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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78화 (478/1,214)
  • 478화. 계략에 빠지다.

    한편, 금례는 병을 건네받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병마개를 뽑아버리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모두의 시선이 금례에게 향한 가운데 족히 1각이 흘렀지만, 금례에게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뿜어내는 기운도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금 도우가 무사한 걸 보니 이 천룡수에는 문제가 없는 듯하군요. 이제 마셔도 되겠지요?”

    건장한 사내는 열기에 벌겋게 익은 뺨을 움직여 물었다.

    “그리 하게.”

    흑의의 노인은 금례를 의심한 미안함 따위는 없는 듯 담담하게 내뱉었다.

    이에 건장한 사내는 곧바로 손에 든 옥병을 입가로 가져가 천룡수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얼굴의 붉은빛이 빠르게 사라졌고, 사내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홍해아와 흑의의 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천룡수를 들이켰다.

    “이만 물러가 보거라. 화삼을 계속 추적하고, 어떤 기별이라도 있으면 즉시 내게 알리거라.”

    홍해아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분부하자 금례는 답하고 물러갔다.

    석실을 나선 그의 눈빛 깊숙한 곳에 희미한 웃음기가 스쳤다.

    “계획대로 되었군!”

    아래쪽 용암동굴에서는 심협이 눈을 번쩍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원독이 이토록 은밀하다니, 신묘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흑의의 노인은 적어도 진선 후기였을 텐데도 수원독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혹시나 싶어 화 도우께 해독제 두 병을 달라고 하길 잘했군. 금례에게 미리 해독제를 먹이지 않았다면 들통났을 게야.’

    심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은신부를 하나 꺼내 금빛 공간에 있는 화삼에게 보냈다.

    ‘너는 이 부적으로 몸을 숨기고 가서 갇혀 있는 화매족을 찾아내 준비시키고 곧바로 계획에 착수하도록 해라.’

    심협이 전음으로 말했다.

    ‘예!’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화삼은 감정의 동요가 느껴질 만큼 크게 기뻐했다.

    심협이 손을 흔들어 풀어주자 화삼은 즉시 은신부의 효력을 발휘하여 몸을 숨기고 멀리 감옥을 향해 날아갔다.

    한편, 위층 연기실 안에서는 홍해아 등이 계속 법진을 작동시켜 연기로의 영서신검을 제련하는 데 열중했다.

    건장한 사내는 몸에서 푸른 빛을 번쩍이면서 지하의 법진으로 끊임없이 지화를 주입하는 중이었다. 열기에 대한 근심이 사라져서인지 그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한데 흑의의 노인에게 뭔가 말하려던 그는 갑자기 표정이 기이하게 변하더니 두 손으로 배를 끌어안고는 털썩 고꾸라졌고, 몸의 푸른 빛 역시 빠르게 흩어졌다.

    사내는 입을 커다랗게 벌렸지만 찍소리도 내지 못했고, 이마에는 푸른 힘줄이 툭 불거졌으며,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고(古) 도우! 어찌……?”

    옆에 있던 검은 치마의 여인이 화들짝 놀라 물었으나,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녀 역시 안색 변하더니 두 손으로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고운 얼굴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키 크고 마른 중년 사내와 홍해아 휘하의 네 장군 역시 똑같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배를 움켜쥔 채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놈 짓이오! 천룡수에 문제가 있었던 게요!”

    흑의의 노인이 벌떡 일어나 매섭게 호통을 쳤다.

    그는 경지가 심오하여 주위의 뜨거운 열기에도 견딜 수 있었고, 어제의 천룡수가 아직 남아 있어서 조금 전 금례가 보내온 천룡수를 마시지 않은 터였다.

    홍해아는 순간 표정이 굳어져 벌떡 일어나 뭔가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덟 사람이 법진에서 손을 떼니 연기로의 불길과 혈광은 순식간에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그 안의 핏빛 광구(光球)도 따라서 흔들리며 혹들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왔다.

    홍해아와 흑의의 노인은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연기로를 향해 손을 수레바퀴처럼 결인했다. 여러 줄기의 법결이 떨어지자 연기로 안의 핏빛 광구는 차츰 안정되어갔으나, 여전히 약간 불안정한 기미가 보였다.

    이를 본 홍해아는 오른손 다섯 손가락 끝을 깨물어 상처를 낸 다음, 손을 들고 홱 털었다.

    다섯 줄기 혈광이 날아가 핏빛 사슬들로 변하더니, 연기로 안에 들어가 핏빛 광구를 그 안에 가두었다.

    핏빛 광구는 그제야 완전히 안정됐고, 연기로 속의 불길과 혈광도 뒤이어 잠잠해졌다.

    홍해아는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지만, 이내 회복되었다.

    “번거롭겠지만, 학 도우께서 여기 남아 연기로를 지켜주시오.”

    그는 흑의의 노인에게 말하고는 오른손으로 즉시 허공을 움켜쥐었다.

    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홍해아의 손에 화염이 이글거리는 붉은 창이 나타났고, 동시에 홍해아는 순식간에 붉은 그림자로 변하여 밖을 향해 날아갔다.

    쾅!

    굉음과 함께 복도 맞은편 다른 석실의 대문이 산산조각 나면서 전송법진이 드러났다. 연기실 깊은 곳은 바깥과 연결되는 통로가 없었기에 외부와 왕래하기 위해 만든 전송법진이었다.

    홍해아가 법진 위에 올라선 그때, 지금껏 문제없이 운행되던 법진이 갑자기 밝아졌다가 빠르게 어두워졌다. 누군가 위쪽의 법진을 파괴한 것이 분명했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절대 용서치 않겠다!”

    홍해아는 대노하여 손에 든 화첨창을 위로 불쑥 치켜들었다. 그러자 산 같은 창 그림자가 쏘아져 나와 분풀이를 하듯 천장을 찔렀다. 땅속 불의 힘에 수천수만 년이나 단련되어 무쇠처럼 단단해진 천장이 두부처럼 쉽게 뚫렸다.

    쿠르릉!

    천장이 무너져 내렸지만, 홍해아의 몸에서는 맹렬한 불길이 일어나 돌덩이들이 닿기도 전에 푸른 연기로 태워버렸다.

    한편, 아래쪽 용암동굴에서는 심협이 이 상황을 감지하고는 씩 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그의 앞에 은빛이 연달아 번쩍이면서 대승기 경지의 은갑천병 10여 명이 나타났다.

    이들에게는 은신부가 없어서 용암동굴의 요괴 병사들은 즉시 그들을 발견했다.

    “웬 놈들이냐!”

    사람 몸에 뱀 머리를 한 요족이 몸을 날려 천병들 가까이에 나타나더니 손을 뒤집어 푸른 사창(蛇槍)을 꺼냈다. 세 명의 대승기 요족 중 하나였다.

    나머지 두 명의 대승기 요족도 반응이 빨랐다. 이들은 순식간에 화매족들 앞까지 날아와 방어태세를 갖췄다. 이 화매족들은 성영대왕을 위해 지화를 더 추출해야 했기에 절대로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한편, 그곳의 다른 요족 병사들도 천병들을 향해 사나운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갑옷을 입은 요족들을 한 놈도 남겨 놓지 말고 죽여라!”

    심협이 차갑기 그지없는 말투로 담담히 분부했다.

    그때까지 조용히 서 있던 천병들이 즉시 튀어나가 10여 줄기의 은빛 번개로 변하여 요괴 병사 무리 속으로 돌진했고, 요괴 병사들의 몸이 터져나가면서 잘린 팔다리가 온 하늘에 날아다녔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 은갑천병들 모두 대승기 중의 정예병들이니 출규기 병사들을 상대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고, 불과 몇 호흡 만에 수백의 요괴 병사들은 사실상 전멸당했다.

    “어서 대왕께 아뢰어라!”

    뱀 머리 사내는 바들바들 떨면서 고개를 돌려 뒤에 있던 다른 대승기 병사 둘에게 큰소리로 외치고는 뒤로 날아갔다.

    다른 대승기 요족들도 화매족을 지킬 겨를 없이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그중 사자 머리를 한 요족 하나는 손을 뒤집어 푸른 구슬을 한 알 꺼내고는 결인하여 작동시키려 했다.

    그때였다.

    쐐액!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은빛 화살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고 날아와 사자 머리 요족의 손바닥을 정확히 꿰뚫었다.

    “크아악!”

    사자 요족은 손바닥 전체가 터져나갔고, 부서진 뼛조각과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푸른 구슬은 그 힘에 튕겨 날아갔다.

    천병들 중 은갑 여장군이 은빛 대궁(大弓)을 든 채 조용히 서 있었다.

    사자 머리 요족은 고통을 억누르며 남은 손을 뻗어 푸른 구슬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이는 죽음을 재촉하는 행동일 뿐이었다. 멀리서 은갑 여장군의 팔뚝이 갑자기 흐릿해지더니 한 줄기 은빛이 쏘아져 나왔고, 사자 머리 요물 앞에 은빛이 번쩍 스쳤다. 어느새 또 하나의 은빛 화살이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불쑥 나타나 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머리통에 꽂혔다.

    팍!

    수박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면서 대승기 요족의 사자 머리가 터져 나갔다.

    다른 천병들은 뱀 머리 요족과 또 다른 대승기 요족에게 달려들었고, 이 두 요족은 저항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죽음을 맞았다.

    이 무렵, 붉은 바위 광장의 화매족들은 이미 지화를 소환하던 작업을 멈추고 한쪽 옆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은갑천병들을 보는 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자신들도 저 요족 병사들처럼 몰살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멀리서 무언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옥문이 갈라졌고, 그 안에 갇혀 있던 화매족들이 튀어나왔다. 선두에는 화삼이 있었다.

    “소주(小主)! 돌아오셨군요!”

    붉은 바위 광장의 화매족들은 화삼을 보고는 크게 기뻐했지만, 은갑천병들 때문에 감히 다가가지는 못했다. 이는 화삼이 풀어준 화매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화삼도 이 은갑천병들을 보고는 놀라서 멈춰 섰으나, 이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들 두려워 마라! 이 은갑의 선배님들께서는 대선 휘하의 전사들이다! 대선, 계십니까?”

    말끝에 화삼은 주위를 둘러보며 심협의 흔적을 찾았다.

    갑자기 허공이 아른거리며 일렁이더니 심협의 모습이 나타났다.

    “대선!”

    화삼이 얼굴 가득 기쁜 내색을 드러내며 외쳤다.

    그러나 심협은 이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곧장 동굴 천장의 거대한 법진을 올려다보며 손을 뒤집고 진해빈철곤을 꺼냈다. 그의 양팔에 강렬한 금빛이 떠오르면서 순식간에 굵어지더니 금빛 용 비늘이 조각조각 떠올랐고, 두 팔은 어느새 굵직한 용의 팔뚝으로 변해 있었다.

    진해빈철곤에서는 뙤약볕 같은 금빛이 화르륵 솟구쳐 올라 아래쪽의 요괴들이 눈을 못 뜰 정도로 강렬하게 내리 쬐었다.

    “가라!”

    심협이 버럭 외치며 팔을 힘껏 휘둘러 진해빈철곤을 던졌다.

    이 곤봉은 눈부신 한 줄기 금빛이 되어 날아가 번쩍하고 사라졌다.

    다음 순간, 동굴 벽 아래쪽 허공에 폭발음이 일었다.

    콰르릉!

    어느새 길이가 10여 장에 굵기는 1장에 이를 만큼 거대해진 진해빈철곤이 금빛을 내뿜으며 불쑥 나타나 동굴 벽을 세게 찔렀다.

    단단한 동굴 벽이 마치 두부라도 되는 것처럼, 이 거대한 곤봉은 단숨에 절반이나 뚫고 들어갔다.

    곤봉 주위 동굴 벽에는 커다란 균열들이 생겨나더니 빠르게 뻗어나갔다.

    10여 명의 천병도 모두 날아올라 검기와 도망(刀芒), 화살 등 각자의 수단으로 동굴 천장에 공격을 퍼부어 깊은 구멍들을 만들어냈다.

    “현화전진을 만들어 대선께 힘을 보태라! 어서!”

    화삼이 화매족을 돌아보며 큰 소리로 소리쳤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는 붉은 빛이 맹렬히 뿜어져 나와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윽고 몸 주변에 반경 5장의 붉은 불구름을 이루더니 강렬한 화염의 기운과 파동을 일으켰다.

    화삼의 말은 실로 위엄이 있어서, 다른 화매족들은 곧장 날아올라 그가 만들어낸 불구름으로 녹아들었다.

    화매족이 한 명씩 날아들 때마다 불구름은 조금씩 커졌고, 화염 파동 또한 이에 따라 점점 강해졌다.

    모든 화매족이 날아들자 붉은 불구름은 크기가 수십 장에 이를 만큼 커졌고, 그 안에서는 무시무시한 화염의 파동이 흘러나와 아래쪽 용암 호수의 열기마저 뒤덮었다.

    심협도 참지 못하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이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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