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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62화 (462/1,214)
  • 462화. 세 개의 별

    움푹 꺼진 깊은 구덩이 속. 이미 원상태를 되찾은 답운수의 눈에는 의심과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답운수가 경계하는 투로 물었다.

    “너를 황천길로 보내줄 사람이지.”

    심협은 싱긋 웃더니 그렇게 대꾸하고는 아래로 뛰어내리며 진해빈철곤을 장창처럼 찔렀다.

    “기왕 이렇게 된 것, 같이 죽자꾸나!”

    답운수가 흉악한 눈빛을 번득이며 큰소리로 포효했다. 그러더니 손을 뒤집고 짙은 검은 빛깔에 강력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는 타원형 열매를 꺼내 입에 털어 넣고 깨물었다. 검은 즙이 순식간에 그의 입 안에 그득 넘쳐흘렀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이 불쑥 튕겨 올라갔고, 전신의 피부에는 거북이 등껍질 같은 균열들이 생겨나더니, 안에서 짙은 마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지며 대지를 온통 칠흑 같이 검게 물들였다.

    심협이 잠시 멈춰 서서 자세히 살펴보니, 답운수의 몸에 난 상처들은 완전히 아문 상태였고, 기운도 적잖이 폭증하여 방금 전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쿠오오오!”

    심협이 흠칫 놀라는 사이, 완전히 마화된 답운수가 갑자기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했다. 그의 입에서는 짙은 검은 빛줄기가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심협의 코앞까지 이르렀다.

    심협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진해빈철곤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

    땅!

    귀를 쟁쟁하게 울리는 소리에 이어 심협은 팔이 저릿해왔다. 진해빈철곤을 다시 보니 방금 빛줄기를 막아낸 부분이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엄청난 침식력이로군.’

    심협이 내심 놀라며 한 손으로 진해빈철곤을 쥐고 홱 휘두르자 금빛이 세차게 치솟아 검은 빛을 흩어버렸다.

    그때, 문득 그의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번쩍 스치더니 거대한 검은 발이 불쑥 튀어나와 그의 목을 노렸다.

    심협은 재빨리 몸을 뒤로 젖혀 아슬아슬하게 피한 뒤 뒤로 훌쩍 물러났다.

    답운수는 예전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속도로 바짝 따라붙었고, 심협은 연거푸 사월보를 시전하고도 상대를 떨쳐내지 못했다. 이에 그는 물러나는 와중에 발천난봉을 시전했고, 둘은 눈 깜짝할 사이 10여 합을 겨뤘다.

    “핫!”

    심협은 기합을 내지르며 진해빈철곤을 크게 휘둘러 답운수를 뒤로 밀어내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답운수의 몸에서는 갈수록 짙은 마기가 흘러나왔다. 이에 근접전을 벌인 심협은 이미 오감을 차단했음에도 어느 정도 마기에 물들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답운수가 또다시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것을 보고는, 온몸의 힘을 진해빈철곤에 주입한 후 표창처럼 휙 내던졌다. 동시에 재빨리 의식을 움직여 양손을 결인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답운수는 날아오는 진해빈철곤을 쳐내느라 잠시 지체되는가 싶었으나 이내 다시 돌진해왔다. 그리고 그가 지척으로 돌진해왔을 때, 심협의 눈에 한 줄기 광채가 번득였다.

    “떨어져라!”

    심협은 한 손을 아래로 홱 끌어당기며 크게 외쳤다.

    깊은 하늘 아득히 먼 은하수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린 듯 별들이 운행하며 반짝반짝 밝게 빛났다. 뒤이어 구름 사이로 갑자기 빛이 번쩍이더니 더없이 거대한 금빛 별 세 개가 구름을 뚫고 내려와 온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 궤적에서는 금빛으로 타오르는 세 줄기 광흔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답운수는 이 무서울 정도로 강한 위력이 자신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것을 느끼고는 양손으로 하늘을 떠받치면서 온몸을 빠른 속도로 부풀려 다시 키가 백 장에 달하는 거구가 되었다.

    첫 번째 금별이 떨어졌을 때, 답운수는 두 손으로 떨어지는 별의 기세를 꿋꿋하게 막아내다. 도리어 별을 적잖이 밀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뒤이어 두 번째 별이 첫 번째 별 위로 떨어져 내리자, 거대한 멸마의 힘 두 줄기가 서로 겹쳐 순식간에 답운수의 몸을 짓눌렀다.

    “크아악!”

    답운수는 아직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무릎이 푹 꺾였고, 다시 몸을 일으킬 힘이 없어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세 번째 별이 떨어졌다.

    세 개의 별에서 갑자기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오고 활처럼 굽은 거대한 금빛이 요동치면서 사방을 휩쓸고 주위의 마기를 말끔히 씻어냈다.

    콰르릉!

    한 차례 격렬한 폭발음이 울리더니 무수한 금빛 번개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고, 하늘 가득한 번개가 미친 듯이 용솟음치며 번쩍거렸다.

    꽈르릉! 꽝!

    한참 뒤, 모든 번개와 불빛이 차츰 사라지자 바닥에는 둘레가 몇 리에 달하는 커다란 골짜기가 생겨났다. 그 안은 온통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고, 곳곳에서 불꽃이 터지는가 하면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부서진 대지 위로 거대한 검은 무늬가 어렴풋이 보였는데, 한가운데에는 오각별 문양 세 개가 있었다. 사방은 구름무늬로 둘러싸여 있었고, 불타는 듯 뜨거운 별의 기운이 전해져왔다.

    심협은 손짓하여 진해빈철곤을 거둬들이고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구덩이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답운수는 완전히 재가 되어 흩날렸고, 구덩이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삼성멸마의 힘은 과연 강력하군. 하지만 법력의 소모가 너무 커.”

    심협은 단전 속 법력이 절반이나 뽑혀나가 텅 빈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는 하얀 도자기 병을 하나 꺼내 단약 두 알을 입에 털어 넣고는 곧바로 씹어 삼켰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큰소리로 외쳤다.

    “답운수는 죽었다! 당장 물러가지 않는다면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

    그 소리는 마치 세찬 천둥과도 같아서 온 적뢰산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요마들은 이 목소리를 듣자마자 겁을 집어 먹고 순식간에 밀물처럼 물러갔다.

    옥호 일족은 사상자가 막대했기에 만세호왕은 추격하지 않기로 했다.

    마운동으로 돌아가기 전, 모두가 하나같이 호기심과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신병(神兵)을 힐끔거렸다.

    “심 도우, 자네는 정말 방촌산 제자인가?”

    만세호왕이 앞으로 나아가 포권하며 예를 갖춘 뒤 물었다.

    “선배님의 안목이라면 방금 이 후배가 시전한 본문(本門)의 황정경 공법을 분명 알아보셨을 거라 믿습니다.”

    심협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방촌산은 이미 멸문한 지 오래인데 도우 같은 고수가 아직 있을 줄이야. 실로 놀랍군. 려추의 말을 들어보니 도우 역시 길에서 우연히 만나 구해준 사람이라던데…….”

    만세호왕은 다소 미심쩍은 듯 말끝을 흐렸다.

    “그런 말은 호왕 선배님이 아니라 저라도 믿지 않을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저 지나던 길이 아니라 적뢰산을 찾아오던 중이었습니다. 허나 소옥과 려추 낭자를 만난 것은 실로 우연이었지요.”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일부러 적뢰산을 찾아왔다? 그래, 무슨 일인가?”

    만세호왕이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옥호 일족에게 마족을 정벌하는 대군에 합류해달라는 연통을 넣으러 왔습니다.”

    심협의 말에 만세호왕은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더니 말했다.

    “인간계에 아직 남은 잔여 세력들이 저항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네. 이전에도 찾아왔었지. 허나 내 줄곧 응하지 않았네. 위험한 일에 끼지 않았으니 우리 목숨은 지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늘 마족의 공격을 받을 줄이야. 삼계의 중생들 모두 결국 마족의 독수(毒手)를 피하기 어려울 듯싶으이. 좋아, 내 일족들을 이끌고 합류하겠네.”

    “정말 감사합니다. 한데 한 가지 더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말해보게.”

    만세호왕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기서 말씀드리기는 좀 불편한데, 조용한 곳에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심협은 주위의 수많은 호족을 힐끗 쳐다보고는 전음으로 말했다.

    만세호왕은 표정이 살짝 흔들리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푸른 옷의 여인과 은갑 청년에게 호족의 사상자 상황을 살펴보도록 분부하고는 심협과 함께 마운동으로 들어갔다.

    마운동은 밖에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동굴 같았으나 내부는 길이 사방으로 통했고, 널찍한 대청이 여러 개 있었으며, 다양한 빛깔의 보석과 아름다운 옥이 박힌 것이 황궁과도 별 차이가 없었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으니 할 말이 있거든 바로 하시게.”

    만세호왕은 어느 대청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말했다.

    “이 심모, 옥호 일족이 대력우마왕과 가까운 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력우마왕을 한번 만나뵐 수 있도록 호왕께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심협은 만세호왕이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임을 알아채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대력우마왕을 만나고 싶다?”

    만세호왕의 낯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이를 본 심협은 내심 어안이 벙벙해했다.

    ‘적뢰산이 대력우마왕의 세력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데 어찌하여 만세호왕은 우마왕의 이름에 노여운 얼굴을 하는 것인가?’

    바로 그때, 멀리서 또 시끄러운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어찌 된 일이냐? 손님을 두고 소란을 피우다니, 이 무슨 꼴이야! 당장 가보거라!”

    만세호왕이 노기 띤 목소리로 호통을 치자 대청 밖에서 대기 중이던 호족이 대꾸하고는 달려 나가려 했다. 한데 그보다 한 발 앞서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병사가 날아들었다.

    “대왕, 큰일 났사옵니다! 그 요마들이 또다시 쳐들어왔습니다!”

    병사는 예를 갖출 새도 없이 목청이 찢어져라 외쳤다.

    “뭐라!”

    만세호왕은 벌떡 일어나 순식간에 한 줄기 하얀 빛으로 변해 튀어나갔다.

    심협 또한 미간을 찌푸리며 곧바로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바깥에 이르러 보니 무수한 요마가 시커멓게 몰려와 있었다. 한데 앞서 달아났던 요마들보다 처음 보는 요물이 오히려 더 많았다. 더욱이 이 요물들은 두 눈에 시뻘건 빛을 번뜩이는 것이 퍽 기괴해 보였다.

    호족 사내 하나가 푸른 장도를 휘둘러 비슷한 경지의 핏빛 눈 늑대를 내리쳤다. 늑대 요괴의 어깨에는 거대한 상처가 쩍 벌어지면서 뼈가 몇 개나 잘려나갔지만, 사내 또한 요괴의 날카로운 두 발에 가슴을 꿰뚫렸다.

    “우오오오!”

    늑대 요괴는 사납게 울부짖더니 두 발을 휘둘러 호족 사내를 찢어발겼고,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반면 늑대 요괴의 어깨 부위에 벌어졌던 상처는 몇 호흡 만에 아물어버렸다.

    이를 본 심협과 만세호왕 모두 경악했다.

    이 요마들 중에는 대승기 요물이 어림잡아 스물은 됐고, 출규기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심협은 대승기 요마들을 훑어보고는 가벼운 탄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분명 흑랑산 지하의 피 웅덩이 속에 있던 요물들이었던 것이다.

    호족들은 앞선 전투로 이미 세력의 손실이 큰 상태였는데, 하물며 이토록 괴이하고 강력한 요물들이 몰려왔으니, 섬멸은 피할 수 없을 터였다.

    “죽여라!”

    만세호왕은 다급한 마음에 손을 뒤집어 북두칠성검을 꺼내 들며 외쳤다. 장검의 끄트머리에는 하얀 빛이 미친 듯이 불어났다.

    순간 수천수만 갈래의 반짝이는 빛이 반사되어 나와 요마 대군을 헤집고 지나가며 수십 마리의 요물들을 벌집으로 만들었고, 선혈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심협은 직접 나서지 않고 10여 명의 대승기 은갑천병과 진선 경지의 뇌부천장을 불러내 요마 대군 속으로 보냈다. 그리고 이들은 즉각 정세를 안정시켰다.

    만세호왕은 감격한 눈으로 심협을 돌아보고는 전투가 가장 치열한 곳으로 몸소 진격해 들어갔다. 북두칠성검이 하얀 빛을 뿜어내자 그의 일격을 당해낼 요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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