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화. 업보에서 벗어나다
검은 화염의 방해가 사라지자 대개박술과 유영단이 동시에 작용하며 상처는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시커먼 피부도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심협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억지로 버티며 일어났지만, 소환해온 경지를 감히 해제할 수는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첨과를 바라보며 결인하고 손을 휘둘렀다.
한 줄기 광풍이 휘몰아치며 주위에 흩날리는 흙먼지를 휘감아 올리면서 그 안의 상황이 드러났다.
금색 빛기둥은 이미 사라졌고, 소환해온 별빛의 힘은 땅바닥에 금빛 법진으로 응결되어 첨과의 시신을 봉인하고 있었다.
첨과는 허리가 잘려 두 동강났지만, 몸은 이미 사람의 모습을 되찾아 지금은 꼭 호박 속의 파리처럼 봉인 속에 꼼짝못하고 갇혀 있었다.
심협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소환을 해제하려는데, 희미한 검은 기운이 첨과의 몸에서 갑자기 날아 나와 삼성멸마의 봉인을 완전히 무시하고 날아갔다.
이 검은 기운은 세 개의 머리에 여섯 개의 팔을 가진 형체를 어렴풋이 드러냈는데, 바로 치우의 어두운 그림자인 듯했다.
깜짝 놀란 심협은 황급히 뒤로 몸을 날려 현황일기곤을 소환했고, 순양검배와 용각단추가 그의 몸을 맴돌며 전투태세를 갖추고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내 너를 기억할 것이다!”
검은 형체는 더 이상 공격해오지 않고 그 말만을 남긴 뒤, 눈 깜짝할 새 땅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심협은 얼이 빠진 채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왠지 모를 오싹한 한기가 들었다.
검은 그림자가 사라진 뒤, 봉인 속 첨과의 몸에 있던 모든 마기들은 사라졌다.
심협은 그제야 안도하며 급히 결인하여 소환을 해제했다.
금빛 그림자 한 줄기가 그의 몸속에서 빠져나와 하늘을 향해 날아갔고, 천책도 빠르게 흐릿해지더니 반짝이는 빛으로 변해 임랑환 속 옥침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하늘에 다시 나타났던 먹구름과 은빛 번개는 연이어 사라졌고, 하늘은 본래 모습을 회복했다.
한편, 심협의 기운도 빠르게 떨어져 눈 깜짝할 새에 출규기로 돌아왔다.
그 순간, 그는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몸속 원기가 몽땅 빠져나가면서 바들바들 떨었고, 이내 쿵 하고 쓰러졌다.
이번에는 꿈속 경지를 소환한 시간이 지난 두 번보다 훨씬 더 길었던 만큼 치러야 하는 대가도 컸던 것이다. 온몸 마디마디의 근육들이 심하게 경련했고, 체내의 생명력도 빠르게 사라져갔다.
퓩!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면서 그의 몸 표면에 아주 작고 가느다란 상처들이 생겨나 붉은 피가 왈칵 넘쳐흘렀다. 체내 경맥들이 마디마디 부서져 지금의 심협은 마치 다 낡아 누더기가 된 자루처럼 보였다. 멀쩡한 살점이 한 군데도 없었으며, 체온도 빠르게 떨어졌다.
그는 어떻게든 요상유영단을 꺼내 먹으려 했지만, 격렬한 통증이 엄습해오면서 의식이 흐릿해졌다.
“심형!”
누군가의 놀란 목소리와 함께 잔뜩 긴장한 얼굴의 백소천이 날아오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자 심협은 마음이 조금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의식을 잃었다.
백소천은 심협의 옆에 날아 내려와 다급히 요상단약 두 알을 꺼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어서 양손을 재빠르게 결인하자 가닥가닥 법결들이 심협의 몸 위로 떨어졌다.
심협의 몸에는 이따금 금빛이 반짝이고 몸 곳곳의 상처들이 천천히 아물었지만, 기운은 회복되기는커녕 도리어 계속 약해져갔다.
백소천의 이마에는 어느새 커다란 땀방울이 송골송골 배어나와 두 뺨을 타고 흘렀지만, 손놀림은 점점 빨라져 계속해서 화생사의 요상법술(*療傷法術: 상처를 치료하는 법술)을 시전했다.
심협이 심한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자 첨과의 몸을 뒤덮었던 금빛 법진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빠르게 흩어졌다.
첨과는 허리가 잘려나가 동강이 나 있었고, 절단된 부위는 피범벅이었지만 괴이하게도 흘러나온 피는 한 방울도 없었다. 그는 굳게 닫혔던 두 눈을 천천히 뜨는 것이, 놀랍게도 아직 죽지 않은 상태였다. 다만 그는 얼굴에 무수한 주름이 생겨 마치 갑자기 곧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 된 것처럼 보였다.
첨과의 표정에서는 더 이상 이전의 포악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눈빛에는 아득함이 가득하여 모든 것에 희망을 잃은 듯 상처를 돌보려 하지도 않았다.
첨과는 아무 기척이 없었지만, 수련 경지가 깊은 백소천은 그가 살아 있음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백소천이 심협을 한 손으로 천천히 부축해 일으키며 다른 한 손을 높이 들자 금도(金刀) 법기 한 자루가 나타나 표면에 강렬한 금빛을 내뿜으며 첨과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으려 했다.
“백 시주, 잠시만요.”
멀리서 선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금선법상 속의 그는 어느새 두 눈을 뜨고 있었다.
백소천은 언제나 선아를 존중해왔기에 공격을 멈췄다.
그때, 멀리서 몇 차례 굉음이 들려왔고, 다른 쪽의 전투도 마무리 되었다.
삼성멸마가 마화된 사람 몇 명을 멸했고 이제 첨과까지 패했으니 남은 적들은 사기가 크게 꺾여 여러 서역의 승려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봉인의 틈새를 선아가 금선법상으로 막자 마기로 오싹하던 법회장은 다시 맑아졌고, 한바탕 겁을 겪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 모두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초래한 원흉인 첨과가 아직 살아 있었다.
동료를 잃은 승려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커다란 파공음을 울리며 첨과를 공격했다.
그러나 금색 빛 장막 하나가 첨과 앞에 나타나더니, 한바탕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금색 빛 덮개가 맹렬히 진동했고, 10여 개의 법기들이 튕겨나갔다.
“이게 무슨 짓이오?”
승려들은 백소천을 노기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백소천이 이 금색 빛 장막을 풀어 놓는 것을 똑똑히 본 터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금선대사님께서 첨과에게 물으실 것이 있답니다.”
백소천은 한 손바닥을 세우며 사람들에게 예를 갖추면서 다른 손으로 법인을 맺어 심협의 가슴을 눌렀다. 그러자 부드러운 금빛이 끊이지 않고 심협의 몸에 녹아들면서 지금껏 쇠약해지기만 하던 심협의 기운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승려들도 일찍이 금선법상의 존재를 본 터라 선아를 몹시도 존경하여, 그 말을 듣자 하나둘 손을 거뒀다.
“첨과는 마족과 결탁하여 하마터면 마족을 세상에 나오게 할 뻔한 마도(魔徒)입니다. 이런 자에게 무슨 말을 더 한단 말입니까? 즉시 갈기갈기 찢어 죽여 죽은 동료들의 복수를 해야 마땅합니다!”
원한에 이성을 잃은 몇몇은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
“아미타불. 여러 대사님들, 인간은 성현이 아닌데 누가 잘못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 첨과 시주도 마족에게 속아서 이런 죄업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어차피 얼마 살지 못할 터. 또한 오늘은 이미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여기에 굳이 죄업을 더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선아가 두 손을 합장하며 다가왔다. 금선법상은 여전히 봉인 위에 머물며 갈라진 틈을 막고 있었다.
선아는 예전과 조금 달라보였다. 멍하고 어리숙한 기색은 조금 줄었고, 위엄이 조금 더 늘었으며, 얼굴빛이 차분하고 얼굴에 윤기가 돌아 꼭 불타의 보상(寶相)과도 같았다.
방금 성을 냈던 승려들은 선아의 눈길이 닿자 어째서인지 더듬더듬 말도 내뱉지 못했다.
“흥! 나를 동정하는 것이냐? 모든 것은 내가 저지른 일이니 나 혼자 감당할 것이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거라!”
첨과는 눈빛에 약간의 생기를 되찾고는 싸늘하게 내뱉었다.
“첨과 시주. 지금까지도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십니까? 세상만사 선악은 헛된 것입니다. 세상만물은 속이고 싸우지만, 보답과 손해를 생각지 않고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자연히 왔다가 자연히 가게 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지혜이지요.”
선아가 첨과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자연히 왔다가 자연히 간다고? 하하하! 정말 쉽게 말하는구나. 너는 처자식도 가져본 적 없건만, 어찌 나의 고통을 이해하겠느냐!”
첨과는 껄껄 소리 내 웃다가, 문득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의 눈에는 사나운 불길이 다시 일었고, 그 안에는 일말의 처연함이 섞여 있었다.
“설사 시주에게 고통이 있다 해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마족에 몸을 의탁하고 천하를 어지럽히려 해서는 아니 되지요. 창생들이 얼마나 무고합니까? 그대의 그 행동에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화를 당하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될지 아십니까? 시주께서는 그런 광경을 두 눈 뜨고 볼 수 있습니까?”
선아의 계속된 말에 첨과는 미간을 찌푸리며 침묵했다.
“시주의 눈을 보니 절대로 간악무도한 사람이 아닙니다. 마도에 빠졌던 것은 그저 운명이었을 뿐, 앞선 행동들은 마음과 지혜가 마기의 영향을 받은 탓이지요. 이제는 사악한 악마의 조종에서 벗어났는데, 어찌하여 칼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 피안을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까?”
선아의 절절한 목소리에 첨과의 눈빛에 한 가닥 온화함이 스쳐 지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다시 냉혹한 표정을 되찾고는 차갑게 외쳤다.
“나를 교화시키고자 하느냐? 충고하건대 말을 아끼는 게 좋을 것이다. 내가 마족에게 몸을 의탁하여 오늘날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은 자업자득이니, 죽이든 찢어발기든 마음대로 해라! 허나, 나를 다시 네놈들 불문에 귀의시킬 생각일랑 말아라!”
선아는 한숨을 내쉬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첨과 곁에 앉았다.
“무슨 짓이냐?”
첨과는 선아의 행동에서 뭔가를 알아차렸는지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다만 그의 기운은 갈수록 약해져서 있는 힘껏 호통을 쳤음에도 목소리는 기력을 잃어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시주의 마음이 반석과 같으니 물론 소승도 강요할 수는 없지요. 다만 시주가 범한 죄업이 너무나 많아 이대로 지부(地府)에 간다면 분명 끝없는 고초를 받을 겁니다. 그러니 소승이 미약한 재주이나마 불경을 읊어 시주의 업력(*業力: 행위에 따른 결과를 가져오는 업인의 큰 힘)을 조금 씻어내게 해주겠소.”
선아는 뒤이어 경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이 달싹임에 따라 온몸이 마치 찬란한 금빛으로 한 꺼풀 씻은 것처럼 보배롭고 장엄하게 변했으며, 주위 허공에는 엷은 금빛 물결이 일었다.
무수한 불가의 진언이 물결 속에 떠올라 졸졸 흐르는 가느다란 물줄기처럼 한데 모여 첨과의 두 토막 난 몸뚱이를 향해 흘러가더니 그 안으로 들어갔다.
“멈춰라!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란 말이다!”
첨과는 몸을 움직이지는 못하고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하지만 선아는 끄떡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불경을 외웠다.
수많은 불가의 진언들이 첨과의 몸속에 들어가자 첨과의 표정에 고통스러운 기색은 적잖이 사라진 듯했지만, 노기는 더욱 짙어졌다.
“꺼져! 꺼지란 말이다! 난 네놈의 가식적인 은혜 따위 필요치 않아! 어서 멈추지 못할까. 나 첨과가 용서치 않을 것이야!”
첨과는 계속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선아는 여전히 느긋하게 경문을 읊조릴 뿐이었다.
더욱 많은 불가의 진언들이 나타나고, 금빛이 점점 더 밝아지면서 곧 선아를 중심으로 금빛이 물결처럼 사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염불 소리가 멀리 메아리치며 법회장 전체가 금빛으로 엄숙하여 마치 불가의 명승지에 온 것만 같았다.
그 자리에 있던 승려들은 얼굴에 엷은 금빛이 비치자 마음이 편안해졌고, 아직 원한을 품고 있던 사람들도 노여움이 차츰 사라지면서 평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