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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89화 (489/1,214)
  • 489화. 연이은 위기

    “음, 바로 공격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것을 기다리기 위함이었소?”

    심협이 의아한 듯 물었다.

    “당신이라는 커다란 장벽을 밖에서 뚫지 못하니 안에서부터라도 뚫을 수밖에. 호호호!”

    청령현녀는 장난스런 목소리로 웃었다.

    반면 심협은 점점 낯빛이 안 좋아졌고, 복부의 이상한 느낌도 갈수록 강렬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참지 못하고 앞으로 털썩 고꾸라졌다. 뒤이어 그의 몸을 감쌌던 노란 광구도 사라져버렸다.

    노란 광구에 금이 가는 순간, 검은 화염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꾸역꾸역 밀고 들어가 심협의 몸 위에 떨어졌다.

    “크아아!”

    심협은 자신도 모르게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애써 일어나 반대편의 돌벽을 향해 돌진했다.

    이를 본 청령현녀가 손을 들어 두 손가락을 모으고 휘두르자, 위에서 까만 빛이 곧장 내리꽂혀 순식간에 석실 천장을 심협과 함께 세로로 토막 냈다.

    곧 심협의 몸에서 핏줄기가 떠오르면서 몸이 채 갈라질 틈도 없이 위쪽에서 내리치는 부서진 돌들에 파묻혔고,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청령현녀는 일격에 그를 벤 뒤 돌아볼 것도 없다는 듯 검은 빛을 번쩍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한데 그녀가 떠난 뒤, 어지러이 널린 돌들 속에서 심협의 시신이 갑자기 색이 바랬다. 그러더니 토막 난 하얀 종이 인형으로 변하여 불타올라 잿더미가 되었다.

    동시에 수십 리 밖 숲속에 그림자 하나가 조용히 나타났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탈출한 심협이었다.

    “아슬아슬했다. 화 도인이 준 종이 인형이 대신 화를 입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큰일 날 뻔했어.”

    심협은 뒤를 슥 돌아보고는 두려운 기색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조금 전 산중턱에서 청령현녀라는 마족 여인이 쏘아 보낸 검은 마염은 확실히 그의 몸속에 봉인되어 있던 회백색 회오리와 약간의 연결고리가 생겼다. 하지만 실제로 마기의 반발작용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그저 심협이 이 상황을 눈치채고 그런 시늉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인의 마지막 공격은 실로 날카로워서 순간 심협이 종이 인형을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 그는 회복하기 힘든 중상을 입었을 터였다.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니 어서 떠나야겠군.”

    심협이 두 팔을 벌리자 팔뚝에 금색과 은색 빛이 번쩍이더니, 몸이 눈 깜짝할 사이 솟구쳐 올랐고, 그는 그대로 멀리 달아날 생각이었다.

    한데 그때, 그가 날아오른 궤적 위로 검은 그림자가 더없이 정확하게 나타나 홱 내리눌렀다. 그러자 허공에 거대한 검은 용의 발이 심협을 향해 정면으로 뻗어왔다.

    검은 용의 발에서는 어두운 빛이 뿜어져 나와 사방의 허공까지 뒤틀리고 변형될 정도였다. 만약 심협이 그대로 진시천리 둔술을 강행했다면 분명 이 힘에 붙들려 검은 용의 거대한 발에 붙잡혔을 것이다.

    “하, 정말이지 끈질기군.”

    그는 어쩔 수 없이 둔술을 중단하고는 공중에 멈춰 섰다. 이어서  손목을 돌리자 손바닥 한가운데에 진해빈철곤이 나타났다.

    심협은 곤봉을 세차게 휘둘러 검은 용의 발을 후려쳤다. 동시에 황정경공법을 전력으로 운행했고, 뒤에 여섯 용과 코끼리의 거대한 금빛 그림자가 전부 나타나 그가 일격을 가할 때 일제히 맞은편으로 압박해갔다.

    높은 하늘에 한순간 금빛이 뻗어나갔고, 용과 코끼리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강력한 위압이 뿜어져 나와 사방의 기류를 압박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그 마족 여인에게로 잇달아 몰려갔다.

    진해빈철곤도 허공에서 빠르게 늘어나 온몸에 눈부신 금빛을 반짝이며 검은 용의 발 위를 세게 내리쳤다.

    콰쾅!

    충돌한 곳에서 강력한 충격파가 휘몰아치고 회오리 장벽이 요동치며 사방을 휩쓸었다. 이에 아래쪽 숲은 반경 수십 리가 날아가버렸다.

    검은 용의 발은 이 위력에 부서져 점점이 검은 빛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허공이 다시 잠잠해지기도 전에 청령현녀가 쏜살같이 날아왔다. 그녀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칠흑 같은 장검을 손에 쥔 채 불쑥 심협의 가슴을 찔렀다.

    미리 방비를 하고 있었던 심협은 진해빈철곤을 치켜들어 가뿐하게 장검을 막아내고는 곧바로 발천난봉을 시전하려 했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그 새카만 장검을 막아내는 순간, 검끝이 파르르 떨리더니 갑자기 흐릿해져서는 그대로 수십 줄기 검영으로 변해 심협의 전신 요혈을 향하여 돌진해올 줄이야!

    심협은 재빨리 노란색 비단 손수건의 힘을 발휘하여 몸을 보호하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늦은 때였다. 이에 그는 곧바로 의식을 움직여 식해에 감춰진 정해주를 작동시켜 환한 빛을 내뿜었다.

    거의 동시에 그의 온몸 바깥에는 겹겹이 파란 빛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와 도도한 파도처럼 사방으로 돌진했다. 그리고는 빽빽한 검영들과 여인의 몸을 그대로 백장 바깥까지 밀어냈다.

    “정해주! 우마왕이 그 보물까지 당신에게 주었단 말이야?”

    청령현녀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협은 그녀의 의문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몸을 날려 진해빈철곤을 맹렬히 휘두르며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허공에서 휙휙 바람소리가 울리며 촘촘한 곤봉 그림자가 사방에서 떠올라 청령현녀를 끊임없이 에워쌌다.

    그녀는 눈빛을 희미하게 반짝이며 한 손으로 법결을 맺더니 그 손을 아래로 내던지듯 휘둘렀다. 그러자 들고 있던 검은 사검(*蛇劍: 뱀처럼 구불구불한 모양의 검)이 순간 검은 빛을 강하게 내뿜으며 튀어나가 허공에서 수백 마리의 길고 검은 뱀으로 변해 곤봉 그림자들을 향해 하나씩 돌진했다.

    온 하늘에 가득한 곤봉그림자가 검은 뱀과 한데 뒤얽히면서 곤봉이 힘을 모을 틈도 없이 완전히 흐트러져버렸다.

    이에 심협은 더 이상 진해빈철곤을 휘두르지 않고 직접 청령현녀를 향해 돌진했다.

    여인은 이를 보고는 손바닥에서 검은 사모(*蛇矛: 창날이 뱀처럼 구불구불한 창)를 꺼내 맞붙었다.

    하나는 곤봉을, 하나는 창을 휘두르면서 둘은 놀라운 속도로 허공에 줄줄이 잔상을 드리웠다. 심협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 여인이 힘 또한 대단하여 그가 전력으로 황정경을 운공한 상태에서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수십 합을 싸우고 나자, 청령현녀는 느닷없이 거센 일격으로 심협을 몰아붙이며 매서운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그녀의 뒤쪽 허공에 잔물결이 일렁이더니 까맣고 거대한 용이 나타나 두 눈을 부라리고 수염을 흩날리면서 심협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이어 이 흉악한 용의 입에서부터 시커먼 마염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던 심협은 재빨리 천책을 꺼내 들었다. 천책에서는 찬란한 금빛이 솟구쳐 나와 거세게 몰려드는 마염을 모조리 흡수해버렸다.

    불과 몇 호흡 사이에 모든 마염들은 천책에 말끔히 흡수되었다. 하지만 심협이 한숨 돌리기도 전에 그의 머리 위에 문득 푸른 빛이 한 줄기 번쩍이더니 둘레가 1장쯤 되는 돌 받침대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눈 깜짝할 사이에 심협을 덮쳐왔다. 동시에 강렬한 피비린내가 심협의 얼굴로 훅 달려들었다.

    심협은 진해빈철곤을 치켜들고 돌 받침대를 뒤엎을 듯한 자세를 취했다. 한데 그때, 돌 받침대 위에서 구슬픈 울음 같은 불분명한 소리가 마치 마음(魔音)처럼 그의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심협은 별안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수천수백에 달하는 머리 없는 그림자들이 소리 없이 주위에 떠올라 마치 악귀들처럼 달려들었고, 더없이 강렬한 원념이 한데 뒤섞여 거의 순식간에 그의 마음과 정신을 함락시키려 했다.

    다행히도 정해주에서 홀연히 빛이 반짝이며 흑암 가운데에서 그를 위해 한 줄기 빛을 비춰주었다. 이에 심협은 즉시 기합을 내지르며 신식의 힘을 불러일으켜 모든 원념을 쫓아버렸다. 그제야 눈앞에 다시 빛이 보였다.

    그러나 그가 시야를 되찾았을 때, 진해빈철곤은 이미 위에서 내리치는 푸른 돌 받침대를 떠받치고 있었고, 그 위에는 칼에 베인 흔적들과 많은 핏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쿵!

    이때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진해빈철곤이 돌 받침대를 떠받치는 순간, 보이지 않는 구속력이 심협을 그 자리에 묶어 놓았다. 그러자 조금 전의 원념들이 다시 그를 뒤덮었고, 동시에 청령현녀도 재차 날아와 뱀 모양의 창을 치켜세우고 그의 명치를 향해 찔러왔다.

    심협이 일격에 가슴을 꿰뚫릴 것 같았던 바로 그때, 그의 눈빛이 갑자기 굳어지는가 싶더니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벌리고는 뭔가를 뱉어냈다.

    휙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진홍색 구슬이 그의 입에서 쏜살같이 튀어나와 눈 깜짝할 새에 여인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

    그 구슬은 나타나자마자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그것은 뇌 도인이 그에게 빌려준 치염단주(熾焰丹珠)였다.

    너무도 급작스러운 공격에 청령현녀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팔로 막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내찌르던 장창은 멈추지 않았다.

    장창이 심협을 찌르는 순간, 치염단주도 여인의 팔뚝에 꽂혔다.

    쾅!

    순간, 폭발음이 울렸다.

    치염단주에 담겨 있던 지폐화독(地肺火毒)이 순간 청령현녀 앞에서 폭발했고, 강력한 충격파가 그녀의 손목에 두른 비갑과 가면을 한꺼번에 깨뜨렸다. 청령현녀의 손에 들린 사모는 심협의 몸을 반쯤 찌르자마자 여인과 함께 밀려났다.

    심협은 부상에도 이를 악문 채 필사적으로 속박에서 벗어나 진해빈철곤을 휘둘렀고, 청령현녀는 창을 가로로 돌려 막아냈다.

    한데 그녀의 손목 부분을 본 심협의 동공이 순간 움츠러들었다. 연근처럼 새하얀 그녀의 손목에 놀랍게도 다섯 개의 핏빛 자국이 보였던 것이다. 마치 새빨간 매화 송이 같은…….

    “마혼의 환생!”

    심협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때, 청령현녀가 쓴 가면 한 귀퉁이가 깨지면서 헐거워졌다. 이에 가면이 떨어져 내리려 하자 뜻밖에도 그녀는 갑자기 장창을 거두고 가면을 덥석 붙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한편, 아래쪽 숲속이 시끌벅적하더니 땅에서 일고여덟 줄기 둔광이 날아올라 이쪽으로 몰려왔다.

    심협은 여인의 얼굴을 똑똑히 확인하고 싶었으나, 가슴의 부상이 제법 심했기에 더는 머물 수 없었다.

    그는 즉시 진해빈철곤과 치염단주를 거둬들이고 양팔을 벌렸고, 그의 몸에서 금빛과 은빛이 피어오르더니 전신이 별안간 두 가지 빛깔의 환영으로 변하여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청령현녀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심협은 단숨에 수만 리를 날아가 흑몽산을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노란색 비단 손수건으로 온몸을 가리고 어느 산골짜기를 찾아 내려왔다.

    그는 조용한 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대개박술로 상처를 치료하려 했지만, 느닷없이 나타난 마혼의 환생 때문에 마음이 요동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마혼의 환생은 그 하나하나가 마겁을 폭발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만약 그녀의 정체를 분명히 알아냈다면, 현세로 돌아가 미리 대비하여 그 싹을 잘라버릴 수 있을 터였다.

    어렵사리 부상을 회복한 심협은 소매에서 그 유리 옥병을 꺼내 그 안에 있는 어린 여우의 숨결이 이미 간당간당한 것을 보고는 서둘러 다시 진시천리 둔술을 펼쳤다. 물론 목적지는 적뢰산이었다.

    * * *

    적뢰산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심협이 이토록 빨리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그가 돌아왔을 때는 실패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심협은 마운동에 돌아오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어서 청망 도우를 불러주십시오! 서둘러야 합니다!”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했고, 우마왕도 아직 부상이 다 낫지 않아 창백한 낯빛으로 의아해하면서도 청망을 불러냈다.

    “이 일혼일백은 몹시 불안정합니다. 수고스럽겠지만 서둘러 이 혼백을 옥면공주의 몸속으로 돌려보내주십시오.”

    심협이 즉시 유리 옥병을 꺼내 넘기며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우마왕과 만세호왕의 안색이 변했다. 두 사람의 눈길 모두 옥병 위에 가 닿았고, 그 어린 여우 모습의 혼백을 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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