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눈속임
갖가지 법기와 비술 공격이 기다란 여광을 드리운 채 유성처럼 첨과에게 날아들며 날카롭게 울렸다. 그 기세는 앞서의 공격보다 더욱 맹렬했다.
첨과는 음침한 표정으로 몸에 자흑색 마문(魔紋)의 빛을 거세게 뿜어내며 양손을 수레바퀴처럼 결인했다. 주변의 검은 공기 벽이 세차게 용솟음치며 사람들의 공격에 맞섰다.
연이은 굉음이 지난 뒤, 사람들의 공격은 다시 튕겨나갔지만, 검은 벽 또한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것이 이미 한계에 이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심지어 첨과의 몸도 크게 진동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결인해 법술을 쓰면서 검은 벽을 안정시켰다.
“여러분, 저 마귀는 버틸 수 없소! 조금 더 힘을 내십시오!”
백소천은 큰소리로 외치고는 입을 벌려 금빛을 한 덩어리 뿜어내 쥘부채 안으로 녹여 넣었다.
쥘부채 위에 군불송경도(*群佛誦經圖: 여러 부처가 불경을 낭송하는 그림)가 환하게 금빛을 피워내며 금강불타(金剛佛陀)가 부채에서 튀어나와 첨과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금강불타의 기세는 조금 전의 금빛 회오리보다 훨씬 작았지만, 이상하리만치 묵직한 위세를 뿜어냈고, 지나가는 곳마다 허공에서 우우하며 낮게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그가 양손으로 금강법인(金剛法印)을 맺자 경당이 다시 나타나 강렬한 금빛을 내뿜으며 검은 벽을 내리쳤다.
심협은 법력을 아끼기 위해 오화선을 거두고 방향을 틀어 순양검결을 운공했다. 그러자 순양검배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며 홍련업화가 떠올라 검신에 퍼지면서 순식간에 한 자루의 불검이 되었다.
심협이 소맷자락을 휘두르자 검이 날카로운 소리를 울렸고, 화염 검산이 나타나 검은 벽을 베었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더 강한 공격으로 검은 벽을 때렸다.
사람들의 맹공에 검은 벽이 순간 극심하게 요동치더니 빠르게 엷어졌고, 곧 갈라질 것만 같았다.
심협은 순양검배로 공격하면서 첨과를 빤히 살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첨과는 아까부터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선 채 모든 사람의 공격에 맞서고 있었다. 대승기라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싸우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겠는가?
“설마……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인가?”
심협은 눈동자의 은빛을 환하게 밝히며 첨과의 두 발을 바라보고는 안색이 돌변했다.
그의 짐작대로 실오라기처럼 가늘고 희미한 검붉은 빛이 바닥에서 솟아올라 첨과의 두 발로 끊임없이 녹아들며 그의 몸 곳곳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그 검붉은 빛들은 지극히 가늘어 그가 천년사매(千年蛇魅)의 동력(瞳力)을 쓰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터였다.
심협은 안력(眼力)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이 검붉은 빛이 첨과의 몸에 들어간 뒤의 변화를 분명히 알아보았다.
검붉은 빛은 곧바로 첨과의 체내 법력과 하나로 합쳐졌고, 법력은 급속도로 마기에 물들면서 음산한 힘으로 변하며 강해져갔다.
“서두릅시다! 저자가 시간을 끌며 마기를 흡수하고 있소!”
심협은 다급한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동시에 더는 법력을 아끼지 않고 다시 손을 뒤집고 오화선을 꺼냈다.
다른 사람들도 그 말에 엄숙한 표정으로 잇달아 더 강한 공세를 퍼부었다.
한편, 첨과는 고개를 홱 쳐들어 심협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는 노기가 번득였지만, 이내 조롱하는 듯한 기색으로 바뀌더니 오른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다섯 갈래의 시뻘건 빛이 그의 손끝에서 쏘아져 나와 검은 마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거대한 검은 마수의 두 눈동자에 한 가닥 핏빛이 떠오르더니 커다란 입을 쩍 벌렸다. 그 안에서 여덟 갈래의 검은 그림자가 쏘아져 나와 검은 벽을 지나 사람들을 향해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이 그림자는 바로 이전에 검은 촉수가 휩쓸어 간 시체들이었다.
이 시체들은 되살아나 망가졌던 몸도 처음처럼 회복되었지만, 온몸에는 옅은 검은색 영문(靈紋)이 가득했고, 팔뚝과 허벅지에는 자흑색 비늘이 한 겹 돋아나 깜빡이며 기이한 빛을 번득였다. 또한 그들의 두 눈은 흐리멍텅하게 변했으며, 입에서는 들짐승의 그것과 같은 나지막한 으르렁거림이 터져 나왔고, 이지(理智)를 상실한 것이 분명했다.
다만 이들은 중년 승려와 달리 몸집은 커지지 않았으나, 속도만은 놀랍도록 빨라 가히 번개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들은 별안간 서역의 여러 승려들 가까이에 이르렀는데 많은 사람이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조심하십시오!”
심협이 두 손으로 다급하게 결인을 맺자 푸른 그림자가 스쳐 지나면서 진해주(鎭海珠)가 그의 곁에 나타났다. 허공에는 물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널찍한 물의 장벽이 맺혀 마화된 사람들을 막아섰다.
마화된 사람들은 낮게 울부짖더니 손에서 검은 빛을 폭발적으로 내뿜었다.
찌익!
비단 찢어지는 소리가 울리더니 물 장벽이 손쉽게 찢겨나갔다.
심협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서역에는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물의 기운이 희박한 탓에 진해주를 쓴다 해도 물 계통 법술의 위력은 부족했다.
물 장벽은 곧바로 부서졌지만, 마화된 사람들도 잠시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 틈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수법으로 이 마화된 사람들과 맞붙었다.
심협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의 앞에 거센 악풍(惡風)이 일어나더니 검은 형체가 거의 순간이동처럼 나타나 두 줄기 검은 번개처럼 검은 마수를 가슴팍에 꽂았다.
다행히 심협은 시력이 크게 늘어서 검은 그림자가 스치듯 다가오기 전에 약간의 흔적을 포착하고는 두 발에 달그림자의 빛을 내뿜으며 물러나 가까스로 피해냈다.
그는 그제야 이 검은 형체가 바로 용단임을 알아차렸다. 그의 몸에서는 방대한 마기의 파동이 폭발했는데, 뜻밖에도 이미 출규기 정점에 달하여 대승기까지는 겨우 한 끗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다른 검은 그림자의 두 손이 어느 출규기 승려의 몸을 꿰뚫은 것이었다.
그 검은 그림자는 바로 보산이었는데, 그의 몸에서도 지극히 강한 기운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역시 출규기 정점에 도달한 상태였다.
보산은 두 손을 사납게 좌우로 벌려 승려의 몸을 그대로 반으로 찢어버렸다. 승려의 오장육부와 핏줄기가 비처럼 허공에서 흩날려 사람들은 기겁했다.
심협도 신식으로 이 광경을 감지하고는 간담이 서늘해져 다시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때, 앞에 있던 용단이 입꼬리를 헤벌쭉 벌리고 웃더니 두 발로 땅을 세차게 굴렀다. 그는 몸에서 빠드득 하는 뼛소리가 울리며 온몸이 한 줄기 잔상으로 변하여 그 자리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이를 본 심협은 즉시 신식을 운행하여 그가 있던 자리를 감지해보았으나, 신식은 용단의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고, 상대는 증발해버린 듯했다.
‘신식의 탐색을 피할 수 있다니, 이건 무슨 신통력이란 말인가!’
그는 두려운 마음에 곧장 손을 뒤집어 팔현경을 꺼내 머리 위에 띄웠다.
거울 면에 광채가 번쩍이며 아래쪽으로 환한 빛을 비추자 그의 주위에 여덟 개의 거울 같은 푸른 빛의 장막이 맺혔다. 이어서 각 장막마다 신묘한 부적 문양이 한 줄기씩 비쳐 나와 강렬한 영력 파동을 일으켰다.
그 순간, 심협의 등 뒤에 검은 기운이 나타나더니 용단이 모습을 드러내 검은 비늘이 가득 돋은 두 주먹을 매섭게 내리쳤다.
심협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신식으로 모든 것을 감지하고는 법력을 팔현경 안으로 더 쏟아부었다. 그러자 보경의 정면이 번쩍이며 예스러운 부적 문양이 떠올랐고, 거울 면 전체에 비치던 빛이 금빛으로 변했다.
눈부신 금빛이 내리쬐자 푸른 빛의 장막은 순식간에 금색 빛 장막으로 변했다. 그 위의 부적 문양 또한 제각기 뒤틀리면서 여덟 마리의 전설 속 진산이수(*鎭山異獸: 산을 지키는 기이한 짐승)로 변모하여 방어가 한층 견고해졌다.
펑! 펑
두 차례 굉음과 함께 금빛 장막이 격렬하게 진동하며 팔현경도 크게 울렸다.
한편, 빛 장막 안에 있던 심협은 무서울 정도로 거대한 두 줄기 기운이 덮쳐오는 것을 느끼고는 즉시 거울과 함께 비스듬히 날아갔다.
비록 금색 빛 장막이 몸을 보호해주었지만, 그는 여전히 등이 쿡쿡 쑤시고 얼얼했다. 심지어 온몸이 한순간 통제력을 잃어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극품 방어법기인 팔현경으로도 마화된 용단의 두 주먹을 온전히 막아내지 못하다니, 용단의 실력이 도대체 얼마나 강해졌다는 것인가?
한편, 용단은 일격을 가한 뒤 몸에 검은 빛을 번쩍이며 다시 사라졌다가, 다음 순간 느닷없이 심협 옆에 나타나 시커먼 두 주먹을 휘둘렀다.
쾅!
심협은 다시금 나가떨어졌다. 이번 일격의 충격은 상당해, 몸속에 응집된 법력도 이 강력한 두 주먹의 힘에 적잖이 흩어지면서 금빛 장막이 일순 어두워졌다.
용단은 들짐승처럼 낮게 으르렁거리며 별안간 몸을 앞으로 내밀어 온몸에 뼈가 없는 것처럼 몸을 기이하게 늘여 순식간에 심협 뒤로 돌아가서는 또다시 두 주먹을 내리 찍었다.
만약 평범한 출규기 수사였다면 이런 번개 같은 공격에 그대로 봉변을 당했겠지만, 심협은 적을 상대해본 경험이 풍부했다. 그는 두 발에 달그림자의 빛을 환하게 발하며 힘껏 내달렸고, 이에 용단의 두 주먹은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동시에 심협은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그러자 자색 빛 덩어리가 쏘아져 나와 폭 1장 정도의 커다란 자줏빛 구슬로 변하여 등 뒤를 막았다. 바로 요풍에게서 빼앗아온 그 자줏빛 구슬이었다.
용단의 두 주먹이 커다란 자줏빛 구슬을 두드리며 굉음을 발했다. 이에 자줏빛 구슬이 크게 흔들리며 뒤를 향해 날아갔고, 갑자기 그 안에서 자줏빛 꽃구름이 용솟음쳤다. 그러더니 엄청난 흡입력을 내뿜어 용단의 권경(*拳勁: 내공으로 만들어진 힘이 주먹을 통해 자유자재로 전달되는 것)을 빨아들였다. 그러자 자줏빛 구슬은 즉시 안정되었고, 용단의 주먹은 심협의 몸에 침투되지 않았다.
이 자줏빛 구슬의 방어력이 이토록 놀랍고 심지어 상대의 공격을 흡수까지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던 심협은 눈을 반짝였다. 이 구슬을 얻은 뒤 몇 차례 시험해 보았지만, 공격을 흡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마기를 띤 공격만 흡수할 수 있는 것인가?’
심협은 그렇게 짐작하면서도 손동작을 늦추지 않고 즉시 결인해 순양검배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구부려 가리키자 순양검배가 검산으로 변하여 천지를 뒤덮을 기세로 용단을 향해 날아갔다.
멍해 있던 용단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그는 순양검배의 홍련업화가 몹시 두려운 듯 두 발을 파르르 떨더니 한 줄기 잔상으로 변해 다시 한번 사라졌다.
자색 구슬이 보호해주니 심협은 열세에서 벗어나 맞설 수 있었다. 다만 마화된 용단의 힘은 실로 무시무시했고, 자취를 숨기는 신법도 지니고 있어 도저히 첨과에게는 신경을 쓸 수가 없었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보산은 혼자서 백소천과 타란선사, 여기에 또 다른 출규 중기 승려에 맞서면서도 오히려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첨과는 방해가 사라지자 땅속의 마기를 들이마시는 데에 박차를 가하여, 기운이 치솟아 금세 대승 중기에 도달했다. 그의 곁에 있던 검은 마수도 적잖이 커졌고, 텅 비었던 두 눈동자에 약간의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 마치 살아날 것만 같았다.
“아미타불! 첨과 시주, 정녕 마도에 빠져 세상을 멸하는 악행을 저지를 작정입니까?”
그때, 줄곧 멀찍이 서 있던 선아가 돌연 앞으로 걸어 나오며 불호를 읊조린 뒤 물었다.
“금선대사님, 저자에게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백소천은 선아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오자 놀라서 황급히 외치며 몸을 날려 막아서려고 했다. 그러나 보산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한편, 심협도 안색이 돌변하여 오른손을 결인해 손끝에 붉은 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순양검배의 검광이 갑자기 배로 불어나면서 천지를 뒤덮는 검우(劍雨)가 쏟아져 내려 용단을 한쪽으로 몰아갔다.
이 틈에 심협은 왼손으로 물줄기를 소환하여 불가사의한 속도로 통령술을 시전했다. 그러자 한 줄기 붉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는데, 얼마 전에 굴복시킨 그 흡혈귀였다.
‘가서 저 어린 승려를 보호해라.’
심협이 전음으로 명하자 흡혈귀는 눈 깜짝할 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심지어 흡혈귀의 존재를 눈치챈 사람도 몇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