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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40화 (440/1,214)

440화. 배후의 검은 손

얼마나 지났을까. 폭발음이 잦아들고 하늘의 먹구름도 사라졌다.

성련법단의 남은 세 수도사는 넋을 놓고 있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부랴부라 흩어져 달아났다.

조비극과 백소천도 더는 그들을 쫓지 않고 심협과 고승들에게 다가왔다.

그 와중에 조비극은 문득 무언가를 감지하고는 손짓하여 사막 속에 반쯤 파묻힌 흑정단환(黑晶丹丸)을 거둬들였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백소천이 다가오며 물었다.

심협은 선아를 천천히 내려놓으며 막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안색이 갑자기 돌변하더니 갈라진 협곡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 끝에는 둘레가 1장쯤 되는 시커먼 동굴이 있었다. 그 사방에는 아홉 개의 돌기둥으로 둘러싼 봉인 법진이 있었는데, 지금은 절반 이상 부러진 상태였다.

쿠르릉!

칠흑 같은 동굴 깊은 곳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고, 뒤이어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짙은 검은색 운무가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봉인의 균열 사이로 솟아나왔다.

이 검은 기운은 매우 끈적끈적하고 농밀해서 물보다 무거워 보였는데, 혼탁하고 살벌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 격변에 심협을 비롯한 사람들은 깜짝 놀라 황급히 몸을 날려 피했다. 하지만 중상을 입은 데다가 비교적 가까이 있던 중년 화상이 미처 피하지 못했고, 검은 기운에 두 다리가 닿고 말았다. 그러자마자 그의 두 다리는 곧바로 검게 변했는데, 이는 빠르게 위로 뻗어 나갔다.

“크아악!”

중년 화상은 두려운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온몸에 금빛을 환하게 내뿜어 검은 기운이 침식해 오는 것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검은 기운은 멈춰 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닿자마자 금빛을 집어삼켜버렸다.

화상의 온몸은 빠르게 검은색으로 변해갔고, 내지르던 비명도 날카로운 울부짖음으로 변해버렸다. 그의 몸은 돌연 미친 듯이 불어나기 시작했고, 몸에는 동전만 한 비늘들이 돋아나 검은 빛을 발했다. 또 손발에는 피처럼 시뻘건 빛깔의 괴이한 골자(*骨刺: 가시 같이 뾰족한 뼈)가 자라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 불문의 승려는 3장에 달하는 거대한 마물로 변해버렸고, 핏빛으로 변한 그의 두 눈에는 더 이상 털끝만큼의 인간성도 남지 않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뱀이나 전갈을 피하듯 그 검은 기운을 피해 더 멀리 달아났다.

심협 또한 물러나려는데, 그때 사람 형체 하나가 뒤로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봉인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이에 심협도 재빨리 생각을 바꿔 손을 뒤집고 현황일기곤(玄黃一氣棍)을 꺼내 몸을 돌리며 휘둘렀다. 검노랑 곤봉 그림자가 마치 번개처럼 그 형체를 향해 날아갔다.

곤봉 그림자가 지난 곳의 허공에는 물결 같은 파문이 일며 무시무시한 바람소리를 냈다.

이에 막 달려가던 인영은 흠칫 놀라더니 소매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회백색 빛이 쏘아져 나와 회백색 골번(骨幡)으로 변했다.

이 번은 전체가 백골을 정련하여 만든 것으로, 사람의 뼈인지 짐승의 뼈인지 알 수 없었으나 표면에는 시커먼 안개가 어른거렸다. 그 위로 수많은 회백색 부적 문양들이 보일 듯 말 듯 가물가물했다. 또한, 번 꼭대기 부분에는 사람의 것인 듯한 해골머리 다섯 개가 박혀 있었는데, 그 입에는 날카로운 이빨들이 삐뚤빼뚤 나 있었다.

다섯 해골머리가 일제히 음산하고도 날카롭게 울부짖자 듣는 이들은 심신(心神)이 불안해지고 기혈이 들끓었고, 동시에 백골번이 검은 빛을 뿜어내 현황일기곤과 요란하게 맞부딪쳤다.

꽈르릉!

한 차례 커다란 굉음이 울렸고, 백골번이 부서져 큼지막한 뼛조각들이 비처럼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현황일기곤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계속 검은 형체를 공격했다.

그런데 그때, 앞쪽에 검은 그림자가 번쩍 스치면서 기골이 장대한 검은 그림자 하나가 가로질러 다가왔다. 마화되었던 중년 승려였다. 그가 검은 빛을 뿜어내자 두 손은 맷돌만 한 검은 마수가 되어 현황일기곤을 붙잡으려 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현황일기곤이 중년 승려를 두들기자 그도 백골번처럼 폭발해버렸다. 하지만 현황일기곤의 힘도 소모되어 멈춰 서고 말았다.

그 틈에 인영은 다시 뛰쳐나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 봉인이 무너진 곳으로 내려서서 용솟음치는 검은 기운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뜻밖에도 그는 첨과였다.

“첨과, 당신 무얼 하려는 게요?”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심협은 경악해 외쳤다.

첨과는 검은 기운 속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서 있었는데, 검고 탁한 기운에 침식당하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이 꾸민 짓이오?”

심협이 진중한 목소리로 외쳤다.

첨과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양손을 결인해서 끌어당겼다. 그러자 주위의 검은 기운 대부분이 커다란 검은 촉수로 변해 수십 장 떨어진 깊숙한 곳으로 번개처럼 날아가 사람들을 움켜잡으려 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돌진하여 봉인의 문양을 빠르게 침식해갔다. 그러나 문양들 위의 영광(靈光)은 몹시도 견고하여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사람들은 이미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터라 검은 촉수가 이들을 붙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근처에 있던 용단과 보산 등의 시체는 이 촉수에 휘말려 검은 기운 속으로 들어갔다.

심협에게도 두 개의 검은 촉수가 매섭게 휘몰아쳐 왔으나, 그는 오히려 침식당하고 있는 봉인을 향해 눈길을 돌리고는 어두운 낯빛으로 오화선을 꺼내 휘둘렀다.

하늘을 찌를 듯한 봉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새빨간 봉황이 부채 안에서 날아 나왔다. 봉황의 겉모습은 오화선이 예전에 발산했던 오색 봉황보다 휘황찬란하기는 덜했지만, 뿜어져 나오는 영압은 훨씬 더 무시무시했다. 화봉은 무시무시한 고온을 발하며 두 검은 촉수와 맞부딪쳤다.

두 개의 검은 촉수는 붉은 봉황에 닿자마자 얼음과 눈이 불길을 만난 것처럼 빠르게 녹아내렸다.

붉은 봉황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검은 기운들을 뚫으며 첨과에게 돌진했다.

동시에 심협은 손을 뒤집어 낙뢰부 한 묶음을 꺼내 내던졌고, 이 부적들은 번쩍이며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공중에서 10여 줄기의 번개가 연달아 나타나 천둥번개 숲을 이루며 날아들더니 붉은 봉황과 거의 동시에 첨과에게 꽂혔다.

꽈르릉!

천지를 뒤흔드는 연이은 굉음과 함께 작열하는 태양 같은 붉은 빛과 눈을 찌를 듯한 은빛 뇌광이 첨과의 몸을 파묻었다. 화염의 폭발음과 천둥번개의 굉음이 한데 뒤얽혀 반경 10여 장을 온통 뇌화(雷火)의 바다로 만들었고, 검은 기운은 거의 다 소멸된 듯했다.

이를 본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다.

백소천도 탄복한 표정이었다. 그의 수련 경지는 심협보다 한 수 위였지만, 공격 수법과 단시간의 폭발적인 위력에 있어서는 많이 뒤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천둥번개의 바닷속에서 차가운 코웃음 소리가 들리더니 바닥이 심하게 요동치며 좀 전보다 훨씬 더 정제된 검은 기운이 벌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기운은 주위의 화염과 벼락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꾸역꾸역 모여 하나로 뭉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흉악하게 생긴 검은 마수(魔首)를 이루었다.

마수는 높이가 30여 장에 이마에는 날카로운 뿔이 세 개가 돋아 있었으며, 거무스름한 비늘들이 머리 대부분을 덮고 있었다. 두 눈은 검붉었고, 입에는 뾰족하고 기다란 이빨이 밖으로 드러나 있어 더없이 흉악하고 무시무시했다.

마수가 입을 쩍 벌리고 빨아들이자 엄청난 흡인력이 뿜어져 나와 주위의 벼락과 화염을 빨아들였다.

그때 첨과가 검은 마수 곁에 나타났다. 다만 그의 겉모습은 크게 변해 있었는데, 키가 족히 5장에 이르는 거인이 되어 있었다. 피부는 칠흑 같이 검게 변했고, 몸에는 자흑색 비늘이 돋아나 앞서 마화된 중년 승려와 거의 비슷해 보였다.

그러나 첨과의 두 눈은 희미하게 붉은 빛을 띠면서도 여전히 맑았고, 정신도 또렷해 보였다. 또한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하늘을 뒤덮을 듯했고, 출규기를 훨씬 뛰어넘어 대승기 경지에 견줄 만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보고 표정들이 다시 크게 변했다.

“저자는 이곳의 봉인을 깨고 저승의 혼탁한 기운과 마물들을 세상에 풀어놓으려는 겁니다! 그를 막아야 합니다!”

심협은 뒤로 물러나면서 몸을 돌려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지금 마화된 첨과의 힘은 실로 무시무시하여 꿈속의 경지를 소환하지 않고서는 혼자서 맞설 수가 없었다.

그러나 먼 곳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도 서로 멀뚱히 쳐다보기만 할 뿐,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다. 오직 백소천만 심협 곁으로 날아올 뿐이었다.

성련법단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승려들은 모두 서역에서 왔고, 방금 전에 임달의 계략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러니 지금 어찌 적곡성을 위해 나서려 하겠는가?

일부는 심지어 아예 달아나려 했다.

“마물! 백여 년 전의 마물이 다시 강림했어!”

타란선사가 첨과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크게 소리쳤다.

“타란선사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백여 년 전의 마물이라니요? 우리 서역에 이런 마귀가 나타났었단 말입니까?”

옆에 있던 승려가 황급히 물었다.

“그랬지. 그때 수많은 마귀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천정의 선인들이 강림하신 뒤에야 그들을 섬멸할 수 있었네! 어서 그자를 죽이게! 그러지 않으면 더 많은 마물들이 나타날 것이야! 온 서역이 파괴될 것이라고!”

타란선사가 손으로 가리키며 크게 소리를 지르자 한 줄기 금빛이 그의 몸에서 쏘아져 나와 첨과를 향해 날아갔다.

타란선사는 꽤 명망이 높았기에 주위에 적잖은 승려들도 이를 보고 법기를 꺼내 들고 첨과에게로 달려들었다.

이에 심협은 한숨 돌린 표정으로 오화선을 다시 한 번 매섭게 휘둘렀다. 그러자 붉은 화봉 한 마리가 다시 튀어나와 첨과에게 돌진했다. 동시에 심협의 앞에 붉은 검광이 번쩍 스치며 별안간 순양검배가 나타났다.

그가 다섯 손가락으로 검배를 잡은 뒤 손목을 떨치자, 순양검배가 갑자기 수십 개의 붉은 검영으로 변해 검산(劍山)처럼 첨과에게 쏟아져 내렸다.

한편, 백소천도 손을 뒤집어 금빛 부채를 꺼내 휘둘렀다. 금빛 광풍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나와 곧 수십 장 높이의 금빛 회오리바람 기둥이 되어 매서운 기세로 휘몰아쳤다.

첨과는 이 광경을 보고 몸에서 검은 빛을 거세게 내뿜으며 양손을 결인해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마수가 커다란 입을 다시 쩍 벌리고 먹처럼 짙고 검은 기운을 내뿜었고, 이 기운은 검은 벽을 만들어 모든 사람의 공격을 막았다.

콰르릉! 꽝!

연이어 굉음이 폭발하면서 모든 사람의 공격이 튕겨나갔다. 동시에 음산하고 차가운 힘이 엄습해와 사람들의 반신을 마비시키고 법력의 운행도 지체시켰다.

몇몇 사람의 법기는 검은 기운에 적잖이 물들어 영성이 검은 기운에 오염된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이에 법기의 주인들은 황급히 법술을 시전해 가까스로 검은 기운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반면 검은 벽은 그저 가볍게 흔들리기만 했을 뿐,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흥! 하찮은 힘으로 감히 강력한 마족의 불을 막아내려 하다니!”

첨과가 싸늘하게 비웃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각자 운기조식하며 침입해온 음산한 힘을 정화하느라 감히 다시 나서지 못했다.

“속지 마십시오! 저자는 아직 완전히 마족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반마(半魔)의 체질로 억지로 마기를 부추겨 공격을 막아낸 것뿐이니, 지금은 그의 몸속 원기가 혼란하여 허장성세에 불과합니다!”

심협은 냉랭하게 외치고는 첨과를 빤히 보았는데, 그의 두 눈동자에 각각 뱀 눈동자 허상이 떠올라 몇 촌 길이의 은빛을 쏘아 보냈다.

첨과는 낯빛이 굳더니 살기를 번득이며 심협을 노려보았다.

한편, 다른 사람들은 심협의 말에 첨과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는 문득 깨닫고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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