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442화 (442/1,214)
  • 442화. 불공평한 세상

    “나도 원래는 하늘의 이치니 정의니 하는 것을 깊이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허나 그 결과가 어떠하였느냐? 나의 아내, 나의 아들들 모두 무고하게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한데 그 살인범은 도리어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 얼마나 불공평한가! 천지간에 이보다 더 우스운 일이 있단 말이냐? 으하하하!”

    첨과가 광기 어린 웃음소리를 냈다.

    선아는 말이 없었다. 첨과의 비참한 처지에 대해 그 역시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세상이 이리도 불공평하다면, 나는 차라리 마도에 빠질지언정 끝까지 싸우겠다!”

    첨과는 웃음을 뚝 그치더니, 검붉은 눈으로 선아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주의 비참한 처지는 소승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허나 시주의 이런 행동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분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아가 조용히 말했다.

    “분풀이라……. 그렇다. 나는 그저 분풀이를 하고 싶은 게야! 천지가 나에게 이리도 불공평하니, 내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처자식을 잃은 느낌이 어떠한지 맛보게 해줄 테다!”

    첨과의 얼굴에는 원한과 흉악한 기색이 가득하여 보는 이를 소름끼치게 했다.

    “아미타불.”

    선아는 얼굴에 탄식한 기색으로 불호를 가볍게 읊조렸다.

    “게다가 중놈인 너는 정의롭다고 허풍을 떨지만, 오늘의 상황은 네놈이 만들어낸 것이다. 알고 있느냐!”

    첨과의 얼굴에 조롱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시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선아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는 마도에 빠져 몸이 저승의 탁한 기운을 너무 많이 흡수한 탓에 하루의 대부분은 정신이 광기에 사로잡혀 있지. 비록 임달이 겁을 겪는 틈에 뇌겁의 힘을 통해 저승으로 통하는 봉인을 부수려 했지만, 정신이 맑지 않아 순조롭게 완수할 자신이 없었다.

    한데 뜻밖에도 네가 불법(佛法)으로 내 체내의 탁한 기운의 반서를 녹여 없애고 나를 회복시킨 덕분에 이 모든 것을 순조로이 이룰 수 있었다. 그러니 네게는 고맙구나! 하하하!”

    첨과가 득의양양해 웃음을 터뜨리자 사람들은 크게 술렁였고, 선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한편, 심협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우려가 됐다. 선아는 금선자의 환생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직 어리니 이런 현실에 큰 충격을 받을 터였다.

    그는 용단을 다시 한번 단칼에 몰아내고 선아 쪽을 바라보았다.

    허나 심협의 예상과는 달리 선아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지만 후회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네가 이 모든 것을 자초한 것이니라! 온 적곡성, 오계국, 심지어 서역 36국까지 전부 불지옥에 떨어질 것이야. 한데도 너는 아무런 후회가 없단 말이냐?”

    첨과는 이런 선아의 모습에 조금 뜻밖이라는 듯 차게 웃으며 물었다.

    “소승이 법술로 시주를 구한 것은 우리 불문의 자비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는데 후회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시주의 지금 행동 역시 소승은 목숨을 걸고 막을 것입니다.”

    선아는 담담히 말하고는 가부좌를 틀더니 불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막겠다고? 그럼 내 먼저 너를 서천(西天)의 부처님께 보내주마!”

    첨과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콧방귀를 뀌고는 양팔을 벌렸다.

    온 천하를 뒤덮을 듯한 마기가 검고 음산한 바람에 뒤섞여 순식간에 그의 몸에서 시커멓게 쏟아져 나와 선아를 향해 휘몰아쳤다.

    “금선대사님!”

    백소천은 만사 제쳐두고 선아를 구하러 달려들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선아의 몸에서 금빛 불광이 피어오르고 손목 위의 염주가 금빛 광채와 불가의 진언들을 내뿜으며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선아의 몸에 떠오른 금빛은 마치 자극을 받은 듯 금세 눈부시게 변했다.

    수만 갈래의 불광 속에 불타의 허상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는 바로 이전에 나타났던 금선의 법상이었다.

    주위의 허공에는 염불소리가 울려 퍼지며 점점 커지더니 눈 깜짝할 새에 천지를 뒤흔들었다. 웅장한 불력(*佛力: 부처의 위력)이 흘러나와 온 하늘을 뒤덮은 마기를 가로막았다.

    흡혈귀도 이 기세등등한 불력을 이기지 못하고 곧장 나가떨어졌다.

    “불타 법상!”

    첨과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이로 혀끝을 살짝 깨물었다.

    정혈 한 모금이 입에서 뿜어져 나와 검은 마수 안으로 녹아들어갔고, 그는 곧 괴상한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이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마치 악마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처럼 듣기가 몹시도 괴로웠다.

    검은 마수의 공허하던 눈에 핏빛 눈알 같은 새빨간 빛 두 덩이가 떠올랐다. 곧이어 생기라고는 전혀 없던 마수가 한순간 살아나며 생명을 지닌 듯 고개를 쳐들고 흥분한 울부짖음을 발했다. 마치 수천 수백 년의 멍에에서 벗어나 세상에 다시 나타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수의 기운은 그리 강해지지 않았지만, 그 몸체에서는 세상 모든 것을 적대시하고 망가뜨리려는 듯한 광기와 살의가 더없이 짙게 솟구쳐 나왔다.

    이어 이 무시무시한 살의를 감지한 사람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검은 마수는 하늘을 우러러 길게 울부짖은 뒤 곧 잠잠해졌다. 그리고 두 눈에서 거센 핏빛을 발하며 선아를 바라보고 입을 쩍 벌려 금선법상을 향해 어두운 기운이 반짝이는 검은 빛을 내뿜었다.

    거세게 일렁이는 금빛에 비해 이 검은 빛은 바닷속 좁쌀 한 알처럼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하늘을 뒤덮은 금빛과 겹겹의 불력 속에서 이 검은 빛은 굳세게 살아남아 금선법상의 미간을 스치듯 찔렀다.

    금선법상의 이마가 즉시 검게 물들더니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자비롭고 평화롭던 법상의 얼굴이 포악해지고 점점 더 흉악하게 변해갔다.

    울려 퍼지던 염불이 뚝 그치자 소란스럽던 천지가 순간 고요해졌다. 선아의 작은 얼굴에도 고통스런 기색이 떠오르면서 몸의 금빛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그때, 이 중요한 고비에서, 금빛 한 덩어리가 불현듯 선아의 가슴에 떠올라 번쩍하고 금선법상과 한 몸이 되었다. 바로 화호초에게 받은 사리였다.

    금선법상은 대단한 보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순식간에 몇 배로 커졌고, 얼굴의 검은 기운도 빠르게 걷히면서 허공에 염불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또한 금빛이 반짝이자 흐릿했던 금선법상도 빠른 속도로 또렷해져갔다.

    이 불타는 온몸이 황금빛이었고, 눈썹은 가늘고 길었으며, 금빛 빛살을 뿜어내고 있었다. 미간에는 선명한 빛깔의 주사(*朱砂: 수은으로 이루어진 붉은 광물) 자국이 장식되어 있었고, 두 눈동자는 온화하고 생기가 넘쳤으며, 빙그레 웃는 얼굴이 지극히 자애롭고 인자한 느낌을 자아냈다. 이 법상을 보기만 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굳건한 염원과 무궁한 믿음이 절로 생겨나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거대한 금빛이 금선법상에서 환하게 피어올라 떠오르는 해처럼 눈부시게 법회장 전체를 뒤덮었고, 하늘의 구름층에도 금테가 물들었다.

    땅속에서 솟구쳐 나온 사나운 마기는 뜻밖에도 천적을 만난 것처럼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멀리 떨어져 있던 마화된 사람들도 이 금빛이 닿자 마기가 흩어지기 시작했고,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잇달아 달아났다.

    용단도 마찬가지로 멀찌감치 물러나자 심협은 눈동자에 은빛을 반짝이며 손을 뒤집어 낙뢰부 한 장을 꺼내 바스러뜨리고는 반대쪽 팔로 허공을 가리켰다.

    꽈르릉!

    우렛소리가 울리면서 굵직한 은빛 활 모양 번개가 하늘에서 떨어져 10여 장 밖, 심협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자리에 떨어졌다.

    콰지직!

    검은 그림자 하나가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용단이었다.

    용단의 신법(身法)은 기이했지만 심협의 놀라운 시력과 강력한 신식은 이미 그 기이한 신법의 법칙을 어느 정도 간파한 참이었다.

    심협은 두 발에 달빛을 거세게 발하며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다음 순간 용단의 곁에 나타나 세찬 붉은빛을 발하는 오화선을 매섭게 휘둘렀다.

    하늘을 찌르는 붉은 빛이 오화선에서 폭발하며, 몇 장 크기의 붉은 화봉이 부채에서 튀어나와 날개를 활짝 펴고 지척에 있는 용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용단은 놀랍게도 어느새 몸을 가누고 두 손을 황급히 내저었다.

    그의 몸에서 별안간 검고 붉은 두 빛깔의 거대한 마기가 쏟아져 나와 화봉이 몸을 덮치기 직전에 검붉은 빛 장막을 이루었고, 이 빛의 장막 속에는 핏빛 인광(燐光)이 마치 가닥가닥 핏빛 번개처럼 번득여 매우 기이해 보였다.

    하지만 용단이 지닌 기운은 갑자기 큰 폭으로 떨어졌다. 검붉은 마기는 평범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몸속에 있든 근원적인 힘과 연관된 것이 틀림없었다.

    붉은 화봉은 검붉은 빛과 맞부딪치자마자 천둥소리 같은 폭발음을 발했다.

    이때 심협이 차갑게 웃으며 손에서 한 줄기 푸른빛을 뿜어내 검붉은 빛 장막 위를 때렸다.

    “거둬라!”

    그가 낮은 소리로 외치자 몸에 금빛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검붉은 빛 장막이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고, 붉은 화봉은 다시 돌진해갔다.

    용단의 생기 없는 회백색 눈에 깜짝 놀란 기색이 드러났지만, 다시 뭔가를 하기도 전에 붉은 화봉이 거세게 들이받았다.

    쿵!

    굉음이 들리면서 붉은 부적 문양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신비한 붉은 빛무리가 갑자기 나타나 용단의 모습을 집어삼켰다. 이 붉은 빛무리는 그다지 눈부시지 않았지만,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엄청난 영압과 고온을 뿜어내 공간을 진동시켰다.

    그런데 그때, 붉은 빛무리 속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바로 용단이었다.

    그의 몸 반쪽은 검게 그을렸고, 오른팔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속도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은 듯 여전히 번개처럼 멀리 달아났다.

    그러나 심협은 일찍이 현황일기곤을 꺼내 든 채 기다리고 있다가 용단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는 곤을 크게 휘둘렀다.

    하늘에 닿는 거대한 힘이 먼저 용단을 뒤덮으면서 그 주위의 허공까지 삐걱삐걱 짓눌리는 소리를 냈고, 빠르게 날아가던 용단의 형체가 즉시 가라앉으며 마치 진흙탕에 빠진 듯 속도가 뚝 떨어졌다.

    그는 고개를 홱 치켜들고 멀쩡한 왼손에서 검은 빛과 마기를 미친 듯이 내뿜으며 위를 향해 맹렬히 올려쳤고, 칠흑 같은 권영(拳影)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노란 곤영과 거세게 충돌했다.

    꽈르릉!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렸다.

    검은 폭풍은 노란 빛과 한데 뒤얽혔다. 그러나 두 힘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어서, 검은 권영은 순식간에 흩어진 반면 노란 곤영은 끄떡 없이 계속 떨어져 내렸다.

    용단은 낮게 고함을 지르며 돌연 무릎을 꿇고 남은 팔을 들어올렸다. 그 위로는 검은 기운이 미친 듯이 치솟아 패왕항정(*覇王抗鼎: 패왕 항우가 큰 솥을 들어올리다) 자세로 노란 곤영을 가까스로 받아냈다.

    쾅!

    굉음과 함께 용단의 왼팔이 그대로 터져 나가며 몸이 운석처럼 허공에서 곤두박질 쳐 땅에 처박혔다.

    땅 위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파였고, 그 한가운데에 용단의 몸이 가슴까지 절반쯤 파묻혔다. 그런데도 용단은 멀쩡해 보였고, 몸 표면에서 검은 빛이 세차게 일어나더니 맹렬하게 퍼져 나가 근처의 흙을 휩쓸며 땅 위로 훌쩍 뛰어 올랐다. 그리고는 몸에서 더욱 용솟음치는 마기를 내뿜으며 번쩍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래도 멀쩡하다니!”

    심협은 놀란 표정으로 곧 두 눈에 은빛을 환하게 발하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문득 낙뢰부 한 장을 꺼내 바스러뜨렸다.

    공중에 번갯불이 번쩍이며 굵직한 은빛 벼락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20장 밖의 다른 빈 터에 내리꽂혔다.

    꽈르릉!

    무수한 활 모양 은빛 번개줄기가 터지면서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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