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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86화 (486/1,214)
  • 486화. 일혼일백(一魂一魄)

    우마왕은 그녀의 손을 가볍게 쥐고는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듯 웃었다.

    “청망 도우, 수고스럽겠지만 그녀를 도와 체내에 아직 숨은 병이 있는지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주십시오.”

    심협이 말하자 청망은 허가를 구하듯 우마왕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자기 주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앞으로 나와 한 손으로 여인의 머리 위를 가볍게 어루만졌다. 그의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검은 광채가 뻗어 나와 그녀를 뒤덮었다.

    잠시 후, 청망은 손을 거두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의 삼혼칠백(*三魂七魄: 불교, 도교에서 말하는 사람의 세 가지 혼과 일곱 가지 의식. 사람의 모든 혼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 온전하지 않고, 일혼일백(一魂一魄)이 다른 곳에 갇혀 있사옵니다. 앞서 갑자기 암살을 시도한 것 역시 누군가의 조종을 받은 탓으로 사료되옵니다.”

    “그 혼백이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겠는가?”

    우마왕이 물었다.

    “칠보영롱등(七寶玲瓏燈)을 만들어 혼백 간의 연결고리를 통해 찾아낼 수 있긴 하옵니다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소용이 없사옵니다.”

    청망이 말했다.

    “분명 그들의…… 윽!”

    우마왕은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가볍게 신음했다. 홍해아가 이미 술법을 시전하기 시작하여 한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삼매진화로 한 줄기 화선(火線)을 응결하여 우마왕의 상처에 집어넣은 것이다.

    “분명…… 그들의 소굴에 있을 것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지금 나는 움직일 수가 없구나.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 반드시 그 요마들을…… 깡그리 죽여 없앴을 터인데…….”

    우마왕이 이를 악물고 떨리는 목소리로도 매섭게 말했다.

    “이 아이의 일혼일백이 아직 마족의 수중에 있으니 우리는 섣불리 움직여서는 아니 될 것이네.”

    만세호왕이 여인을 내려다보며 조금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또한,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그녀의 일혼일백을 구출해내야만 합니다. 천책으로 기만당했으니 그들도 분명 그대로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녀의 혼백을 구해내지 않으면, 앞으로 곳곳에서 방해를 받게 될 테지요.”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홍해아는 쉬지 않고 삼매진화를 조종하여 우마왕 명치의 상처를 지졌다. 많은 양의 독혈이 타면서 검은 연무가 몽글몽글 솟았는데, 그 안에는 생살이 타는 냄새도 섞여 있었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어 보였던 우마왕은 이미 평소의 모습을 되찾은 상태였다. 다만 그의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흘러, 극심한 고통을 참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당장은 독혈을 통제할 수 있다 해도, 저의 부상은 짧은 시간에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그 검은 해골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니 한동안 시간을 벌긴 했습니다만, 그녀의 혼백을 구하는 문제가 남았군요.”

    우마왕이 주저하며 말했다.

    “나는 환화술(幻化術)에 능하니 내가 몰래 잠입하면 그 아이의 혼백을 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네.”

    만세호왕이 잠시 헤아려보더니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족이 다시 침범해오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니 호왕 선배님께서는 적뢰산을 지키셔야 합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저는 저 요마들이 둥지를 튼 흑랑산을 가본 적이 있는지라 그 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여인의 혼백을 찾는 일은 이 후배에게 맡기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심협의 머릿속에는 흑랑산의 피 웅덩이 속 자줏빛 공 안에 몸을 숨기고 있던 이상한 그림자가 떠올랐다. 옥면공주의 일혼일백을 조종한 이가 아마도 그자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심 도우의 말이 일리가 있긴 하네만, 이 일은 본디 우리 적뢰산의 일이 아닌가. 한데 어찌 자네에게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가게 하겠는가?”

    만세호왕이 잠시 주저하더니 말했다.

    “잊으셨습니까? 저는 적뢰산 옥호 일족의 객경입니다. 그러니 적뢰산의 일은 제 일이기도 하지요. 선배님께서는 그저 ‘다녀오게’ 한마디만 하시면 됩니다. 하하하!”

    심협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옥면공주가 환생한 여인의 일혼일백만 되찾을 수 있다면 우마왕은 자신들의 편에 서줄 것이다. 게다다 우마왕 손에 다섯 번째 천책 잔권이 있지 않은가!

    “자네 정말 그 일을 성사시킬 자신이 있는가?”

    우마왕이 물었다.

    “이 후배도 목숨은 하나뿐인데 어찌 함부로 위험을 무릅쓰려 하겠습니까?”

    심협은 말을 미치고는 ‘꿈속 세상이니 목숨이 하나뿐이라는 건 틀린 말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자네가 정말 옥아의 일혼일백을 구출해 돌아온다면, 내 이제부터 천정, 지선 무리와 동맹을 맺고 함께 치우와 마족을 토벌하겠노라고 약조하겠네.”

    우마왕이 엄숙하게 선포했다.

    “선배님께서 그리 약조를 해주시는 것은 물론 좋지만, 모든 것은 후배가 일을 성사시키고 돌아온 뒤에 다시 말씀하시지요.”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좋지……. 자네는 어찌 마족 소굴에 잠입할 계획인가?”

    우마왕이 물었다.

    “후배에게 법보가 하나 있사온데, 저의 기운을 족히 가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마족 소굴의 심장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뒤에는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겠지요.”

    “아까 치우의 마기를 제압하기 위해 내 정해주를 자네의 식해에 넣고 봉해두었네. 자네가 그 구슬을 완전히 제련할 수 있도록 특별한 제련술을 전수해주지. 그 구슬로 신혼의 파동을 완전히 숨길 수 있을 걸세. 태을 경지의 선인이라 해도 특별한 법보나 신념(神念) 신통력이 있지 않은 이상 자네의 신식 파동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게야.”

    우마왕이 말했다.

    “어쩐지 제 신식의 힘이 향상된 것 같더라니, 선배님께서 그런 귀중한 보물을 주신 덕택이었군요. 이 후배, 그런 보물을 받자니 송구스럽습니다.”

    심협은 그 말을 듣고 더욱 의아해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내 아들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네에게 주려 했으니 마음 쓸 것 없네. 그리고 그 구슬에는 또 다른 신묘한 쓰임새가 있지만, 그게 뭔지는 말해주지 않을 걸세. 아마 자네 스스로 발견하게 될 거야.”

    우마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하고는 전음으로 심협에게 제련법을 전수해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심협은 깊이 포권했다.

    “심 도우, 이번에 험한 길을 가는데 본명호모(本命狐毛) 하나 외에는 딱히 줄 수 있는 게 없구먼. 대단한 것은 아니고, 세 번 모습을 바꾸도록 도와주는 법보라네. 자네가 둔갑할 대상의 기운의 파동을 분명하게 안다면, 상대와 똑같은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지. 한 시진 동안은 어떤 빈틈도 없을 터이니, 태을 경지의 선인이라 해도 알아차리지 못할 걸세.”

    만세호왕이 손목을 뒤집자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엷은 금빛을 띤 여우털 한 가닥이 나타났다. 그는 이 본명호모를 심협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심협은 즉시 건네받으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사용법은 평범한 환화술과 별 차이가 없네. 손에 꽉 쥐고 속으로 둔갑하려는 사람의 모습과 자태, 기운의 파동을 떠올리면서 법력으로 효력을 불러일으키면 되네.”

    만세호왕이 당부했다.

    “기억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심협은 시선을 다시 청망에게로 옮겼다.

    “수고스럽겠지만 선배님께서는 칠보영롱등을 하나 만들어주십시오.”

    “반 시진쯤 걸리오.”

    청망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딱 좋습니다. 후배도 정해주를 제련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지요.”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청망이 옥면공주의 환생인 여인 곁에 와 한쪽 손을 뒤집자 손에 하얀 연꽃이 한 송이 나타났다. 그는 다른 손으로 여인의 머리 꼭대기에서 머리카락 한 가닥을 뽑아 손끝에 감은 뒤, 다시 그녀의 미간을 짚었다. 이윽고 몽롱한 하얀 빛이 그녀의 미간에서 이끌려 나와 머리카락 위를 감쌌다.

    이어서 청망은 소매 안에서 하얀 등잔을 하나 꺼내 머리카락과 하얀 연꽃을 그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법결을 맺고 주문을 읊조리며 등잔 안으로 법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심협은 한쪽에서 가부좌를 튼 채 우마왕이 전수해준 법결에 다라 정해주를 제련했다.

    그의 식해 속에는 정해주가 여전히 밤중의 달처럼 엷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법력이 휘감고 제련을 시도하자, 구슬의 광택이 순간 백배로 폭증했다.

    그 빛은 거의 한순간 그의 식해를 가득 비추면서 마치 맑은 물로 깨끗하게 씻은 것처럼 그의 식해에서 혼탁함을 말끔히 쓸어냈다. 그러자 그는 거의 한순간에 선정(*禪定: 참선하여 마음의 내면을 닦아 삼매경에 이름)에 든 것처럼 맑고 고요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심협의 마음은 상당히 요동쳤다. 꿈속 세계에서는 자질이 더없이 뛰어나 예전에도 수행할 때면 금세 이런 상태에 들어갈 수 있었고, 덕분에 수행 속도가 지극히 빨랐다.

    그러나 지금처럼 거의 별 힘 들이지 않고 선정에 든 적은 없었다. 더없이 아름답고 신묘한 느낌이 드는 상태였다.

    심협의 식해에 봉인 되어 있던 정해주는 제련이 진행되면서 봉인이 차츰 풀렸다. 이에 따라 둘 사이의 관계는 더더욱 긴밀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앞으로 심협이 이 보물을 통제할 수 있으며, 식해 속에서 정해주를 꺼내 쓸 수 있다는 의미였다.

    ‘우마왕 선배님께서 정해주에 다른 신묘한 효력도 있다고 하시더니, 거짓이 아니었어. 게다가 등급이 아주 높은 물 속성 법보이기도 해!’

    심협은 기쁘고 놀랍기 그지없었다.

    반 시진은 금세 지나갔고, 심협과 청망은 차례로 일을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우마왕의 상처도 급한 대로 처치가 끝나, 이제 상처를 치료하고 독을 제거하여 상처를 회복하는 것만 남았다. 그 방법은 스스로 생각해야 했다.

    청망은 손에 하얀 등잔 하나를 받쳐 들고 심협에게 다가왔다.

    “칠보영롱등이 혼백을 찾아 인도할 수 있는 것은 혼백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신혼들 사이에 연결된 끌림에 의지하기 때문이오. 옥지(*玉池: 신선의 아름다운 연못)의 백련을 기초로 하고, 신혼의 영광(靈光)을 등불로 하며, 검은 머리칼을 심지로 삼아야만 칠보영롱등을 만들 수 있소. 그대는 일정 범위에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법력으로 심지에 불을 붙이기만하면 되오. 그럼 이 등불이 일혼일백의 존재를 감지하고 등불이 그쪽 방향으로 기울 게요.”

    “그 범위는 얼마나 됩니까?”

    심협이 물었다.

    “천 장 범위 안이면 충분하고, 가까울수록 불꽃은 더욱 밝아지오. 허나 등유에 한계가 있으니 마찬가지로 이 등불이 버틸 수 있는 시간에도 한계가 있소. 그러니 일단 마족의 소굴에 들어간 뒤에 사용하시오.”

    청망이 당부했다.

    “방법을 생각해서 먼저 범위를 정한 다음에 불을 붙여야겠군요. 감사합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또 주의해야 할 점이 있소. 칠보영롱등은 본디 신혼 사이의 파동 연결로 탐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뿜어내는 파동은 숨길 수 없소. 평범한 요마들은 모르겠으나, 그녀의 일혼일백을 빼낸 자는 분명 알아차릴 거요. 그러니 그대가 칠보영롱등에 불을 붙이는 순간, 그대의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소.”

    청망이 다시 한번 당부했다.

    “그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야겠군요.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니 괜찮소.”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으나,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혼백을 얻으면 곧바로 진시천리 둔술을 시전하여 흑랑산에서 달아날 생각이었다. 그때 가서 다시 기운을 거둬들이고 곧장 도망쳐 돌아오면 되리라.

    “심 도우, 이 일은 자네에게 부탁하겠네.”

    만세호왕이 포권했고, 우마왕도 심협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후배는 가보겠습니다.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지요.”

    웃으며 말한 심협의 몸에 둔광이 일었고, 그는 곧장 날아가 금세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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