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74화 (474/1,214)
  • 474화. 시조산(始祖山)

    “너희들은 예서 기다리거라.”

    금례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금림 등에게 분부하고는 흑우를 데리고 안쪽 밀실로 향했다.

    그가 소매를 가볍게 휘두르자 금빛 한 줄기가 밀실 벽에 닿더니 밀실 전체로 번져나갔다.

    “됐다. 이제 말하라.”

    금례가 냅다 내동댕이치자 흑우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세차게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고통스러워하기는커녕 씩 웃었다.

    금례는 그 미소를 보고 아차 싶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그의 머릿속에 어떤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네가 그리 알고 싶다 하니, 내 알려주마.”

    금례는 안색이 크게 변하여 즉시 뒤로 날아갔지만, 그의 뒤편 허공에 금빛 한 줄기가 날아들어 정면으로 뒤덮으려 했다. 동시에 눈앞의 풍경이 빙글빙글 돌더니, 그는 곧 금빛 공간에 나타났다.

    그곳에는 금빛 형체가 웃음을 머금고 그 앞에 서 있었다. 물론 심협이었다.

    “인간족! 너는 누구냐? 여기에 뭘 하러 온 것이야!”

    금례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몸을 물리려 했다.

    “이제 좀 얌전히 굴지 그래?”

    심협은 가볍게 웃고는 결인하여 끌어당겼다.

    금례의 머리 위에 오래된 금빛 거울 하나가 떠오르더니 금색 빛기둥이 위에서 위잉 하는 소리를 내며 내려와 그의 몸을 뒤덮었다. 그러자 금례는 순간 그 자리에 못이 박혔고, 입은 반쯤 벌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심협은 천책을 운행하여 금례를 복종시키려 했으나, 천책의 인원 제한을 떠올리고는 손을 거두었다.

    ‘아무래도 통령역요술을 쓰는 게 낫겠군. 이자를 통제할 수도 있고 아무 때나 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손을 들어 금례의 머리 위에 얹고 통령술을 운공했다.

    무수히 많은 검은 부적 문양이 금례를 휘감았다. 심협의 경지가 상대보다 훨씬 높았고, 금례의 몸과 신혼은 천책에 의해 고정되어 있었기에 그는 금방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그의 머릿속에 통령표기를 심었다.

    “주인님을 뵈옵니다.”

    금례는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절했다.

    ‘통령술은 천책에 훨씬 못 미쳐서 억지로 상대의 신혼에 표기를 심고 상대를 조종할 수만 있을 뿐, 완전히 굴복시킬 수는 없구나.’

    심협은 안타까우면서도 내심 천책의 힘에 감탄했다.

    “너는 현공동 5대 통령 중에 하나렷다! 평소 어떤 일을 도맡아 하느냐? 성영대왕은 지금 어디 있지?”

    심협이 재빨리 생각을 가다듬고 묻자, 금례의 얼굴에 주저하는 기색이 스쳤다.

    “내 너의 신혼에 표기를 심어두었으니 너의 모든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거짓을 고할 생각일랑 하지도 마라!”

    심협이 싸늘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주인님께 아룁니다. 저는 평소 현공동 내부의 일을 맡아 관리하고 있습니다. 물자조달이나 인원관리 등이지요. 성영대왕은 지금 지하 연보 밀실 안에서 외부에서 온 몇몇 마사(魔使)들과 함께 귀중한 보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금례는 몸을 바르르 떨더니 헛된 생각을 버리고 순순히 답했다.

    “그것이 어떤 보물인지 아느냐?”

    “그 보물은 아주 귀중해서 성영대왕이 아주 철저하게 숨기고 있습니다만, 연보 밀실에 보고하러 갔다가 멀리서나마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자루의 검인 듯했습니다.”

    “검이라…….”

    심협은 눈썹꼬리를 치켜 올렸다. 순양검배 때문에 그는 검에 상당히 민감했다.

    그러나 금례의 모습을 보아하니 그 검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 듯했기에 그도 더는 묻지 않았다.

    “지금 연보 밀실 안에는 진선기 요마가 몇이나 되느냐?”

    이에 대해서는 흑우에게서 듣긴 했지만, 아무래도 흑우보다는 금례가 더 자세히 알고 있을 터였다.

    “원래 현공산에는 성영대왕을 포함해 모두 다섯 명의 진선기 고수가 있었사온데, 얼마 전 네 명의 마사가 더 왔습니다. 그들 또한 진선기에 이른 상태지요.”

    금례의 대답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흑우의 말이 틀림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마사? 그들은 누구냐?”

    “시조산(始祖山)에서 온 자들로, 성영대왕이 그 넷을 마사라 칭합니다.”

    “시조산은 또 어디냐?”

    “저도 가본 적은 없지만, 듣기로는 북구로주 한가운데에 있는 곳으로, 치우 대인이 그곳에 잠들어 있다고 합니다.”

    금례의 대답에 심협은 가슴이 크게 요동쳤다. 원 노인 등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정보는 몹시도 중요했다.

    “성영대왕과 진선기 강자들은 어떤 자들이냐? 이름은 무엇이며 각자 어떤 신통력에 능하지?”

    그는 한참 뒤에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또다시 물었다.

    “성영대왕에게는 화첨창(火尖槍)이 한 자루 있고, 불 속성 신통력에 능합니다. 삼배진화의 신통력도 쓸 수 있는데 위력이 어마어마하지요. 휘하의 네 장군은 이름이 각각 금호(金虎) 장군, 목흠(木欽) 장군, 수천(水川) 장군, 토린(土麟) 장군으로, 각각 쇠, 나무, 물, 흙이라는 네 가지 속성의 신통력에 능합니다.”

    금례는 숨김없이 그들의 신통력과 법보에 대해 낱낱이 설명했다. 다만 새로 온 네 마사에 대해서는 그저 한 번 보았을 뿐이라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다.

    심협은 이런 상황을 귀담아 들으며 속으로 대책을 궁리했다.

    바로 그때, 밖에 있던 흑우가 갑자기 심신으로 누군가 와서 금례를 찾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누가 너를 찾아왔다는구나.”

    심협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금례를 바라보았다.

    “아마 제 밑에서 천룡수(天龍水)를 만드는 자일 겁니다. 곧 천룡수를 운반할 시간이라 제게 보고하러 온 게지요.”

    “천룡수는 또 무엇이냐?”

    심협은 계속해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자 다소 짜증이 나 불퉁거리듯 물었다.

    “혹독한 열기를 막고 법력을 회복시켜주는 일종의 진수(眞水)입니다. 성영대왕이 휘하에 네 장군과 마사들을 거느리고 보물을 만드는 밀실은 찜통 같이 무덥고, 보물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법력 소모가 크지요. 하여, 성영대왕은 몰라도 다른 이들은 견디지 못하여 천룡수를 계속 복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제가 매일 그 물건의 운반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금례가 눈치를 살피며 설명하자, 심협은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금례의 머릿속에 심어둔 통령표기를 흩어버렸다.

    금례는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다가 금세 다시 정신을 차렸고, 신혼의 제약이 사라진 경이로운 느낌을 받았다.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심하십시오, 귀하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절대 누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심협이 왜 신혼에 심어둔 표기를 해제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곧바로 무릎을 꿇으며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눈빛 깊숙한 곳에는 비웃음이 스쳐 지났다.

    ‘인간족들은 우유부단하여 적에게도 어리석은 자비심을 품는다더니, 정말이로구나. 이곳을 떠나자마자 즉시 염라 대인께 보고하리라!’

    심협은 평온한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득 결인하여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금례의 몸 주위 허공이 일렁이더니 여섯 개의 금빛 고경이 떠올랐다.

    “무, 무얼 하시려는 겁니까?”

    금례는 뭔가 이상함을 알아차리고는 대경실색하여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러나 심협은 아랑곳하지 않고 결인하여 거울들을 가리켰다.

    여섯 줄기 금빛이 비쳐 나와 금례의 몸을 뒤덮고 그의 몸을 다시 고정시켰다. 심협이 천책을 운행하여 복종 신통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밀실 대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안에서 평온한 표정의 금례가 걸어 나왔고, 그 뒤를 흑우가 바짝 따랐다.

    “숙부, 이야기는 마치셨습니까?”

    금림이 멀쩡한 흑우를 보고는 흠칫 놀라며 물었다.

    그러나 금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방 안에 있던, 온몸에 시커먼 털이 난 곰 요괴를 바라보았다.

    그 요괴는 손에 옥쟁반을 하나 받쳐 들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푸른 옥병이 한 무더기 샇여 있었다.

    “천룡수는 다 만들었느냐?”

    금례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예, 모두 열여섯 병입니다. 지금 보낼까요?”

    곰 요괴가 공손하게 물었다.

    금례는 옥병 하나를 집어 들고 병마개를 뽑았다. 안에는 하늘빛 액체가 반 병 넘게 들어 있었고, 짙은 물의 영기와 한기가 흘러넘쳐 온 석실이 서늘해졌다.

    “보내거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마개를 막아 다시 되돌려놓고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예.”

    곰 요괴는 짧게 대답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숙부, 흑우는……?”

    곰 요괴가 떠나자 옆에 있던 금림이 참지 못하고 다시 앞으로 다가섰다.

    “내 지금 중요한 일이 있으니 물러가거라. 오늘 일은 다신 꺼내지 마라!”

    금례가 쌀쌀맞게 말했다.

    “어째서입니까? 제가 사람들 앞에서 이 흑우 놈에게 모욕을 당하였는데 이렇게 넘어가야 한단 말입니까?”

    금림이 달갑지 않은 듯 빽 소리를 질렀으나, 금례는 싸늘하게 그를 돌아보더니 뺨따귀를 세게 후려갈겼다.

    “꺼지라면 잽싸게 꺼질 것이지 말이 많구나! 이 몸의 큰일을 지체시키다니, 내 너의 몸에 난 털을 모조리 다 뽑아버릴 것이다!”

    금례가 크게 성을 내며 호통을 쳤다.

    금림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부여잡고 겁에 질린 채 허둥지둥 달아났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어디 감히 더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 모두가 황급히 흩어졌다.

    금례와 흑우는 함께 손을 써 부서진 대문을 고쳐놓고는 동부 안에 여러 겹의 방어 금제를 벌여놓았다.

    그제야 동굴 안에 인영(人影)이 하나 나타났는데, 바로 심협이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손을 뒤집고 천책을 꺼내 그 속으로 들어가 원 노인 등에게 연락했다.

    * * *

    천책 잔경 속에 금빛이 연달아 번쩍이더니 세 사람이 모두 나타났다.

    “심 도우,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원 노인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다정스레 물었다.

    “지금 화활산에 도착하여 방도를 짜내 홍해아의 요마 대군 속에 잠입하였습니다. 홍해아는 지금 여덟 명의 진선기 요마들과 힘을 합쳐 귀중한 보물을 만들고 있다 합니다. 또한…….”

    심협은 현공동의 상황을 대략적으로 소개했다. 시조산 이야기에도 세 사람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심 도우가 일 처리가 이리 빠를 줄은 몰랐구먼. 벌써 이토록 많은 정황을 파악했다니 말이야.”

    원 노인이 칭찬하듯 말했다.

    다른 두 사람은 별말이 없었지만, 표정으로 보아 그들도 내심 놀란 것 같았다.

    “한데 홍해아 쪽에 아홉 명의 진선기 요마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 우리가 도움을 준다 해도 심 도우 혼자서는 아마 승산이 얼마 없을 걸세.”

    원 노인은 곧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지금까지 얻은 정황에 따르면 그들은 지금 땅 밑바닥의 뜨거운 곳에서 보물을 만드느라 천룡수라는 것을 먹어야 견뎌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기회입니다. 심모가 여러분을 소집한 것은 여러분께서 좋은 독극물이 있는지 여쭙기 위함입니다. 천룡수에 독을 섞으면 그들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어쩌면 독살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기회를 틈타 홍해아를 잡아서 적뢰산으로 데리고 돌아갈 수도 있겠지요.”

    심협이 말했다.

    “심 도우의 그 계책은 매우 훌륭하지만 진선을 쓰러뜨릴 수 있는 독은 흔하지 않소. 게다가 무엇보다도 허점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그 독극물을 은폐할 수 없다면 오히려 일을 망치고 말 게요.”

    뇌 도인은 이런 일에 아주 흥미가 있는지 손뼉을 치며 칭찬하면서도 계획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때, 원 노인이 조용히 말을 받았다.

    “내게 두 종류의 선독(仙毒)이 있긴 하다네. 고목독(苦木毒)과 환빙독(幻氷毒)이라는 것인,데 모두 진선기 경지의 수사를 쓰러뜨릴 수 있지. 다만 이 두 가지 맹독은 비교적 눈에 잘 띄어서 마실 것에 섞기에는 그리 적당하지가 않아.”

    한데 그때, 줄곧 침묵하고 있던 화 도인이 문득 입을 열었다.

    “내게 수원독(水源毒)이 있긴 하오. 아주 강력하여 오장(五臟)의 기운을 어지럽히고, 뱃속을 휘저어놓는 듯한 복통을 일으켜 움직이기 어렵게 만들지. 태을 진선이라 해도 그 고통을 피하긴 어려울 게요.”

    “수원독? 허나 그 독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까?”

    심협이 물었다.

    “수원독은 엄밀히 말하자면 맹독이 아니오. 그저 천지가 개벽하기도 전에 탄생한 어둡고 부드러운 수원(水元)의 힘일 뿐. 도우가 방금 말한 천룡수에 섞여 들어가면 분명 태을경의 선인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요.”

    화 도인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렇다면 잘됐습니다. 하면 어떤 물건을 드려야 수원독과 맞바꿀 수 있을는지요?”

    심협이 크게 기뻐하며 공수하고는 말했다.

    “우마왕을 포섭하는 것은 우리의 공통된 소원이오. 또한 이 화모, 비록 재주는 없으나 누구처럼 불난 틈을 타 도적질을 하진 않소. 그러니 이 수원독은 심 도우가 가져가 쓰면 그뿐이오. 부디 성공하길 바라오.”

    화 도인은 뇌 도인을 힐끗 쳐다보고는 하얀 옥병 하나를 꺼내 법술로 심협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화 도우.”

    심협은 재빨리 감사를 표한 반면, 뇌 도인은 성을 내며 콧방귀를 뀌긴 했지만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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