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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84화 (484/1,214)

484화. 옥아(玉兒)의 환생

심협의 몸은 여전히 흔들렸지만, 온몸 바깥에 이미 금빛 광채가 한 겹 떠올라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가닥가닥 엷은 금빛 안개들이 솟아올랐다. 몸속 법력이 빠른 속도로 운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심 도우의 몸속에는 삼매진화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어찌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우마왕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심 도우는 황정경 공법에 정통하다네. 황정경 공법은 본디 멸마(滅魔)의 신통력을 지녔으니 그 공법을 빌려 맞서는 듯싶네.”

만세호왕이 그렇게 추측했다.

심협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지만, 시야는 검은 천으로 한 겹 덮인 것만 같아 또렷하게 볼 수가 없었다.

단전에서는 뼈에 사무치는 한기가 시시때때로 솟구쳐 올라 그의 법맥에 침입했다. 이에 그는 황정경 공법을 전력으로 운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야만 체내 법력이 동결되는 것을 막아 봉쇄되지 않을 수 있었다.

동시에 그의 식해 속은 마치 큰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하늘을 뒤덮은 불 그림자 속에 무수히 많은 흐릿한 그림자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계속해서 정신까지 곧장 파고드는 피비린내와 살육의 사악한 기운이 그의 이성에 충격을 가했다.

정신과 육체에서 동시에 오는 이러한 괴로움은 도저히 견디기가 힘들었다.

심협의 앞가슴은 점차 격하게 들썩였고, 기운도 혼탁해지기 시작했다. 양손은 비록 결인하여 몸 앞을 감싸 안았지만, 온몸의 법력 운행은 여전히 단전 속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에 방해를 받아 차츰 이어가기가 힘들어졌다.

“안 돼, 얼마 버티지 못하겠어!”

만세호왕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느끼고 즉시 외쳤다.

우마왕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휘두르자, 정해주가 다시 날아가 심협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뒤이어 우마왕이 한 손을 결인하여 정해주를 향해 휘두르자, 순간 그 위에서 푸른색 빛줄기가 무수히 피어오르며 겹겹이 서로를 감쌌다. 마치 바닷물에 수만 줄기의 잔물결이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자네가 내 아들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이 정해주를 자네에게 바치겠네.”

우마왕이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손을 아래로 내리눌렀다. 그러자 정해주는 실체를 잃고 흐릿하게 변하며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더니, 심협의 정수리를 지나 서서히 그의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한편, 심협의 식해에서는 온 하늘에 가득한 피와 불이 그를 거의 완전히 집어삼킨 상태였다. 그 불바다와 시뻘건 불길 밖에는 더욱 끝없는 검은 마기가 있어서 차츰 그의 식해를 잠식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식해 위 하늘에서 갑자기 맑고 환한 푸른 빛이 떨어져 내렸다. 빛은 마치 가뭄의 단비처럼 순간 사방의 이글거리는 기운을 적잖이 억눌렀다.

심협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머리 위에 옥쟁반만 한 푸른 광구(光球)가 하나 나타나 하늘 높이 뜬 밝은 달처럼 웅장하고 맑은 영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신념(神念)의 물결은 금세 불바다와 핏빛 화염을 뒤덮고 주위의 검은 마기들과 맞부딪치며 팽팽하게 대치했다.

심협의 단전 속 차가운 검은 마기는 빠른 속도로 그의 법력을 물들이고 법맥 속으로 침입하려 했다. 그러나 황정경 공법에 눌려 여전히 그러지 못했다.

만약 이대로 방치한다면, 마화되는 것을 그저 잠깐 늦추는 데 그칠 터였다.

‘여러분, 저의 법력만으로는 치우의 마기를 억누르기 어려울 듯하니, 여러 선배님들께 도움을 청합니다.’

식해를 되찾은 심협이 신념(神念)을 통해 전음으로 말했다.

‘우리가 어찌 해야겠는가?’

만세호왕이 곧바로 물었다.

‘저의 신문(*神門: 손목에 자리 잡은 혈자리)부터 단중, 백회와 대추 네 곳의 요혈에 동시에 법력을 주입해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법력을 법맥으로 들어가게 이끌어 단전의 마기를 몸 밖으로 몰아내보겠습니다.’

심협이 말했다.

‘알았네. 내 한 사람 더 불러오지.’

만세호왕이 말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제가 하지요.’

홍해아였다. 그는 이미 적잖이 회복한 상태였다.

“해아, 너…….”

우마왕이 주저하며 말했다.

“부왕, 저는 괜찮습니다. 제가 다시 태어난 것은 심 도우 덕입니다. 그러니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게 해주십시오.”

홍해아의 굳건한 목소리에 우마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은 심협의 곁으로 다가와 각자 두 손가락을 모으고, 허공을 사이에 둔 채 그의 몸에 있는 네 혈자리를 가리키며 각자 법력을 운행하여 심협의 몸에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중 우마왕은 경지가 실로 심오하여, 순수한 요력이 백회혈에서부터 먼저 주입되었다. 요력은 산꼭대기의 폭포수처럼 빠르게 흘러내려 심협의 임맥과 독맥으로 들어가 동시에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만세호왕이 그 뒤를 바짝 따라갔다. 그의 법력은 심협의 양손에 위치한 신문혈로 주입되어 두 갈래의 수소음심경으로 들어갔고, 맑고 시원한 기운이 되어 심협의 법력과 서로 합쳐지면서 안정적으로 운행되었다.

청망과 홍해아는 각각 심협의 앞뒤에 서서 법력을 단중과 대추 두 곳의 요혈에 불어넣었다. 청망은 귀도의 공법을 수련하여 법력이 음기를 띠며 차가웠고, 홍해아는 불문의 신통력을 겸비하여 법력이 강한 양기를 띠었지만, 둘은 서로 호응하는 느낌이 컸다.

네 사람의 법력이 체내로 들어오자, 심협은 처음에는 전혀 법력들이 서로 반발작용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가 정신력으로 온전히 이끈 덕에 서로 밀어내지 않게 됐다.

심협은 마치 외부에서 온 군대들을 사방으로 파견하여 반란을 평정하는 것처럼, 조심스레 네 줄기 법력을 통솔하여 단전을 지원했다.

네 사람의 법력은 곧장 법맥을 가로질러 마침내 심협의 단전 속 법력이 마기에 물들어 있는 마지막 고비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단전으로 돌진하여 치우의 마기와 맞부딪쳤다.

심협은 이를 악물고 이들 사이의 격렬한 싸움을 기다렸다. 그는 심지어 단전이 폭발하면 대개박술로 극한의 재생작업을 진행할 것까지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뜻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단전에 도사린 채 사방을 공격해가던 치우의 마기가, 심협의 법력을 포함한 다섯 줄기 법력과 부딪히자 격렬하게 충돌해가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로 뭉쳐 뒤엉키고 회전하면서 용안만 한 회백색 소용돌이로 변한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서로 다른 이 여섯 가지 힘은 놀랍게도 서로가 서로를 흡수하고 서로 뒤섞이며 합쳐졌다.

어찌 된 일인지 깨닫기도 전에 심협의 단전에 떠 있던 회백색 소용돌이가 갑자기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하면서 매우 강한 흡인력이 생겨났다.

우마왕 등은 위험한 상황을 피하려고 법력을 급히 거둬들이지는 않았는데, 이때 갑자기 흡입력이 끌어당기자 법력이 밀물처럼 빠져나가더니 심협 체내의 회백색 소용돌이에 합류했다.

“으아악!”

심협은 순간 법맥 몇 줄기가 마치 갑자기 산사태 난 강줄기처럼 세차게 몰려오는 법력에 쓸려나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무너져 내리기 직전이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만세호왕이 깜짝 놀라 외쳤다.

“어서 법력을 거두시지요!”

우마왕도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들의 법력은 이미 소용돌이에 끌려 들어갔으니 쉽게 끊어질 리 있겠는가!

한순간 어느 누구도 자신의 법력을 거둬들일 수 없었다.

홍해아는 그렇지 않아도 중상을 입었던 터라, 얼마 지나지 않아 몸속 법력이 다 빨려나가 두 눈을 뒤집고 또다시 혼절했다.

“해아야!”

우마왕이 가볍게 외치자 그의 몸에서 빛이 한 줄기 뿜어져 나와 곧바로 법력을 강제로 차단해버렸다. 그는 뒤이어 몸을 굽혀 아들을 안아 올리고 상태를 살폈다.

한편, 그들이 주입하던 법력이 끊어지자 회백색 소용돌이의 균형도 깨진 듯, 회전하던 기세가 차츰 잦아들었다. 만세호왕과 청망은 그제야 곤경에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심협의 단전 안에 있던 회백색 소용돌이도 드디어 멈춰 더는 법력을 갉아먹지 않게 되었다. 마치 고요 속으로 되돌아간 듯 더는 다른 기척이 없었다.

심협은 그럼에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여전히 신식을 팽팽히 긴장시킨 채 조심스레 법력을 움직여 회백색 소용돌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그 소용돌이는 이제 평온해졌고, 회전 속도도 몹시 느렸으며, 그 속에서는 어떤 파동도 전해져오지 않았다. 심협의 법력이 다가와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참 후에야 심협은 차츰 자신의 기운을 잠재우고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주위에서는 우마왕을 비롯한 모두가 둘러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저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 모두의 법력이 그 마기와 어떤 특별한 균형을 이루어 잠시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만은 압니다.”

심협이 쓰게 웃으며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굳은 얼굴로 각자 생각에 잠겼다.

“어쨌거나 치우의 마기가 더는 반발 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니 다행일세. 앞으로 조심해서 방비하면 그뿐이야.”

만세호왕이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그리 할 수밖에요.”

우마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심협은 탁한 숨을 길게 내쉬고 나서야 일어났는데, 갑자기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높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마왕도 고개를 들었다.

하늘가에 바람과 구름이 돌변하여 검은 먹구름이 성을 내리누를 기세로 밀려와 금세 하늘의 반쪽을 뒤덮었다.

구름층 위에서는 커다란 천둥소리 같은 북소리가 울려 적뢰산 전체가 미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고 바라보니, 구름 위에 무수한 그림자가 서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갑옷을 입은 채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하늘을 찌를 듯한 요기를 뿜어내지 않았더라면 정말이지 하늘의 군사들이 강림하는 것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때까지 심협은 자신의 신식이 몇 배나 강해졌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망할 놈들, 이제 득세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천정에서 하던 짓을 따라한단 말이냐!”

우마왕이 큰소리로 꾸짖었다.

이때, 높은 하늘에서 문득 우레와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마왕, 나는 그대 또한 영웅호걸이라 생각하니, 그대가 천명에 따라 하루 빨리 귀순하기를 바라오.”

소리를 따라 올려다보니 바로 그 태을경의 검은 해골이 보였다.

“괜한 심기 건드리지 말고 너희나 잘 하거라, 이 마족의 앞잡이 놈들아! 썩 물러가지 않으면 반드시 살아 돌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우마왕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우마왕, 조급해하지 마시오. 그대에게 귀순할 마음이 없다면 우리 거래를 하는 것이 어떻겠소?”

검은 해골이 느긋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단 두 글자였다.

“꺼져!”

우마왕의 포효는 그저 소리만 높인 것이 아니었는지, 우렁찬 법력이 배어나와 눈에 보이는 파동이 되어 곧장 하늘 높이 돌진했다.

“굳이 벌주를 마시려 들다니. 우마왕, 이게 누군지 좀 보시지 그러오?”

검은 해골이 차게 웃더니 돌연 외쳤다.

그때, 그의 뒤에 서 있던 요괴 병사들이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텄고, 그 사이로 하얗고 치마를 입은 묘령의 여인이 두 요괴 병사에게 이끌려 걸어 나왔다.

여인은 가녀린 몸매에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웠고, 한 쌍의 봉황과 같은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두려운 표정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배회하는 것이 마치 겁먹은 새끼여우 같았다.

한데 여인의 얼굴을 본 순간, 우마왕과 만세호왕 모두 넋이 나가버렸다.

“이, 이럴 수가…… 설마 옥아(玉兒)……?”

만세호왕은 멍하니 중얼거렸으나, 우마왕은 말조차 잊은 듯 여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썹의 구부러진 각도하며 옥으로 깎은 듯한 콧방울이 솟아오른 각도, 입가에 찍힌 옅은 빛깔의 붉은 점까지……. 모든 것이 눈에 익었다.

“너무나 닮았어. 환생한 몸이 아니고서야 저토록 똑같이 생길 수는 없어.”

우마왕도 이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옆에서 듣고 있던 심협은 상황을 깨달았다.

요마들이 데리고 나온 여인은 아마도 만세호왕이 당시 가장 아꼈던 여식이자 우마왕이 사랑한 옥면공주의 환생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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