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83화 (483/1,214)
  • 483화. 연이은 위험

    심협은 살짝 굳은 얼굴로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손바닥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홍해아의 몸 바깥을 뒤덮은 붉은 빛의 소용돌이가 안쪽으로 푹 꺼지면서 갑자기 흐릿한 빛이 응결된 손바닥이 나타났다. 손바닥은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 홍해아의 몸에 박힌 심마주를 덥석 잡았다.

    심협은 나지막하게 기합을 내지르면서 손바닥에 힘을 주어 힘껏 잡아당겼다.

    “크아악!”

    홍해아가 마치 오장육부가 찢겨 나가는 사람처럼 비명을 질렀다.

    “견디시오! 신식을 꽉 붙들어야 하오!”

    심협은 크게 외치며 오히려 손에 힘을 더 주어 잡아당겼다. 홍해아의 가슴과 배 쪽의 살갗이 볼록하게 당겨지면서 심마주도 천천히 그의 피와 살에서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얼마 오래가지 않았다. 비교적 평온해 보였던 심마주가 갑자기 시커먼 빛을 뿜어냈고, 가닥가닥 짙은 검은 기운이 바깥으로 날아가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행히 주위에 붉은 빛의 소용돌이 덕분에 검은 기운은 제대로 퍼져 나가지 못하고 홍해아의 몸 주위에 맺혀 있었다.

    홍해아의 몸에 커다란 나무뿌리처럼 뻗어나갔던 검은 맥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뿌리째 뽑혀나가는 모습이 아니라 마치 심마주의 뿌리를 더 깊숙이 박아 넣으려는 것처럼 더욱 사납고 빠르게 다른 곳으로 뻗어갔다.

    심협이 조금 뽑아냈던 심마주는 움츠러들면서 결국 살갗 아래로 반절쯤 다시 들어갔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우마왕이 바짝 긴장하여 물었다.

    “우리가 뽑아내려는 걸 심마주가 알아차리고 저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깥으로 흩어지는 길이 법진에 봉쇄된 터라 차라리 홍해아의 몸을 완전히 차지하려 드는 것이지요.”

    “그럼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심협의 설명에 우마왕이 노심초사하며 물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지금은 줄다리기 하듯 힘을 겨루고 있을 뿐이니, 잠시 뒤 제가 신호를 보내면 단숨에 뽑아내 개 요괴의 몸에 봉인해버리면 됩니다.”

    말을 마친 심협은 양손의 법결을 다시 바꾸고 몸속으로 황정경공법을 운공하며 양손을 동시에 밖으로 잡아당겼다.

    거대한 힘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번에는 심마주가 홍해아의 몸에서 곧바로 끌려 나왔고, 그 뒤로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검은 실들이 가닥가닥 드리웠다.

    이 실들은 이미 홍해아의 몸속 정맥 혈관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에 조금만 움직여도 홍해아는 극심한 통증을 느껴야 했다. 그런데 심협이 이토록 억세게 잡아당기니 마치 물꼬를 튼 것처럼 통증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크아아악! 으아아!”

    참을 수 없는 통증이 거센 파도처럼 홍해아를 집어삼켰다. 그는 처참한 비명이 내질렀고,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더니 갑자기 눈을 까뒤집고 의식을 잃었다.

    “큰일이다!”

    심협이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방에 자욱하던 검은 마기가 홍해아의 코와 입을 타고 거꾸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홍해아는 감고 있던 두 눈을 다시 번쩍 떴는데, 충혈되었던 눈알은 놀랍게도 먹에 물든 것처럼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심협은 문득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더니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거센 흡입력이 생겨나 심마주를 다시 끌어당기려고 했다.

    동시에 검은 마기가 응집되어 흐릿한 빛으로 된 손바닥을 휘감고 올라 붉은 빛의 소용돌이를 뚫고 심협에게 침투하려 했다.

    심협은 재빨리 체내에서 황정경 공법을 운공했다. 몸 밖으로 금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거대한 용과 코끼리의 허상이 떠올랐고, 더욱 거대한 힘이 붉은 빛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소용돌이 속, 흐릿한 빛으로 된 손바닥이 순간 금빛에 뒤덮여 그 위를 휘감은 검은 마기를 날려버렸다.

    “홍해아의 신식이 잠시 마기에 방해를 받았습니다. 어서 함께 심마주를 끌어내시지요.”

    심협은 홍해아의 몸과 신혼을 다치게 할까 우려돼 천천히 진행하려 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의 말을 들은 우마왕 등도 아래에 있는 돌기둥을 향해 망설임 없이 전력으로 법력을 쏟아부었다.

    한순간 세 줄기의 웅장한 힘이 동시에 바닥의 법진을 타고 몰려와 심협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뒤에 있던 금빛 용과 거대한 코끼리 허상이 동시에 머리를 쳐들고 울부짖었다.

    “이리 나와!”

    심협이 포효하며 두 팔을 힘껏 끌어당기자 홍해아가 갑자기 부들부들 떨었고, 온몸에서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심마주가 뽑혀 나왔다.

    뻗어 나온 거의 백여 가닥의 검고 투명한 실들은 뱀 떼처럼 쉬지 않고 꿈틀거리며 힘껏 뻗어나가,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홍해아의 몸속으로 다시 들어가려 했다.

    “심마주는 일단 몸을 떠나면 곧바로 숙주를 찾으려 할 겁니다. 그러니 곧바로 심마주를 개 요괴의 몸속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만약 마주가 깨져 마기가 밖으로 흘러넘치면 수습하기가 힘들게 됩니다.”

    심협의 말에 세 사람은 즉시 주문을 외우며 손으로 법결을 맺었고, 동시에 정중앙의 돌기둥을 향해 한 가닥 법력을 쏘아 보냈다.

    돌기둥 위의 빛이 밝아지자, 사방을 뒤덮었던 붉은 빛의 소용돌이는 곧 수축해 깔때기 모양으로 변했다.

    홍해아의 온몸에 묻어 있던 핏자국이 하나둘 녹아 사라져 분홍빛 안개로 변해 깔때기를 타고 흘러 아래쪽에 묶여 있던 개 요괴에게로 흘러들어갔다.

    개 요괴의 몸에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운이 갑자기 변했는데, 그 기운은 홍해아와 똑같았다.

    홍해아의 몸을 향해 끊임없이 뻗어나가던 심마주의 실들은 이제 개 요괴의 몸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를 본 심협은 내심 기뻐하며 손바닥을 휘둘러 심마주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심마주의 검고 투명한 실들은 마치 문어의 촉수들처럼 돌기둥을 휘감고 내려가다가, 마침내 실들을 가닥가닥 뻗어 개 요괴의 미간으로 파고들었다.

    찰나의 순간, 개 요괴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검은 실은 곧장 그의 두개골을 꿰뚫으며 체내 깊숙이 파고들었고, 심마주가 미간의 피와 살에 반 이상 박혀들었다.

    핏빛이 뻗어나가자 심마주가 정말 사람의 눈알처럼 그의 미간에서 빙글빙글 회전했다. 그리고 이내 그 부분의 피와 살이 완전히 아물면서 심마주가 완전히 안으로 파묻혔다.

    그 순간, 개 요괴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눈알은 온통 칠흑처럼 검었고, 지렁이 같은 검은 혈관들이 두 눈에서 사방으로 터져나가 곧장 목덜미까지 뻗어갔다. 그러고도 더 퍼져 나가 몸뚱이 전체를 차지하려고 했다.

    뻣뻣하게 굳어 있던 개 요괴의 목이 반 바퀴 돌아가더니, 갑자기 온몸에서 우드득 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요괴의 뼈와 살들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불어났고, 찍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을 감고 있던 금제가 터져나갔다.

    개 요괴의 온몸에는 둥근 고리 같은 검고 짙은 마기가 휘감겼고, 온몸의 기운은 빠른 속도로 폭증하여 금세 진선기 정점에 이르렀다. 심지어 경지를 곧장 돌파할 듯한 조짐까지 보였다.

    “아우우! 우마왕! 내 너의 취운산을 짓밟아 버리리라!”

    개 요괴는 아직 약간의 이성이 남아 있는 듯, 알아듣기 힘든 소리로 울부짖었다.

    “이놈은 어찌 이리 빠르게 마화된단 말인가?”

    만세호왕이 놀란 듯 외쳤다.

    “홍해아의 몸에는 삼매진화가 있어 마기의 침입을 어느 정도 늦췄지만, 저 요괴는 본래 입마(入魔)한 상태에서 치우의 마기가 다시 침입하였으니 자연히 마화되는 속도가 지극히 빠를 수밖에요.”

    심협이 말했다.

    “언제 시작할 겐가?”

    우마왕이 개 요괴를 쳐다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조금만 더 기다리십시오. 저 요괴가 마기를 극한까지 흡수했을 때 죽여야만 이 마기들을 최대한 없앨 수 있습니다. 잔재가 많이 남을수록 처리하기가 힘들지요.”

    심협은 말을 마치자마자 안색이 돌변했다.

    퍽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울리더니 개 요괴의 미간에 갑자기 틈이 하나 갈라지면서, 제압되어 있던 심마주의 금제가 폭발한 것이다.

    심마주가 부서지면서 안에 남아 있던 마기가 별안간 전부 풀려나와 개 요괴에게 모조리 흡수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곱절로 불어나 있던 개 요괴의 몸뚱이는 놀랍게도 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2장, 3장, 5장, 10장…….

    개 요괴의 몸뚱이가 공기주머니처럼 부풀어 오르자, 심협은 불길함을 느끼며 재빨리 외쳤다.

    “지금입니다! 어서 공격하십시오!”

    그의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이미 준비하고 있던 우마왕은 자색 부적 한 장을 손바닥에 붙인 채 두 손가락을 즉시 칼처럼 모아 개 요괴를 정면으로 내리쳤다.

    칼을 휘두르는 듯한 그의 동작을 따라 부적이 순식간에 타오르면서 허공에 자주색 빛이 맺히더니, 거대한 광인(光刃)이 되어 개 요괴의 머리를 베었다.

    툭!

    개 요괴의 머리가 잘려나가 땅에 떨어졌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조금 더 팽창하다가 곧 폭발하듯 터져버렸다.

    쿠르릉!

    온 적뢰산에 커다란 천둥번개가 친 것처럼 산봉우리가 극심하게 흔들렸고,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충격파가 법진 한가운데에서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충격파가 지나는 곳마다 폭풍이 휘몰아치면서 거대한 숲을 이리저리 휘저어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법진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각자의 수단을 써서 이를 막아냈다.

    잠시 후, 폭발의 한가운데에 있던 법진은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고, 바닥에는 깊이가 수십 장에 달하는 거대한 골짜기가 생겨났다. 그 안에는 심협과 몇 사람만이 원래 모습 그대로 돌기둥 위에 서 있었다.

    우마왕은 옆구리에 홍해아를 낀 채 한가운데의 돌기둥 위에 서서 손을 휘둘러 공중에 떠 있는 정해주를 거둬들였다. 그리고는 또다시 법력을 아들의 몸속으로 불어넣었다.

    홍해아는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사방을 한 번 둘러보더니 뒤이어 우마왕을 올려다보고는 작은 소리로 불렀다.

    “부왕, 저…….”

    “착한 아가야, 괜찮다. 넌 이제 괜찮단다.”

    우마왕이 웃으며 말했다.

    심협과 사람들도 이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각자 자리에 앉아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한데 바로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온몸이 칠흑처럼 검은 그림자가 기운 파동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심협 뒤에 불쑥 나타나 양손으로 그의 어깨를 붙잡더니 번쩍 몸을 날려 체내로 곧장 녹아들었다.

    심협이 뭔가 잘못 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검은 그림자가 체내에 침입하는 순간, 심협은 단전 속에 뼈에 사무치는 한기를 느꼈다. 반대로 머릿속 깊은 곳은 불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야가 갑자기 흐릿해졌고, 귀에 들리는 소리는 웅웅 울려 알아들을 수 없었으며, 의식이 흐려져 추락할 듯 온몸이 흔들거렸다.

    “아뿔사! 마기가 심 도우의 몸에 들어갔어!”

    우마왕이 화들짝 놀라 외쳤다.

    사람들의 안색이 급변했다. 심마주 속에서 도망쳐 나온 마기는 마신 필시 치우에게서 온 것일 터였다.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만세호왕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통제를 잃는 것은 둘째 치고, 일단 마도에 빠지면 살의가 크게 일 것입니다.”

    우마왕은 굳은 목소리로 외치고는 손목을 빙글 돌렸다. 그러자 손바닥 한가운데에 덩굴로 엮은, 손바닥만 한 공이 하나 나타났다. 그 위에 부적 문양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는 속박류 법보였다.

    “심 도우, 미안하네.”

    우마왕이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그가 막 손을 쓰려는 순간, 만세호왕이 갑자기 외쳤다.

    “잠깐! 일단 조급해하지 말게.”

    우마왕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더니 심협을 바라보고는 즉시 법술을 멈추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