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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61화 (461/1,214)
  • 461화. 격돌

    잠시 후, 한기가 차츰 흩어졌고, 그 안에는 답운수가 꽁꽁 얼어붙어 얼음조각상이 되어 있었다.

    만세호왕이 장검을 번쩍 치켜들자 검신이 하늘에서 빙글 선회하며, 검 끝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한기가 맺혔고, 이 한기는 뾰족한 나선형 송곳을 이루더니 답운수의 뒤통수가 있는 부분을 곧장 파고들었다.

    그러나 검 끝이 답운수의 뒤통수에 닿으려는 순간, 꽁꽁 얼어 있던 답운수의 몸이 갑자기 부르르 떨렸다. 뒤이어 그의 손에 들린 장창에서 검은 불길이 갑자기 거꾸로 치솟으며 뻗어나가 온몸을 집어삼켰다.

    삽시간에 답운수의 온몸이 검은 화염에 휘감겼고, 그의 몸이 급속도로 불어나면서 어깨와 팔꿈치 뒤로 하얀 뼈들이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얼굴 위에도 하얀 골갑(骨甲)이 얼굴 반쪽을 뒤덮었고, 순식간에 키가 백 장에 이르는 경천거마(*擎天巨魔: 하늘을 떠받칠 정도로 거대한 마귀)가 되었다.

    그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염(魔炎)의 기운은 이미 진선 후기를 훌쩍 뛰어넘어 곧장 태을의 경지에 육박했다.

    마침내 만세호왕의 표정에도 변화가 일어났고, 아래쪽에서 교전을 벌이던 호족과 요괴 병사들도 모두 이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압력을 느꼈다.

    만세호왕이 팔을 크게 휘두르자 북두칠성검의 빛이 돌연 사그라들더니, 길이 1촌의 소검(小劍)으로 변해 곧장 그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뒤이어 호왕의 몸에서 거센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몸도 빠르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몸 뒤로는 새하얀 장발이 흩날렸고, 몸에는 새하얀 털들이 자라나기 시작해 금세 키가 백 장이나 되는 거대한 여우 요괴가 되었다.

    그의 입에서 한 차례 포효가 터져 나왔고, 등 뒤에서 기다란 꼬리 여덟 개가 머리 위로 불쑥 뻗어 나왔다. 이 꼬리들은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들처럼 날아들어 경천거마로 변한 답운수를 내리쳤다.

    쿵! 쿵! 쿵!

    여덟 개의 거대한 여우꼬리가 미친 듯이 허공을 가르면서 한바탕 북을 두드리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답운수는 손에 장창을 쥐고 양팔을 교차해 앞을 막았지만, 거대한 힘에 쟁기처럼 땅에 깊은 고랑을 남기며 수백 장이나 물러난 뒤에야 마침내 멈춰 섰다.

    답운수는 태연자약했고, 오히려 만세호왕을 비웃기까지 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니 고맙구나, 늙은이. 하하하!”

    이어서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손에 든 시커먼 장창을 불쑥 앞으로 내찔렀다. 그러자 창 위로 검은 불꽃이 거세게 솟구치더니 불바다처럼 하늘을 뒤덮고 만세호왕을 향해 질주했다.

    만세호왕은 이를 보고도 전혀 피하려는 기색 없이 야수의 모습으로 불바다를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이어서 거대한 두 발에 하얗고 반짝이는 빛을 한 겹 휘감은 채 검은 불꽃을 좌우로 끌어당겨 커다란 마염을 그대로 찢어발겼다. 이글이글 타오르던 화염에는 한 가닥 틈이 생겨났다.

    사방으로 날아 흩어진 화염이 털가죽에 튀어 불타오르면서 얼룩덜룩한 흔적들을 남겼으나, 만세호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금세 마지막 마염 층을 뚫고는 답운수 앞에 이르렀다.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던 답운수는 힘을 가득 모아둔 장창을 곧장 내찔렀다.

    창의 몸체가 회오리를 일으키며 허공을 갈기갈기 찢었다. 만세호왕은 주위의 모든 공간이 굳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한 치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몸을 가누고 양손을 앞으로 불쑥 뻗어 찔러오는 답운수의 장창을 꽉 붙잡았다.

    그러나 장창에 담긴 힘은 너무도 커서 호왕으로서는 돌진하는 기세를 막아낼 수 없었고, 양손에서는 불똥이 연달아 튀었다.

    연거푸 패퇴하자 잔뜩 화가 난 만세호왕은 크게 포효하며 여덟 개의 꼬리를 한꺼번에 뻗어 장창을 휘감았다. 그러자 결국 검은 장창의 돌진하던 기세가 누그러지면서 우뚝 멈춰 섰다.

    그러나 만세호왕은 미처 한숨 돌릴 겨를도 없었다. 답운수가 등 뒤의 두 날개를 펄럭이자 강력한 기운이 밀려나오면서 장창의 힘이 갑자기 폭증하더니 다시 찔러온 것이다.

    푸슉!

    만세호왕은 끝내 이 일격을 막아내지 못했고, 장창이 그대로 가슴을 뚫고 지나가면서 피를 뿜었다. 마화된 답운수는 실로 강해져서 이미 만세호왕을 너끈히 제압하고도 남았다.

    “듣자하니 사위 덕을 좀 보았다던데, 대력우마왕이라고 했던가? 한데 어째 사위가 돼서 장인어른이 곤경에 처했는데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군?”

    답운수가 양손으로 장창을 꽉 붙잡고 버티며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나도록 만세호왕을 몰아세웠다.

    만세호왕의 눈에 노기가 어렸다.

    “마화된 후로도 여전히 말이 많구나.”

    그는 의외로 작게 한마디 내뱉었을 뿐이다. 한데 다음 순간, 그의 거대한 입이 쩍 벌어지더니 한 줄기 하얀 빛이 스쳤고, 새하얀 비검 한 자루가 튀어나와 번개처럼 답운수의 가슴을 찔렀다.

    답운수는 손에 쥔 장창을 놓고 비검을 감싼 거대한 힘에 이끌려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입을 벌린 채 목이 멘 듯 처량한 소리를 내지르는 그의 눈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만세호왕은 천천히 가슴에서 장창을 뽑아내 대충 던져놓고는, 몸을 감싼 하얀 빛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그는 이내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호왕이 손짓하자 북두칠성검이 재빠르게 날아와 그의 손에 떨어졌다.

    그때, 멀리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악!”

    만세호왕이 고개를 돌려보니, 수백 장 너머에서 역시 백 장에 달하는 거대한 몸으로 마화된 대머리 사내가 푸른 옷의 호족 여인을 움켜쥔 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만세호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가 그녀를 구하려는데, 문득 머리 위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백옥 비검이 심장을 휘저어놓은 답운수가 멀쩡하게 다시 일어나, 거대한 발을 들고 만세호왕의 머리를 짓밟으려 했다.

    너무도 갑작스런 상황에 만세호왕은 미처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한데 그때였다. 마운동 상공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번쩍이더니, 돌연 심협과 두 호녀가 나타났다.

    심협은 나타나자마자 한 손을 휙 내두르고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는 진해빈철곤을 꽉 쥐고 가로로 휘둘렀다.

    황금승이 환한 빛을 발하며 단숨에 거대한 뱀처럼 날아가 대머리 사내를 향해 꼼짝 못 하게 꽁꽁 묶었다. 상대는 온몸의 법력을 몽땅 흡수당했고, 몸집도 빠르게 줄어들면서 땅에 나동그라졌다.

    한편, 진해빈철곤은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기둥처럼 순식간에 수백 배로 불어나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답운수의 허리를 후려쳤다. 산을 밀어버리고 바다를 뒤엎을 듯한 힘이 무방비 상태의 답운수를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멀리 날려버렸다.

    심협이 만세호왕 앞에 날아 내려섰을 때, 온 전장이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단숨에 두 요마를 물리친 벼락같은 솜씨에 모두가 경악한 것이다.

    “호왕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심협이 물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만세호왕은 이런 갑작스런 상황에서도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심 오라버니는 방촌산 제자이옵니다.”

    뒤따라 내려온 소옥과 려추가 재빨리 설명을 보탰다.

    “소옥, 네가 어떻게……?”

    갑자기 나타난 딸을 보자, 드디어 만세호왕의 얼굴에도 희색이 스쳤다.

    “부왕, 려 언니와 심 오라버니가 저를 구해주었사옵니다.”

    소옥이 다소곳한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만세호왕은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심협에게 뭔가를 말하려다가 멈췄다.

    “선배님께서 이 후배의 신분을 의심하시는 것이야 당연한 일입니다만, 우선은 이 후배가 저 답운수를 없앤 뒤에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심협의 진중한 눈빛을 본 만세호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소옥과 려추를 다시 실피고는 두 사람 모두 무사한 것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그 무렵, 려추가 남몰래 전음으로 심협에 대한 이야기를 호왕에게 들려주었다.

    “어떤 빌어먹을 놈이 감히 마족의 행사를 방해하려 드는 것이냐? 살기가 귀찮은 게로구나?”

    어느새 일어선 답운수가 심협을 매섭게 노려보며 포효했다. 방금 심협의 일격은 기세가 대단했지만, 답운수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심협은 눈썹만 살짝 들어 올렸을 뿐, 답운수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몸 아래에 달빛을 흩뿌리며 곧장 허공을 밟고 순식간에 답운수에게로 날아들며 어느새 다시 백 배로 커진 진해빈철곤을 그대로 내리쳤다.

    “사월보!”

    만세호왕은 그런 심협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답운수는 앞서 무방비하게 일격을 당한 터라,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고 장창을 곧추세우고는 거세게 진해빈철곤에 맞부딪혀갔다.

    꽈르릉!

    거대한 곤과 창이 맞붙은 순간, 하늘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조금 전과 사뭇 달랐다. 답운수는 꼼짝도 하지 않은 반면, 심협은 수백 장을 뒤로 물러난 것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인간족 애송이가 감히 우리 마족에게 맞서려 들다니, 주제를 알아야지! 흐흐흐.”

    우세를 점했다 여긴 답운수는 우쭐거렸다.

    그러나 심협은 공중에 떠오른 채 슬며시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날리며 체내에서 황정경을 빠르게 운공했다. 그의 몸이 백 장씩 전진할 때마다 뒤로 한 줄기 금빛이 뿜어져 나와 오조금룡과 거대한 금빛 코끼리 허상이 응집되었다.

    허상들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심협이 뿜어내는 기운도 배로 증가하여 그 기세와 압박은 그야말로 고대의 사나운 짐승과 맞먹었다.

    답운수도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저도 모르게 두려워질 정도였다.

    “어찌 이럴 수가! 한낱 인간이 이런 위세를 지닐 수 있단 말인가?”

    그가 놀라움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황정경 공법을 저 정도 경지까지 수련하였으니 분명 방촌산의 핵심 제자일 터! 한데 왜 나는 그의 이름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을꼬?”

    만세호왕의 눈에 희색이 반짝 스쳤다.

    “혹시 당시의 손오공처럼 보리조사의 비전을 얻은 뒤 신분을 드러내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것은 아닐는지요? 이제는 종문이 멸망했고 조사도 이미 세상을 떴으니 그가 비로소 천기를 누설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려추가 자신의 추측을 말했을 때, 만세호왕은 ‘손오공’이라는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 무렵, 심협은 온몸의 기세를 폭발시켜 답운수 바로 앞까지 돌진한 뒤, 또다시 진해빈철곤을 크게 내리쳤다. 그러자 여섯 마리 용이 거대한 황금 곤영을 따라 쏜살같이 내려왔고, 여섯 마리 거대한 금빛 코끼리도 따라서 급강하했다.

    온 허공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금빛이 일렁이며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답운수는 어두운 표정으로 몸에 축적된 힘을 남김없이 발산하면서 검은 창을 번쩍 들어 올려 금빛 곤영을 향해 불쑥 내찔렀다.

    검은 돌개바람이 땅에서 솟구쳐 올라 10여 줄기의 거대한 회오리로 변하더니, 창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화염을 따라 곧장 치솟아 금룡과 거대한 코끼리 그리고 곤영과 한데 맞부딪쳤다.

    꽈르릉!

    온 하늘을 뒤덮는 금빛과 거대한 진동이 끊임없이 울렸고, 무수히 많은 검은 화염이 산산이 흩어지면서 천화(天火)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불덩이가 떨어지는 곳마다 번갯불이 터지는 것처럼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충돌의 한가운데에는 숲의 절반이 통째로 무너져 움푹 꺼졌고, 주변 숲이 모두 불에 타 아수라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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