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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69화 (469/1,214)
  • 469화. 명령을 자청하다

    세눈박이 천장은 심협 주위의 용과 코끼리 허상을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고는 장편을 쥔 손에 슬며시 힘을 주었다.

    자색 장편에 번갯불이 폭발적으로 불어나더니 자줏빛 교룡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몸을 꿈틀거렸다. 주위로는 아홉 줄기 용 모양 벼락이 떠올랐다.

    그 순간, 심협은 다시 그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는데, 그 강도는 이전의 열 배도 넘는 듯했다.

    심협은 동공이 바짝 움츠러들고 몸 표면에 금빛이 심하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몸에도 변화가 일어나 두 다리가 빠르게 굵어지면서 놀랍게도 코끼리 다리로 변했다. 두 팔도 굵어지면서 그 위로 굵고 커다란 용의 비늘이 나타나 순식간에 굵고 튼튼한 용의 발로 변했고, 순식간에 옷소매가 터져나갔다.

    동시에 심협의 기운도 갑자기 배로 불어나면서 진해빈철곤에서는 금빛이 산사태처럼 폭발했다.

    “준비가 되었느냐? 그럼 한 수 받아보아라!”

    세눈박이 천장은 심협의 변화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뇌편(雷鞭)을 들어 올려 허공을 내리쳤다.

    심협의 머리 위 허공이 자색 빛으로 밝아지더니 용 모양의 아홉 줄기 벼락이 난데없이 나타나 뇌룡처럼 매섭게 내리쳤다.

    꽈르릉!

    천지를 무너뜨릴 듯한 벼락의 힘이 떨어져 내리자 금빛 공간도 이 강대한 벼락의 힘을 버텨내지 못하는지 격렬하게 진동하며 폭발할 것만 같았다.

    심협은 상대의 공격이 예사롭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무섭고 빠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슬쩍 분노가 치솟아 진해빈철곤을 미친 듯이 휘두르면서 전력으로 발천난봉을 펼쳤다. 이에 법력이 너무 맹렬하게 운행된 나머지 체내의 법맥에 실오라기처럼 가느다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곧 평소보다 배는 커진 64줄기 곤영이 나타나 용 모양 벼락들과 전력으로 맞부딪쳤다.

    심협의 시야는 순간 번쩍이는 자색 번갯불로 뒤덮여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기세등등했던 곤영들은 종잇장처럼 부서져 허무로 돌아갔다.

    반면 아홉 마리 용 모양 벼락은 그 절반가량만 흩어졌고, 나머지는 멈추지 않고 날아들어 심협의 몸에 내리꽂혔다.

    콰지직!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벼락의 힘에 파묻혔다. 금빛 연무대 곳곳에는 사납고 굵은 천둥번개가 나타나 지지직 소리를 내는 것이 마치 천둥번개의 세계가 펼쳐진 것만 같았다.

    몇 호흡 뒤, 모든 천둥번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곳에는 완전히 증발해버린 듯 심협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흥! 빨리도 달아났구나.”

    세눈박이 천장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 * *

    산굴 동부 안, 사람 형체 하나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용과 코끼리 변신을 거둬들인 심협이었다.

    그는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옷은 너덜너덜했으며, 몸의 절반이 시커멓게 그을린 채 탄내를 풍기고 있었다. 몸의 기운도 절반이나 약해져서 원기가 크게 상한 상태였다.

    심협은 휘청거리다가 얼른 손을 뻗어 동부 벽을 짚고서야 겨우 제대로 섰다.

    천책을 장악한 뒤로는 그 연무대 공간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된 덕에 더는 예전처럼 죽을 때까지 싸울 필요가 없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군! 그 천장이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이야!”

    그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세눈박이 천장의 경지는 우마왕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천둥번개의 신통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문득 심협의 머릿속에 어떤 이름이 떠올랐다.

    “설마…… 전설 속 천둥번개의 힘을 다스리는 구천응원뇌신보화천존(九天應元雷神普化天尊)이란 말인가?”

    심협은 낮은 목소리로 그 이름을 몇 번 되뇌어 보더니, 고개를 도리질 치고는 벽을 짚고 천천히 동부의 밀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루 밤낮이 지난 뒤에야 심협은 동부의 밀실에서 나왔다. 이미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고 상처도 모두 없어졌지만, 안색은 여전히 조금 창백했다.

    그는 대청에 앉아 천책을 꺼내놓았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 세눈박이 천장은 지금의 그로써는 절대 굴복시킬 수 없을 터였다.

    원 노인 등을 감지해보았지만, 아무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이에 그는 천책을 거둬들이고 취보당 유적에서 얻은 옥간을 꺼내 살피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적뢰산은 평온했다. 마족들은 공격해오지 않았지만, 후퇴하지도 않았다. 이에 우마왕과 만세호왕은 군대를 배치하고 진을 치느라 바빴다.

    심협은 요 며칠 조용히 운기조식하며 상처를 치료하고 경지를 튼튼히 다졌다.

    만세호왕은 심협이 객경 장로를 맡게 됐음을 온 일족에게 선포했고, 옥호 일족의 대부분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가 옥호족의 장서실(藏書室)을 두 차례 찾아가 일부 고서들을 살폈을 때도 이를 막지 않았다.

    옥호족의 장서실에는 부적에 대한 고서들이 많아 심협은 둔지부와 은신부, 곤토인뢰부(坤 土引雷符)라는 세 가지 쓸 만한 부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둔지부와 은신부는 고급 부적이었고, 곤토인뢰부는 등급이 더 높은 위선부(僞仙符)였다.

    이 세 가지 부적, 특히 곤토인뢰부에 필요한 재료는 매우 진귀했다. 그러나 꿈속에서의 심협은 재산이 넉넉한 데다 옥호족의 객경 장로였기에 기별을 넣은 것만으로도 만세호왕이 곧바로 이 부적들의 재료를 무더기로 보내왔다.

    심협은 며칠을 연습한 끝에 둔지부와 은신부는 금세 익히고 제법 여러 장을 그려냈지만, 곤토인뢰부는 그럴 수 없었다. 낙뢰부처럼 뇌우가 쏟아지는 날 하늘의 천둥번개를 거둬들여야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은 이 부적의 부법(*符法: 부적을 그리는 법)을 능숙하게 익히는 데 힘썼다.

    * * *

    보름이 훌쩍 지났다.

    심협은 동부 안에서 부적에 대한 고서를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더니 손을 뒤집어 천책을 꺼내고는 결인하여 작동시켰다. 그리고 천책 잔경으로 들어갔다. 원 노인 등 세 사람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모였으니 시작하겠습니다. 요 며칠간 조사를 통해 홍해아의 행방을 찾아냈습니다.”

    황의의 사내, 뇌 도인이 입을 열었다.

    “역시 뇌 도우는 일 처리가 빠르구먼. 홍해아는 어디 있던가?”

    원 노인이 칭찬하며 물었다.

    “홍해아를 찾느라 내 우여곡절도 많이 겪었고, 일손도 적잖이 잃었건만, 원 도우께서는 나더러 맨입으로 말하라는 겁니까?”

    뇌 도인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면 되지 않는가.”

    원 노인은 뇌 도인이 약삭빠르게 재물을 뜯어내려는 데에도 아랑곳 않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내가 도우에게 말했던 그 물건 말입니다.”

    “알겠네.”

    뇌 도인의 말에 원 노인은 생각도 해보지 않고 답하더니 손을 뒤집어 하얀 옥합을 하나 꺼내 건넸다. 뇌 도인이 옥합을 열면서 손에서 노란 빛을 밝혀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심협은 안에 뭐가 들었는지 보지 못했다.

    “하하, 좋습니다! 원 도우께서는 과연 통이 크시군요. 정말이지 탄복했습니다.”

    뇌 도인은 껄껄 웃으며 손을 뒤집어 옥합을 챙겼다.

    “얼른 말이나 해보게.”

    원 노인이 재촉했다.

    “화 도우, 심 도우. 그대들도 알고 싶거들랑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소? 설마 거저 들을 생각은 아니지요?”

    뇌 도인은 심협과 화 도인을 바라보며 웃었다.

    “뇌 도우, 적당히 하게. 내가 그 소식을 아는 것은 화 도우와 심 도우가 아는 것과 마찬가지라네.”

    심협과 화 도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원 노인이 근엄하게 꾸짖었다.

    “좋습니다. 홍해아는 지금 화활산(火闊山)에 있소이다.”

    뇌 도인이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화활산?”

    심협은 그런 곳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곳은 북구로주(北俱盧洲)의 어느 산맥 아닌가? 홍해아가 게서 뭘 하고 있는 게지? 그가 우마왕 곁에 돌아오도록 설득할 가능성은 있는 겐가?”

    원 노인은 한탄하듯 내뱉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지금 홍해아는 마족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으니까요. 이미 십이존자(十二尊者) 중 하나입니다. 수하에 수많은 요마 군사를 거느린 것이 실로 의기양양한데, 어찌 부모 곁으로 돌아가 구속을 받으려 하겠습니까?”

    뇌 도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야 그렇지만 우리는 포기할 수 없네. 우선 사람을 보내 설득해보고, 설득이 안 되면 방도를 세워 그를 강제로 진압해 우마왕 곁으로 다시 데려와야지.”

    원 노인이 말했다.

    “원 도우께서는 말씀 참 쉽게 하십니다. 북구로주의 무격들과 요괴 두 종족은 이제 거의 마족에게 귀속되어 철판 덩어리처럼 똘똘 뭉쳤으니 사람을 보내면 죽기를 자초하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뇌 도인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대꾸했다.

    “북구로주의 상황이 이미 그렇게 됐단 말인가? 그렇다면 유능한 일꾼을 보내야겠구먼. 참, 지금 홍해아의 실력은 어떠한가?”

    “원래 진선 후기에 도달해 있었는데, 마족에 귀순한 뒤로 몸이 마기에 물들면서 실력이 한 단계 올라가 이미 진선기 정점에 견줄 만합니다. 그리고 그놈은 삼매진화를 자유자재로 다루어 제천대성이 취경하러 갈 당시에도 그에게 화상을 입었던 적이 있지요.

    그러니 평범한 사람을 보냈다가는 공연히 목숨만 잃을 겁니다. 지금처럼 인재가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우리 수하 중 그의 적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그런 데 신경 쓸 겨를도 없으니 이 일은 아무래도 나중에 다시 논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뇌 도인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 원 도인은 오래도록 침묵했다.

    그때, 심협은 세 사람을 슥 둘러보더니 불쑥 나섰다.

    “여러분께 마땅한 일손이 없다면 제가 다녀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 심 도우 자네가 갈 텐가?”

    원 도인의 눈이 반짝였다.

    “우마왕과 접촉하는 일은 마족에 맞서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세 분께서는 나서기 어렵다면 자연히 제가 나설 수밖에요. 다만 제 실력은 미약하여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진선 중기에 불과합니다. 아마도 홍해아의 적수가 아닐 터이니 여러 도우 분들의 도움을 바랍니다.”

    심협은 뇌 도인이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게 필요한 바를 말했다.

    “그야 당연하지! 심 도우가 삼계의 중생들을 위하여 이런 큰 위험을 기꺼이 무릅쓰는데 물론 우리가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야지. 이 원모에게 보물이 하나 있으니 심 도우에게 빌려주겠네.”

    원 노인은 선뜻 말하더니 노란색 비단 손수건을 꺼내 법술로 전해왔다.

    “원 도우, 설마……?”

    뇌 도인과 화 도인 모두 깜짝 놀라는 것이, 이 보물을 아는 것이 분명했다.

    심협은 두 사람의 표정을 눈여겨보고는 이 손수건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 재빨리 건네받았다. 그리고 비단 손수건을 손에 쥔 그의 낯빛은 순식간에 변했다.

    이 비단 손수건은 가볍고 얇아 보였지만, 막상 손에 드니 마치 커다란 산을 떠받치는 것처럼 무거웠다. 손수건 한가운데에는 무슨 뜻인지 모를 기이한 두 글자가 적혀 있었고, 위에는 노란 빛이 감도는 것이 아주 현묘해 보였다.

    심협은 구구통보결을 속으로 운공하여 조종해보려 했지만, 이 보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구구통보결에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 도우. 한데 이 보물은 어찌 작동시켜야 합니까?”

    심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원 노인에게 공수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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