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51화 (451/1,214)
  • 451화. 피 웅덩이 속의 해골

    자색 구슬 안 그림자의 기운은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워서 심협은 그 크기조차 감지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오직 진선기를 초월한 일부 대능(*大能: 엄청난 경지와 능력을 지닌 고수, 권위자)들에게서만 경험해본 일이었다.

    ‘설마 저 안에 있는 것이 태을경(*太乙境: 진선기를 넘어선 태을의 경지)에 이른 대능이란 말인가!’

    깜짝 놀란 심협은 상대에게 들키지 않도록 곧장 시선을 돌렸고, 천병이 근처 진흙 속에 녹아들도록 조종하여 자신의 기운을 숨겼다.

    동굴 안의 혈진(血陣)이 운행되면서 곳곳의 피 웅덩이 속 선혈이 금세 절반이나 줄었다. 반면 피 웅덩이 속 요괴들의 기운은 한층 강해졌다.

    ‘저리 빠른 속도로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니, 이건 무슨 수법이지?’

    심협은 이 광경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존자(尊者)님, 정혈이 또 소진되었습니다. 최근에 존자님께서 분부하신대로 모든 요괴 병사들을 이곳 흑랑산 안에 머물게 하느라 밖에 나가서 혈식을 잡지 못한 탓에 비축해둔 혈물(血物: 피가 있는 날것)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혈백원번(血魄元幡)의 제작을 조금 늦춰야 할 듯합니다.”

    검은 호랑이 요괴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색 구슬 앞에서 공손히 몸을 굽혀 예를 갖춘 뒤 말했다.

    “안 된다! 혈식이 부족하면 네놈 수하의 졸병 몇 놈이라도 잡아 오거라. 치우 대인께서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지는 혈백원번에 달려 있다. 결코 늦출 수 없어!”

    자색 구슬 속에서 맑고도 서늘하지만 쌀쌀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심협은 어딘가 낯익은 목소리에 눈썹을 치켜 올렸다.

    한편, 검은 호랑이 요괴는 그 말에 낯빛이 어두워져 말을 잇지 못했다.

    반면 매 요괴는 눈에 노기가 들어차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다. 그러나 호랑이 요괴가 재빨리 만류했다.

    “왜? 불만이라도 있느냐?”

    자색 구슬 속 그림자가 천천히 돌아서서 검은 호랑이 요괴를 보며 싸늘하게 내뱉었다.

    “그, 그럴 리가요! 곧장 준비하겠습니다.”

    검은 호랑이 요괴는 몹시도 두려운 듯 몸을 바르르 떨더니 황급히 답했다.

    한편, 그들의 대화에 심협은 경악했다.

    ‘뭐라고! 치우가 아직 봉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단 말인가?’

    그가 알고 있는 소식에 따르면 치우는 마겁이 내리던 날 봉인에서 벗어나지 않았던가? 한데 어찌하여 지금까지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일까?

    충격에 평정심이 흐트러지자 천병의 몸에 더해진 봉인이 흐트러지면서 심협의 기운이 한 자락 뿜어져 나왔다.

    “웬 놈이냐!”

    구슬 속 그림자가 고개를 번쩍 치며들며 천병이 숨은 곳을 바라보았다.

    심협은 깜짝 놀라 곧바로 천병을 조종해 달아났다.

    그러나 얼마 달아나기도 전에 천병의 머리 위에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새카만 손뼈 허상이 떠올라 주위의 흙을 관통하고는 손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천병의 손에서 은빛이 번쩍이면서 창 한 자루가 나타나더니 독룡(毒龍)이 동굴을 나서듯 맹렬한 기세로 튀어나가 검은 손뼈를 찔렀다.

    쩌적!

    검은 손뼈에 꽂힌 순간, 무언가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은빛 창은 여러 토막이 나버렸다. 이어서 손뼈는 천병의 몸마저 종잇장처럼 가볍게 토막내버렸다. 이에 천병 안에 있던 심협의 신식 한 가닥도 손뼈에 의해 찢어졌다.

    “큭!”

    그 순간, 지상에 있던 심협의 본신은 낮게 신음하며 망설임 없이 곧바로 을목선둔을 시전했다. 그의 온몸은 순식간에 녹색 빛에 뒤덮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 사라져 둔술(遁術)의 공간에 들어섰다. 그는 그 속에 있는 을목(乙木)의 기운을 빌려 소리 없이 내달렸다. 그는 이미 을목선둔을 심오한 경지까지 수련하여 속도가 훨씬 빨라졌을 뿐만 아니라 기운도 더욱 잘 감출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가 막 녹색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차갑고 매서운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왔다.

    “달아나려 하느냐! 비밀을 엿들었으니 목숨은 남겨두고 가야지!”

    뒤이어 한 줄기 녹색 빛이 뒤에 나타나더니 그를 쏜살같이 쫓아왔다.

    녹색 빛 속에는 몸에 금빛 장포를 두른 검은 해골이 하나 있었는데, 장포가 단순하고 예스러운 것이 척 봐도 무척 오래된 복식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새것 같아서 장포에서는 은은한 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또한 검은 해골의 몸체는 새카맣게 빛나고 투명하게 반짝이는 것이 마치 검은 수정 같았다. 뼈대의 표면에는 갈래갈래 핏빛 주문이 흐릿하게 나타나 매우 기이해 보였다.

    검은 해골과 심협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을목둔술에 있어 그 해골의 조예가 훨씬 뛰어난 것이리라.

    심협은 안색이 변하여 곧장 결단을 내리고는 순식간에 둔술 공간에서 벗어나 진시천리(振翅千里)로 달아나려 했다.

    그때, 검은 해골이 다섯 손가락을 쫙 펼쳐 심협 쪽 허공을 그러쥐었다. 그러자 심협 주위의 녹색 빛이 갑자기 열 배나 짙어지면서 그의 몸을 가두려 했다.

    “흥!”

    심협은 콧방귀를 뀌고는 손을 뒤집어 진해빈철곤을 꺼내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그러자 서른두 줄기 곤영이 나타나 굉음을 울리며 녹색 빛을 깨부수었다.

    다음 순간, 그는 녹색 공간 바깥에 나타나더니 검은 산맥을 벗어났다. 그 검은 해골은 틀림없이 태을경의 강자일 것이고, 요채에는 고수도 많았다. 그러니 지금은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었다.

    하지만 그가 진시천리를 시전하기 위해 양팔에서 금빛과 은빛을 내뿜은 순간, 머리 위에 녹색 빛이 번쩍하더니 검은 해골이 나타났다. 해골은 뼈만 남은 시커먼 손을 뻗어 심협을 움켜쥐려 했고, 매서운 바람이 피부를 따끔하게 스쳤다.

    “내가 정말 무서워서 도망치는 줄 아느냐!”

    심협은 울컥 노기가 일어 진해빈철곤에 금빛을 거세게 내뿜으며 발천난봉을 다시 시전하려 했다.

    그러나 검은 손뼈는 너무도 빨라서, 그가 곤법을 펼치기도 전에 진해빈철곤을 덥석 움켜잡았고, 자연히 진해빈철곤은 순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심협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다음 순간, 금빛 한 줄기가 그의 소매에서 쏘아져 나가 검은 해골을 단단히 동여맸다. 아직 제련을 완성하지 못한 황금승(幌金繩)이었다.

    “황금승!”

    검은 해골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외친 순간, 그 몸이 검은 빛으로 번쩍이더니 갑자기 몇 배로 커졌다. 이에 따라 황금승도 찬란하게 번득이면서 똑같이 커져서 해골을 단단히 옭아맸다.

    그러나 검은 해골은 몸에 검은 빛을 다시 번뜩였고, 몸뚱이는 갑자기 좀 전의 1할도 되지 않는 크기로 줄어들었다. 줄어드는 속도는 앞서 커질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빨라 이제 완전히 난쟁이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황금승도 만만치 않아 마치 해골의 몸에 딱 붙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곧바로 줄어들어 도저히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이를 본 심협은 차게 웃으며 두 눈에 희미하게 붉은 빛을 띤 채 진해빈철곤을 휘둘렀다. 그러자 64줄기 곤영이 나타나 검은 해골을 매섭게 옥죄었다.

    검은 해골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아니었으나 심협의 벌게진 두 눈을 본 순간 눈빛이 기이하게 변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64줄기 곤영이 엄청난 금빛을 발하며 검은 해골을 집어삼켰다.

    콰쾅!

    굉음과 함께 검은 해골이 폭발해 무수한 뼛조각이 되어 산산조각이 났다.

    심협은 이 광경을 보고 잠시 멍해졌다. 진해빈철곤과 발천난봉의 위력에 자신감이 있긴 했지만, 설마하니 태을경의 대능을 일격에 죽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쐐액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번개처럼 날아왔다. 그 정체는 검은 해골의 두개골로, 눈 깜짝할 새 눈앞에 이르더니 입을 쩍 벌렸다.

    안개 같은 검은 빛이 그 입에서 뿜어져 나와서 얼굴을 정면으로 덮치자 심협은 얼굴빛이 급변했다. 이 검은 기운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절대로 좋은 것은 아닐 터였다.

    심협의 몸에 금빛이 번득이더니 금색 빛의 장막이 앞에 나타났고, 두 발에서는 달빛이 환하게 번졌다. 동시에 그는 뒤로 황급히 물러났고, 검은 기운은 금색 빛 장막에 가로막혔다.

    그러나 심협은 안심하기는커녕 오히려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검은 해골의 반격이 이토록 약할 리가 없으니 이 검은 기운에는 분명 다른 현묘한 술책이 숨어 있을 터였다.

    ‘검은 기운!’

    심협의 뇌리에 문득 취보당 유적에서 발견한 검은 병이 떠올랐다. 그 안에서도 검은 기운이 한 줄기 솟아 나왔는데, 눈앞의 이것과 매우 흡사했다.

    그는 갑자기 표정이 바뀌어 결인을 하고는 금색 빛 장막을 거둬들이려 했지만, 한 발 늦고 말았다. 그 검은 기운은 빛 장막 위에 바짝 달라붙어 순식간에 그 속으로 녹아 없어지고 만 것이다.

    심협은 몸이 갑자기 뜨거워지면서 괴이한 힘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법력은 이 힘을 전혀 막을 수 없었다. 당시 유적의 검은 기운이 몸에 들어올 때 상황과 더없이 흡사했으나, 지금의 느낌이 훨씬 더 강렬했다.

    그가 대책을 궁리하는데, 이 괴이한 힘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얼음장처럼 차갑고 스산한 기운으로 변했다. 이 기운은 매우 기이해 음기와 살기, 마기 같은 실제적인 음침한 힘이 아니라 형체도 없고 실체도 없었다.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기운이었다.

    심협의 몸 주위로 검은 기운이 떠오르더니 연기처럼 그의 몸을 감쌌다. 그 순간, 심협의 표정은 마치 살인광처럼 음산하고 살기등등하게 변했다. 심협은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고, 강한 살의가 치솟았다.

    콰르릉!

    머리 위 하늘의 빛깔이 갑자기 변하면서 어디선가 뭉게뭉게 짙은 먹구름이 생겨나 온 하늘을 뒤덮었다. 구름 속에서는 은빛 뱀 같은 번개줄기가 미친 듯 춤추었고, 천지를 집어삼킬 듯한 기운이 구름 속에서 흘러나와 갑자기 심협을 꼼짝 못하게 했다.

    그 순간, 심협은 깜짝 놀랐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자기가 어떻게 뇌겁을 불러 일으켰단 말인가? 그는 아직 수련 경지를 돌파하지 못한 데다 이 겁운(劫雲)의 기운은 자신이 진선의 경지에 들어설 당시 겪었던 뇌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했던 것이다.

    ‘설마 삼재이해(三災利害)가 내리려는 것인가!’

    심협은 머릿속에 문득 예전에 고서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이른바 삼재이해란, 진선의 경지 이상으로 수련한 수사가 직면해야 하는 세 가지 고난이다. 사람이 일단 진선의 경지까지 수련하면 수명이 엄청나게 길어져 천지와 같은 수명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장생불사는 천지조화의 비밀로, 진선기 수사는 천지의 조화를 빼앗고 천기(天機)를 범했다고도 할 수 있으니 신령들이 용납하지 않는 까닭에 세 가지 재난이 찾아온다.

    이 삼재 중 하나가 바로 뇌재(雷災)다.

    다만 고서를 읽을 때는 수련 경지가 한참 낮았던 때라 건성으로 훑어보았다.

    이에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또한 이상한 점이 있었다.

    ‘뇌재가 하필이면 이때 오다니,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설마 그 검은 기운이 불러일으킨 것인가?’

    하지만 지금은 당장 눈앞에 닥쳐온 뇌재가 문제였으니 다른 데 신경 쓸 겨를 없이 없었던 심협은 손을 뒤집어 진해빈철곤을 움켜쥐고 막아내려 했다.

    그때, 그의 몸에서 갑자기 금빛이 번쩍이더니 천책의 남은 일부가 난데없이 튀어나와 그의 머리 위를 떠다녔다. 이어서 금색 노을빛 한 줄기가 천책 속에서 쏘아져 나와 그의 몸 주위에 맴도는 검은 기운을 뒤덮었다.

    촤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천책이 펼쳐졌고, 심협 주위의 검은 기운은 한 차례 요동치더니 몽땅 사라졌다. 하늘에 켜켜이 쌓여 있던 겁운도 빠르게 흩어졌으며, 천책도 눈 깜짝할 새 다시 그의 손에 떨어졌다.

    심협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즉각 손을 뒤집어 황금승과 진해빈철곤을 거둬들였다.

    뒤이어 그가 두 팔을 펼치자 금빛과 은빛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면서 온몸이 순식간에 금은(金銀)의 환영으로 변했고, 심협은 무서운 속도로 멀리 하늘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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