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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438화 (438/1,214)
  • 438화. 마지막 고비

    백소천은 유달리 엄숙한 낯빛으로 빠르게 주문을 외우며 손의 법결을 주문에 따라 바꿨다.

    금빛 글자들이 만들어낸 왕생로(往生路)의 빛이 더욱 밝아지자 귀면에 의해 빨려 들어가던 망령들은 갑자기 길 잃은 어린아이가 집에 돌아가는 길을 찾는 것처럼 너도나도 그쪽으로 몰려왔다.

    하나하나 왕생로에 올라 경당에 다가서자, 그들의 얼굴에서는 놀란 기색이 사라지고 대신 차분하고 편안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금빛 속에 차츰 사라지면서 구혼사자의 영접을 생략하고 곧바로 저승 명부로 향했다.

    “감히 나의 큰일을 망치다니,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보산이 버럭 고함을 지르며 느닷없이 백소천을 향해 불문의 방편산(*方便鏟: 자루가 긴 삽처럼 생긴 무기)을 던졌다.

    방편산의 날 한쪽 끝이 시커먼 빛을 크게 발하더니, 아직 거리가 있는데도 겹겹이 반호(半弧)의 광인(光刃)을 물결처럼 만들어내 백소천을 내리쳤다.

    백소천은 왕생로가 흩어지지 않게 유지하느라 미처 피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금종(金鐘) 법기를 꺼냈다.

    대-앵!

    고찰의 종소리가 울리며 금종이 백소천의 머리 위에 떠올라 금빛을 발하며 그의 몸 바깥에 커다란 금종 허상을 만들어냈다. 이어서 휙휙 바람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금종 위에는 쌀알같이 작은 글씨로 불문의 부동명왕주(不動明王呪)가 새겨져 있었다.

    댕!

    또다시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방편산의 첫 번째 층 광인들이 충돌하며 종소리가 끊임없이 울렸고, 겹겹의 광인이 비바람 몰아치듯 금종 허상에 떨어져 내렸다.

    금종 허상의 빛이 크게 흔들렸고, 백소천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금종의 본체 역시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그러나 백소천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광장에 남은 망령들을 모두 천도할 때까지 견뎌내겠노라 다짐했다.

    콰쾅!

    마침내 방편산의 본체가 금종의 허상을 내리치면서 하늘을 뒤흔드는 요란한 소리가 온 광장에 울려 퍼졌다. 금종 허상은 단박에 수많은 빛들로 화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마지막 망령의 모습까지 왕생로에서 사라지자, 백소천은 마침내 해탈한 듯 양손의 법결을 바꾸어 부동명왕인(不動明王印)을 맺었다.

    우웅!

    진동음이 울리며 금종 본체가 세찬 빛을 발했다. 동시에 산산조각 난 금종 허상이 사라지더니 명왕(*明王: 악마를 굴복시키는 무서운 얼굴의 신장)의 허상이 마치 법상처럼 강림하여 백소천의 몸을 뒤덮고 눈부신 금빛을 피워냈다.

    방편산은 금빛에 부딪치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거세게 튕겨나갔다.

    백소천은 꼿꼿이 선 채 경당을 거둬들인 뒤, 보산을 한 걸음 쫓아가며 손을 크게 내리쳤다. 그의 몸을 둘러싼 명왕의 허상도 같은 동작을 취했다.

    이를 본 보산은 기겁하더니, 튕겨 나와 돌아오는 방편산에 선혈을 한 모금 내뿜으며 결인해 앞을 가리켰다. 그러자 방편산이 핏빛으로 변하더니, 표면에도 시뻘건 불꽃이 한 겹 치솟으며 비검처럼 방향을 틀어 다시 백소천에게 돌진했다. 이 화염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놀랍게도 단숨에 명왕의 손바닥을 가르고 백소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백소천은 즉시 뒤로 물러나며 양손을 빠르게 결인해 방편산을 막으려 했다.

    한데 본래도 놀랍도록 빨랐던 방편산이 갑자기 속도를 높여 곧장 명왕의 가슴을 베어버리고 백소천의 명치로 돌진했다.

    쉬 - 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백소천의 앞섶은 시뻘건 화염에 물들었고, 한순간 잿더미로 변하면서 탄탄한 근육질의 가슴이 드러났다.

    이를 본 보산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으나, 그 표정은 이내 딱딱하게 굳어갔다. 백소천의 온몸에서 금빛이 뻗어나가더니 피부가 금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황금빛으로 변한 것이다.

    “금강호체!”

    백소천의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금강호체는 비밀리에 전해지는 화생사의 호신법으로, 핵심제자가 아니면 익힐 수가 없었다.

    땅!

    맑은 금속음과 함께 핏빛 화염에 물든 방편산이 마치 정금(*精金: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금)을 내리친 것처럼 다시금 튕겨나갔다.

    이 모습을 본 보산은 내심 놀랐다. 자신의 혈염봉인(血焰鋒刃)은 지금껏 백전백승이었고, 같은 경지에서는 막아낸 자가 없었건만, 뜻밖에도 오늘 백소천이 육신공법으로 받아낸 것이다.

    다음 순간, 보산의 눈동자가 움츠러들었다. 금강의 몸을 유지하던 백소천이 극에 이른 신법(身法)으로 돌진하더니 곧장 뛰어올라 어검(御劍)처럼 그의 방편산을 밟고 함께 날아온 것이다.

    보산이 막 방편산을 조종하여 방향을 틀려는 순간, 백소천은 이미 날렵하게 하늘로 날아올라 태산이 머리 위를 누르듯 그를 묵직하게 내리치는 중이었다.

    그 거대한 압박감에 보산은 순간 당황하여 감히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손으로 둔결(*遁訣: 둔술에 쓰이는 결인)을 맺은 뒤 그대로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백소천은 싸늘한 표정으로 주먹을 펼쳐 바닥을 철썩 내리쳤다.

    콰르릉!

    실체 같은 충격파가 곧장 쏟아져 내리면서 사막 전체가 진동했고, 지면에는 크기가 무려 백여 장에 달하는 손바닥 자국이 움푹 파였다.

    이어서 손바닥 자국 가장자리의 모래언덕이 갑자기 불룩 튀어나오더니 당황한 듯 허둥거리는 그림자가 튕겨 나왔다. 이는 물론 보산이었다.

    백소천은 이미 위치를 정확히 계산해놓은 듯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보산의 등 한복판에 주먹을 꽂았고, 그의 주먹은 그대로 보산의 명치를 꿰뚫었다.

    보산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는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몇 차례 경련하더니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생기가 사라진 두 눈은 눈알이 바깥으로 툭 튀어나와 죽는 순간까지도 편히 눈을 감지 못했다.

    시체를 한쪽에 내던진 백소천의 몸에서는 금빛 광이 빠르게 사라졌다. 그가 한숨을 내쉰 순간, 입가와 귓구멍에서 피가 새끼 뱀처럼 구불구불 흘러내렸다.

    금강호체 공법은 수련하기 매우 어려워서, 현재 그로서는 극히 짧은 순간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발작용으로 내상을 입을 각오로 겨우 견뎌낸 것이다.

    “심협, 금선자 대사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오.”

    백소천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약을 하나 꺼내 꿀꺽 삼킨 뒤, 먼저 선아를 한 번 훑어보고 또다시 심협을 바라보았다.

    이 무렵 심협과 용단의 싸움도 중요한 고비에 이르러 있었다.

    임달의 비술로 되살아난 용단은 법력의 기운이 그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고, 몸에는 튼튼한 검은 갑주를 두르고 있었다. 심협은 완전히 열세에 처하여 후퇴를 거듭하는 중이었다.

    한편 임달은 두 차례의 뇌겁을 연이어 버텨낸 뒤였고, 곧이어 일곱 번째 뇌겁이 내리치려는 참이었다.

    하늘의 먹구름은 이미 짙은 검은색이 되어 하늘은 한밤중과 다름없었다. 허공에는 바람조차 불지 않아 사방에는 싸움 소리만이 가득했다.

    고요하고, 엄숙하며,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기운이 온 벌판을 뒤덮었다.

    그때, 하늘에서 네 집법천병의 냉담하던 표정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이들은 하나같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약간의 노기를 드러냈다.

    임달이 머리 위의 어두침침한 구름층 속을 바라보니, 여러 줄기의 뇌광(雷光)이 어렴풋이 반짝이는 듯했다. 그 속에는 벼락이 내리치는 소리 따위는 없었지만 곧 비바람이 몰아칠 듯한 분위기가 그를 두렵고 당황스럽게 했다.

    “보아하니 앞당겨야 할 것 같군.”

    임달은 탄식하듯 읊조렸다.

    이어서 그가 손을 앞으로 휘두르자 손바닥 한가운데에서 순간 혈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 검붉은 핏방울들은 공중에 흩뿌려졌지만, 떨어져 내리지는 않고 허공에 떠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다시 손을 휘두르자 흩어져버렸다.

    핏방울들은 사방으로 날아가 빠른 속도로 법단 바깥의 붉은 빛 덮개 위에 떨어져 아무런 방해 없이 녹아들었고, 그 일부는 정확히 법단 속 고승들의 미간에 떨어졌다.

    고승들은 재빨리 손을 뻗어 닦아내려 했지만, 옷소매가 채 닿기도 전에 핏방울은 이미 그들의 피와 살 속에 녹아들어 미간에는 연지 같은 흔적만이 남았다.

    꽈르릉!

    높은 하늘에서 또 한 번 우렛소리가 울리며 곧 일곱 번째 뇌겁이 떨어져 내릴 조짐을 보였다!

    임달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엄숙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양손을 몸 앞에서 수레바퀴처럼 재빠르게 결인했다. 그러자 발아래 혈정 연화대가 갈래갈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조화(造化)는 수천수만이요, 공덕은 한량없다!”

    그가 나지막이 외치자 온몸의 귀면들이 연이어 움츠러들더니, 하나하나가 조각처럼 그의 몸 위로 굳어갔다. 더 이상 조금 전처럼 사납게 이를 드러내지도 않아 마치 생명이 없는 물건 같아 보였다.

    임달의 발아래에서는 혈정 연화대가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거센 빛을 발했고, 그 위로 가닥가닥 꽃술 같은 가느다란 수정 실이 생겨나 설법대들을 차례로 연결했다.

    설법대마다 핏빛 부적 문양이 떠올라 얽히고설킨 수정 실들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약동하며, 괴이한 기운이 광장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타란선사가 가장 먼저 이상을 알아채고 놀라서 외쳤다. 바람도 없는데 그의 옷자락이 저절로 부풀어 오르더니, 희뿌연 광채가 몸에서 흘러넘쳐 수많은 반딧불이 뒤덮은 것처럼 그의 몸 전체를 감쌌다.

    “이…… 이게 뭐야?”

    타란선사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또 한 명의 선사가 몸에서 환한 광채를 발하며 깜짝 놀라 외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광장의 높은 단상 위는 대부분 빛을 발했다. 어떤 것은 달빛처럼 희미했고, 어떤 것은 등불처럼 환했으며, 어떤 것은 별빛처럼 흩어져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것은 커다란 태양이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몸 뒤에 둥근 원판을 응집해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은 몸에서 빛이 나지 않았다. 바로 선아였다.

    ‘아니, 이럴 수가!’

    임달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선아를 곁눈질로 흘끗 보았다.

    “공덕이란 것이 실체로 나타난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구나.”

    선아는 주위 사람들의 몸에서 나온 빛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그제야 다른 사람들은 이 빛이 자신들이 여러 해 동안 수행하면서 쌓은 공덕임을 깨달았다.

    “안목은 괜찮다만 아쉽게도 쓸모없는 놈이로구나.”

    임달은 선아에게 공덕이 없는 것을 보고는 실망을 금치 못하며 싸늘하게 투덜거렸다. 이어서 더는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두 손을 합장하며 고개를 숙인 채 경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열성적이고 경건하여, 언뜻 보기에는 누구보다도 경건하고 충실한 불자처럼 보였다.

    읊조림이 울려 퍼지면서 임달의 몸에서도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의 불광은 붉은 빛을 띤 편이었으나, 다른 사람들 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밝게 빛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빛이 몸 밖에 조금씩 응집되어 높이가 10여 장이나 되는 보살의 존상(*尊像: 부처나 보살 등의 존귀한 형상)을 이루었다.

    이 보살 존상은 문수보살(*文殊菩薩: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과 비슷한 모습으로,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듯한 기색이었다.

    보살 존상이 응집되자마자 하늘에 하얀 빛줄기가 번쩍하더니 순식간에 반경 백여 리를 눈부시게 비추었고, 하늘에 구멍을 뚫는 듯한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새하얀 번개가 구천폭포처럼 하늘에서 임달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임달은 손을 들어 위쪽을 철썩 올려쳤다. 그러자 보살 허상이 수인을 맺으며 하늘 높이 손바닥을 밀어 올렸다. 그 거대한 손바닥은 마치 우산처럼 임달의 머리 위에 펼쳐져 쏟아지는 벼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뇌겁의 위력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보살의 손바닥 한가운데에 꽂힌 순간, 수많은 번개 줄기가 손바닥을 뚫고 엇갈리며 임달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임달이 이를 보고 재빨리 다시 결인하자 보살 허상의 남은 손으로 다시 벼락을 막아냈다.

    그러나 손바닥은 벼락의 잔재에 무수한 구멍이 뚫렸고, 그 안에 있는 임달도 배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두 손바닥은 강을 가로막는 작은 둑처럼 뇌겁의 위력을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결국 산산이 부서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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