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9화. 의문덩어리
마 주인장은 자신의 정체를 들키자 더욱 놀란 얼굴로 손을 뒤집어 검은 부적을 꺼내 오른팔에 붙였다. 그러자 그의 손에는 순간 검고 어두운 빛이 한 층 떠오르더니, 손바닥이 배나 부풀어 올랐다. 또한 피부 위로 알알이 검은 응어리가 생겨났고, 검고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 주인장의 오른손이 흉악한 검은 마수(魔手)로 변하여 허공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난데없이 집채만 한 검은 마수(魔獸)가 나타나 매섭게 금빛 용의 발을 움켜쥐더니 굉음과 함께 몇 장이나 밀어냈다.
마 주인장은 그 반동을 이용해 뒤로 몸을 날리면서 동시에 또다시 손을 뒤집어 검은 부적을 꺼내더니 몸에 붙였다. 그러자 검은 빛이 언뜻 나타나더니 그의 몸으로 녹아들었다.
휘익! 휙!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연거푸 울리며 마 주인장의 몸 아래에 용 모양 구름이 나타나 그를 떠받치고 앞으로 날아갔다. 그 속도는 불가사의할 정도라 순식간에 몇 리를 날아 곧 시야에서 사라지려 했다.
“시합이라도 하자는 건가?”
심협은 가볍게 웃더니 양팔 위로 각각 금빛과 은빛 두 가지 빛깔을 띤 깃털무늬를 떠올렸다. 그 상태로 양팔을 활짝 펴자 깃털 무늬가 밖으로 금빛과 은빛을 내뿜었고, 그의 몸은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져 금은빛의 잔상으로 변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갔다. 마 주인장의 흑운둔법(黑雲遁法)보다도 몇 배나 빨라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를 따라잡은 그는 일격을 가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심협이 신식으로 살핀 마 주인장의 입가에는 돌연 묘한 웃음이 걸렸다. 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심협은 우뚝 멈춰 섰고, 마 주인장의 얼굴에 한 가닥 아쉬움이 스쳤다.
노인은 계속해서 날아가며 손을 휘둘러 무언가를 꺼내더니 몸을 가볍게 한 번 두드렸다. 그러자 깃털 같은 은빛이 솟구쳐 나와 그의 몸을 감쌌는데, 특이한 방어수단인 듯했다.
심협은 신식으로 앞을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앞쪽 허공에 어느새 가닥가닥 은빛 그림자가 떠올라 있었는데, 어떤 것은 또렷하고 어떤 것은 흐릿했으며 어떤 것은 보일 듯 말 듯 아른거렸다. 이 은빛 그림자들은 크기 또한 다양했는데, 어떤 것은 겨우 1척 정도밖에 안 됐지만, 어떤 것은 5장, 심지어 10여 장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게다가 이 은빛 그림자들은 눈앞의 허공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 깊은 허공에는 훨씬 많아서 얼마나 먼 곳까지 빽빽하게 뻗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게 뭐지?”
심협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마 주인장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꼿꼿하게 날았는데, 은빛 그림자들은 그의 몸에 돋은 은빛 깃털에 닿자마자 길을 터주듯 옆으로 물러났다.
은빛 깃털의 보호 아래 마 주인장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은빛 그림자 깊은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심협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으나, 그래도 조급하게 뒤쫓지는 않았다. 조금 전 맞붙었을 때 이미 신혼의 표식을 한 자락 커다란 잿빛 번 안에 집어넣은 터라 거리가 너무 멀지만 않으면 충분히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손가락을 구부려 튕기자 기다란 금빛이 날아가 은빛 그림자 몇 줄기와 맞부딪쳤다.
슥! 샤악!
몇 차례 날카롭고도 가벼운 소리가 울렸다. 이 은빛 그림자들은 마치 못 벨 것이 없는 보도(寶刀)처럼 금빛을 순식간에 썰어버렸다. 원래 길쭉했던 금빛은 순식간에 여러 토막으로 잘려나가 무수한 금빛 광점(光點)이 되었다.
심협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은빛 그림자들은 너무도 날카로워 마치 고서에 기록된 공간의 균열 같았다.
식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은빛 그림자의 공간 파동은 확실히 이상하리만치 격렬했고, 파괴력이 가득했다.
“정말 공간의 균열이란 말인가?”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만약 사실이라면 제아무리 진선의 경지라 하더라도 닿으면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심협은 눈빛을 번득이더니 온몸에서 금빛을 환하게 내뿜어 반경 수십 장까지 뻗었다.
그는 몸을 보호하는 금빛을 거두지 않은 상태로 다시 날았다.
온전했던 금빛은 한순간 은빛 그림자들에 줄줄이 베어져 나갔지만, 대신 은빛 그림자의 위치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너무 어두워서 아직 알아채지 못했던 은빛 그림자의 영역도 또렷하게 나타났다.
심협은 그제야 한시름 놓고 조심스레 은빛 그림자들을 피하며 나아갔다.
앞으로 갈수록 은빛 그림자들은 점점 더 많아졌으나, 그는 이 우직한 방법으로 금세 수백 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그 무렵부터 은빛 그림자들은 사라졌고, 대신 시커먼 심연이 나타났다. 그곳은 곳곳이 칠흑처럼 어두워 끝이 없는 것만 같았다.
“여기는 또 뭐지?”
심협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감히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그는 손을 뒤집어 천책을 꺼낸 뒤, 은빛 천병 한 사람을 불러내 먼저 심연으로 날아가 보게 했다.
* * *
온통 어둑어둑한 잿빛 바다의 수면 위로 옅은 검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해수면에는 바람 한 점 없어 검은 안개도 그다지 떠돌아다니지 않았다. 바닷물 속에도 물고기 따위가 움직이는 기색은 없어서 마치 죽은 바다처럼 생기라곤 전혀 없는 풍경이었다.
한데 해수면 어느 한쪽의 바닷물이 용솟음치더니 이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어 요란한 우르릉 소리를 내며 회전했다. 뒤이어 10여 가닥의 촉수 같은 굵직한 검은 기운이 소용돌이 깊숙한 곳에서 뻗어 나와 하나로 뒤얽히며 뭔가를 가두어 놓은 듯한 그물을 만들었다.
갑자기 커다란 검은 그물이 찢어지면서 구멍이 생기더니, 금빛 한 줄기가 해수면의 소용돌이 속에서 뿜어져 나와 하늘로 곧장 돌진했다.
이에 검은 기운 몇 가닥이 즉시 소용돌이에서 튀어나와 휘감으려 했지만, 금빛 속에서 갑자기 금빛과 은빛 깃털 허상이 솟아 나왔다. 그 순간 금빛의 속도는 열 곱절 이상 빨라져 찰나지간에 검은 기운들을 멀리 날려버리고 순식간에 광점으로 변해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검은 기운의 촉수들은 포효하며 몇 차례 미친 듯이 몸을 흔들더니 천천히 해수면으로 스며들었고, 거대한 소용돌이도 따라서 천천히 사라졌다. 이내 해수면은 평온한 상태로 돌아갔다.
* * *
검은 소용돌이에서 백여 리 떨어진 곳. 쏜살같이 질주하던 금빛이 천천히 멈춰 서서 빠르게 줄어들더니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협이었다.
그는 독에 중독된 것처럼 얼굴에는 기괴한 검은 기운이 감돌았고, 온몸에도 몇 군데나 상처가 있었지만, 그리 깊어 보이지는 않았다.
발아래 펼쳐진 검은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이전에 무수한 공간의 균열을 뚫고 지난 뒤 검은 심연을 만난 그는 여러 차례 탐색을 거듭한 뒤에야 그 속으로 들어갔다. 심연 안에는 법력과 육신을 갉아먹는 어둡고 음침한 기운이 가득했고, 그 안에서는 간혹 어마어마한 검은 폭풍이 휘몰아쳤다. 이 폭풍은 파괴력이 무시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내부에 강력한 흡인력이 있어 그를 심연의 밑바닥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심협은 경지가 높고 깊은 데다 진해빈철곤과 천책 등의 보물을 지니고 있음에도 젖 먹던 힘까지 다한 끝에 가까스로 검은 심연을 지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 수역에 들어서게 됐는데, 그곳이 바로 저 아래 펼쳐진 검은 바다였다.
한데 이 바다에도 겹겹의 위험이 있었다. 우선 짙은 시기(屍氣)를 품고 있었는데, 이 시기 안에는 맹독까지 담여 있어 가히 독해(毒海)라고 할 만했다.
바닷속에는 시기가 응집되어 만들어진 수많은 거대한 괴물들도 있었는데, 매우 강력할 뿐만 아니라 맹독 공격을 해오기도 했다. 이에 심협은 이 해역에 발을 들이자마자 황정경을 운공하여 바닷물에 담긴 맹독과 시기의 침식을 막아낸 뒤, 을목선둔(乙木仙遁)과 진시천리(振翅千里)를 동시에 시전하여 전력으로 내달린 후에야 탈출할 수 있었다.
심협은 곧 시선을 거두고는 대개박술을 운공해 천지의 영기를 흡수하여 상처를 치료했다.
하지만 이는 실수였다. 해수면 위에는 천지영기가 아주 희박했고, 음시(陰屍)의 기운이 매우 짙어 부상이 호전되기는커녕 중독이 더 심해진 것이다.
심협은 불쑥 화가 치밀어 아래쪽 바다를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금빛 한 덩이가 그의 손에서 날아가 바닷물을 파고들었다.
퍼펑!
바닷속에서 경천동지할 폭발음이 울렸고, 고요했던 해수면에 한바탕 성난 파도가 일었다. 금빛 폭풍이 바닷속에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한참 뒤에야 금빛 폭풍이 잠잠해지고 해수면도 평온을 되찾았다.
심협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 나서야 진정이 됐다.
“방금 내가 왜 갑자기 화를 낸 거지?”
마음이 가라앉자 그는 좀 전에 자신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결코 충동적이지 않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도 아니었다.
“설마 독 때문인가? 일단 이 해역을 벗어나고 봐야겠군.”
심협은 결정을 내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 해역은 상황이 모두 엇비슷했는데, 오직 왼쪽 하늘 끝의 운무만 조금 달랐기에 곧장 그쪽으로 향했다.
그는 날아가면서 마 주인장에게 남긴 신혼 표식을 감지해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뜻밖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앞서 그는 공간의 균열과 캄캄한 심연, 그리고 저 아래쪽 독해까지 세 곳의 험지를 지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반면 마 주인장은 이미 이런 위험들에 준비를 해둔 듯하니 지금쯤 어에 있을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신혼 표식은 연신비전의 비술로, 대승기의 수련경지를 지녀야만 시전할 수 있다. 그러나 감지할 수 있는 거리는 만여 리에 불과했다. 자신이 여러 방해들로 인해 지체된 동안 마 주인장은 그 거리를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반 시진을 날고서야 하늘에 일말의 푸른빛이 나타났다. 마침내 육지에 도착한 것이다.
심협은 내심 기뻐하며 속도를 내 금세 검은 해역을 빠져나갔다.
해변 쪽은 온통 황폐한 산림이었지만, 여전히 음기가 짙어 심협은 그곳에 머물지 않고 내륙으로 향했다. 그렇게 수백 리를 날아가자 그제야 천지영기가 왕성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산맥에 내려와 손 가는 대로 벽 위에 동굴을 하나 파내고는 그 안에 숨어 운기조식하면서 상처를 치료했다.
심협의 몸에 가닥가닥 법맥의 허상이 빛을 발했고, 천지의 영기들이 곧 밀물처럼 몰려와 몸에 스며든 독을 씻어내면서 그의 얼굴에 드리웠던 검은 기운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한나절 뒤에야 심협의 안색은 발그레하게 혈색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떠나지 않고 손을 뒤집어 지난번 꿈속에 들어왔을 때 얻은 황금승과 낭아봉을 꺼낸 뒤 구구통보결을 운공해 제련했다.
지난번 꿈속 세상에서 이 두 가지 보물을 얻고도 미처 제련할 겨를도 없이 현실로 돌아가게 됐는데, 이제 여유가 좀 생겼으니 곧바로 제련을 시작한 것이다.
이 두 보물은 영롱탑(玲瓏塔)과 달리 금세 구구통보결에 반응했고, 심협의 법력은 그 안에 있는 금제를 차츰 제련했다.
그런데 이때, 멀리서 귀를 찌르는 듯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 처절한 비명이 섬뜩하게 들려왔다.
심협은 인상을 찡그리며 제련을 멈추고 동굴 입구로 다가가 자신의 기운을 거둬들인 뒤에야 바깥을 내다보았다.
온 하늘을 가린 먹구름이 허물어진 사찰에서 멀지 않은 곳을 지나면서 하늘을 찌를 듯한 요기를 발산했다. 먹구름 속에는 무수한 검은 해골이 어렴풋이 나타나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 보는 사람의 머리털이 다 쭈뼛 곤두설 지경이었다.
먹구름이 낮게 나는 탓에 아래쪽 산맥도 영향을 받아 산림이 울렸고, 모래와 돌이 날아다녔으며, 숲속에 사는 수많은 산짐승이 놀라 뿔뿔이 달아났다.
하지만 먹구름 속에서 불시로 시커멓고 요사스러운 바람이 불어와 커다란 짐승들을 휘감아 먹구름 속으로 거둬들였다.
‘저 안에 어떤 요물이 있는 것인지 몰라도 저런 평범한 짐승들을 긁어모아 무엇을 하려는 걸까?’
심협은 그런 궁금증이 생겼으나,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