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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63화 (463/1,214)

463화. 평천대성(平天大聖)

몇 호흡 사이 수백 마리의 요마가 만세호왕에게 참살당했고, 요마 대군의 전세는 더욱 크게 혼란해져 옥호족의 부담은 크게 줄었다.

“선배님, 조심하십시오!”

신위를 떨치는 호왕을 보며 속으로 찬탄을 금치 못하던 심협이 돌연 외치고는 손을 뒤집어 육진편을 꺼냈다. 이어서 팔에서 금빛을 세차게 내뿜으며 만세호왕을 향해 힘껏 던졌다.

쐐액!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육진편이 눈 깜짝할 새 30여 장을 뛰어넘어 검은 번개처럼 만세호왕 옆으로 날아들었다.

깡!

쇠붙이끼리 맞부딪치는 굉음이 울렸다.

육진편이 반동에 튕겨 돌아오는 순간, 만세호왕에게서 1장쯤 떨어진 허공에 파동이 일더니 거대한 검은 형체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머리는 호랑이에 몸은 인간인 이 형체는 새카만 갑옷을 입고 손에 거대한 개산도(*開山刀: 산간 지역에서 나무를 베거나 사냥용으로 쓰는 칼)를 들고 있었다. 바로 일전에 흑랑산 지하 동굴에서 보았던 검은 호랑이 요물이었다.

만세호왕은 이 검은 호랑이 요물이 이토록 가까운 곳에 숨어 있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얼른 뒤로 물러났다.

“나의 은신을 꿰뚫어보다니, 너는 누구냐?”

검은 호랑이 요물은 만세호왕을 내버려둔 채 퉁방울 같은 눈으로 심협을 노려보았다.

심협은 들은 척도 않고 손을 흔들어 육진편을 불러들인 뒤, 신식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맞은편에 다른 진선기 요마가 더 있음을 만세호왕에게 전음으로 알렸다.

“네놈이 누구든지 감히 우리 마족의 행사를 방해하다니, 죽여주마!”

호랑이 요물은 심협이 자신을 무시하자 벌컥 화를 내며 개산도를 휘둘렀다.

개산도 주위로 아홉 줄기의 시커먼 도영(刀影)이 번쩍 나타났다. 도영마다 새카만 도광이 굵직하게 번득이며 쏘아졌다.

이 도광들은 나타나자마자 순식간에 하늘을 거의 절반이나 뒤덮으며 심협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심협은 덤덤한 얼굴로 두 발에 달빛을 환히 내뿜으며 순식간에 허공으로 녹아든 것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호랑이 요물의 눈이 휘둥그레진 순간, 그의 뒤에서 달빛이 반짝이며 심협이 소리도 없이 마치 귀신처럼 나타났다.

검은 호랑이 요물은 안색이 돌변하여 재빨리 돌아서며 개산도에서 검은 빛을 폭발시켰다. 개산도가 허공을 가르며 도광이 길게 갈지자를 드리웠다.

민첩한 대응이었지만, 심협의 동작은 더 빨랐다. 그는 호랑이 요물이 막 돌아서자마자 손에서 금빛을 한 줄기 내던졌는데, 이 빛은 곧장 요물의 몸에 휘감겼다. 바로 황금승이었다.

호랑이 요물을 단단히 묶은 밧줄에서는 수만 갈래의 금빛이 피어나 이 요물의 요기까지 순식간에 가두었다. 그러자 개산도의 도광도 곧바로 어두워졌다.

곧이어 검은 빛이 한 줄기 하늘로부터 떨어져 내려 단숨에 호랑이 요물의 머리를 후려쳤다. 육진편이었다.

“헛!”

호랑이 요물은 대경실색했지만 이미 요력이 황금승에 갇힌 터라 아무런 대처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눈을 꽉 감고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그러나 그때, 검은 호랑이 요물의 주위에 돌연 녹색 빛이 솟아나더니 빛 속에 녹색 법진이 어렴풋이 나타나 이 요물의 몸을 집어삼켜버렸다.

허공을 가른 심협이 미처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뒤편 허공에서 녹색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이어서 뼈만 남은 새카만 손이 그림자를 뚫고 나와 검은 번개처럼 날렵하게 심협의 머리를 움켜쥐려 했다.

심협은 새카만 빛을 거세게 내뿜는 새까만 손을 향해 육진편을 곧장 위로 올려쳤다.

펑!

덕분에 해골 손이 몸에 닿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막아낼 수 있었지만, 굉음과 함께 육진편은 심하게 진동하며 마른 낙엽처럼 가볍게 날아가 버렸다.

잠시나마 귀중한 시간을 벌게 된 심협은 손에 금빛을 번쩍이며 진해빈철곤을 꺼내 휘둘렀다. 10여 줄기의 금빛 곤영이 뒤에서 나타나 묵직한 파공음을 내며 검은 손뼈를 때렸다.

콰콰쾅!

연이은 충돌음이 폭발하면서 흑과 금의 두 가지 빛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이 곤영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검은 손뼈 또한 진동에 뒤로 밀려났다.

심협은 발밑에 잔상을 드리우며 앞으로 30여 장을 날아간 뒤 빠르게 돌아섰다.

검은 손뼈 옆의 허공이 일렁이더니 일전의 검은 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너였구나! 아직 살아 있었단 말이냐?”

심협은 이미 을목의 녹색 빛과 검은 손뼈의 기운에서 온 사람이 누구인지 예상했기에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귀하의 곤법이 강하기는 하나, 어쨌든 나는 태을의 경지이지 않소?”

검은 해골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늘이 정말 옥호 일족을 멸하려는 것인가?’

먼 곳에 있던 만세호왕은 검은 해골이 뿜어내는 태을경의 기운을 느끼고는 안색이 변하며 속으로 탄식했다.

한데 그때, 검은 해골 옆의 허공에 녹색 그림자가 연이어 아른거리더니, 진선 경지의 검은 매 요괴와 마 주인장이 나타났다.

검은 호랑이 요물도 10여 장 밖에 나타났지만, 그의 몸은 여전히 황금승에 묶여 있었다.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요마들은 검은 해골 뒤로 물러났으며, 옥호 일족도 만세호왕 뒤로 대열을 갖췄다.

심협이 손짓하자 육진편이 멀리에서 날아 돌아왔고, 10여 명의 천병들과 뇌부천장이 그의 곁에 내려섰다.

“심 도우, 이것은 우리와 호족의 일이오. 귀하는 인간족이니 끼어들 필요 없소. 과거의 인연을 생각해 이번만은 그냥 눈감아줄 터이니 어서 떠나시오.”

검은 해골은 천병과 천장들을 흘끗 보고는 싸늘하게 말했다.

만세호왕은 그 말에 근심 어린 눈으로 심협을 힐끗 살폈다. 전에 없이 강력한 적을 눈앞에 둔 옥호 일족은 분명한 열세였다. 그러니 심협마저 떠나버린다면 옥호 일족은 정말로 오늘 멸망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당신네 마족들은 왜 적뢰산을 침공하려는 거요?”

심협은 잠시 잠자코 있더니 물었다.

“귀하와는 무관하니 모르는 편이 나을 게요.”

검은 해골이 답했다.

“귀하의 호의는 마음으로 받겠소. 허나 나와 만세호왕은 비록 오늘 처음 만났어도 오랜 벗과 같아 이미 맹약을 맺었소. 맹우(盟友)가 어려움에 처했거늘, 어찌 수수방관할 수 있겠소?”

심협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 말에 만세호왕은 바짝 졸아들었던 마음을 내려놓고, 장검을 꽉 움켜쥐었다.

“그 말은, 정말 우리 마족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거요?”

검은 해골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변했다.

심협은 대답 대신 진해빈철곤을 번쩍 들어 올렸다.

“네가 그리 죽음을 원한다면, 오늘 호족들과 함께 저승으로 보내주마!”

검은 해골은 차갑게 내뱉으며 뼈만 남은 손을 들어올렸다.

심협은 바짝 긴장하며 진해빈철곤에 금빛을 가득 내뿜었다.

그때였다.

“어디서 온 마귀새끼들이 감히 적뢰산에 와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천둥 같은 고함이 갑자기 하늘에서 폭발하여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귀를 윙윙 울리게 만들었다. 경지가 낮은 이들은 심지어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뒤이어 거대한 형체가 하늘에서 내려와 태산처럼 묵직한 위압과 함께 요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해골을 포함한 요마들은 깜짝 놀라 일제히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거대한 형체는 손에 노란 빛을 한 덩이 번쩍이며 힘껏 휘둘렀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천지의 빛깔이 변하고 허공이 갑자기 격렬하게 진동하면서 경천주(擎天柱) 같은 누르스름한 돌개바람이 나타나 요물들을 향해 휘몰아쳤다.

돌개바람은 밀물과 같았고, 무수히 많은 굵직한 풍인(*風刃: 바람의 칼날)들이 그 속에 응집되어 형태를 갖추고는 바람기둥에 휩싸여 앞을 헤치고 나아갔다. 온 공간에 모래와 돌들이 날아다녔고, 여기저기서 천지개벽할 굉음이 울렸으며, 엄청난 풍압에 허공 곳곳에서 파문이 일어났다.

검은 해골을 비롯한 요물 무리는 순식간에 이 노란 광풍에 파묻혔고, 아래에 있던 작은 요괴들은 마치 낙엽처럼 가볍게 휘말려 날아갔다.

심협은 노란 폭풍에 정면으로 기습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 여파가 미쳤기에, 온몸에 금색 빛 덮개를 띄워 몸을 감싼 채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곳곳에서 노란 광풍이 몰아치는 탓에 금색 빛 덮개는 마치 거친 파도에 떠 있는 작은 배처럼 언제든 뒤집어질 듯했고, 심협은 조금도 뒤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의 곁에 있던 천병과 천장들은 바람을 견뎌내지 못하고 노란 돌개바람에 휘말려 몽땅 휩쓸려갔다. 돌개바람 속에 금빛과 은빛 그림자가 번쩍 스치면서 이 천병과 천장들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심협은 어두워진 낯빛으로 전력을 다해 황정경을 운공했지만, 제 몸 하나 보전하기도 벅찼다. 신식이 떠나면 보호 덮개가 광풍에 그대로 흩어질 판이라 저 거대한 형체가 누구인지 감히 살펴볼 수도 없었다.

다행히 노란 광풍은 금세 잦아들었다.

힘겹게 몸을 가누고 고개를 들어 앞을 살핀 심협은 순간 넋이 나가버렸다.

앞쪽의 산봉우리들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땅바닥에는 거대한 부채꼴 모양의 심연이 펼쳐져 있었는데, 어두컴컴한 것이 얼마나 깊은지도 알 수 없었다.

한편, 검은 해골과 요마들은 그 경천동지할 광풍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는지, 몽땅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황금승이 수백 리 밖에 나타난 것을 감지한 심협은 밧줄의 속박을 통해 검은 호랑이 요물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십중팔구 검은 해골 덕분일 터였다.

‘그렇다면 다른 요물들도 살아 있는 것이겠지.’

심협은 생각을 움직여 곧바로 황금승을 조종해 검은 호랑이 요물을 풀어주고 날아 돌아오게 했다.

그 무렵, 그 거대한 형체가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키가 8척에 기골이 장대하여 몹시도 위풍당당했고, 머리에는 뿔이 두 개 달려 있었다. 머리에는 은빛 광택이 도는 철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단에 수를 놓은 황금 갑옷을 입었으며, 발에는 끝이 뾰족하게 말려 올라간 사슴가죽 장화를 신고 있었다. 허리에는 세 가닥 실을 모아 만든 용맹한 사자머리가 장식된 허리띠를 찼다. 한 쌍의 눈은 맑은 거울처럼 빛났으며, 두 눈썹은 마치 무지개와 같았고, 피처럼 시뻘건 입에는 구리판 같은 것들이 늘어서 있었다.

또한 손에는 영광(靈光)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검노랑 보선(寶扇)을 들고 있었다. 부채 위에는 바람과 구름 도안이 그려져 있었고, 끄트머리에는 금빛 깃털 한 움큼이 달려 있었다. 부채 손잡이에도 붉은 줄이 드리워져 있었으며, 주위에는 노란 미풍이 감돌았다.

이 노란 바람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안에 담긴 영력 파동만으로도 심협은 오금이 저려왔다.

‘저 부채가 방금 그 무시무시한 광풍을 일으킨 것인가? 설마…… 파초선(芭蕉扇)? 그럼 이 사내가 바로……?’

그때, 만세호왕이 차갑게 내뱉었다. 그의 낯빛은 거대한 사내를 보는 순간 풀리는가 싶더니 이내 차갑게 굳었다.

“평천대성이었구먼, 자네 여기는 무엇 하러 왔나?”

심협은 속으로 ‘과연’ 하고 중얼거렸다. 이 쇠뿔 달린 사내야말로 자신이 만나고자 했던 대력우마왕이었다.

“장인어른, 마족 무리가 적뢰산을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늦게 도착하여 장인어른을 놀라게 해드렸으니 용서를 구합니다.”

우마왕은 검노랑 보선을 거둬들이고 만세호왕에게 공손히 말했다.

“누가 자네 장인어른인가? 자네처럼 우유부단한 멍청이만 없었던들 내 딸이 어찌 헛되이 죽을 수 있었겠는가 말일세!”

만세호왕은 노여운 목소리로 맹렬히 비난했다.

순간 우마왕의 얼굴에는 짙은 슬픔과 섭섭한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그는 따지고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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