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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70화 (470/1,214)

470화. 보물을 아낌없이 베풀다

“이 비단 손수건은 하늘에서 내린 영보(靈寶)라네. 평범한 제련법으로는 작동시킬 수 없지. 그 위에 적힌 것은 선천연보결(先天煉寶訣)인데, 심 도우의 총명함이라면 금방 익힐 수 있을 걸세.”

원 노인은 그리 말하고는 옥간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신식으로 살펴보니 옥간 위에는 독특한 제련 비법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몹시도 난해하여 구구통보결과는 사뭇 달랐다.

다행히 그는 꿈속 세계에서 타고난 자질이 비범했기에, 속으로 두어 번 운공하자 금세 익힐 수 있었고, 이어서 비단 손수건의 힘을 불러일으켰다.

노란색 비단 손수건은 빛을 번쩍이더니 순간 백배로 커져 단번에 심협의 몸을 감쌌다.

심협은 끝없는 노란 빛으로 뒤덮여 깊은 땅속에 있는 것만 같았고, 주위의 아득한 대지가 나서서 방어해주어 누구도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단한 보물입니다!”

그는 비단 손수건의 신묘한 효력을 시험해보고는 곧 거둬들이며 감탄했다.

“이 물건은 방어에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땅속으로 잠복하고 빠르게 내달리는 데도 수도 있다네. 위험에 처하게 되면 둔지술을 써서 달아날 수도 있지. 삼계에 보물은 많고도 많지만, 둔지 능력을 따진다면 이 비단 손수건에 비할 것이 거의 없다네.”

원 노인이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 도우.”

심협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다시금 감사를 표했다.

“원 도우께서 이리 시원시원하시니 나도 속 좁게 굴 수야 없지. 이 치염단주(熾焰丹珠)는 내가 백 년이란 시간을 들여 지폐화독(地肺火毒)을 모아 정제해 만든 것으로, 태을경의 강자에게도 상처를 입힐 수 있소.”

뇌 도인은 붉은 구슬 하나를 꺼내 건넸다.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타는 듯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고, 심협의 수련 경지로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아파왔다.

심협은 재빨리 구슬을 챙기고는 공수했다.

“나는 이 두 분만큼 넉넉하지 않소. 이것은 창백지인(蒼白紙人)인데 겁을 대신해줄 것이오. 심 도우 대신 두 차례 치명상을 막아줄 수 있소.”

화 도인은 하얀 종이 인형 하나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화 도우.”

심협은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그가 홍해아를 찾으러 가겠다고 자청했을 때, 당연히 도움을 받게 될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한두 가지 쓸 만한 법보나 단약을 주겠거니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들은 씀씀이가 컸다.

이렇게 많은 보물이 생기자 그는 이번 걸음에 적잖이 자신이 생겼다.

“사실 천책이야말로 지극히 귀한 보물이라네.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보물에도 뒤지지 않을 게야. 다만 내 보기에 심 도우는 아직 그 물건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것 같은데……?”

원 노인이 말했다.

“그저 남의 공격을 흡수하고, 항복시킨 천병들의 잔혼을 불러내어 싸우게 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확실히 아직 다 깨닫지 못했습니다. 원 도우께서 조언을 좀 해주십시오.”

심협은 바라던 바라 재빨리 말했다.

“그 두 가지는 천책의 얕은 용법일 뿐일세. 다른 생령(生靈)을 굴복시키는 것이 이 천책의 가장 큰 역할이지. 생령의 신혼이 제련되어 책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상대가 어디에 있든 천책으로 그를 소환하여 활용할 수 있다네. 신혼이 제련되어 천책에 들어간 사람은 목숨을 잃는다 해도 천책 속 신혼의 흔적을 통해 잔혼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지.”

사실 이는 이정에게도 일찍이 들은 바 있지만, 원 노인만큼 상세하게 이야기해주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신혼의 흔적이 천책 안에 남으면 완전히 죽지는 않는다는 겁니까?”

심협이 놀라서 되물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 허나 일단 천책에 담기면 완전히 자유를 잃게 되니 결코 좋은 일은 아닐세.”

원 노인은 탄식하듯 답했다.

“천책으로 다른 생령을 어찌 항복시키는지도 알려주시지요.”

원 노인은 심협의 부탁에 별말 없이 그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상당히 복잡한 방법이었지만, 심협의 놀라운 자질과 경지로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원 노인에게 다시금 감사를 표했다.

한편, 옆에 있던 뇌 도인과 화 도인은 이 방법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인지 아무런 말도 없었다.

“화 도우, 옥면공주의 환생에 대한 일은 실마리가 좀 있는가?”

원 노인이 물었으나 화 도인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보내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으나 아직 소식은 없습니다.”

원 노인은 다소 실망한 것 같았지만, 몇 마디 격려의 말을 건네며 더 알아봐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서 화활산으로 가는 일에 대해 세부적인 것들을 논의하고 나자 뇌 도인과 화 도인은 차례로 자리를 떠났다.

심협도 천책 잔경을 떠나려는데 원 노인이 갑자기 그를 불러세웠다.

“심 도우, 잠시 기다리게. 전에 부탁한 물건들은 내 자세히 검사해보았네. 아무 문제가 없으니 지금 돌려주도록 하지.”

원 노인이 옥영과와 봉인법구를 꺼냈다.

“그 일은 급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물건들을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다지 안전하지 않으니 원 도우께서 잠시 동안 맡아두셨다가 제가 이번 일을 마무리하고 오면 다시 돌려주십시오.”

“알겠네.”

심협의 말에 원 노인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거절하지는 않았다.

* * *

동부로 돌아온 심협은 잠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이내 만세호왕의 거처로 향했다.

“홍해아가 어디 있는지 벌써 알아냈단 말인가?”

소식을 전해 들은 만세호왕은 크게 놀랐다.

“다른 이에게 조사를 의뢰하였는데, 이제 막 소식을 얻은 참입니다. 홍해아는 지금 북구로주의 화활산에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적뢰산이 비교적 안정된 상태이고, 평천대성께서 지키고 있어 별문제가 없으니, 제가 화활산에 다녀오고자 합니다.”

심협이 숨김없이 말하자 만세호왕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우마왕은 그동안 아들을 구하기 위해 줄곧 그 행방을 조사해왔음에도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했건만, 불과 보름여 만에 찾아내다니!

‘이 사람의 배후에는 도대체 어떤 세력이 있는 것인가! 방촌산이 선도의 큰 문파이기는 하나 이 정도의 능력은 없을 터인데?’

만세호왕은 그런 생각에 눈앞의 이자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싶어, 성급하게 상대에게 옥호족의 객경 장로를 맡긴 것이 조금 후회가 됐다.

“좋아. 심 도우는 마음 놓고 가시게. 허나 북구로주는 지금 마족의 손아귀에 놓여 있어 몹시 위험하니 부디 조심하게나.”

세상물정에 밝은 만세호왕은 내색하지 않고 다정스레 말했다.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심협은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몸에 노란 그림자가 번쩍하더니 별안간 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만세호왕은 신식으로 훑어보았지만, 이미 그의 신식이 닿는 범위를 벗어났는지 심협의 기운을 찾을 수 없었다.

“방촌산은 을목선둔으로 이름이 났지. 한데 이 심협이란 자는 토둔술에도 정통하단 말인가?”

만세호왕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더더욱 심협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 * *

심협은 노란 비단 손수건의 힘을 불러일으켜 내달렸다. 앞에 있는 흙이든 바위든 모두 헛것처럼 통과했고, 속도는 가히 하늘을 나는 것만큼이나 빨랐다.

게다가 이 비단 손수건에는 기운을 숨기는 효력도 있어서 그가 땅속을 내달리는 동안 기운이 조금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심지어 땅속의 벌레들과 요물들조차 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역시 대단한 보물이야!’

심협은 크게 기뻐했다.

유일하게 성가신 것이라면 이 비단 손수건을 작동시키는 데 법력 소모가 매우 크다는 것이었는데, 진선 중기 수련 경지로도 몹시 힘에 부쳤다. 이에 그는 틈틈이 멈춰 서서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하며 법력을 회복했다.

노란 비단 손수건으로 땅속을 엄청난 속도로 내달린 덕에 심협은 한나절 만에 남첨부주 경계에 이르렀다. 끝이 보이지 않는 혼탁한 수역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는데, 이전에 취보당 유적에서 나왔을 때 맞닥뜨렸던 바로 그 바다였다.

그는 원 노인과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 바다의 이름이 음명해(陰冥海)라는 것과, 북구로주와 남첨부주 사이의 천연 참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이런 험지가 생겼는지를 이야기하려면 상고 시대 무격과 요괴의 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화가 난 공공씨(*共工氏: 중국 전설 속 인물)가 부주산을 들이받는 바람에 하늘을 떠받치던 경천주가 무너지고 인계의 생명들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재난을 막고자 성인들은 북구로주에 있는 거대한 자라의 네 다리를 잘라 하늘을 떠받쳤고, 거대한 자라는 울분에 가득 찬 채로 죽고 말았다. 이후 그의 몸은 끝이 없는 장기(瘴氣)로 변하여 북구로주 전체를 뒤덮었고, 북구로주 주위의 바다가 그 장기에 물들어 독해(毒海)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천연 해자 덕분에 무요대전(巫妖大戰) 이후 북구로주로 유배당한 무격과 요괴들은 쉽사리 그곳을 떠나 다른 삼주(三洲)로 향하지 못하게 되었다.

심협은 이 바다의 무서움을 직접 겪은 바 있다. 또한 이 바다에서는 토둔술을 쓸 수도 없었기에 가로질러 건너기가 퍽 성가셨다.

하지만 이제 그의 경지는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고, 보물도 몇 가지가 늘었기 때문에 두렵지는 않았다.

시간이 촉박해지자 그는 진해빈철곤을 꺼내 몸과 곤봉을 하나로 만든 뒤, 별똥별 같은 한 줄기 금빛이 되어 먼 바다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한데 얼마 전진하기도 전에 혼탁한 해수면이 쩍 갈라지더니 굵기가 10여 장은 족히 될 듯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 검은 기운은 하늘을 찌를 듯이 음산했고, 가볍게 금빛을 가로막은 채 심협을 휘감으려 들었다.

바로 그때, 금빛 바깥에 노란 빛이 한 줄기 번쩍이더니 반경 10여 리 허공이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굵직한 검은 기운은 이 노란 빛과 부딪치자마자 바로 튕겨 나갔다.

반면 금빛은 전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날아가 눈 깜짝할 사이에 검은 기운을 완전히 따돌려버렸다.

금빛 속에서는 심협이 손에 쥔 노란색 비단 손수건을 내려다보며 씩 웃고 있었다. 그는 더욱 속도를 높여 날아갔다.

그렇게 하루 밤낮을 가니 마침내 아득한 음명해가 끝을 보이고 북로구주가 앞에 나타났다. 그러나 북로구주는 하늘과 맞닿아 끝없는 검은 운무로 뒤덮인 상태였다.

“이게 바로 그 거대한 자라가 변하여 만들어졌다는 장기인가?”

심협은 검은 운무 앞에 멈춰 서서 잠시 살펴본 뒤, 비단 손수건을 꺼내 몸을 보호하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아갔다.

치직!

검은 장기에 닿자 몸을 보호하던 노란 빛이 곧바로 번쩍이면서 끊임없이 침식되어갔다. 그러나 비단 손수건의 방어 능력은 놀라울 정도라 노란 빛을 끊임없이 뿜어내 장기의 침식을 막아냈다.

몇 호흡 뒤, 눈앞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심협은 마침내 검은 장기를 뚫고 어느 어둑어둑한 산봉우리 상공에 나타났다.

“이곳이 정말 북구로주란 말인가?”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눈아래는 온통 높은 산과 험준한 고개였지만, 남첨부주의 산봉우리들과 달리 이곳의 산봉우리는 대부분 민둥민둥했고, 영기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간혹 보이는 나무와 수풀은 거무스름했고, 숲속에는 짐승과 벌레들도 드물었으며, 공기 중에는 부패한 듯 시큼한 기운이 가득했다.

심협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곳은 이미 불모의 땅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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