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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76화 (476/1,214)

476화. 현천공화결(玄天控火訣)

반 시진쯤 뒤, 심협과 화삼은 또다시 세차게 흐르는 용암 앞에 이르렀다. 이곳의 용암은 지금까지와 달리 붉은빛에 황금빛이 섞여 있었고, 온도는 더 높아서 수시로 불길이 날름거렸다.

“이곳의 용암을 건너면 바로 용암동굴이 나옵니다. 허나 이 용암층은 수위가 매우 높고, 여러 번 모퉁이를 돌아야 합니다. 대선께서 지금까지 용암을 가로질러 오신 방법은 아마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화삼이 우려되는 듯 말하자 심협은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앞쪽 허공을 떠밀었다.

실체를 지닌 듯한 두 줄기 금빛이 그의 손에서 날아가 굵기가 1장쯤 되는 금빛 원뿔로 합쳐지더니 용암을 파고들었다.

용암은 더없이 뜨거웠지만 단단하지는 않았기에 순간적으로 원뿔 형태의 구멍이 뚫렸다.

용암이 밀려나면서 틈이 벌어지긴 했지만, 무시무시한 열기가 금빛 원뿔로 스며들어와 심협의 두 손은 마치 불에 찔러넣은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심지어 손목의 적염주도 이 열기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심협은 급하게 현빙면구를 꺼내 얼굴에 썼다. 그러자 곧 얼음처럼 서늘한 기운이 온몸에 흐르면서 양손에 욱신거리는 느낌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 두 보물을 빌려오길 잘했군.’

심협은 한숨 돌리고는 몸에 금빛을 일렁이며 곧 금색 빛 덮개를 응집해냈다. 동시에 그의 몸 위로 노란 빛이 번쩍이더니 비단 손수건이 나타나 금색 빛 덮개 안에 방어막을 또 한 겹 만들었다. 이 비단 손수건은 어느 정도 열을 차단하는 효력도 있었기에 없는 것보다는 조금 나았다.

“가자.”

심협은 거침없이 용암 속으로 몸을 날렸고, 잠시 멍하니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화삼도 용암 속으로 몸을 던져 길을 안내했다.

앞서 몇 번이나 건넜던 용암들은 순식간에 지나갈 정도로 짧았기에 심협은 용암 속에 머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용암 속을 지나다 보니 질식할 듯한 열기가 사방에서 스며들었다. 현빙면구가 절반쯤 막아주었음에도 남은 열기가 그의 온몸을 난도질하는 듯해 더없이 고통스러웠다.

화삼도 심협의 어려움을 알아차리고는 최대한 빨리 길을 안내했지만, 이 용암 속 통로는 구불구불해서 속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은 문득 속으로 기뻐했다. 신식으로 용암이 거의 끝나가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 무렵 그의 온몸은 벌겋게 익었고, 피부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기 시작하여, 그 스스로도 일각(一刻: 약 15분)도 못 버틸 듯했던 것이다.

그가 기운을 북돋으며 단숨에 속도를 내 앞으로 돌진하려는 찰나, 문득 귓가에 화삼의 전음이 떠올랐다.

‘대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왜 그러느냐?’

심협은 어리둥절해서는 우뚝 멈췄다.

‘이 용암을 벗어나면 우리 화매족이 갇혀 있는 용암동굴이 나옵니다. 그 안에는 경비병들이 지키고 있는데, 제가 달아났으니 아마 경비는 더욱 삼엄해졌을 겁니다. 그러니 그냥 나갔다가는 들키고 말 것입니다.’

화삼이 재빨리 말했다.

‘그렇구나. 그럼 너는 일단 잠시 쉬어라. 이 일은 내가 처리하마.’

심협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어 화삼을 천책 공간에 거둬들인 뒤, 손을 뒤집어 은신부를 하나 꺼내 몸에 붙이고 다시 자취를 감췄다.

은신부의 효과는 훌륭해서 그의 몸에서 빛나는 금빛까지도 함께 숨겨주었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열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천천히 나아갔고, 10여 호흡 뒤에야 마침내 용암지대를 벗어났다.

눈앞이 환해지면서 어느 거대한 용암동굴이 나타났다. 그곳은 매우 넓어서 너비가 수백 장은 됐다. 곳곳에 시뻘건 용암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거대한 호수를 이루어 온 동굴 아래쪽을 가득 채웠다. 그 안에는 붉은 기포가 쉬지 않고 부글거리다가 하나씩 터지면서 동굴 전체를 숨도 쉴 수 없는 고온으로 가득 채웠다.

하지만 용암 내부와 비교하니 서늘할 정도라 심협은 심지어 상쾌한 기분으로 몇 번이나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용암 호수의 다른 편에는 온통 붉은 바위로 된 바닥이 있었는데, 마치 광장처럼 평평한 것이 누군가 보수해놓은 것 같았다.

붉은 바위 광장도 매우 넓어서, 위에는 수백 개의 원형 법진들이 바둑판처럼 늘어서 있었다. 하나하나의 폭이 1장 정도 되어 보이는 각 법진의 중앙에는 붉은 옥기둥이 불쑥 솟아 있었는데, 그 속이 텅 비어 있었고, 땅속 깊은 곳으로 통하는 것 같았다.

각 법진마다 족쇄와 수갑을 찬 화매족이 두 명씩 단정히 앉아서 손으로 옥기둥을 꼭 짚은 채 몸에 붉은 빛을 번득였고, 옥기둥 주위의 원형 법진들은 빠르게 회전했다. 옥기둥에서는 순수한 붉은색 화염이 뿜어져 나와 순수한 화원의 힘을 내뿜으며 하늘로 곧장 솟구쳤다.

‘용암 속에서 이토록 순수한 화염을 추출해내다니, 화매족은 불을 다루는 재주에 있어 과연 독보적이구나.’

심협은 이 광경에 크게 감탄했다.

하지만 화삼이 말한 대로, 이렇게 용암지대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지화(地火)를 소환하다보니 화매족 또한 화독과 불순물의 영향으로 몸에는 얼룩덜룩한 검은 반점들이 나타나 있었다. 지화를 불러낼 때는 몹시 힘겨운 듯 몸까지 바들바들 떨었다.

심협은 가만히 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붉은 바위 광장 위에는 검붉은 갑옷을 입은 요괴 병사들이 서성이며 이 화매족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요괴 병사들은 제법 강한 편으로 적어도 출규 후기쯤 되었고, 우두머리 중에는 대승기도 두세 명 있었다.

심협은 이 요괴 병사들이 전혀 두렵지 않았지만, 금례가 준 정보에 따르면 홍해아 등 진선기 요족들이 용암동굴의 꼭대기에 있으니 여기서 소란을 일으키면 분명 눈치챌 터였다.

수백 줄기의 붉은 화염들이 화룡(火龍)처럼 붉은 바위 광장 상공에서 춤을 추더니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길이가 무려 30여 장에 이르는, 하늘을 떠받칠 듯한 불기둥을 이루어 높이 치솟아 동굴 천장의 벽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천장에는 거대한 붉은 법진이 새겨져 있어서 윙윙 소리를 내며 회전했고, 한 줄기 흡입력으로 놀라운 화염의 힘이 담긴 굵직한 불기둥을 집어삼켰다.

심협은 고개를 들어 동굴 천장의 법진을 훑어본 뒤, 곧 시선을 거두고는 전음으로 천책 공간 속의 화삼과 소통했다.

‘이 용암동굴 안에 정찰 법진이 있느냐?’

‘예전에는 없었습니다. 이 동굴은 땅속 깊은 곳에 있고 우리 화매족은 전투력이 약한 편이라 성영대왕도 그리 삼엄하게 지키지 않았지요. 그저 요괴 병사들만 내려보내 지키게 했는데…… 덕분에 제가 빈틈을 봐서 탈출할 수 있었지요.’

화삼의 대답을 들은 심협은 용암동굴 곳곳을 조심스레 훑어보았다. 신식까지 천천히 풀어 동굴을 한 차례 자세히 살폈지만, 금제의 기운 따위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없는 것 같군. 하긴, 화삼이 탈출한 지 고작 한나절밖에 되지 않았고, 성영대왕은 보물을 만드느라 바쁘니 벌써 금제를 설치하지는 못했을 거야.’

그는 그제야 안심하고 조심스레 앞으로 날아가 곧 붉은 바위 광장의 한쪽 구석에 내려선 뒤, 법력을 흩어버렸다.

‘대선, 벌써 용암동굴에 들어가셨습니까? 지금 우리 일족 사람들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제가 달아난 것 때문에 벌을 받지는 않았습니까? 제게 밖을 한 번만 보여주실 수는 없나요?’

화삼이 초조해하며 질문들을 연달아 와르르 쏟아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 조금만 기다리거라. 화매족은 벌을 받지 않았다. 그저 지화를 소환하느라 힘겨워 보이는구나.’

심협의 대답에 화삼은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화매족은 5백여 명 정도인 듯한데, 이게 전부냐?’

심협은 붉은 광장 위의 화매족을 훑어보며 두 눈을 찡그렸다.

‘여기 있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다른 절반은 옥에 갇혀 있습니다. 용암의 화독이 심해서 성영대왕은 우리 화매족을 둘로 나누어 번갈아가며 지화를 소환하게 한 것이지요.’

심협이 용암동굴의 다른 쪽을 돌아보니 그곳의 벽 위에는 거대한 감옥이 하나 뚫려 있었다. 그 안에 수많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는데, 화매족인 듯했다.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약을 복용하고는 조심스레 운기조식했다. 그렇게 법력을 천천히 회복시키고 상처도 치유했다.

‘대선, 이 용암동굴 안에서 성영대왕과 싸우시려는 거지요? 그럼 저를 화매족 사람들과 만나게 해주십시오. 일족 사람들이 대선을 돕도록 제가 반드시 설득하겠습니다!’

금빛 공간 안에서 화삼이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고 말했다.

‘조금 더 기다려라. 필요할 때 말할 것이니.’

심협은 냉담하게 대꾸했다.

화매족의 힘을 빌릴 수도 있지만, 지금은 가장 중요한 고비이니, 위에 있는 진선기 요마들이 수원독을 먹을 때까지는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 여긴 것이다.

‘대선, 우리 화매족 사람들의 수가 갑자기 줄어 대선께 별 가치가 없을지 모르지만, 제게는 불을 다루는 비술이 있습니다. 상고시대의 비전으로, 대선께 분명 쓸모가 있을 겁니다. 우리 화매 일족을 구해주시기만 한다면 제가 이 비술을 알려드려 대선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화삼은 심협이 화매족 수가 적어 별 소용이 없으니 도와주지 않기로 마음먹은 줄 알고 그렇게 애원했다.

‘불을 다루는 비술이라고?’

심협이 어리둥절해졌다.

‘그렇습니다! 우리 화매족에게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비밀인데, 현묘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종족은 약하지만, 불을 다루는 능력은 가히 놀랍지요. 사실 몸속에 상고시대 금오의 혈통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 종족이 대외적으로 이야기하는 구실일 뿐이고, 진실은 이 불을 다루는 비술 덕분입니다.’

‘오, 어떤 비술이기에 그리 기이하단 말이냐?’

심협은 그 비술에 흥미가 조금 생겨 물었다.

‘현천공화결(玄天控火訣)입니다. 화염을 정화하고, 화염의 변화를 통제하며, 화염의 신통한 위력을 끌어올리는 비술이지요. 대선께 분명 유용할 것입니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 이 비술을 익히시기만 하면 바깥의 그깟 화염과 고온 따위도 즉시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이 비술에는 정묘한 구석이 많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일족의 타고난 자질도 부족하여 그 만분의 일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선배님이라면 분명 이 비술을 진정으로 크게 발전시키실 수 있을 겁니다.’

화삼이 자신하며 말했다.

‘좋다. 네가 그 현천공화결을 내게 주면, 내 너희 화매족을 고통에서 구해내겠다고 약조하마.’

심협은 화삼의 말에 마음이 조금 동하여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화매족 사람들을 구출할 생각이었는데, 현천공화결까지 얻을 수 있다면 그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비술을 전수해드리면 곧 있을 싸움에서도 승산이 더 늘어날 겁니다.’

화삼은 크게 기뻐하고는 곧바로 현천공화결의 내용을 읊었다.

심협은 조용히 구결을 들었는데, 처음에는 다소 건성이었던 그의 태도는 곧 엄숙해졌다.

이 현천공화결은 처음에는 화염의 힘에 대한 설명으로 그에게 큰 깨달음을 느끼게 했고, 후반부의 불을 다루는 여러 가지 정묘한 법술들은 시야를 넓혀주었다. 그는 이 구결을 통해 큰 이득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현천공화결은 구결이 그리 길지 않아서 화삼은 금방 전수를 마쳤다.

심협은 눈을 감고 다시 한번 되새기며 속으로 법결을 가만히 운공했다. 그러자 주위의 뜨거운 불의 힘이 그의 몸에 닿기가 무섭게 흐르는 물이 암초에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양쪽으로 갈라져 흘러갔다. 용암동굴의 온도는 여전했지만, 심협은 뜨거움이 훨씬 줄었다고 느꼈다.

‘역시 훌륭하구나!’

심협은 우연히 보물을 만난 듯해 크게 기뻐했다.

꿈속 세계의 그는 화염 계열의 공격을 전혀 알지 못하니 이 현천공화결의 가치가 그리 크지 않겠지만, 현실 세계의 그는 홍련업화를 손에 쥐고 있다. 지금까지는 불을 다루는 고명한 법술을 몰랐던 데다 무명공법이라는 물 속성 공법을 수련한 탓에 천화(天火)를 지니고도 좀처럼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한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이 비술을 완전히 깨달을 수만 있다면 홍련업화는 분명 큰 빛을 발할 수 있을 터였다.

심협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고 현천공화결을 곱씹어 깊이 이해하는 한편, 단약을 정제해 법력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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