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65화 (465/1,214)
  • 465화. 적을 물리칠 계책

    “참, 내 조금 전 호왕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르신께서 심 아우가 이번에 적뢰산에 온 것은 나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하시더군. 무슨 일인가?”

    우마왕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묻자 심협은 잠시 잠자코 있더니 대답 대신 되물었다.

    “우형께서는 작금의 천하대세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천하대세라……. 이리 마족이 천하를 어지럽히니, 사람, 요괴, 신선 할 것 없이 모두 숨어 살 수밖에 없지 않나. 한데 심 아우는 그건 왜 묻는가?”

    우마왕의 표정에 의아한 빛이 스쳤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천하는 혼란스럽지요. 속담에 이르길, 나라의 흥망에는 필부(匹夫)도 책임이 있다지 않습니까. 저는 비록 미약하나, 도탄에 빠진 세상 백성들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각지의 호걸들에게 연락하여 함께 마족에 대항하려 합니다. 우형께서는 이 아우와 손잡고 천하 창생을 위해 이 대업을 이룰 뜻이 있으신지요?”

    심협은 긴장한 눈으로 우마왕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우마왕의 얼굴에서는 시종일관 걸려 있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고, 심협을 바라보는 눈길에도 싸늘한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우형께서는 이 일에 흥미가 없으십니까?”

    심협은 이런 우마왕의 모습에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물었다.

    “심 아우는 어느 선산(仙山) 출신인가?”

    우마왕이 물었다.

    “저는 일개 산수입니다. 다만 예전에 방촌산 유적에 한 차례 방문했다가 하늘의 은덕을 입어 방촌산의 공법과 비술 몇 가지를 얻었습니다. 하오니 반쯤은 방촌산 수사인 셈이지요.”

    심협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방촌산 제자라고? 어쩐지 자네의 몸에 황정경의 기운이 감돈다 했지. 허나 나는 자네에게서 나의 셋째 아우인 붕마왕의 기운 또한 느꼈다네.”

    우마왕은 싸늘했던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리고는 다시 물었다.

    “아, 그 일은…… 말씀드리자면 깁니다. 심모는 얼마 전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호하며 동해로 갔었지요. 그때…….”

    심협은 동해에서 붕 요괴에게 한입에 꿀꺽 삼켜졌다가 붕마왕의 금빛과 은빛 깃털을 얻게 된 일을 차분히 이야기했다. 다만 붕 요괴의 몸속에서 이정을 만나 천책과 현황탑(玄黃塔)을 얻게 된 이야기만은 비밀로 했다. 그러다보니 오홍과 힘을 합쳐 방법을 찾아 붕의 뱃속에서 탈출한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뭐라! 셋째 아우가 이미 죽었단 말인가!”

    우마왕은 낯빛이 크게 변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형께서는 너무 상심하시지 마십시오.”

    심협도 우마왕을 어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요족칠대성(妖族七大聖)이 천하를 질주하던 당시를 생각하면 얼마나 위풍당당했던가! 한데 셋째 아우가 이리 소리 소문 없이 가버렸을 줄이야…….”

    우마왕이 비통한 목소리로 가슴을 치며 탄식했다.

    “제가 직접 보고 또 동해 용궁 사람들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붕마왕은 마족에게 마기로 조종당했고, 결국은 마기의 침입을 견뎌내지 못하여 백골로 변한 듯합니다.”

    심협은 우마왕이 냉정을 조금 되찾자 이를 갈았다.

    “죽일 놈의 마족들! 네놈들이 내 셋째 아우를 죽였으니 이 원한을 갚지 않으면 내 맹세코 요족이 아니다! 반드시 복수해주겠다!”

    우마왕이 원한 가득한 목소리로 포효하는 모습을 보며 심협은 희망이 생긴 듯해 내심 안도했다.

    “심 아우. 셋째 아우의 소식을 가져다주어 감사하네만, 사실대로 말하게.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노우와 접촉하여 마족에 함께 대항하려는 것은 아닌가?”

    우마왕이 분노를 가라앉히며 문득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심협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심협은 그의 두 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마치 상대가 모든 비밀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우마왕은 신혼의 힘이 매우 강하니 분명 태을경의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심협은 속으로 깜짝 놀라 잠시 주저했으나,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우형께서 그리 물으시니 아우도 거짓을 말하기기 어렵군요. 맞습니다. 우형과 손잡고자 하는 이가 있어 제가 부탁을 받고 온 것입니다.”

    “심 아우, 마족은 우리 요족의 철천지원수일세. 그러니 내 당연히 전심전력으로 맞설 것이네. 방촌산과 손을 잡을 수도 있지. 허나 심 아우가 만약 나를 신선이나 부처들과 손잡게 하려는 것이라면, 그 입을 다물어주게나!”

    우마왕은 반쯤 말하다가 갑자기 태도가 바꾸었는데, 특히 마지막 몇 글자에는 더욱이 힘이 들어갔다.

    이에 심협은 낯빛이 굳어졌다. 그는 천책 잔경에서 만난 사람들의 신분을 알지 못했지만, 그들이 선불(仙佛)과 인연이 깊은 듯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우형과 선불들 간의 갈등은 저도 대강 알고 있습니다만, 이는 모두 오래전 이야기 아닙니까. 지금은 마족의 만행을 막는 것이 우선이니, 지난날의 원한은 잠시 접어두시는 게 좋지 않을는지요.”

    심협은 간곡한 목소리로 설득에 나섰다.

    “심 아우, 그것은 원한처럼 단순한 일이 아니라네. 선불은 내게 바다처럼 깊고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란 말일세! 자네가 다시 그들 대신 사정한다면, 우리는 친구조차 될 수가 없네.”

    우마왕은 단호하게 심협의 말을 끊었는데, 표정은 더없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이에 심협은 뭐라 더 말하기 어려워 말을 돌리고는 우마왕과 화과산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이야기했고, 마지막에는 수련에 대해 논했다.

    우마왕은 수련 경지가 깊고 심오하여, 인간과 신선, 부처의 공법에 모두 정통했고, 종종 한두 마디로 심협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한나절이나 이야기를 나눈 뒤에야 우마왕은 인사를 고하고 떠나갔다.

    홀로 남은 심협의 안색은 어둡게 가라앉았다.

    우마왕이 뜻밖에도 신선과 부처 모두를 이리도 적대시하니, 그를 반마연맹(反魔聯盟)에게 끌어들이기란 요원해 보였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마왕의 마음에 쌓인 응어리를 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됐다, 나중에 천책 잔경에 들어가 그들과 상의해봐야겠어.”

    골치가 아파진 그는 일단 생각을 접기로 했다. 어쨌든 그 백의의 노인이 준 임무는 옥호 일족을 통해 우마왕과 연락을 취하는 것이었고, 그 임무는 이미 완수한 셈이니 말이다.

    심협은 다시 가부좌를 틀고는 손을 뒤집어 조금 전 만세호왕에게 받은 옥영과를 꺼냈다.

    방금 우마왕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진선 중기로 들어가는 핵심을 어렴풋이 파악하게 되었다. 현재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법력뿐으로, 이 옥영과가 바로 수련 경지를 올려줄 열쇠 같아 보였다.

    검은 해골과 우마왕의 강력함을 눈앞에서 목격한 심협은 수련 경지를 끌어올리고픈 마음이 어느 때 못지않게 간절했다.

    그는 신식으로 옥영과를 꼼꼼히 검사했다. 호족이 자신을 해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수련계에서는 언제나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이윽고 옥영과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신한 후에야 그는 몇 입을 베어 먹었고, 황정경을 운공하여 과육에 담긴 영력을 정제했다.

    우르릉!

    둔탁한 소리가 울리면서 왕성하기 이를 데 없는 영력이 과육에서 쏟아져 나와 체내 곳곳으로 흘러들어갔다.

    심협이 황정경을 운공해 이 영력을 흡수하자 법력이 기이할 정도로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 * *

    하루 밤낮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심협의 체내 법력은 진선 초기 정점까지 올라섰지만, 옥영과에서 얻은 영력은 너무도 많아서 아직도 반절이나 남은 상태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계속해서 선과의 영력을 흡수하여 진선 중기의 난관에 충격을 가해보기로 했다.

    경지가 진선의 단계까지 진전하다 보니 경지를 끌어올리는 것이 지극히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 적잖은 시간과 정력을 소모할 것까지 각오했다

    한데 다음 순간, 그는 그야말로 말문이 막히고야 말았다.

    그가 돌파를 시도하자마자 단전과 법맥 속의 법력들이 요동치면서, 팽창한 법력이 물결처럼 용솟음치며 진선 중기의 난관이 곧바로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지만, 심협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정신을 집중하여 황정경을 운공했다.

    * * *

    마운동 안의 어느 대청. 우마왕이 옥호 일족 고수들을 불러모아 마족에 저항할 계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만세호왕은 그 자리에 없었다.

    얼마 전 쳐들어왔던 마족들은 완전히 물러나지 않고 5백 리 떨어진 음풍요(陰風坳)에 진을 친 것이 뭔가 음모를 꾸미는 듯했다.

    옥호 일족 외에도 진선 경지의 소 요괴 둘이 회의에 참여했는데, 그중 푸른 갑옷을 입은 자는 머리에 푸른 쇠뿔 두 개가 돋아 있었다. 마치 푸른 소가 요괴로 변한 듯했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하얀 소가 변신한 것처럼 온몸이 온통 하얀색이었고, 몸에는 은갑을 두른 모습이었다.

    이 둘은 모두 우마왕의 부하였다.

    “대성께서 여기 계신데 그깟 잡배들을 신경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곧장 음풍요로 쳐들어가, 놈들이 무얼 하고 있든지 힘으로 쳐부수고 소탕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은갑 청년이 말했다.

    “옥구(玉丘) 형의 말이 일리 있습니다. 대왕께서 파초선으로 단번에 음풍요를 부숴버리고 그 요마들 손에 죽은 일족의 복수를 하는 겁니다!”

    푸른 소 사나이가 탁자를 철썩 내리치며 분연히 말했다.

    다른 요족들도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모두 우마왕의 경지와 실력을 매우 신뢰하는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마왕의 법력은 고강하고 신통력이 대단하여 지금은 신선과 부처, 요괴와 마족을 불문하고 그에게 필적할 만한 이가 몇 없었다. 그러니 이런 마족들을 상대하는 것쯤이냐 식은 죽 먹기라 여길 만도 했다.

    “저들을 우습게보지 말게. 지금은 치우가 잠에 빠져 있으나, 마족의 고수들은 여전히 적지 않아. 어제 그놈들 중 검은 해골은 파초선 아래에서도 온전한 몸으로 퇴각했네. 더욱이 모든 요마들을 구해갔으니, 실로 무시할 수 없음이야. 파초선으로 음풍요를 쓸어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자가 그 요마들을 한 번 구했으니 두 번 구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 방심해서는 아니 되네.”

    우마왕은 요괴들의 추켜세움에도 우쭐대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하오면 대왕의 뜻은……?”

    하얀 소 사나이가 물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그 마족들의 꿍꿍이를 알아보는 걸세. 백운(白雲), 청각(靑角) 자네들은 각각 군사를 이끌고 음풍요로 가서 상황을 알아보게. 도저히 알아낼 수 없겠거든 요마들을 몇 명 잡아 돌아오게. 내 그들의 입에서 원하는 것을 끄집어낼 방도가 있으니까.”

    “예.”

    우마왕의 분부에 두 마리 소 요괴는 즉시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옥구라 불린 은갑의 청년이 그들을 가로막으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요마들의 목표는 우리 옥호 일족입니다. 어찌 백형, 청형더러 위험을 무릅쓰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정탐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옥구 형의 말씀은 감사하오만, 그대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임무는 우리 두 사람이 그대보다 훨씬 더 적합하오. 그리고 이 일은 우리에게 전혀 위험하지도 않소.”

    백운이 웃으며 답하자 옥구는 의아한 듯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지금은 설명하기 어렵소. 허나 나중에 알게 될 게요.”

    청각이 우마왕을 힐끗 보고는 말을 받았다.

    옥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이유를 캐물으려 했으나, 바로 그때, 거대하고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허공도 크게 진동하면서, 굵직한 금색 빛기둥이 하늘가로 곧장 치솟았다.

    빛기둥 주위에는 여섯 마리의 용과 코끼리 허상이 떠올라 허공을 노닐었고, 하늘을 우러러 포효하여 허공에 눈으로 보일 정도의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우마왕은 벌떡 일어나 대청 밖으로 나와서는 먼 곳을 바라보다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는 누군가 경지를 돌파한 것이오. 기상이 이토록 놀라운데, 혹시 진선 후기에 도달한 이가 있는 것 아닌가 싶구려. 허나 저 금빛에 요기라고는 전혀 없으니 인간족 수사의 법력인 듯하오.”

    백운 또한 그쪽을 두어 차례 훑어보고는 가볍게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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