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54화 (454/1,214)
  • 454화. 하늘이 내린 재주

    “그렇군요.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 가르침을 청하고픈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심협은 퍼뜩 한 가지 일이 떠올라 황급히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황의의 사내가 말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삼재가 무엇입니까?”

    심협은 일전에 본 것을 떠올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대가 정말 방촌산 제자라면 어찌 삼재가 뭔지도 모를 수 있단 말이오?”

    은갑의 사내가 조금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심협은 이런 질문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기에 곧바로 답했다.

    “후배는 입문을 늦게 하여 종문이 멸망하던 그날 마족과 목숨 걸고 싸울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구차한 목숨을 이어올 수 있었지요. 종문의 빼어난 학문들도 미처 다 익히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런 견문을 넓혔겠습니까?”

    세 사람은 심협의 목소리에 슬쩍 묻어나는 침통함에 침묵으로 그의 말을 인정했다.

    “마족이 세상을 멸하기 전, 이 삼재란 것은 모든 수행자들의 공통된 적이었네. 사람이든 요괴든 정령이든 괴물이든, 아니며 영혼이든 귀물이든, 일단 수련하여 진선의 경지가 되면 수명에 더는 제한이 없게 되지.”

    그 말을 듣고 심협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현생에서 그런 경지에 이를 수만 있다면 옥침의 꿈속에서 목숨을 잃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 아닌가.

    “다만 이는 천도(天道)의 순환에 어긋나고, 천지의 복록을 가로채는 반역행위인지라 천도에서 용납하지 않는다네. 그래서 5백 년이 지날 때마다 한 차례 재앙을 내리지. 각각 뇌재, 화재(火災) 그리고 풍재(風災)라네.”

    백의의 노인이 말했다.

    “뇌재, 화재, 풍재란 또 무엇입니까?”

    심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뇌재란, 이해하기는 아주 쉽다네. 그날 하늘에서 뇌겁을 내려 자네를 한 대 후려치는 것도 자네에 대한 하늘의 시험이라고 할 수 있지. 수행이 적당하고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면 미리 알고 피할 수도 있음이야. 피할 수 있다면야 천수를 누리게 되지만, 못 피하면 물론 그대로 끝장인 게지.”

    백의의 노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 뇌재는 진선의 경지에 들어서면서 겪는 뇌겁에 비하면 어떻습니까?”

    심협이 물었다.

    “그 둘은 절대 같이 논할 수 없네. 뇌겁은 그래도 술법이나 신통력으로 대항할 수 있지만, 뇌재는 절대 그럴 수 없거든. 미리 알고 피하는 수밖에는 없어. 그러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는 것이지.”

    심협은 그 말에 움찔하여 기억에 그 답을 각인해두었다.

    “뇌재야 마음이 맑고 깨끗하기만 하다면 피할 수 있다지만, 5백 년이 더 지난 뒤에 일어나는 화재는 그리 쉽게 피할 수 없다네. 그 불은 속세의 평범한 불길도, 천화(天火)도 아닌, 음화(陰火)라네. 일단 음화가 내리면 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 발바닥의 한가운데 옴폭 들어간 부분)부터 곧장 니환궁까지 불태워 오장육부가 잿더미로 변하고 사지가 썩어 비틀어지게 한다네. 천 년 동안 고되게 수련한 도행(道行)을 지녔다 해도 하루아침에 허사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지.”

    백의 노인의 덤덤한 목소리와 달리 심협이 경악하는데, 은갑의 사내가 말을 이어받았다.

    “또다시 5백 년이 더 지나면 풍재가 내리는데, 그것은 인간 세상의 동서남북풍도 아니고, 화훈금역풍(*和熏金逆風: 각각 산들바람, 봄바람, 가을바람, 맞바람을 뜻함)도 아니며, 화류송죽풍(花柳松竹風) 역시 아니오. 비풍(贔風)이라 부르지. 사람 정수리의 숨구멍을 따라 육부로 들어가서 단전을 지나고 아홉 구멍을 관통하는데, 뼈와 살을 흩어지게 만들고 몸이 절로 분해되게 만든다오.”

    심협은 그 말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진선의 경지까지 고되게 수련하면 해와 달 같은 수명을 누릴 수 있다고 여겼거늘, 그리 많은 어려움과 고난이 남았을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이를 피할 방법이 있는지요?”

    “해결할 방법은 없어도 피할 방법은 몇 가지 있지.”

    백의의 노인이 말했다.

    “선배님들, 번거로우시겠지만 이 후배에게 가르침을 베풀어주십시오.”

    심협이 그 말을 듣고 진심으르 담아 포권을 했다.

    “삼재가 내릴 때에는 그 사람의 정(精), 기(氣), 신(神)을 찾는다네. 그래서 삼재를 피한다는 것은 기실 변화술(變化術)로 하늘을 속여 삼재가 자신을 붙잡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

    “변화술이요? 분명 평범한 환술 따위는 아니겠지요?”

    심협이 머뭇거리며 묻자 은갑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하오. 천도를 어찌 그리 쉽게 속일 수 있겠소? 당연히 진정한 변화술로 자신의 몸, 정혼(*精魂: 정신과 기백), 기운과 신혼을 진짜 바꿔야만 삼재가 종적을 찾지 못하게 할 수 있소. 그렇게 시한이 지나기만 하면 그 뒤로 5백 년은 안전할 수 있지.”

    “한데 생각해보면 삼재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당신네 방촌산은 바깥의 다른 방법을 구하지 않았소. 전해지지 않는 비전인 <지살칠십이변(地煞七十二變)>이 바로 이 삼재에 대처하는 최고의 비법인데, 혹시 배운 적 없소?”

    황의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묻자 심협이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배운 적 없습니다.”

    “칠십이변을 익힌 적이 없다니, 그게 어찌 방촌산 제자란 말이오? 천책이 왜 이런 사람을 골랐지?”

    황의의 사내가 의아한 듯 툭 내뱉은 말에 심협은 슬쩍 불쾌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포권하며 물었다.

    “선배님들께서는 어떤 변화술을 지니고 계십니까? 후배에게 조금 전수해주실 수 있는지요?”

    “변화술은 모두 각 문파에서 비밀에 부치는 것이거늘, 어찌 함부로 바깥에 전할 수 있겠소?”

    황의의 사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같은 값어치의 물건으로 맞바꿨으면 합니다.”

    심협이 말했다.

    “삼계의 존망이 걸린 때이니 더는 문파에만 목을 매어서는 아니 되네. 한낱 변화술을 자기 것이라고 천금처럼 귀히 여겨서도 안 되고 말이야. 더욱이 이 회동 초기에 정해둔 몇 가지 규칙이 있으니 물물교환을 하려는 것은 괜찮지. 다만 자네에게 어떤 맞바꿀 물건이 있는지 모르겠구먼?”

    백의의 노인이 물었다.

    “제게는 햇수가 꽤 된 영약과 선초, 변변찮은 부적 몇 장이 있을 뿐인데, 선배님들의 눈에 들지 모르겠습니다.”

    본래 황금승과 낭아봉 같은 법보를 이야기하려던 심협은 잠시 헤아려보더니 그렇게 말을 바꿨다. 이어서 그가 손을 휘두르자 2천 년 묵은 영초 몇 포기와 자색 부적 몇 장이 나타났다.

    “후토지, 몽로화, 현광등…….”

    황의의 사내는 가벼운 탄성을 지르더니 중얼거렸다.

    “낙뢰부, 쇄갑부, 정신부…….”

    은갑의 사내도 몸을 살짝 기울이며 이 세 부적에 조금 관심을 보였다.

    “이 영약들은 5백 년 전이었다면 내게 아직 쓸모 있었겠지만, 지금은 이미 별 의미가 없소.”

    황의의 사내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고개를 저은 반면, 은갑의 사내는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내 이 부적들에 흥미가 좀 있소. 품질도 높은 편이고, 그린 사람도 고수라 할 수 있는 데다, 상태도 아주 좋군. 대가로 내 그대에게 백학화형술(白鶴化形術)을 전수해줄 수 있는데, 어떻소?”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심협은 행여나 상대의 생각이 바뀔까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손을 휘둘러 세 장의 부적을 은갑 사내에게 밀어주었다.

    은갑의 사내는 부적들이 바로 앞까지 날아오자 곧바로 받지 않고, 두 손가락을 모아 몸 앞에 세로로 세웠다. 곧 그의 손가락 끝에 가닥가닥 법력이 맺히면서 짙은 은색 빛을 발했다. 뒤이어 그가 손가락을 모아 앞을 가리키자 순간 허공에 잔물결이 일렁이더니 두 손가락이 물에 잠긴 것처럼 허공의 얇은 벽을 찔러 부수고 부적들을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웠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다시 천천히 빼내어 부적들을 가져갔다.

    이를 본 심협은 앞서 백의의 노인이 왜 여기서 물물교환이 쉽지 않다고 한 것인지 그제야 깨달았다. 이곳은 독립된 공간이긴 하지만 연결된 네 사람은 이곳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여기서 물품을 맞바꾸려면 이곳의 공간 장벽을 먼저 깨뜨려야만 했던 것이다.

    은갑 사내가 뒤이어 손을 슬쩍 움직이자 옥간이 똑바로 날아가 심협 앞에 멈춰 섰다.

    이를 본 황의의 사내가 놀리듯 웃으며 말했다.

    “자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오늘 처음 온 자가 어찌 단번에 장벽을 뚫고 물건을 취할 수 있겠는가?”

    그 말을 들은 심협도 은갑 사내를 바라보았지만, 상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으니 당연히 그의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상대에게는 자신을 도와줄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심협은 아랑곳하지 않고 은갑의 사내가 했던 것처럼 두 손가락을 모은 뒤 온몸의 법력을 손끝에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두 손가락 사이에 차츰 금빛 한 알이 맺히기 시작했다.

    “오오, 꽤 그럴듯하군.”

    황의의 사내가 내심 감탄했다.

    그러나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심협의 손끝에 맺힌 금빛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쪼개지고 말았다.

    “조급해하지 마시오. 법력이 흐르는 속도를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잘 통제하여 방출하는 힘을 일정한 속도로 증가시켜서 장벽을 뚫을 수 있는 정도에 안착시켜야 하오.”

    은빛 갑옷의 사내가 갑자기 조언을 건넸고, 심협은 그 말에 따라 손끝에 금빛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두 마디로 바로 이해시킬 수 있다면 그가 어찌……”

    심협이 고작 몇 마디로 깨달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는지 막 비웃으려던 황의의 사내는 말을 채 마치지도 못했다. 이번에는 심협의 손끝에서 금빛이 쪼개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순조롭게 공간 장벽을 뚫고 그 옥간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잡은 뒤 천천히 다시 손을 빼고 있었던 것이다.

    “천종지재(*天縱之才: 하늘이 내린 한량없는 재주)…….”

    황색 옷의 사내가 마침내 마지막 네 글자를 내뱉었다.

    심협이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하여 마침내 옥간을 빼내오자 몸 앞에 일렁이던 잔물결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다만 이 짧은 동작만으로 그의 체내 법력은 적잖이 소모되어 관자놀이에 땀방울이 얼핏 보였다.

    “역시 천책이 선택한 사람답게 총기가 남다르구먼. 첫 시도에서 역물법(易物法)을 터득하기란 실로 쉽지 않네.”

    백의의 노인이 경탄의 말을 쏟아내자 은갑의 사내도 심협의 자질에 만족한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사람들의 반응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곧장 신식을 옥간에 집어넣어 자세히 살폈다. 그 결과, 그는 곧 이 요결(*要訣: 일의 가장 중요한 방법, 비결)의 내용이 이해하기 그리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요결은 전체가 수십 마디에 불과했고, 어쩐지 매우 낯익은 느낌이었다. 다만 어째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옥간을 챙기고 나서야 나머지 세 사람 모두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음을 깨닫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선배님들, 뭐가 잘못 된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도우는 우리에게 이 변화술의 요령을 물어보지도 않는 건가?”

    백의의 노인이 웃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후배 이 백학화형술과 매우 잘 맞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어려운 점이 없다고 느꼈으니 수행에도 어려움이 없을 듯합니다.”

    심협이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대답하자 세 사람은 다시 한번 몹시 놀랐다.

    “도우는 확실히 하늘이 내린 자질을 타고난 듯 허이. 이 늙은이에게 변화술이 하나 더 있는데 강 속의 비단잉어로 변할 수 있다네. 한번 익혀보려는가?”

    백의의 노인이 은근히 묻자 심협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삼재에 대비하려면 당연히 변화술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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