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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43화 (443/1,214)
  • 443화. 금강이 마귀를 무찌르리라(金剛破魔)

    검은 빛은 번갯불에 갈가리 찢겼고, 용단이 다시 비틀비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팔이 잘려나간 곳에는 검붉은 새살이 꿈틀거렸고, 놀랍게도 두 팔은 꽤 많이 자라나 있었다.

    심협은 내심 놀라 곧장 현황일기곤을 힘껏 내던졌다.

    현황일기곤의 16도 금제가 떠오르면서 곤봉의 몸체에는 눈부신 노란 빛이 피어나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울렸다.

    용단은 낮게 으르렁거리고는 몸을 움직여 피하려 했지만, 바로 옆 허공이 일렁이더니 별안간 흡혈귀가 나타나 그의 두 발을 덥석 붙잡았다. 그러자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용단의 두 발에 두 줄기 깊은 상처가 생겨났다. 두 발은 거의 잘려나갈 듯했고, 자연히 용단의 몸이 일순 균형을 잃었다.

    바로 그때, 현황일기곤이 날아와 용단의 몸에 꽂혔다.

    현황일기곤 자체의 힘에 16도 금제의 힘이 더해지자, 이 곤봉은 무엇이든 부술 수 있는 예리한 검처럼 용단의 가슴을 꿰뚫고 땅에 박혀버렸다.

    심협은 순식간에 용단 옆으로 날아가 두 손으로 현황일기곤을 잡고 빙글 돌리며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그는 현실에서 무명공법을 수련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곤법의 신통력을 시험 삼아 발휘해볼 수는 있었다.

    곤법을 펼치자마자 현황일기곤 안에서는 거대한 흡입력이 뿜어져 나와 놀랍게도 체내의 법력을 단숨에 거의 절반이나 빨아들였다. 이에 놀란 심협은 하마터면 현황일기곤을 내던질 뻔했다.

    다행히 발천난봉은 범상치 않은 위력을 발휘했다. 두 줄기 곤영이 떠올라 용단의 몸을 휘감고 가위처럼 한가운데를 가위질 하듯 자른 것이다. 그러자 견고하기 이를 데 없어 아무리 때려도 죽지 않을 것 같던 용단이 갑자기 약해지면서, 두 곤영에 말려 무수한 뼛조각으로 폭발해 완전히 숨통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본 심협의 눈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지금 그의 경지로는 발천난봉을 시전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 위력은 경탄할 만했다.

    심협과 용단의 싸움은 복잡해 보였지만 거의 몇 호흡 만에 끝나버려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백소천과 묵엽선사(墨葉禪師)를 경악하게 했다. 그들 두 사람이 연합해도 마화된 보산선사를 겨우 막아냈는데, 심협은 혼자서 용단을 깨끗하게 끝장내버린 것이다.

    심협이 약간 숨을 몰아쉬면서 손을 휘두르자 용단의 시신 잔해에서 한 줄기 은빛이 날아왔는데, 은빛 반지였다.

    그는 손을 들어 이 반지를 받아 살펴보지도 않고 챙겨 넣은 뒤, 회복 단약을 꺼내 먹고는 곧장 선아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흡혈귀도 따라서 번쩍하고 사라졌다.

    첨과는 용단의 죽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선아의 몸 주위에 떠오른 거대한 법상을 빤히 노려보았다.

    찬란한 금빛이 비추자 그의 몸속 마기도 빠르게 흩어져 사라졌고, 그의 표정에서는 난폭한 기색이 많이 사라졌으며, 눈동자에는 일말의 아득함이 떠올랐다.

    검은 마수는 첨과의 이런 모습을 보고 노기를 번득였지만, 이내 노여움을 감추고 선아를 바라보며 두 눈에서 날카로운 핏빛을 쏘았다.

    마수가 커다란 입을 쩍 벌리자 거대한 핏빛 광선이 날아가 선아를 뒤덮었다. 이 광선은 그 수가 지극히 많아 마치 세차게 용솟음치는 검은 물결처럼 휘몰아치며 촘촘하고 날카로운 파공음을 냈다.

    “금선대사님!”

    마화된 보선도 선아의 법상이 내뿜는 금빛에 뒤로 날아가 도망을 친 터라, 백소천이 다급히 외치며 선아를 향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어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선아 앞의 허공이 일렁이더니 심협이 나타나 팔현경을 꺼내 금빛 빛 장막으로 두 사람을 감쌌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곁에는 푸른 빛이 번쩍이더니 진해주가 나타나 빛의 장막으로 또 다른 방어벽을 쳤다. 그럼에도 핏빛의 범상치 않은 위세에 심협은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커다란 자줏빛 구슬까지 꺼내 세 번째 방어막을 쳤다.

    그 순간, 핏빛 광선들이 팔현경의 금빛 장막 위를 때렸다.

    한바탕 맞부딪치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고, 금색 빛 장막은 오염된 것처럼 빠르게 핏빛으로 변해갔다. 뒤이어 핏빛은 간단하게 이 금빛 장막을 지나 진해주가 만들어낸 두 번째 방어막을 두들겼다.

    진해주가 만들어낸 푸른 빛 장막 역시 빠른 속도로 붉게 물들었고, 핏빛 광선은 가볍게 뚫고 들어왔다.

    두 방어막을 연이어 돌파하면서 핏빛 광선들의 수도 적잖이 줄었지만, 여전히 엄청난 기세로 자줏빛 구슬을 덮쳐왔다.

    이 연이은 변화는 너무도 빨라 심협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마족의 오예마광(汚穢魔光)! 어서 그 구슬법기를 거두고 보통 법기로 막아라! 오예마광에 직접 맞으면 어떤 법기든 망가져버린다고!”

    선아의 손목에서 염주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자 협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줏빛 구슬을 거둬들이려 했다. 하지만 늦고야 말았다.

    거대한 핏빛 광선들이 자줏빛 구슬 위를 매섭게 내려쳤고, 그 안으로 금세 녹아들며 구슬 내부를 향해 침식해 들어갔다. 이에 구슬에서 피어오르던 환한 자색 빛은 이내 어두워졌다.

    다급해진 심협은 손으로 임랑환을 매만지며 법력 소모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천책의 신통력을 발휘하여 이 핏빛 광선들을 거둬들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자줏빛 구슬에서 자색 꽃구름이 다시 용솟음치더니, 고래가 물을 빨아들이듯 핏빛 광선들을 모조리 흡수해버렸다. 그러자 자색 빛이 원기를 보충한 듯 훨씬 커지면서 구슬의 갈라진 틈에 가느다란 실 같은 빛이 돌더니, 놀랍게도 틈새가 조금 메워졌다.

    이제는 검은 마수가 놀랄 차례였다. 그는 자줏빛 구슬을 보고는 눈에 노기를 번득였다.

    심협은 물론 기뻤지만, 감히 이 구슬로 저 괴이한 마수에 맞설 수는 없었기에, 뒤로 몸을 날리며 손을 휘둘러 푸른 빛을 내뿜어 선아를 떠받친 채 후퇴하려 했다.

    그런데 선아의 몸은 이상하리만치 묵직해져서 심협은 꼭 커다란 산을 떠받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법력으로는 선아를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신식으로 주위를 훑으며 다른 변고가 생긴 것은 아닌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주위에 다른 이상한 기운은 전혀 없었다.

    그때, 금선법상이 갑자기 커다란 바람소리를 내며 선아의 몸을 감싸고 땅 위의 봉인 대진(大陣)을 향해 날아갔다.

    금선법상이 지나는 곳마다 금빛이 눈부시게 반짝이며 모든 마기가 말끔히 사라졌다.

    검은 마수는 초조한 기색으로 입을 벌려 또다시 공격을 가했다.

    그때, 허공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한 차례 울리더니 주위에 짙은 금빛을 휘감은 채 강한 불력(佛力) 파동을 내뿜는 금강항마저가 나타났다.

    “불법이 중생을 구제하고 금강(金剛)이 마귀를 무찌르리라(佛法普渡, 金剛破魔)!”

    백소천이 항마저 뒤에 나타나 낮게 외치며 손가락을 구부려 금강저를 가리켰다.

    금강저는 순간 불타오르는 듯 뜨거운 빛을 발하며 유성처럼 떨어져내려 검은 마수를 내리쳤다. 동시에 자그마한 금빛 태양이 떠올라 검은 마수의 몸뚱이 거의 절반을 안으로 끌어당겼다.

    금빛 태양에 휘감긴 검은 마수의 몸 일부는 순간 폭발하면서 곧 금빛 태양에 집어삼켜졌다.

    검은 마수는 대노하여 백소천을 향해 또다시 광선을 한 무더기 내뿜었다.

    이번 광선들은 칠흑같이 검은 빛깔이었는데,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파공음으로 미루어 막강한 공격임이 분명했다.

    백소천은 화들짝 놀라 재빨리 옆으로 피하는 동시에 경당을 움직여 막아섰다.

    경당은 바람을 받으며 크게 불어나 순식간에 몇 장 높이로 변해 그의 앞을 가로 막았고, 그 위로 금색 빛 덮개가 한 층 떠올랐다. 온힘을 다했음에도 검은 광선이 너무 빠르고 또 너무 많아 피하기 힘들었으나, 다행히도 금빛 경당이 그 앞을 막아주었다.

    일부 검은 광선들이 경당을 두들기자 금색 빛 덮개가 종잇장처럼 쉽게 뚫리고 검은 광선이 경당 본체에 곧장 날아가 꽂혔다. 이에 금빛 경당이 심하게 진동하면서 표면에는 깊은 구덩이들이 점점이 파였지만, 이 경당은 놀랍도록 방어력이 강해서 굳건히 견뎌냈다.

    백소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황급히 물러났다.

    콰르릉!

    굉음이 들려오며 지면이 거세게 진동했고, 선아를 감싼 금선법상이 검은 마수가 백소천과 싸우는 틈을 타 봉인 법진 위에 내려선 것이다.

    가닥가닥 금빛이 금선법상에서 흘러나와 법진 문양 속으로 주입되자, 봉인 법진 위의 문양이 밝아지면서 물들었던 부분이 빠르게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봉인의 균열도 금선법상이 피워낸 금빛에 뒤덮이면서 솟구쳐 나오던 마기가 빠르게 흩어졌다. 다만 이곳의 마기는 땅속에서 솟아오른 것이라 근원이 강력하여 전부 소멸되지는 않았다. 그저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뿐이었다.

    한편, 검은 마수는 봉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은 채 금선법상과 마주보고 섰다. 법상의 금빛이 마수의 몸에도 비쳤지만 마수의 검은 기운은 몹시 견고하여 금빛에도 증발하지 않았다.

    검은 마수의 몸에서는 갑자기 검은 빛이 강하게 뿜어져 나왔다가 곧 어두워졌다. 이 짧은 명멸의 순간, 마수는 미친 듯이 꿈틀거렸고, 이마에 시뻘건 외눈이 나타나 실오라기 같은 밝은 핏빛을 내뿜었다.

    핏빛 외눈에서 핏빛 화염이 뿜어져 나와 금선법상을 휘감았고, 이 화염은 더없이 차갑고 음산한 기운을 내뿜어 온 법회장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면서 서늘하고 음침한 기운에 휩싸였다.

    그러나 옆에서 불꽃처럼 붉은 비차(*飛叉: 곡예에 쓰이는, 양끝이 삼지창처럼 생긴 봉) 세 자루가 번개같이 날아와 핏빛 화염을 가로막았다. 심협이 이 핏빛 화염이 어딘가 이상함을 알아보고 막아낸 것이다.

    그런데 둘이 맞닿은 순간, 세 자루의 붉은 비차가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그 위의 영광(靈光)이 몇 차례 깜빡이더니 핏빛 화염에 말끔히 잡아먹히고 말았다.

    비차들은 영성을 크게 잃고 평범한 쇠붙이가 되어 추락했다.

    심협은 이를 보고는 내심 놀랐다. 이 붉은 비차들은 보기 드물게 한 벌을 이루는 법기로, 연신단의 수사에게서 얻은 것이었다. 비차 하나하나가 상품법기였고, 한꺼번에 사용하면 위력이 더욱 강해져 극품법기에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핏빛 화염에 변변한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핏빛 화염은 멈추지 않고 날아가 금선법상을 휘감았다.

    하지만 금선법상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핏빛 화염이 아무리 기승을 부리며 불살라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를 본 검은 마수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반면 심협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뒤집어 현황일기곤을 꺼내 바닥에 푹 꽂았다. 그러자 곤봉의 몸체에서 노란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오더니 땅속으로 빠르게 녹아들었다.

    땅이 심하게 흔들리고 줄줄이 노란 노을빛이 봉인의 균열 근처에서 뿜어져 나와 노란 빛 덮개를 이루며 갈라진 봉인을 뒤덮었다. 그러자 벌떼처럼 쏟아져 나오던 마기는 갈라지면서 멈췄지만, 땅속의 마기는 멈추지 않고 솟아나와 오히려 순식간에 노란 빛 덮개를 검노랑 빛으로 물들였다.

    짙은 음살의 기운이 노란 빛 덮개에서 허공을 사이에 두고 전해지며 심협의 몸을 덮쳐왔다.

    심협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지만, 멈추지 않고 법술을 시전하여 순양검배를 체내로 거둬들인 뒤 순양검결을 운공했다. 순수한 양의 기운이 그의 단전에서 떠올라 단번에 음살의 힘을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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