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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75화 (475/1,214)

475화. 신목(神木)의 도움

화 도인은 곧 심협에게 수원독의 주의사항을 자세히 일러주었고, 심협은 하나하나 단단히 기억했다.

“맹독 이야기를 하자니, 제가 일전에 어느 유적 안에서 검은 약병 하나를 얻었는데 병 안에 뭐가 들었는지 뚜껑을 열자마자 검은 기운이 솟아나왔습니다. 그 검은 기운은 아주 기이하여 법력이든 신식이든 닿으면 곧바로 스며들었고, 거리를 두고도 제 몸에 들어와 살의를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그 태을경의 검은 해골을 맞닥뜨렸는데, 상대가 그것과 비슷한 기운을 내뿜어 제 몸에 스며들게 했지요. 그때 하마터면 삼재 중 뇌재를 일으킬 뻔했지 뭡니까. 여러분께서는 견문이 넓으시니 그 검은 기운의 정체를 혹시 아십니까? 일종의 맹독은 아닌지요?”

심협은 오랫동안 궁금했던 의문이 떠올라 그 검은 옥병을 꺼냈는데, 뇌 도인과 화 도인은 놀란 듯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 검은 기운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는지 잠시 생각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검은 기운? 심형, 그 옥병을 잠시 보여줄 수 있겠나?”

원 노인은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더니 물었다.

심협은 그에게 단서가 있는 듯하자 기쁨을 금하지 못하며 옥병을 건넸다.

원 노인은 손을 흔들어 몸 앞에 하얀 빛의 장막을 한 겹 펼친 뒤에야 검은 옥병을 열었다.

검은 기운은 곧바로 솟구쳐 나왔지만, 하얀 빛 장막에 가로막혀 놀랍게도 전혀 스며들지 못했다.

심협은 이를 보고 속으로 저도 모르게 원 노인의 신통에 감탄했다.

원 노인은 이 검은 기운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다시 병 안을 몇 번 들여다보고는 곧 허허 웃었다.

“과연 그렇군. 업력단(業力丹)이야. 심도우가 한 알 얻었을 줄은 몰랐구먼.”

“업력단이요?”

심협은 의아한 듯 물었고, 뇌 도인과 화 도인은 놀란 표정이었다.

“심 도우 자네, 업력이 무엇인지 아는가?”

원 노인은 곧바로 심협의 의문을 풀어주지 않고 반문했다.

“몇몇 고서에서 본 적은 있습니다. 업력이라는 것은 인과관계의 표현으로, 보통 개인의 과거와 현재 혹은 장래의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영향력을 뜻하지 않습니까? 보통은 선업과 악업으로 나뉘고, 통속적으로는 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고 하지요.”

심협의 대답에 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대략 그런 것이지. 이 업력단은 바로 악업의 힘을 모아 정제해낸 단약이라네. 허나 먹는 단약이 아니라 공격성을 지닌 무기지. 업력단이 상대의 몸속에 녹아들어가 업력을 크게 증폭시키고 뇌재와 같은 재난을 일으킨다네.”

“세상에 그런 공격수단도 있었군요! 원 도우께서는 정말 박학다식하십니다. 한데 업력 같은 것은 실체가 없는 막연한 것인데 수집할 방도가 있단 말입니까?”

심협은 어찌된 영문인지 문득 깨달았으나 곧 다시 의문이 생겼다.

“평범한 사람은 수집할 수 없지. 허나 유일하게 마족은 칠정(七情)의 힘을 부리는 데 능하여 업력을 수집할 수 있다네. 하지만 업력단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마족은 내가 알기론 치우뿐이야.”

원 노인의 대답에 심협은 잠시 넋이 나갔다. 이 업력단은 그렇다면 치우가 손수 정제한 것이란 말인가?

“이 단약에 담긴 업력은 놀라울 정도이니, 잘 보관했다가 대적하기 힘든 강적을 만났을 때 쓰도록 하게.”

원 노인은 병마개를 막고 검은 약병을 다시 건네주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원 도우.”

심협은 진심으로 탄복하고 감사하며 말했다.

“심 도우는 다른 일이 더 있는가?”

원 노인이 손사래를 치며 물었다.

“한 가지 일이 더 있긴 합니다. 현공동 안에는 곳곳마다 용암과 불길이 가득하니 땅속 깊은 곳은 더욱 뜨거울 것입니다. 여러분께 불을 물리치는 보물이 있다면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번 일이 끝나면 반드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심협이 다시 한번 공수하며 말했다.

“그야 어려울 것 없지. 내게 적염주(赤焰珠) 한 꿰미가 있는데, 부상신목(*扶桑神木: 중국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신령한 나무)을 조각해 만든 것이오. 몸에 지니고 있으면 이것이 스스로 그대를 도와 열기를 막아줄 거요.”

화 도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주홍색 나무 재질 팔찌를 하나 꺼내 전해주었다.

심협은 고서에서 부상신목에 대한 기록을 본 적이 있는데, 상고 시대의 10대 영목(*靈木: 신령한 나무) 중 하나로 꼽힌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금오 신조(神鳥)가 깃든 나무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화 도우.”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팔찌를 받았다.

“내게는 현빙면구(玄氷面具)가 하나 있다네. 여러 해 전에 한 무리의 요마를 섬멸하면서 우연히 얻은 것이지. 대단히 차가운 힘이 담겨 있어 모든 불을 이겨낼 수 있다네. 이 물건은 내게 더는 쓸모가 없으니, 다시 돌려줄 것 없네.”

원 노인은 하얀 가면을 꺼내 심협에게 건넸다.

“제가 어찌 원 도우의 보물을 거저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일이 끝난 뒤에 반드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심협은 공수하고 감사를 표한 뒤, 하얀 가면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곧 손가락이 꽁꽁 얼어 아파왔다. 재빨리 법력을 운행한 뒤에야 가면의 한기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또다시 한바탕 상의를 한 뒤에야 논의를 마쳤고, 심협은 천책 잔경을 떠나 흑우의 동부로 돌아왔다.

* * *

‘어디에 있든지 진선기를 뛰어넘는 세 명의 대능들이 갖가지 보물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다니, 실로 든든하군.’

심협은 옥병과, 구슬꿰미, 가면을 든 채 천책 잔경의 무서움에 감탄했다.

그는 이제 홍해아를 잡아 돌아가는 일에 자신감이 생겼다.

“이건 네게 주마. 다음번 그들에게 천룡수를 보낼 때 섞어 넣어라. 천룡수 한 병에 한 방울이면 된다.”

심협은 수원독을 금례에게 건넸다.

“예.”

금례는 짧게 답하고는 옥병을 챙겨 멀어져갔다.

심협은 잠시 다시 하얀 부적 두 장을 꺼내 흑우에게 건넸다.

“이 은신부는 네가 가지고 있다가 나를 대신하여 현공동의 다른 통령들 휘하 병사들의 동정을 감시해라.”

그가 무심한 말투로 분부했다.

“예.”

흑우는 대답한 뒤 은신부를 건네받았다.

심협은 손을 뒤집어 노란색 비단 손수건을 꺼내고는 순식간에 땅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토둔술을 시전해 위쪽으로 잠행했다. 이곳 현공동의 땅속에는 짙은 화원(火元)의 힘이 깃들어 있어서 평범한 토둔술은 펼칠 수가 없었으나, 이 비단 손수건을 사용하면 힘겹기는 해도 시전할 수 있었다.

반 시진쯤 뒤, 그는 현공동에서 수십 리 떨어진 어느 외진 협곡에 도착했다. 그곳은 산간 평지 동쪽의 거대한 화산과 가까웠는데, 협곡 안의 바위들은 불타오르는 숯덩이처럼 붉은 빛깔을 띠었고, 뜨거운 아지랑이가 곳곳에서 일었다.

심협은 사방을 쓱 훑어본 뒤, 다시 협곡 깊은 곳으로 날아가 금세 높이가 1장쯤 되는 가려진 산굴 앞에 이르렀다.

산굴은 아래쪽을 향해 구불구불 뻗어 있었는데, 깊은 곳에서 가느다란 불빛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더 깊은 곳은 더욱 뜨거울 게 분명했다.

“바로 여기냐?”

심협이 불쑥 물으며 손을 휙 휘두르자 자그마한 붉은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화삼이었다.

“맞습니다. 대선께서는 저를 따라오시지요.”

화삼은 그렇게 답하고는 동굴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동굴 안의 온도는 바깥보다 족히 배는 높았지만, 화삼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편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심협은 그 뒤를 바짝 좇았지만,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공법을 운공하여 주변의 뜨거운 열기를 막아야 했다.

두 사람은 구불구불한 산굴을 따라 금세 아래로 수백 장을 전진했다.

이곳의 동굴 벽에는 가닥가닥 붉은 화염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사나운 열풍이 아래에서부터 끊이지 않고 불어와 사람을 바짝 마른 시체로 구워버리려 했다.

심협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손을 결인하자, 몸 표면에 금빛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빛 덮개를 만들어냈다.

황정경은 위력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불길에는 약한 것인지, 5할의 법력을 운행했음에도 효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황정경에 이런 약점이 있을 줄이야…….’

다소 뜻밖이라는 생각에 심협은 혀를 찼다.

다행히 이곳의 온도는 아직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서 그럭저럭 막아낼 수 있었다.

“대선, 괜찮으십니까?”

화삼이 심협의 상태를 알아차리고는 물었다.

“괜찮다. 계속 가자꾸나.”

심협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진짜 난관은 앞에 있답니다.”

화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심협은 적염주와 현빙면구를 떠올리며 화삼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또 한참을 전진하다가 모퉁이를 하나 돌자, 붉은 빛이 갑자기 강해지기 시작했다. 양옆의 벽은 진홍색으로 물든 상태로 심지어 흐물흐물해질 기미가 보였다. 곧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공기도 마치 화염처럼 붉게 물들었고, 주변 온도는 몇 배로 치솟아 격분해 날뛰는 흉악한 짐승처럼 사나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초래한 원인이 바로 동굴 앞에 있었다.

부글부글 끓는 소리와 함께 귤빛 용암이 세차게 흘러 통로를 완전히 막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의 온도는 실로 무시무시해서, 심협은 잠시 현기증에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였고, 들이마신 공기에 폐가 불타버릴 것만 같았다. 금빛 보호 덮개는 몇 번 미친 듯이 번쩍이더니 곧 무너지려 했다.

심협은 황급히 황정경을 운공하고도 여전히 주위의 고온을 막아낼 수 없자 재빨리 적염주를 꺼내 손목에 찼다.

구슬에서 붉은 빛이 치솟아 쉴 새 없이 주위의 열기를 흡수하자, 심협은 온몸이 홀가분해지는 느낌이 들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용암은 그리 높지 않으니 대선께서는 일단 저를 따라오십시오.”

화삼은 그렇게 말하고는 온몸에 거센 붉은 빛을 내뿜더니, 몸이 반투명한 상태가 되어 용솟음치는 용암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심협에게는 화삼 같은 신통력이 없었다. 그의 육신이 강인하긴 하지만, 감히 용암에 뛰어들 수는 없었기에 그는 손을 뒤집어 진해빈철곤을 꺼낸 뒤,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솟구치는 금빛 한 줄기가 용암에서 쏘아져 나와 갑자기 폭발하며 갈라졌다. 동시에 요동치던 용암에 순간 1장 크기의 틈이 생겨나면서 붉은 용암 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곳의 용암은 수위가 3장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심협은 한 줄기 금빛으로 몸을 변화시켜 용암의 빈틈이 닫히기 전에 날아 지나갔다.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던 화삼은 심협이 뜻밖에 이런 방식으로 지나오는 것을 보고는, 잠시 멍하니 얼이 빠져 있다가 다시 나아갔다.

용암 뒤의 산굴은 곳곳마다 작열하는 붉은 빛으로 가득했고, 벽 위의 불씨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온도 또한 급격히 치솟았다.

다행히 부상신목을 조각해 만든 적염주는 실로 비범하여 끊임없이 주위의 열기를 흡수한 덕분에 심협은 그래도 버틸 수 있었다.

뒤이은 길에서도 두 사람은 이런 작은 규모의 용암을 일고여덟 차례나 마주쳤지만, 심협은 여러 보물로 하나씩 순조롭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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