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72화 (472/1,214)
  • 472화. 생령을 복종시키다

    “그 요마들은 화활산에서 5백 리쯤 들어간 곳의 현공동(懸空洞) 안에 있습니다. 소인의 실력이 미약하고 하루 종일 우리에 갇혀 있었는지라 그 요마들의 수련 경지는 모릅니다요.”

    화삼이 난처한 표정으로 답했다.

    심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으나, 화삼의 모습을 보아하니 거짓은 아닌 듯했다.

    “좋다. 그럭저럭 만족스럽구나. 허나 해줘야 할 일이 조금 더 있으니 한동안은 너를 놓아줄 수 없다. 잠시 여기 머물거라.”

    심협이 슬쩍 턱짓을 하자 화삼은 말없이 눈을 반짝이며 그를 올려다봤다.

    “왜? 싫으냐?”

    심협이 다소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선께서 소인의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어찌 제가 싫다 하겠습니까? 다만…… 소인이 여쭙고 싶은 것이 있사온데, 대선께서는 현공동에 가고자 하시는지요?”

    화삼은 쭈뼛거리며 묻자 심협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천책 공간 안이라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기에, 화삼은 바깥으로 새어나갈까 하는 걱정 없이 입을 열었다.

    “대선께서 현공동에 가신다면, 다른 일족들도 고통에서 구해주시길 소인 간청 드리옵니다. 소인은 온 일족 사람들이 대선을 위해 힘쓰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화매족은 경지가 강하지는 않으나 상고시대 금오(*金烏: 동아시아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에 산다는 세 발 달린 까마귀)의 혈맥을 이어받아 연격술(連擊術)에 능하고, 온 일족의 힘을 모아 상고시대의 현화전진(玄火戰陣)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 위력은 산을 불사르고 바다를 들끓게 할 정도지요. 당시 성영대왕이 화활산에 내려왔을 때 우리 화매족은 이 현화전진으로 그들과 며칠이나 팽팽히 대치했지요. 성영대왕이 직접 나서서 삼매진화로 우리의 족장님을 살해하는 바람에 끝내 패배하긴 했습니다만, 대선께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화삼이 무릎을 꿇으며 간청했다.

    “기회가 된다면 내 그리 해보마. 허나 성공할 거라고는 약조하지 못한다.”

    심협은 현화전진이라는 것에 약간의 흥미가 일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선. 정말 감사합니다.”

    화삼은 거듭 고개를 조아렸다.

    심협은 손사래를 치며 신식을 움직여 천책 공간에서 나온 뒤, 산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잠시 비행을 하다 보니 멀리서 검은 그림자가 날아왔다. 조금 전의 그 키가 큰 새 머리 요물이었다.

    “네놈을 찾던 참이었는데, 제 발로 찾아왔구나!”

    심협은 씩 웃으며 그렇게 내뱉었다.

    한편, 요물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화삼은 화매 일족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날 때부터 화정(火精)을 지니고 있어 대왕에게 몹시 중요했다. 그러니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새 머리 요물이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눈앞에 갑자기 금빛이 나타났다. 이 요물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강한 흡입력이 온몸을 뒤덮더니 눈앞이 빙빙 돌며 끝없는 심연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금빛 공간 안이었다. 맹렬한 금빛 때문에 고작 3장 너머도 보기 힘들었다.

    새 머리 요물의 경지는 화삼보다는 훨씬 윗길이라, 마치 머리 위에 떠 있는 거대한 검처럼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거대한 압력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간 큰 놈이 법진으로 나를 가두었느냐? 나는 성영대왕 휘하의 선봉이다! 네놈이 죽고 싶은 게로구나!”

    새 머리 요물이 낮은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심협은 신식을 금빛 공간에 집어넣어 새 머리 요물과 이야기를 나누려다가, 문득 원 노인에게서 전수받은, 생령을 굴복시키는 방법이 떠올랐다.

    “이놈이 요긴할지는 모겠으나, 연습 삼아 시도나 해볼까?”

    심협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원 노인의 말에 따르면, 천책 안에 담을 수 있는 생령의 숫자에는 제한이 있었다. 현재 심협의 천책 잔권에 더 담을 수 있는 것은 30여 명이었다. 게다가 일단 어떤 생령을 천책에 싣고 나면 없애버릴 수도, 교체할 수도 없기 때문에, 신중히 결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심협은 시험 삼아 한 자리쯤 써보기로 했다.

    그는 뭔가를 중얼거리며 양손으로 결인해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새 머리 요물 주위에서 윙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어디선가 여섯 개의 금빛이 나타나 각각이 오래된 금빛 거울로 변하여 요물의 몸을 겨냥했다.

    이 요물은 두려움에 질려 손에 든 곡도에서 화염 같은 붉은 빛을 내뿜으면서 금빛 거울들을 베려 했다. 그러나 여섯 개의 금빛 고경(古鏡)은 동시에 거센 금빛을 발했고, 금색 빛기둥들이 단숨에 떨어져내려 요물의 몸을 뒤덮었다.

    새 머리 요물은 마치 온몸이 고정된 것처럼 즉시 뻣뻣하게 굳어서, 입조차 벌리지 못했고,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심협은 속으로 묵묵히 비법을 운공하며 양손으로 쉬지 않고 결인했다.

    금빛 고경에는 기이한 무늬들이 떠올랐고, 여섯 빛기둥 속에는 올챙이 같은 무수한 부적 문양이 나타나 끊임없이 새 머리 요물의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새 머리 요물은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기 시작했는데, 표정은 극심한 고통과 원한으로 물든 듯했다.

    그러나 올챙이 같은 부적 문양이 스며들면서 요물의 표정은 빠르게 변하여 마치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부드러워졌고, 온몸에는 금빛이 한 겹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두 눈을 하얗게 까뒤집더니 혼절해버렸다.

    새 머리 요물의 앞에 금빛이 번쩍 스치더니 심협이 나타나 결인하고 그를 가리켰다.

    여섯 개의 금빛 고경은 눈 깜짝할 새 사라졌고, 새 머리 요물은 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게 된 건가?”

    심협도 처음 해보는 것이다 보니 성공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새 머리 요물은 어렴풋하게 깨어났는데, 심협을 보자마자 황급히 일어나더니 엎드려 절을 올렸다.

    “주인님을 뵈옵니다!”

    심협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그는 이 새 머리 요물과 어떤 연결고리가 생겨나 그 몸속에 통령표기를 심은 것처럼 상대의 기분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법술로 천책 안의 명단을 감지해보니, 과연 끄트머리에 눈앞에 있는 새 머리 요물의 흔적이 늘어나 있었다.

    심협은 그제야 그가 앞에 있는 요물을 복종시켰다는 것을 확신하고 미소를 내비치며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성영대왕 휘하에서는 어떤 일을 했지? 왜 산맥 밖으로 나온 것이냐?”

    “주인님께 아뢰옵니다. 소인은 흑우(黑羽)라 합니다. 성영대왕 휘하 순라병단의 일원으로, 현공산(懸空山)의 안전을 살피는 일을 맡고 있지요. 한데 오늘 화매 왕족의 일원으로 몸에 화정의 힘을 지닌 화매족 한 마리가 도망을 쳤사옵니다. 성영대왕이 중히 여기시는 자라 그를 잡아 돌아오라는 명을 수행중이었습니다.”

    새 머리 요물은 공손하게 말했다.

    심협은 그 말에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그 화삼이라는 놈도 숨긴 일이 있었던 것이다.

    “성영대왕은 지금 화활산 안에 있느냐? 무얼 하고 있느냐?”

    심협은 다시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왕은 요 며칠 줄곧 현공동 밀실 안에서 귀한 보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다만 그 보물이 무엇인지는 소인도 모르옵니다.”

    흑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보물을 만든다……. 지금 현공동에는 진선기 이상의 요물이 얼마나 되느냐?”

    심협도 잠시 의아해하다가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흑우는 현공동의 수위이니 화삼과 달리 그곳의 고수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원래 현공동에는 성영대왕을 우두머리로 다섯 명의 진선기 강자가 있습니다. 허나 얼마 전 네 명의 거물들이 현공동을 찾아왔는데, 성영대왕이 그들을 몹시도 중시하신 것으로 보아 그들도 진선기 경지일 겁니다.”

    흑우의 답을 들은 심협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만약 그곳에 홍해아와 다른 진선기 요족 넷뿐이라면, 현재 그의 실력에 천책 속의 뇌부천장와 거령신 그리고 다른 대승기 천병들로 어찌어찌 상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진선기 요족이 네 명이 더 늘어났다면 승산이 없었다.

    ‘화삼이 말했던 현화전진을 사용할 수 있다면 승산이 있겠으나, 그러려면 화매족 전부를 구출해내야만 하니 불가능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이 제아무리 어렵게 돌아간다고 해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 네 명의 진선기 요족은 무슨 일로 현공동에 왔느냐?”

    심협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물었다.

    “그건 소인도 모르옵니다. 그저 그 네 사람이 온종일 밀실에 틀어박혀 있다고만 들었지요. 아마 성영대왕을 도와 그 보물을 만들고 있을 겁니다.”

    심협도 그리 짐작하고 있던 터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나를 현공동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있겠느냐?”

    그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있다가 흑우에게 물었다.

    “음,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시도해볼 만은 합니다.”

    흑우는 잠시 주저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심협은 흑우와의 연결을 통해 확신은 없지만 7할 정도는 자신할 수 있는 대답임을 깨달았다. 이에 그는 손을 휙 휘둘러 흑우를 천책 밖으로 풀어주었다.

    흑우는 마음과 정신이 심협과 연결돼 있어서, 상대가 은신부로 자취를 감췄음에도 그 기척을 감지하고는 예를 갖춘 뒤, 화활산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심협은 느긋하게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금세 화활산 깊은 곳에 이르렀다. 이곳은 공기 중에 코를 찌르는 유황 냄새가 가득했고, 새카만 화염과 화산재가 흩날렸다. 더욱이 이곳의 화염의 기운은 바깥보다 몇 배나 짙어서 심협마저도 조금 불편할 정도였다.

    흑우가 붉은 영부(靈符)를 한 장 꺼내 몸에 붙이자 몸 표면에 순간 붉은 빛이 감돌더니 주위의 고온을 반쯤 상쇄시켰다. 그 상태로 그는 너비가 무려 10여 리에 이르는 어느 산간 평지에 이르렀다.

    산간 평지의 양쪽에는 각각 거대한 활화산이 하나씩 있었는데, 수시로 하늘을 향해 용암 불기등과 짙은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그 평지에는 놀랍게도 한눈에 그 끝을 다 볼 수가 없는 거대하고 깊은 구덩이가 뚫려 있었다.

    구덩이는 완벽한 원기둥 형태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 듯했다. 구덩이 안쪽의 벽에는 여러 산굴이 빽빽하게 벌집처럼 파여 있었고, 때때로 요괴병사들이 그 사이로 들락거렸다.

    ‘주인님, 여기가 바로 현공동입니다.’

    흑우가 심신(心神)으로 심협과 소통했다.

    ‘어서 동굴 안으로 안내하거라.’

    심협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슥 훑어보고는 목소리를 전했다.

    흑우는 짧게 답하고 현공동을 향해 날아갔다.

    현공동 바깥에는 꽤 많은 요괴 병사들이 순라를 돌고 있었는데, 다행히 모두 경지가 높지 않아서 심협의 은신부를 꿰뚫어보지 못했다.

    흑우가 돌아오는 것을 본 요괴 병사 몇몇이 그를 맞이했다. 우두머리는 출규 중기의 독수리 요괴였는데, 머리에는 금빛 깃털이 한 움큼 돋은 것이 제법 비범해보였다.

    “여어, 흑우 대장 아니신가? 듣자하니 도주한 화삼을 추격하러 갔다던데, 어찌 혼자 돌아왔나? 놓친 것은 아니겠지?”

    독수리 요괴의 말투에는 고소해 죽겠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흑우가 심협에게 굴복하긴 했지만, 그 성격은 그대로였기에 노기가 번득이는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금림(金林), 화삼의 일은 내 알아서 염라 대인께 아뢸 것이다. 그러니 괜한 참견은 하지 마라. 너 따위와 잡담할 시간 없으니 비켜!”

    하지만 금림이라는 자는 비켜서지 않고 밉살스레 웃었다.

    “흥! 꼴에 자존심은……. 그 화삼이란 놈은 성영대왕께서 지명하여 엄히 지키라 명하신 중요한 죄수다. 한데 네 손에서 달아났으니 넌 분명 불기둥의 형벌을 받게 될 게다. 우리가 동료로 지낸 세월이 있으니 네가 화리도(火離刀) 한 쌍만 넘기면, 내 우리 숙부님께 말씀드리지. 우리 숙부님께서 염라 대인께 대신 부탁하시면 네 목숨은 살려주시지 않겠나!”

    불기둥 형벌은 현공동의 극형으로, 분화구에 구리 기둥 하나를 세로로 세워놓고 죄수를 그 위에 묶어 용암불에 49일 동안 그을리게 하는 것이었다. 죄수의 몸은 바싹 마른 시체가 되고, 화산재에 석화(石化)되어 고통에 몸부림치는 돌 조각상으로 변하는데, 그 과정의 고통은 그야말로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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