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45화 (445/1,214)
  • 445화. 죽기를 각오한 싸움

    “오늘 내가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으니, 네놈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지녔는지 봐야겠다!”

    첨과는 인간의 말을 내뱉었지만 목소리는 완전히 변하여 귀에 거슬릴 정도로 쉬어 있었다.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가 손을 들어 허공을 그러쥐었다.

    심협의 머리 위에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어디선가 검은 마수(魔手)가 나타나 온 하늘을 가릴 듯 아래쪽을 움켜잡았다.

    안색이 굳은 심협은 재빨리 현황일기곤을 움직였다. 그러자 서른두 줄기 곤영이 다시 나타나며 거대한 힘이 다시 솟구쳐 나와 검은 마수를 맞았다.

    콰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곤영과 마수가 맞부딪친 허공이 거세게 진동하더니 마치 거울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검은 마수는 희미하게 흔들렸지만, 곧 진정되더니 다섯 손가락을 갑자기 모아 단번에 서른두 줄기의 곤봉 그림자를 몽땅 움켜쥐었다. 그 손아귀가 오므려지자 더없이 억센 힘이 서른두 줄기 곤봉 그림자를 그대로 잡아 으스러뜨리고 터뜨려버렸다.

    심협의 몸은 크게 흔들리며 나가떨어졌고, 현황일기곤도 그의 손을 벗어나 날아갔다.

    그가 미처 몸을 가누기도 전에 시야가 아득해지면서 첨과의 흉악한 얼굴이 바로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첨과가 여섯 팔을 움직이며 여섯 마병들을 맹렬히 내리쳤다.

    순간 심협의 몸에 금빛이 환하게 번득였고, 여섯 용과 여섯 코끼리의 허상이 떠올라 첨과에게 맞섰다.

    콰쾅! 펑!

    끊임없이 폭발음이 울리면서 용과 코끼리 허상은 마병의 일격에 산산조각이 났지만, 심협은 그 틈에 번쩍 사라졌다가 현황일기곤 옆에 나타나 재빨리 곤봉을 잡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현황일기곤에서 문득 검은 그림자가 솟아나며 길이가 1장쯤 되는 검은 뱀이 나타나더니 날쌔게 심협의 팔뚝을 휘감았다.

    음침하고 서늘한 기운이 엄습해 오면서 심협은 팔뚝 전체가 즉시 무감각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검은 뱀은 다음 순간 검은 빛줄기로 변하여 심협의 목덜미를 물려고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심협은 놀란 와중에도 허둥대지 않고 입을 벌려 붉은 검을 쏘아 보냈다. 이어 붉은 비검에서 더없이 날카롭고 매서운 검기가 폭발하면서 검신에서는 홍련업화가 불타올라 검은 뱀의 머리통을 그대로 찢어발기고 가닥가닥 검은 기운으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동시에 심협의 곁에서 금빛이 번쩍이더니 용각단추가 나타나 검은 뱀의 몸을 베었다.

    눈부신 붉은 검기와 날카로운 금빛이 비검과 단추에서 동시에 피어나 서로 엇갈리며 검은 뱀을 옭아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뱀은 그대로 폭발하여 무수한 검은 기운으로 변해 흩어졌다.

    그러나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첨과가 달려들었다. 손에 들려 있던 여섯 마병은 보이지 않았으나, 대신 검은 화염이 불타오르는 거대한 검이 시커먼 번개처럼 빠르게 심협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심협은 가까스로 현황일기곤을 휘둘러 막았고, 순양검배와 금빛 단추도 차례로 달려들어 거대한 검은 검을 막아섰다.

    챙! 챙!

    두 차례 금속음이 울리면서 거대한 힘이 덮쳐와 현황일기곤을 날려버렸고, 순양검배와 금빛 단추도 진동하며 날아갔다.

    그러나 거대한 검은 검도 방향이 틀어져 심협의 목이 아닌 허리와 배를 스쳐 지났다. 이에 심협의 허리에는 커다란 상처가 생기면서 붉은 피가 튀었고, 상처 부위가 검은 화염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기세를 몰아 공중제비를 돌며 뒤로 수십 장을 날아갔다.

    그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두려움이 스쳤지만, 부상도 아랑곳 않고 재빨리 주문을 외우면서 두 손을 수레바퀴처럼 결인했다. 그러자 손가락 사이에 금빛 별의 광채가 떠올랐다.

    동시에 그는 두 발에 달빛을 반짝이며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굵고 커다란 검은 검광이 내려와 방금 전까지 심협이 있었던 곳을 베었고, 땅바닥에는 길이가 백 장이나 되는 골짜기가 파였다.

    첨과의 두 눈에 혈광을 번뜩이며 어딘가를 노려보았고, 60여 장 떨어진 허공이 일렁이며 심협의 모습이 나타났다.

    첨과는 몸에서 마기를 내뿜으며 마족의 둔술을 펼쳐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나 심협이 한 발 앞서 두 손 사이에 눈부신 금빛을 피워내며 갑자기 양손을 결인하고 높이 하늘을 가리켰다.

    먹구름 위의 하늘이 거세게 진동하면서 갑자기 몇 배나 밝아졌고, 셀 수 없이 많은 밝은 별들이 하나둘 빽빽하게 떠올라, 한낮의 하늘이 돌연 밤하늘처럼 변했다.

    “삼성멸마!”

    심협이 큰 소리로 외치자 온몸에서 금색 별빛이 번득였다.

    하늘의 별들도 따라서 밝아지며 무수한 별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찰나지간에 검은 구름을 갈갈이 찢어버렸다.

    뒤이어 이 작열하는 별빛들이 모여 비할 데 없이 굵고 거대한 금빛 기둥을 이루더니, 혜성이 떨어져 내리듯 첨과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자 성 밖의 사막을 넘어 적곡성의 성벽까지도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근처에 있던 마화된 사람들은 모두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부림쳤고, 그들의 몸에 맺혔던 검은 기운은 조금 전 금선법상의 빛을 쪼였을 때보다 더 빠르게 흩어졌고, 가까이 있던 몇 명은 그대로 증발해 해골로 변했다.

    이때 심협의 마음속에도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진선의 경지로 시전한 삼성멸마의 위력은 하늘에서 곧장 수천수만의 별 허상을 소환해낼 정도로 대단했던 것이다.

    한데 첨과는 미처 피할 겨를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여섯 팔을 연달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빛 덩어리들이 그의 손에서 날아가 마치 활짝 피어난 거대한 검은 꽃처럼 그의 머리 위를 춤추듯 맴돌았다.

    동시에 그는 발을 들어 올려 바닥을 세차게 굴렀다.

    우르릉

    바닥이 갈라지면서 굵직한 검은 기운이 틈새로 솟구쳐 나와 머리 위의 검은 빛 덩어리들 속으로 녹아들었고, 뒤이어 퍽 하고 가벼운 소리가 울렸다.

    검은 빛 덩어리들 위의 빛이 갑자기 성대해지고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시커멓고 거대한 광진(光陣)을 이루었는데, 무수한 자흑색 마문이 그 속에서 반짝여 마치 하나의 법진처럼 보였다. 이 법진이 막 응결되자마자 금색 별빛 기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검은 광진을 내리쳤다.

    금빛과 검은 기운이 격렬하게 충돌하자 둘이 맞닿은 곳에서 마치 우렛소리처럼, 무수한 법기들이 맞부딪치는 것처럼 귀를 찌르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다음 순간, 검은 마기는 불을 만난 눈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첨과가 떠받치고 있는 검은 광진은 실로 견고했고, 표면에는 무수한 마문들이 웅웅 소리를 내며 운행하고 있어서 뜻밖에도 금색 빛기둥의 충격을 막아냈다.

    광진 전체에는 약간의 변형이 생겼지만, 시커먼 마기가 땅속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와 계속해서 흘러들면서 위쪽 부분은 삼성멸마에 의해 거듭 무너져 내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선명한 빛을 유지했다.

    심협의 입가에 핏줄기가 흘렀다. 꿈속의 힘을 불러내느라 그의 몸에는 큰 부담이 갔고, 지금까지 시간이 몇 호흡이나 지났으니 더 시간을 끌다가는 이 싸움을 이기더라도 수명이 바닥나 죽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가 다급히 양손으로 결인하자 몸에서 환한 금색 별빛이 뿜어져 나오며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 기둥이 더욱 굵어졌다.

    이를 본 첨과가 차갑게 웃으며 무언가를 하려는데, 갑자기 땅이 흔들렸고, 뒤이어 땅속에서 솟아나던 검은 마기가 뚝 끊겼다. 마기가 보충되지 않자 검은 광진은 빠르게 어두워지면서 금색 빛기둥에 짓눌려 아래로 움푹 꺼져버렸다.

    첨과는 먼 곳에 있는 봉인을 바라보고는 표정이 돌변했다.

    금선법상이 그곳의 봉인 틈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거대한 몸으로 틈을 모두 막아버리니 그 안에 있는 마기가 밖으로 솟구쳐 나올 수가 없었다.

    첨과는 이를 갈았다. 그는 방금 어쩔 수 없이 마수(魔首)를 움직여 도와주러 오면서 떠나기 전에 봉인에 약간의 수단을 부려 놓았는데, 지금 보니 그 수단이 깨져버린 것이다.

    첨과는 단숨에 저 금빛 법상을 해치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머리 위 금색 별빛 기둥의 위력이 갈수록 치솟아 조금만 정신을 다른 데 팔아도 검은 법진이 곧바로 무너질 터였다.

    심협도 이 상황을 알아채고는 크게 기뻐하며 한 손을 계속 결인해 삼성멸마를 시전하는 한편, 다른 한 손으로는 허공을 움켜쥐었다.

    근처에 있던 현황일기곤이 빠르게 날아 돌아와 그의 손에 떨어지자, 그는 이어서 남은 손으로 곤봉을 휘둘러 땅바닥에 세차게 내리 꽂았다.

    곤봉에서 노란 빛이 감돌더니 번쩍하고 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첨과는 이 광경에 잠깐 멍해졌지만, 이내 표정이 급변하더니 몸에서 검은 기운을 잔뜩 내뿜어 바닥을 빽빽하게 뒤덮었고, 동시에 몸에는 검은 기운들이 모여 검은 갑옷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뭔가를 더 하기도 전에 노란 빛줄기가 번개처럼 땅바닥의 검은 기운을 뚫고 나와 첨과의 허리와 배를 가볍게 뚫고 지나갔다.

    첨과는 자신을 관통한 현황일기곤을 쳐다보며 잠깐 넋이 나갔다. 마갑(魔甲)이 이렇게 쉽게 뚫렸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현황일기곤에 담긴 자심묵정은 법력을 저장할 수 있다. 심협이 조금 전 이 곤봉을 작동시키기 전에 이미 삼성멸마의 파마성광(破魔星光) 일부를 그 안에 주입해두었었다. 덕분에 이 곤봉의 위력 자체는 강화되지 않았더라도 마기에 대한 파괴력은 크게 증가한 상태였다.

    그때, 꿈속 세상에서 불러낸 힘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 심협은 이를 악물고 한 손으로 급히 결인하여 현황일기곤을 재촉했다.

    첨과의 몸을 꿰뚫은 현황일기곤의 노란 빛이 환하게 밝아지더니 크게 휘둘러지면서 열여섯 줄기의 그림자가 곤봉 주위에 나타났고, 거대한 힘이 폭발했다.

    이에 첨과는 낯빛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몸에서 검은 기운을 미친 듯 내뿜으며 순식간에 검은 소용돌이를 만들어 현황일기곤을 뒤덮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천지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흡입력이 검은 소용돌이 속에서 흘러나와 발천난봉이 뽐내던 위력을 저지했다.

    그러나 지금 첨과는 여러 제한으로 인해 체내의 마기를 운행하기가 어려웠고, 더욱이 현황일기곤에 관통당하여 결국은 발천난봉의 힘이 한 발 앞서 폭발했다.

    열여섯 줄기 곤봉 그림자가 첨과의 몸을 감싸고 바짝 조이자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첨과의 허리가 잘려 몸이 동강나면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동시에 위쪽의 검은 광진도 와르르 흩어졌고, 금색 별빛 기둥이 남은 광진을 썩은 나무 꺾듯 무너뜨리고 첨과의 몸을 집어삼켰다.

    땅이 우르릉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강한 바람이 퍼져 나가 지면을 깊게 한 층 긁어냈고, 주위에는 모래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쳐 사방의 모든 것이 날아다녔다.

    심협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더는 버티지 못하고 땅 위에 반쯤 무릎을 꿇었다. 가슴과 배의 상처에서는 피가 쉬지 않고 흘러 이미 하반신이 거의 다 붉게 물들었다. 게다가 상처의 검은 화염은 빠르게 퍼져 나가 이미 상처 주위의 피부와 살을 칠흑처럼 물들여 놓았다.

    그는 곧바로 대개박술을 운공하면서 손을 뒤집어 요상유영단을 꺼내 삼켰다. 상처 부위에는 곧 무수한 핏줄기들이 나타나 아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핏줄기들은 상처의 검은 화염에 닿자마자 거의 다 불타버렸다. 검은 화염에서는 억세고 음산한 힘이 뿜어져 나와 상처 위에 꿈쩍 않고 자리를 잡고 있는 탓에, 대개박술로도 상처를 아물게 할 방법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검은 화염들에서는 얼음장처럼 차디찬 기운이 흘러나왔는데, 이미 전신에 넓게 퍼져 있어 곳곳이 싸늘하고 무감각하게 변해 있었다.

    심협은 간담이 서늘해져 서둘러 법력을 움직였다. 그러자 눈앞에 금빛 그림자가 스치더니 천책이 번쩍하고 나타나 검은 화염을 모조리 거둬들이면서 상처 주변에 음산한 힘도 사라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