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66화 (466/1,214)
  • 466화. 거령신(巨靈神)

    “심 도우가 경지를 돌파한 게로군요. 인간족 수사라면 그 사람이겠지요.”

    옆에 있던 호족 고수의 설명에 백운은 그제야 어찌된 영문인지 깨달았다.

    “정말이지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심 아우의 수련 경지가 크게 발전하였으니 요마들과의 일전에 큰 힘이 될 게야! 백운, 청각. 자네들은 이만 가보게나.”

    우마왕의 재촉에 두 요괴는 짧게 답하고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갔다.

    우마왕은 먼 곳의 금색 빛기둥을 잠시 바라보다가 대청으로 돌아왔다.

    한편, 마운동의 또 다른 동부에서는 만세호왕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는 금색 빛기둥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그는 그 빛기둥 안에서 한 가닥 옥영과의 기운을 느꼈다. 심협은 분명 옥영과의 도움을 받아 돌파했을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옥영과를 받은 지 하루 만에 돌파한단 말인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만 명 중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천재란 말인가! 그의 성취는 결코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게야.”

    만세호왕은 중얼거리며 어떤 결심을 내린 듯 눈을 빛냈다.

    * * *

    고요한 동부 안.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른 금빛을 몸속에 거둬들인 심협은 한참 뒤에야 눈을 떴다.

    진선 중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실력은 적잖이 상승했다. 우선 법력이 족히 배쯤은 강해졌으니 예전에는 시전하기에 조금 버거웠던 발천난봉과 진시천리도 이제는 가뿐하게 시전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는 부차적인 요소일 뿐, 더욱 중요한 것은 육신의 힘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을 가볍게 움켜쥐자 주먹에 금빛 광채가 어렴풋이 나타났고, 전신의 뼈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으며, 허공에는 한 차례 파문이 일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모든 뼈는 놀랍게도 엷은 금빛으로 변했고, 근육과 혈액에도 금빛 광택이 떠올랐다. 또한 거의 혼연일체에 가까울 정도로 연결돼 마치 금으로 만든 사람처럼 무섭도록 견고해졌다.

    심협은 손가락을 구부려 팔뚝을 가볍게 퉁겨보았다.

    땅!

    놀랍게도 쇠붙이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오른쪽 손바닥을 칼날처럼 세워 허공을 베자 손바닥에 어렴풋한 금빛이 나타났다.

    손날이 엄청난 속도로 긋고 지나간 허공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하며 잔잔한 파문이 일었고, 우웅 하고 가슴 떨리게 하는 소리를 냈다.

    ‘황정경을 심오한 경지까지 수련하고 나니 육신이 이 정도까지 강화되는구나. 아직 진선 중기일 뿐이니 만약 진선 후기, 나아가 태을의 경지에 도달하면 육신의 힘이 어느 정도까지 강해질까? 손대성이 당시에 홀로로 천정의 여러 천병과 천장들을 상대했던 것도 이상할 게 없군.’

    심협은 그렇게 생각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지금 그의 몸속에서는 거센 힘이 솟구쳐 뼈마디가 근질근질해, 이를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서는 속이 후련하지 않을 터였다. 급히 어딘가 발산할 곳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적뢰산은 함부로 설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수련 경지도 발전했고 육신도 한 단계 높아졌다. 여기에 진해빈철곤과 발천난봉의 위력까지 더하면 분명 그 거령신에 맞설 수 있을 거야!’

    심협은 적절한 곳을 생각해내고는 손을 뒤집어 천책을 꺼냈다.

    금빛 한 줄기가 천책에서 쏘아져 나와 그의 몸을 뒤덮었다.

    심협은 눈앞이 아득해지더니 주위 풍경이 크게 변했고, 이내 금빛 연무대 위에 나타났다.

    맞은편 백여 장 바깥의 허공이 일렁이더니 키가 10장에 달하고 온몸의 피부가 짙푸른 천장이 나타났다. 예전에 저항조차 힘들었던 거령신장이었다.

    “그대가 거령신인가?”

    심협은 손을 뒤집어 진해빈철곤을 꺼냈지만, 곧바로 공격하지 않고 물었다. 지금은 천책을 통제하고 있으니 천병이나 천장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

    과연 거령신이 눈을 뜨고 퉁방울 같이 커다란 눈에서 두 줄기 차가운 번개 같은 빛을 쏘아내면서도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천책 속의 천장이니 탁탑천왕이 죽었음을 느낄 수 있었을 터. 이제 천책은 내 손에 있으니 당신은 내 지시를 따라야 한다.”

    심협은 눈에 희색을 띠었다가 곧 엄숙하게 말했다.

    “나는 천왕이 죽었음을 분명 느낄 수 있었다. 허나 그의 마지막 혼력(魂力)이 흩어지기 전, 내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니 오직 네가 나를 이겨야만 나는 네 명령을 따를 수 있다! 받아라!”

    거령신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고는 곧장 공격해왔다. 그가 팔을 움직이니 거대한 양날 도끼가 허공을 가로로 베었다.

    도끼날에 빛이 번쩍이며 거대한 푸른색 도끼가 쓸고 지나면서 허공을 그대로 동강내고 심협을 향해 곧장 다가들었다.

    “좋군!”

    심협은 결코 뒤로 물러나지 않고 진해빈철군을 크게 휘둘렀다. 바람소리와 함께 진해빈철곤이 금빛 환영으로 변해 거령신의 커다란 양날 도끼와 맞부딪혔다.

    꽝!

    무시무시한 굉음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하늘을 뒤덮을 듯 어마어마한 두 줄기 힘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주위의 금빛 공간이 물결처럼 세차게 요동쳤고, 금빛 연무대도 쉬지 않고 흔들렸다.

    그러나 이 연무대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두 진선기 강자의 공격을 받아내고도 끄떡없었다. 심지어 균열 하나 생겨나지 않았다.

    두 그림자는 부딪치기가 무섭게 쏜살같이 떨어졌다.

    심협은 세 걸음을 연달아 물러나고는 몸을 가눈 반면, 다섯 걸음을 물러난  거령신은 깜짝 놀란 기색이었다. 천정에서 신력(神力)으로 이름난 자신이 뜻밖에도 가장 자신 있던 힘에서 밀린 것이다.

    “하하하! 통쾌하구나! 한 수 더 받아라!”

    심협은 크게 웃으며 진해빈철곤을 금빛 교룡처럼 가로로 휘둘렀다. 동시에 그의 몸도 곤영을 따라 튀어나가 줄줄이 잔상을 끌어냈다.

    거령신 또한 크게 고함을 지르더니 거대한 도끼를 번개처럼 아래로 휘둘렀고, 그 자신도 도끼를 따라가며 변화무쌍하게 움직였다.

    땅! 땅! 땅!

    연이은 굉음이 금빛 공간에 메아리쳤다.

    심협과 거령신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두 줄기 환영이 한데 뒤엉켜 곤과 도끼의 잔상이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것만 가까스로 보일 정도였다.

    힘에서는 심협이 약간 우세를 점했지만, 그는 발천난봉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아직 이 곤법의 오의를 완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연무대 위 곳곳에 금빛 곤영이 날아다니면서 거령신과 푸른 도끼 그림자를 제압하고도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심협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스치더니 몸에서 금빛이 세차게 뿜어져 나와 실체와 같은 다섯 개의 금빛 분신으로 변했고, 분신들은 손에 모두 금빛 장곤을 든 채 여러 줄기 곤영을 만들어내며 거령신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연무대 위의 금빛 곤영은 순간 몇 배나 촘촘해져 곧바로 거령신을 완전히 제압했고, 푸른 도끼 그림자는 순식간에 반파되었다.

    거령신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크게 포효하더니 양손으로 양날도끼를 꽉 움켜쥐고 무릎을 반쯤 꿇으며 연무대를 내리찍었다.

    쿵!

    둔중한 소리가 울리면서 도끼자루가 연무대를 찍는 순간, 금색 빛 고리가 주위를 향해 일렁이며 퍼져 나갔다.

    심협은 지난번 거령신과의 싸움에서 이 신통을 본 적이 있다. 금색 빛 고리 안의 모든 것을 고정시키는 신통! 이에 심협은 두 발에 달빛을 세차게 내뿜으며 마치 새처럼 하늘로 솟구쳐 올라 금색 빛고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다섯 분신은 금빛에 붙잡혀 우뚝 굳어버렸다.

    허공에 뜬 심협은 다섯 분신에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해빈철곤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눈 깜짝할 새에 아홉 줄기 봉 그림자가 각 방향에서 아직 일어서지 못한 거령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챙! 챙! 챙!

    아홉 번의 굉음이 연달아 울렸고, 거령신의 거대한 도끼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뜻밖에도 발천난봉의 일격을 갈랐다.

    그러나 그 위력이 어찌나 큰지, 거령신은 이 일격을 깨뜨리긴 했지만, 몸도 크게 흔들리면서 무릎을 반쯤 꿇은 채 뒤로 미끄러졌다.

    심협의 눈에는 놀라움이 스쳤지만, 그 와중에도 손놀림은 느려지지는 않았다. 그의 몸이 빙글 회전하자 진해빈철곤이 몸을 따라 돌면서 64줄기 곤영이 나타나 천지를 무너뜨릴 법한 힘으로 거령신을 뒤덮었다.

    거령신은 마치 만 장 높이의 거대한 산봉우리에 짓눌린 것처럼 주저앉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버거웠다.

    “크아아아!”

    거령신이 갑자기 미친 듯한 포효를 내지르자 별안간 몸속에서 둔탁한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근육이 갑작스레 부풀어 오르고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면서 순식간에 배나 강해진 기운의 파동을 뿜어냈다. 잠재된 힘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비법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거령신은 손에 든 커다란 도끼에서 푸른 빛을 거세게 내뿜으며 벌떡 일어나더니 그가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 시작하자 이 푸른 빛도 따라서 회전하며 순식간에 푸른 회오리로 변했다. 이어 회오리 안에서는 무수한 푸른 도끼 그림자가 번쩍이며 64줄기 곤영을 쪼갰다.

    펑! 펑! 펑!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굉음이 끊임없이 터지면서 금빛과 푸른 빛이 격렬하게 맞부딪쳐 공간 전체가 들끓었고, 먼 곳의 금빛은 마치 성난 파도처럼 용솟음쳤다.

    푸른 회오리는 거의 격파당하고 한 층만 남았으나, 곤법의 위력도 이미 다해버린 상태였다.

    “아직 끝이 아니다!”

    심협이 고함을 내지르자 오른 주먹에서 금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왔고, 그 주위로는 코끼리 다리의 허상이 불쑥 튀어나와 푸른 회오리에 흔적을 남겼다.

    주변의 공기가 이 주먹에 압축된 것처럼 일종의 질식감이 느껴졌다.

    펑!

    폭발음과 함께 푸른 회오리가 산산조각 나면서 수많은 푸른 빛이 마치 비처럼 흩날렸다.

    반면 금빛 주먹의 속도는 조금도 늦춰지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가 마치 금빛 번개처럼 거령신의 어깨를 두들겼다.

    이에 거령신의 거대한 몸집이 짚단처럼 나가떨어졌다.

    심협은 왼손에도 금빛을 세차게 내뿜으며 진해빈철곤을 힘껏 내던졌다.

    쉬익!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함께 진해빈철곤이 금빛 그림자로 변해 순식간에 거령신을 따라잡더니 가슴팍을 관통했고, 그를 그대로 땅에 꽂아버렸다.

    “좋다. 네게 충성할 만하구나.”

    거령신은 가슴팍을 쳐다보고 다시 심협을 바라보더니 고통스런 기색 없이 도리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의 몸에 금빛이 번쩍이더니 거대한 몸집이 소리와 함께 폭발하여 무수한 금빛으로 흩날렸다.

    온 하늘 가득한 금빛 사이로 하얗고 환한 빛이 쏘아져 나와 심협의 체내에 녹아들었다.

    * * *

    주위 풍경이 바뀌면서 심협은 적뢰산 동부 안으로 되돌아왔다.

    그 하얀 빛은 머릿속에 나타나 일전에 흡수했던 모든 천장의 잔혼들보다 훨씬 큰 거대한 신혼의 힘이 되더니 그의 신혼에 녹아들었다.

    심협은 기쁜 표정으로 급히 부주진신법을 운공해 이 잔혼을 흡수했다.

    족히 한나절이 지나간 뒤에야 그는 눈을 떴다. 눈빛은 마치 두 줄기 번갯불처럼 유달리 밝아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거령신의 잔혼은 그 힘이 엄청나서 심협의 신혼은 몇 배로 불어났고, 미간까지 살짝 부풀어 올랐다. 그가 원래 지니고 있던 신혼의 힘도 진선 후기에 견줄 만했는데, 이제는 신혼의 힘이 배로 늘어나 거의 진선기의 극한에 다다랐다.

    이 거령신의 잔혼은 혼력이 강력할 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기억도 다른 천병이나 천장보다 많았다. 선화부법(宣花斧法)과 금빛으로 사람을 묶어두는 신통력, 그리고 잠재된 능력을 불러일으키는 비술까지 모두 보존되어 있었다.

    “모두 좋은 신통력이로구나.”

    심협은 입꼬리가 절로 슬며시 올라갔다.

    그러던 중 그는 무언가가 떠올라 손을 뒤집고 탁탑천왕이 준 금탑을 꺼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탑에서는 더 이상 금빛 단약이 날아오지 않았다.

    “탑 안의 단약을 이미 다 썼나보군.”

    심협은 조금 실망했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에 천책에 들어가서 얻은 수확만으로도 상당했고, 거령신의 잔혼의 힘을 얻었으며, 그의 몇 가지 비법도 배웠다. 무엇보다 이제 거령신이라는 진선 후기의 천장을 불러낼 수 있게 됐다. 더는 지나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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