽은 곧장 녹아 순수한 원기로 변하여 그의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심협이 가부좌를 틀고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약효를 흡수하니 몸의 상처가 빠르게 호전되었다.

    반 시진쯤 뒤, 그의 부상은 완쾌되었고, 법력이 경쾌하게 몸속으로 전해졌다. 그의 몸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며 파동을 일으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백소천은 양손을 급하게 휘둘러 금제를 한 겹 펼치고 대전 안의 물건들이 망가지지 않도록 빛 파동의 충격을 막아냈다.

    팔각연엽의 약효는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뛰어나 심협의 부상을 치료한 뒤에도 반이나 남았다. 그는 물론 이를 낭비하지 않고 공법을 운공하여 계속 약효를 흡수했다. 그러자 경지가 빠른 속도로 치솟았다.

    심협은 이런 상황이 놀랍고 기쁜 동시에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자신은 출규기를 돌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초가 완전히 자리 잡기도 전이니 영약의 도움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발전할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심협은 줄곧 스승의 가르침 없이 홀로 더듬더듬 수련해온 탓에 수련의 깨달음은 깊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꿈속 세계에서 겪은 무수한 전투와 수련의 깨달음이 그의 현실 속에서도 큰 역할을 했기에 이토록 맹렬한 기세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는 이런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가 팔각연엽의 모든 약효를 흡수한 것은 한나절 뒤의 일이었다.

    이제 그의 수련경지는 출규 초기의 정점에 이르렀고, 중기까지는 딱 한 걸음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심협이 눈을 떠보니 주위가 금빛 금제에 뒤덮여 그의 몸에서 점점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을 막아내고 있었다.

    백소천은 금제 바깥에 서서 이를 악물고 버티는 중이었는데, 꽤나 고생스런 표정이었다.

    “백형, 내가 경솔했소. 이렇게 제멋대로 수련을 시작해버리다니. 백형이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소.”

    심협은 황급히 주위의 요동치는 법력을 거둬들이며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나야 괜찮네. 자네 경지가 또다시 올랐군! 정말 축하하네. 하하하! 아, 그나저나…… 자네 수명은…… 어떠한가?”

    백소천은 금색 빛 장막을 흩어버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심협도 그제야 그 문제가 떠올라 황급히 눈을 감고 검사를 해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기대에 차있던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수련 경지가 크게 발전했음에도 어째서인지 수명은 전혀 회복되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이미 수명을 늘려주는 영약을 많이 먹어서 더는 영물도 소용이 없게 된 것인가?’

    심협은 절망적인 심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처음 증수유영단을 만들 때 단양자가 비슷한 말을 하긴 했지. 정말 약에 대한 내성이라는 게 있단 말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