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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77화 (477/1,214)
  • 477화. 네 명의 마사(魔使)

    눈 깜짝할 새에 하루 밤낮이 지났다.

    현공동 안에서는 금례가 어느 석실 안에 단정히 앉아 눈을 감은 채 정신을 가다듬는 중이었다.

    밖에서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전의 그 곰 요괴가 옥쟁반을 받쳐 든 채 걸어 들어왔다. 옥쟁반 위에는 천룡수 열여섯 병이 놓여 있었다.

    “통령 대인. 천룡수가 다 만들어졌으니 한번 보시지요.”

    곰 요괴가 금례 앞에 옥쟁반을 내려놓았다.

    “알았다. 거기 두어라. 조금 이따가 내 직접 내려 보내마.”

    금례는 눈도 뜨지 않고 담담히 손을 내저었다.

    곰 요괴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이 일은 평소 늘 그가 하던 일이지만, 금례가 직접 전달하겠다고 하니 잠시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내 옥쟁반을 내려놓은 뒤 물러나와 방문을 닫았다.

    금례는 곧 눈을 번쩍 뜨고 결인하여 방 안에 금제를 한 겹 펼쳤다.

    잠시 뒤, 그는 방에서 걸어 나와서 여러 통로들을 지나 어느 은밀한 석실에 도착했다.

    석실 안에는 전송 법진이 있었는데, 검은 옷을 입은 늙은 여우 요괴가 법진 옆을 지키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금례가 크게 헛기침을 하자, 검은 옷의 여우 요괴는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통령 대인!”

    여우 요괴는 금례를 보자 헐레벌떡 일어나 예를 갖췄다.

    “오늘은 몇 가지 보고드릴 것도 있으니 내 직접 성영대왕과 마사들께 천룡수를 올릴 것이다. 어서 나를 전송하거라.”

    금례가 담담히 분부했다.

    “예!”

    검은 옷의 여우 요괴는 얼른 답하고는 영패를 꺼내 법진에 대고 흔들었다.

    영패 안에서 하얀 빛이 한 줄기 쏘아져 나와 법진 속으로 들어가자, 법진이 곧 윙윙거리며 운행하기 시작했고, 주위를 향해 하얀 빛줄기들을 뿜어냈다.

    금례가 법진 위에 올라서니 눈앞의 풍경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고, 잠시 후 시야가 다시 회복되었을 때 그는 다른 석실 안에 나타나 있었다.

    그 공간은 곳곳마다 타는 듯이 뜨거운 붉은 빛으로 가득했고, 꼭 지옥의 불바다에 있는 것처럼 아래쪽 용암동굴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금례는 급히 붉은 복면 갑옷을 한 벌 꺼내 입었다. 이것은 특수 제작된 홍린(紅鱗) 전투복으로, 뜨거운 열기를 차단할 수 있었다. 용암동굴 안 요괴 병사들이 입고 있던 옷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또다시 빨간색 부적 한 장을 꺼내 몸에 붙였다. 붉은 빛이 온몸에 퍼지면서 방어막을 더했다. 그제야 그는 석실을 나와 바깥의 복도에 이르렀다.

    복도 앞쪽에는 붉은빛이 더욱 거셌고, 끄트머리에는 돌문이 하나 있었는데, 안에서는 우르릉거리는 둔탁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금례는 눈을 내리깔고 손에 옥쟁반을 받쳐 든 채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돌문 뒤에는 크기가 무려 백 장이나 되는 석실이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네모반듯한 연못이 움푹 파여 있었다. 안에는 포효하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지화가 가득하여 연못 안을 이리저리 어지럽게 내달리고 있었다.

    연못 주위의 바닥에는 거대한 법진이 하나 새겨져 있었는데, 구궁(*九宮: 팔괘의 방위와 그 중앙의 방위를 이르는 말)에 따라 배치되어 있어 몹시 복잡했다. 그리고 연못 위에는 집채만 한 연기(煉器) 화로가 있었고, 그 안에는 붉은 빛과 맹렬한 불길이 가득했다.

    연기 화로 위 허공에는 비록 구궁법진보다는 훨씬 작지만 보기에도 섬뜩한 핏빛 법진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이 핏빛 법진 안에는 새빨간 구슬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는 짙은 혈광이 가득했고,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사람과 짐승의 혼백이 빽빽하게 들어차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홉 개의 형체가 바닥의 구궁법진 속에 단정히 앉아 일제히 법술을 시전해 작동시키니, 구궁법진이 환한 붉은 빛을 피워내며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연기 화로 위쪽의 핏빛 법진도 따라 움직였다.

    핏빛 구슬 속에서는 아홉 줄기 혈광이 쏘아져 나와 혼백들을 하나하나 휘감은 채 연기 화로 속으로 쉬지 않고 흘러들어갔다.

    맹렬한 불길과 혈광을 통과하여 화로 속에 핏빛 공이 하나 떠 있는 것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이 공은 더없이 매서운 기운을 뿜어내며 주변의 맹렬한 화염의 힘과 핏빛 구슬 속 혼백들을 끊임없이 집어삼켜댔다.

    “성영 도우가 정말 쇠, 나무, 물, 불, 흙 오신(五神)의 힘을 모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소. 수천수만의 혈혼과 치우 대인이 지닌 마혈(魔血)의 힘을 더 모은다면 정말로 영서신검(靈犀神劍)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그 검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큰 공적이 될 거요! 으하핫!”

    흑의의 노인이 껄껄 웃었다. 그는 몸집이 왜소했고, 머리는 희끗희끗하게 세었으며, 추레한 얼굴에 둔해 보였지만, 두 눈만은 아주 날카롭게 빛났다.

    노인의 가슴께에는 기괴한 검은 구슬이 한 꿰미 걸려 있었는데, 놀랍게도 검은 해골을 엮어 만든 것으로 더없이 요사스러워 보였다.

    흑의의 노인 뒤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키가 크고 깡마른 중년 남자였는데, 움푹 들어간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것이 꼭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 같았다.

    다른 한 사람은 우람한 체격의 사내로, 볼수염이 덥수룩했고, 온몸에 강한 위압감을 지니고 있어 마치 굴에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짐승 같았다.

    마지막 한 사람은 검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인이었는데, 가냘픈 몸매에 눈썹은 검고 길었다. 허나 얼굴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고, 허리춤에는 금빛 도끼가 한 자루 달려 있었다.

    노인 맞은편에는 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다. 우두머리는 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로, 분을 바른 듯 뽀얀 얼굴에 입술은 붉은 칠을 한 것 같았다. 비단에 수놓인 진홍색 전군(*戰裙: 허리 부분에 둘러 두 다리를 가릴 수 있는 피혁 군복)을 입었고, 손목과 발목 그리고 목에는 각각 금테를 두르고 있었는데, 실로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다만 이 아이의 얼굴에는 사악한 기운이 있어 감히 만만하게 볼 수 없었다.

    아이 뒤로 네 사람이 앉아 있었다. 다들 온몸을 덮은 갑옷을 입고 있어서 체격을 알기 힘들었고, 얼굴도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갑옷은 각각 금색, 노란색, 녹색, 푸른색이라 금례가 말했던 홍해아 휘하의 네 장군임이 틀림없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몸에서는 여러 빛깔이 번득였는데, 기운은 서로 판이하게 달랐다.

    그중 흑의의 노인이 가장 마기가 짙으며 순수했고, 다른 기운은 거의 섞이지 않은 느낌이었다.

    노인 뒤의 세 사람은 홍해아와 마찬가지로 요기와 마기가 뒤섞여 있는 반면, 홍해아 뒤의 네 장군은 순수한 요족으로 아직 마기에 물들지 않은 상태였다.

    “학탐(郝貪) 마사께서 과찬을 하시는구려. 운이 좋았을 뿐이오. 영서신검을 만들어내려면 여러분의 힘과 도움이 필요하오.”

    홍해아가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도와야지요. 허나 지화의 위력이 그리 충분치 않은 것 같구려. 달아난 그 화매 왕족의 일원은 잡아 왔소?”

    흑의의 노인이 묻자 홍해아는 손을 뒤집어 푸른 구슬을 하나 꺼내더니 결인하여 작동시키려 했다. 한데 그때,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너라.”

    홍해아가 구슬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석실 문이 열리고, 금례가 손에 옥쟁반을 받쳐 든 채 들어왔다.

    “성영 대왕님, 네 분의 마사 대인, 소인이 천룡수를 가져왔사옵니다.”

    그는 법진 밖에 꼼짝 않고 서서 공손하게 말했다.

    이 석실 안은 그야말로 용광로처럼 뜨거워서 금례는 몸에 방어막을 두 겹이나 두르고도 여전히 온몸이 화끈거려 견디기 힘들었다.

    한편, 천룡수라는 말에 홍해아의 뒤의 네 장군과 흑의의 노인 뒤에 선 세 사람은 얼굴이 밝아졌다. 그들은 홍해아나 흑의의 노인보다 경지가 훨씬 낮은 터라 각자 불의 기운을 피하는 보물을 착용하고 있음에도 견디기 힘들었던 참이었다. 게다가 어제 받은 천룡수도 바닥나 오늘 분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이리 다오.”

    흑의의 노인 뒤에 있던 건장한 사내가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례가 얼른 대꾸하고는 손을 흔들자, 옥쟁반 위의 천룡수 열여섯 병이 날아가 성영 대왕을 제외한 여덟 사람 앞에 각각 두 병씩 떨어졌다.

    건장한 사내가 병을 움켜쥐고 막 들이키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흑의의 노인이 갑자기 외치며 건장한 사내의 팔을 눌렀다.

    “학형, 왜 그러시오?”

    홍해아가 의아한 듯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흑의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항상 곰 요괴가 천룡수를 가져오지 않았더냐!”

    흑의의 노인이 매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금례를 노려보며 차갑게 물었다.

    “학 마사님 말씀이 옳습니다. 저는 금례라고 하옵니다. 오늘 이전의 시종을 대신하여 대왕과 여러 마사께 천룡수를 가져다드리러 내려왔지요.”

    금례는 투구를 벗으며 사람들에게 예를 갖추었다.

    “금례, 어찌하여 네가 내려왔느냐?”

    홍해아는 금례를 보고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대왕께 아뢰옵니다. 속하 도주한 화매족에 관해 대왕께 보고드릴 겸 천룡수를 가지고 내려왔사옵니다.”

    금례가 재빨리 답했다.

    “오, 그 화삼이란 놈을 잡아왔느냐?”

    홍해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속하 죽어 마땅하옵니다. 흑우와 흑산(黑山) 두 형제를 보내 추격하여 잡기 직전이었사오나, 어떤 신비한 자가 나타나 화삼을 가로채갔사옵니다.”

    금례가 고개를 숙이며 송구한 듯 답했다.

    “어떤 놈이 우리 행사를 방해한단 말이더냐!”

    홍해아는 눈에 노기를 번뜩였지만, 마사를 의식해서인지 화를 삭이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송구하옵니다. 상대의 경지가 너무 높아 화삼을 구출하자마자 도주한 탓에 정체는 알아내지 못하였사옵니다. 허나 흑우와 흑산이 이미 상대의 흔적을 일부 찾아내 추적하는 중이옵니다.”

    금례가 황급히 말했다.

    “알았다. 최대한 빨리 그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고, 반드시 화삼을 잡아와야 한다. 현공동의 병력은 너희들 마음대로 동원하라!”

    홍해아는 그제야 낯빛을 조금 누그러뜨리며 분부했다.

    “예, 망극하옵니다. 대왕.”

    금례는 기쁜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홍해아는 금례를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돌려 흑의의 노인에게 말했다.

    “학형, 이자는 현공동의 통령으로 수상한 자가 아니오.”

    흑의의 노인은 표정이 조금 풀렸지만, 여전히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천룡수 한 병을 집어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사 대인, 어찌 이러시옵니까? 제가 천룡수에 독이라도 탔다고 여기시는 것이옵니까? 제가 직접 조제한 천룡수입니다. 독이 들었다 여기신다면 제가 먼저 마시고 죽겠사옵니다!”

    금례는 학 마사의 행동에 화가 난 듯 벌게진 얼굴로 벌컥 성을 냈다.

    “금례! 학 도우께 무례히 굴지 말라!”

    홍해아가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예.”

    금례는 한마디 대꾸했지만, 얼굴의 노기는 채 감추지 못했다.

    “성영 도우께서는 금 도우를 꾸짖을 것 없소이다. 이 늙은이는 확실히 천룡수가 조금 의심스럽거든. 기왕 그리 말했으니, 금 도우가 먼저 마셔보게나.”

    흑의의 노인은 화를 내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옥병을 금례에게 던졌다.

    이를 본 홍해아는 눈에 한 줄기 노기가 스쳤지만, 제지하지는 않았다.

    “학 대인, 금 도우는 현공동의 통령입니다. 이럴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노인 뒤의 건장한 사내는 홍해아의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아 보이자 그렇게 물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치우 대인과 관계되어 있으니 털끝만큼의 실수도 범해서는 아니 되네. 그러니 성영 도우도 이해할 것이야. 그렇지 않소?”

    흑의의 노인이 웃음을 머금은 채 묻자, 홍해아는 말없이 노인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허공에 불꽃이 번쩍 튀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곧 각자 약속이나 한 듯 눈길을 옮겼다.

    “학 도우의 말이 일리 있소.”

    홍해아가 조금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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